- "체험하고 실천하고 응답 받은 내용으로 설교" -
목회자들은 설교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준비를 할까.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설교자 중에 한 사람인 김진홍 목사(두레수도원 원장, 전 두레교회 담임목사)가 최근 발송한 '김진홍의 아침묵상'을 통해 지난 42년 동안 설교자로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면서 견지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나이 30세 되던 해에 청계천 빈민촌에서 개척교회를 세워 설교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42년째 설교하고 있다."고 밝히고 "지금은 나이 72세이지만 지금도 설교하고 있고 앞으로도 설교할 것이다. 지금의 내 생각으로는 80세가 될 때까지 설교할 작정이다. 아니 그 나이까지 설교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설교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 내가 설교자라는 사실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밝힌 김 목사는 "나는 설교할 할 때에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따라 설교를 준비하고 행한다."며 자신의 설교 준비의 기준을 소개했다.
그는 "첫째가 나는 내가 체험하고 실천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응답 받은 내용으로 설교한다."며 "그래서 나는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집을 읽지 않는다. 나 자신의 생각과 체험과 고민과 응답 받은 내용을 설교하기 위하여서"라고 밝혔다.
그는 설교자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이나 자신의 체험이나 자신이 응답 받은 내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교하는 설교자들이 있다며 그런 설교자들은 듣는 이들의 가슴에 닿는 설교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어 "둘째는 쉽게 설교한다. 설교는 쉬워야 한다. 노인으로부터 어린이들까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쉽게 설교할 수 있는 지름길은 설교하는 내용을 자신이 먼저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자신이 미처 모르는 것을 설교하면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내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 역시 어려워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독교 복음 자체가 어렵지 않다. 아주 쉽고 간결하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쉽게 믿을 수 있는 내용이 복음"이라며, 이에 대한 성경 구절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을 소개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설교를 준비하여 마치는 전 과정을 설교학에서는 Inventory라 한다. 나는 설교를 인벤토리할 때에 여섯 가지 원칙이 있다. 이들 여섯 가지 원칙에 따라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도 인도하고 강연도 한다."고 밝힌 김 목사는 설교 준비의 세번 째 기준으로 "즐겁게, 기쁘게 설교하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설교하는 내가 즐겁고 기뻐야 듣는 교인들도 즐겁고 기뻐진다. 그래서 나는 42년째 설교하고 있지만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즐겁다."며 "나는 설교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신명난다. 그래서 앞으로도 10년은 더 설교할 수 있는 건강과 기회를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행복하기'로 말하자면 나의 신앙관이 그러하다. 나의 신앙관은 단순하다."며 "'예수 믿어 행복하여지자', 이것이 나의 신앙관이고 목회관"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예수를 믿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 천국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행복한 천국에 가기 위하여 지금은 불행하게 살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천국의 행복을 누리려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의 설교 준비의 4번째 기준은 "깊이 있게"이다. 그는 "신앙의 세계는 깊이의 세계이다. 우리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세계"라며 "지금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약점 중의 하나가 '깊이의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가 깊이의 차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먼저 목회자들 자신이 깊이의 세계가 부족한 데서 연유한다."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영성이 왜 깊지를 못한가? 신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목사가 되는 훈련과정부터 영적 깊이를 더하여 가는 훈련과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러하지를 못하다."며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가슴 뜨거운 사명감을 품고 들어가지만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가슴 속에 뜨거운 사명감은 시들어지고 졸업할 때는 사늘하게 식은 가슴으로 졸업장을 받아 나온다. 그래서 신학교 총장을 일컫기를 ‘소방수(消防手)’라 부른다. 신학도 들의 불을 끄는 사람이란 뜻에서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신앙적인 깊이를 가꾸어 가는 길은 "첫째는 깊은 기도생활을 해야 한다, 둘째는 말씀 묵상이 깊어져야 한다. 셋째는 거룩한 독서(Lexio Divina)가 이어져야 한다. 넷째는 영적인 체험이 넓고 깊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시절에 철학을 공부한 김 목사는 그 시절 한 때는 "삶은 비극이다"는 생각에 빠져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자살론을 들고 다니며 자살 하겠다고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 모으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2년 후인 1968년 12월 4일 밤 신약성경의 에베소서를 읽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 몸으로 만나게 되었다.
김 목사는 "그날의 감격과 기쁨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진리의 주인 되신 예수를 만난 기쁨을 삶으로 살겠노라고 목사가 되었다."며 "목사가 되어 설교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보람되고 행복한 나날을 살았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며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렸다.
