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참사'에 세 딸 잃고도 평생 장학사업‥故 정광진 변호사
입력 2023-05-20 20:19 | 수정 2023-05-20 20:55
28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세 딸을 잃은 뒤 일평생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한 원로 변호사가 어젯밤 별세했습니다. 자녀를 셋이나 앞세워 보낸 참척의 고통을 나눔의 보람으로 승화시켰던 고인의 일생, 조재영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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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02명이 숨졌던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 악몽의 현장에서 세 딸을 한꺼번에 잃었던 정광진 변호사가 어젯밤 향년 85세로 별세했습니다.
폐렴 증상이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했던 정 변호사는 1978년 갑자기 법복을 벗었습니다.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은 큰딸을 뒷바라지하려, 변호사로 개업했던 겁니다.
시력을 되살리긴 쉽지 않았지만, 미국 유학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딸은 모교인 서울맹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렇게 꿈을 키우기 시작한 지 겨우 9개월째.
집에서 쓸 물건들을 사겠다고 두 여동생과 삼풍백화점에 갔다,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정희/부인 (1995년 7월)]
"이런 일은 남들한테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지, 나한테 있으리라고는 생각 한 번도 못했기 때문에 너무 엄청나요."
당시 이들 세 딸은 모두 20대였습니다.
[고 정광진 변호사 (1995년 7월)]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봉사도 못 하고, 자기들 뜻을 펴지도 못하고 간 게 부모로서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거죠."
졸지에 세 딸을 앞세워 보내고도 정 변호사는 슬픔을 억누르며 딸의 유지를 묵묵히 이어갔습니다.
보상금 7억 원에 개인 재산까지 보태 13억 원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한 뒤, 딸의 모교이자 첫 직장이었던 서울맹학교에 모두 기증했습니다.
[고 정광진 변호사/1996년 6월 ('삼풍 참사' 이듬해)]
"지금 윤민이(큰딸)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런 일 하는 거를 좋아할 거 같으니까 아빠가 열심히 해주는 거지."
못다 이룬 큰딸의 꿈을 이어받아 나눔의 삶에 일생을 바쳤던 아버지는, 다시 딸들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MBC뉴스 조재영입니다.
첫댓글 성경의 욥처럼 크나큰 시련과 고통을 신앙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정광진 변호사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