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코 아저씨
영양에서의 산골생활도 어느 사이 일 년이 되었다. 빈집을 빌려 한 해를 그곳에서 살아보았는데 겨울 추위가 유별났다. 혹독한 추위도 걱정스러웠지만 그 꼬리가 길어 봄이 늦은 것도 안타까웠다. 일년 계약만기일을 삼 일여 남겨둔 경칩, 잔설로 희끗한 논배미를 뒤로하며 솥단지 꾸려 싣고 산청으로 내려왔다.
남명 조식 선생이 유학을 펼쳤던 지리산 기슭의 덕산. 중산리와 대운사의 계곡물이 합류되는 덕천강이 발아래 내려 보이는 곳, 황금능선의 기슭에 짐을 풀었다. 월드컵이 있던 해 사 두었던 산밭을 오륙년 묵혔더니 그동안 억새밭이 되어버렸다. 포크레인을 하루 빌려 밭을 뒤집고 무너진 축대를 고쳐 평토작업을 했다. 잔돌을 주워내고 거름을 넣어 곡식이 되도록 땅을 만드는 작업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다.
매실과 복숭, 대추 배 감 앵두 보리수 등 미리 가식해 놓은 과실수들을 밭 언저리 따라 정식하고 단풍 배롱 무궁화 등 정원수들은 요소요소에 배치해 심었다. 그들이 자라 꽃과 열매를 피우고 맺으면 이곳에 내 작은 산방을 지을 것이고 허허한 내 노후를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할 요량이다.
올 여름은 마른장마로 인해 유난히도 길고 더웠다.
강아지 오줌같이 찔끔거리던 장맛비는 구곡산 골짜기의 물소리조차 죽였다. 6월 하지부터 내리 꽂는 땡볕이 중복허리를 휘감아 말복자락까지 기세를 부렸다. 대지는 달구어졌고 식생들은 늘어졌다. 풀을 잡고 돌들을 걸러내는 땅 만드는 작업이 여름 내내 이어졌다.
삽질로 풀뿌리를 파헤치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곡괭이로 돌들을 빼내느라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예초기에 튕긴 돌이 안경에 맞아 알을 날라 갔고 근육은 뭉쳐져 굽실거리기가 어려웠다. 작열하는 햇살에 얼굴이 붉어지더니 입술이 터지고 이어 콧등에 실핏줄이 확장되어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7백 평 밭일인데 3백 평도 안 돼 그만 지쳐버렸다. 붉어진 코를 감싸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콧등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부터였다.
영양에서 밭일을 할 땐데 힘든 노동에 햇살까지 뜨거워 몸은 땀으로 한증되고 있었다. 목간에서 거울을 보니 좁쌀만한 반점이 콧날 위에 촘촘했는데 며칠 새 자라면서 고르바쵸프 이마의 무늬처럼 되었다. 한 달 넘게 약국 약을 발라보았지만 차도가 없어 피부과에 갔다. 모세혈관 확장증이라 하여 레이저시술 외엔 치료방법이 없단다. 삼십만 원을 주고 시술하여 나았는데 올해 또 재발한 것이다.
레이저시술은 색소를 태워 없애는 표피치료이기 때문에 근본적 치료는 되지 않는다. 또다시 거액을 들여 시술하여 상태가 좀 호전되었는데 며칠 땡볕 작업에 또 도지고 말았다. 근원적 해결책이 없을까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였는데 봉침이 나온다. 화명동 한의원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콧등 부어가며 봉침을 맞고 있는데 한 달이 되어도 차도가 별로 없다. 반점은 연하게 퍼지면서 이제는 코 전체가 붉어져 딸기코가 되었다. 의원은 천천히 차도가 있을 테니 끈기를 가지라지만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도 코는 여전히 딸기 형상을 하고 있다.
대낮에 거리에 나서면 낮술 먹은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외모에 대한 불편한 의식으로 내 심성은 남모르게 쪼그라들었고 성격은 점점 소침해져 갔다. 특히 강한 자외선에 혈관 확장이 잘 되어서 요즘처럼 밭일로 햇빛에 얼굴이 자주 노출될 때는 코뿐만 아니라 얼굴 군데군데에 반점들도 생겨났다. 풍채는 구겨져서 의젓하지를 못했고 채신머리는 볼썽사나워 내세울 자리가 없어졌다. 사람 만나기가 거북스러워 바깥출입을 자제했다.
보름을 방콕하고 있다가 모처럼 일이 있어 바깥에 나와 보니 코 가에 부는 바람이 어제와 달리 선듯하다. 광복절을 건국절이라 하여 이 파 저 파로 갈라져 나라가 시끌하더니 8월 보름이 지나자마자 군소리들이 기온과 함께 뚝 떨어져 나갔다. 그들의 군소리들이야 대상일이 지나니 뭐 목소리 높여봤자 귀담을 사람이 없어서 그러했겠지만 신기하게도 더위는 8월 보름이 지나면 한 풀 꺾인다. 올 여름의 기세로 보아 올해는 아열대 기후대로 진입하여 아예 가을이 없어지나 했는데 그래도 절기는 아직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보다.
붉어진 콧등에 봉침을 맞고 사람 기다리느라 동래전철역 야외 벤치에 와 앉으니 가로수 나무그늘에 가을이 와 있었다. 나뭇잎들은 반쯤 물기를 잃어 그 끝이 오므라지기 시작했고 성질 급한 몇몇 놈들은 잔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질 듯 대롱거리고 있다. 마른바람이 머리 위로 내려와 까칠한 살갗 위에서 다람쥐처럼 달린다.
