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1-10
찬송가 400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사사기는 다음과 같이 일정한 사이클(cycle)이 연속됩니다.
이스라엘의 범죄→하나님의 경고→계속되는 범죄→이방 군대를 통한 고난→이스라엘의 회개→사사를 통한 구원
‘사사를 통한 구원’으로 마무리되면 참 좋겠습니다만, 사사기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김없이 또 범죄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저희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합니다.
반면 그런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김없이 사사기에 반복되는 사이클의 또 한 번의 시작을 알립니다.
악을 행한 결과(1-6)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재밌는 부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또’입니다. 그 의미는 다들 잘 알고 계시기에 따로 설명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한 번의 잘못은 실수로 생각하고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비교적 용서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이 반복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거듭된 잘못으로 곤란한 상황을 만든다면 실수로 생각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가볍게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세상은, 한국 사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거듭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잔잔한 감흥을 일으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도 사사기의 기자도 이제 더는 이스라엘의 악을 행함이 실수가 아님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칠 년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힘겨운 상황과 환경을 마주해야 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생명을 곧바로 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기회였습니다.
오늘 살아 호흡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본문 속 이스라엘과 같은 은혜가 허락되었습니다. 이 은혜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오늘 말씀을 함께 살피며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그의 후처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 그들은 대대로 유목 생활을 했습니다. 일정한 거쳐도 없이 물과 풀을 찾아 옮겨 다니던 미디안이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자손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미디안 이스라엘보다 더 강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싸움에서 패한 이스라엘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산에 있는 동굴과 요새에 도피처를 마련했습니다. 도피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그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3-5)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생존을 위한 음식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이 씨를 뿌리고 나면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올라와 그 곁에 진을 쳤습니다. 진을 쳤다는 것은 금세 돌아갔던 이전과는 달리 일정 기간 머물 것이라는 사인과도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잠히 기다리기만 하면 손쉽게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그들이 다른 곳으로 떠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미디안과 같이 유목 생활을 하던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말렉은 출애굽 당시 가장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족속이었고, 동방 사람은 이스라엘 동편에 머물며 약탈을 일삼는 모압, 에돔 등과 같은 족속이었습니다. 특정 족속을 언급하지 않고 동방 사람으로 뭉뚱그려 표한 것은 아마도 요단 동편에 있던 족속 전체를 아우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이었던 이스라엘이 어느새 조롱거리로 전락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의 약탈은 약속의 땅의 최남단으로 구분되는 가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메뚜기 떼와 같이 이스라엘의 모든 가축과 먹을 것을 취했습니다. 땅은 황폐해졌고 더는 이스라엘 자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막장에 이른 이스라엘은 그제야, 그제야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이 장면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6 새번역) 이스라엘이 미디안 때문에 전혀 기를 펴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었다.
‘주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께서 애타게 기다린 순간이었습니다.
부르짖음의 결과(7-10)
(7-9)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짖음을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출애굽의 은혜와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신 은혜를 상기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전 장들과의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삿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삿 4:3-4)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앞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에 곧장 옷니엘과 에훗, 드보라를 사사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드온을 사사로 곧장 보내지 않으시고 한 선지자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선지자(נָבִיא, 나비)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신 전달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과 같이 곧장 사사를 보내지 않으시고 그에 앞서 선지자를 먼저 보내신 것은, 그들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게 하여 이후로는 이스라엘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출애굽에 이어 약속의 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킨 후에 작금의 모든 상황이 우상 숭배를 금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임을 지적했습니다.
앞서 사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이클(cycle)이 반복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하나님의 경고→계속되는 범죄→이방 군대를 통한 고난→이스라엘의 회개→사사를 통한 구원
이스라엘의 범죄는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의 경고도 반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난과 회개는 반복되었지만, 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도 반복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시대 이스라엘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갑니다.
‘또’ 일 음절 부사가 우리 삶의 자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시선이 여기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희를 ‘또’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 속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마음과 함께 그들의 죄악의 실상을 밝히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마음을 깨닫게 하셨고, 이어질 기도를 통해서 저희의 실상을 밝히 보이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또’ 하루를 허락하셨음에 감사하며 그 이유를 깨닫는 은혜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말이 마치 저희의 삶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이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심과 같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잠잠히 기도며 저희 실상이 가감 없이 조명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기었노라 선언하는 주님과의 동행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또 행한 악은 무엇이었습니까?
2. 반복해서 짓는 악한 일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미디안이 이스라엘 땅을 점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곧바로 사사를 보내지 않고 한 선지자를 보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성: 박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