김 목사는 구치소에서 성령의 불을 체험한 것도 소개했다. "1974년 2월 23일 내가 서울구치소 0.7평짜리 좁은 방에서 성령의 불을 체험한 날"이라고 밝힌 그는 "그 뒤로 나는 해마다 2월 23일이 되면 꼭 금식을 한다. 금식하며 그날에 받은 은혜, 겪은 체험 그리고 읽었던 말씀을 되풀이하곤 한다. 그러노라면 그때 받은 은혜와 감격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래서 그날의 그 체험이 내 삶에 영적 재산으로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대문구치소에서 정치범들이 수감된 방에는 햇빛조차 들지 않는 방이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하다 잡혀왔던 지사들이 수감되었던 방이었다. 벽에는 빛이 바랜 피로 쓴 글자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며 "그 방에서 너무나 추워 나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때 불 체험을 하고는 감격에 너며 울면서 네 방 모퉁이를 돌며 절을 했다. 나의 주인 예수께서 그 방에 불로 임하여 계심을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그날 저녁 취침나팔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 나는 다시 한 번 감격하였다."고 소개했다. 김 목사는 "1974년 1월 17일에 성직자들이 유신헌법반대 시위를 주도하였던 일로 수감됐었던 나는 밤마다 9시경이 되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와서 남산 중턱에 있는 정보부 지하실로 데려갔다. 밤 새 한잠도 재우지를 않고 조사를 하곤 했다."고 밝히고 "'김진홍 너 평양 언제 갔다 왔어?' 이런 식으로 묻곤 하였다. 나는 당황하여 '보소 내가 대구 사람이 평양 길을 알아야 가지요'하고 답하면 '야 인마! 넌 하는 짓이 평양가서 밀봉교육 받고 온 놈이 틀림없어'하며 다그친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는 새벽녘에 구치소로 다시 데려다 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목사는 "오는 길에 잠이 쏟아져 졸면서 걷게 되니 신발 속에 눈이 들어가 양말이 흠뻑 젖었다. 방에 들어가 양말을 벗고 발을 말리고 잠들어야 동상에 걸리지를 않는데 그냥 쓰러져 잠이 들고 만다. 그러는 사이 발이 얼어 동상이 심하여졌다."며 "그런데 2월 23일 성령의 불을 받게 된 날 밤에는 동상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 밤에 나는 다시 감격에 넘쳐 밤중임에도 찬송을 소리높이 불렀다. 그때의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신앙은 체험이기에 체험해 본 사람만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알 수 있을 따름"이라고 고백하고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무엇을 더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는 말씀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당시 "늦추위가 닥쳐 몹시 추웠다. 추위가 너무 심하니 다리뼈를 칼날로 후벼 파는 듯이 통증이 왔다. 나는 추위를 이겨보려고 선체로 뜀박질을 하다, 기도를 하다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추위는 가시지를 않고 나중엔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며 "그때 나에게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성경에서 ‘불’자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고 추위를 이겨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창세기에서부터 '불'자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창세기에서부터 ‘불’자를 찾아나가기 시작했고, 맨 처음 찾은 ‘불’자는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80세 나이에 양떼를 돌보고 있을 때에 호랩산 기슭 떨기덤블에 붙은 불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차례로 ‘불’자를 찾아나가다 신약에 이르러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예수께서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서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드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땅에 불 던지러 오신 예수님 제가 지금 너무나 춥습니다. 추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나에게도 불 좀 던져 주셔서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김 목사는 이렇게 기도를 드리며 그 다음 ‘불’자인 사도행전 2장 첫 부분을 읽을 때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나에게 불로 임하여 온 몸이 훈훈한 기운 속에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한편 김 목사는 어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는 3단계의 절차를 거친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그는 "첫째는 이번에 하려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교회와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인가 아닌가를 묻는다. 어떤 때는 그냥 기도드리며, 생각하며 묻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금식하며 묻기도 한다. 금식하는 경우는 사안이 중요하고 상황이 심각할 경우"라고 밝히고 "이 과정에서 교회와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두 번째 절차에 들어간다. 두 번째는 이 일을 굳이 내가 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도록 두어야 하느냐를 묻는다. 좋은 일이라 하여 내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능하면 내가 감당하지를 않고 다른 사람이 하도록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제한되어 있음을 나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두 번째 물음에서 그래도 내가 하여야 할 일이란 결론에 이르게 되면, 세 번째 질문에 들어간다며,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보통 일주일 내지 열흘 기간을 거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
세 번째는 꼭 하여야 할 중요한 일이고 내가 하여야 할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다음 질문으로 들어간다."며 "세 번째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나중으로 미루어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가능하면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구실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그럼에도 지금 당장 시작하여야 할 일이란 결론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시작한다. 사람이 준비되지 않고, 예산이 준비되지 않고, 아무런 노-하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도 그냥 Action으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72살이 되는 지금까지 그렇게 시작한 일들에 대하여 나는 감사드린다."는 김 목사는 "더러는 실패에 이른 일들도 있고 더러는 성공적인 일들도 있지만 성공 실패를 불문하고 나는 감사드린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일하여 온 나의 삶에 스스로 감사하고 또 행복스러워 한다. 그런 일들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음을 체험을 통하여 깨닫고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기사입력: 2013/01/21 [09:34] 최종편집: ⓒ news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