가을이 익어 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10살도 되기 전, 전포동 굴다리 윗동네는 찬바람이 불면 한바탕 하얀 흙먼지가 일곤 했었다. 바람과 먼지가 피해가는 양지바른 담벼락 앞에 흥얼흥얼 콧노래 소리가 들리면 먼저 동네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널찍한 무명베를 둥근 대나무 틀에 끼워 고정시키고 색색의 양털실을 큰 바늘에 꿰어 수를 놓는 아저씨. 그 아저씨가 사용하는 큼직한 바늘은 신기하게도 바늘 아래쪽에 구멍이 나 있었다.
마치 재봉틀 바늘처럼 아래쪽에 난 구멍에 양모사를 꿰고는 잘 펴진 무명베 위에서 아래로 쿡 찔러 넣고는 얼른 또 위로 1센티쯤 빼는데 그 속도와 솜씨가 너무 빠르고 정교하여 구경꾼들은 입을 벌리며 신기해했다. 직경 한 자쯤 되는 목테 안의 탱탱하게 펴진 무명베는 사람이나 동물 혹은 산수화의 밑그림이 미리 그려져 있는데 흥얼거리는 노래 두어 곡이 끝 날쯤이면 한 자 목테 안의 베는 어느 듯 오색찬연한 색채의 아름다운 융단이 되곤 했다.
동네 아이들이 그 아저씨를 잘 따른 것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아저씨가 잘 맞춰 주어서였다.
그 당시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약장수들의 공용어 ‘아이들은 물러가라’라는 말은 이 아저씨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다. 약장수들처럼 차력이나 곡예의 아찔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능란한 말솜씨로 우스개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저씨 둘레에 아이들은 쪼그리고 앉아 해 지는 줄을 몰라 했다. 아이들이 물러가면 그는 또 알 수 없는 가사로 콧노래를 불렀는데 그 아저씨의 코는 언제나 술에 취한 듯 붉어 있었다. 그 아저씨를 동네 사람들은 딸기코 아저씨라 불렀다.
그때 보았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불현듯 생각났다. 땅땅한 체격에 헐렁한 웃도리, 요즘의 랩뮤직 같이 빠르고 반복되는 어조로 주절대듯 수놓는 작업을 설명하며 좌중을 웃기는 코미디언 같은 아저씨. 수실 몇 타래 못 팔아도 언제나 흥얼거리며 즐거운, 취한 듯 만 듯한 붉은 코의 아저씨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보릿고개가 무서운 춘궁의 시절에도 너절한 옷차림의 그는 언제나 호탕하고 쾌활하였다. 어느 코미디언이 저렇듯 즐거울 수 있으며 어느 장수가 저렇듯 호기롭고 걸걸할 수 있을까.
그는 정말이지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거리낄 것 없이 세상을 살고 있었다. 얼굴이나 옷차림부터서 자유로운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놓고 사는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시대가 많이 변하여 딸기코도 시술이 가능한 요즘이지만 그 아저씨의 당당한 모습은 오늘날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평생을 코를 잊고 살았는데 나는 눈만 뜨면 거울 속의 코를 뜯어보고 있으니 무명을 헤매는 아둔한 졸장부 신세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다.
절기는 바뀌어 지금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곧 불붙을 이 산야의 만추를 생각하며 코에 쏠리는 마음을 끊지 못한 나는 결국 또 피부과를 찾고 말았다.
2008. 9. 16
초암/권두경
첫댓글 어렵사리 일군 땅 몸살 나게 일하지 마시고 시엄시엄 천천히 잘 가꾸어서 보금자리로 만드셔요... 중산리와 대운사의 계곡물 에서 대원사의 계곡물이 합치는 합쏘가 아닌지요........ 복숭을 복숭아, 배롱은 배룡나무로 바꾸심이 어떠 할지요............ 너무너무 죄송 합니다.......한편의 생활 수기집 감상 잘 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셔요............
<딸기코 아저씨>, 문장이 시원하게 잘 읽히는 글이네요. 대운사->대원사, '배롱'이 맞는 같습니다. ' 딸기코'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의 글에 같이 연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네요. 대원사를 대운사로 잘못 타자되었나 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그렇네요 앞에 제가 지적한 내용 중산리와 대운사의 계곡물 에서 대원사의 계곡물이 합치는 합쏘가 아닌지요........ 복숭을 복숭아, 배롱은 배룡나무로 바꾸심이 어떠 할지요 중 복숭은 복숭아(복숭아나무), 배룡나무가 아나라 배롱나무가 맞은 표현이네요 죄송합니다......
중산리와 대원사 계곡물이 합치는 곳 합쏘가 맞습니다. 물이 합해지는 소沼이겠지요. 이렇게 본다면, '두류산 양단수....'에서 양단수兩湍水가 맞는 것같습니다. 양당수兩塘水는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합니다. 구전되는 걸 표기를 하다보니 잘못 표기되었을 것같다는 생각.
다영님 잘 알겠습니다.. 합쏘라는 사투리 아니 소리나는 대로 생각없이 썼네요 죄송 또 죄송합니더 그분들은 왜 양당수라고 하셨을까요....
'양당수'라고 불리어지게 된 것은 아마도 '양단수'가 입으로 전해지면서 '양당수'로 발음하게 되었겠지요.('ㄴ->ㅇ'으로 전이) 한문으로의 표기는 그럴듯하게 붙였을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