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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 <조선시대>- 제13대 명종, 양재역 익명의 벽서사건, |
양재역 익명의 벽서사건
양재역벽서사건은 을사사화의 2년 뒤인 1547년에 일어난 것으로 윤원형 세력이 윤임파의 잔당과 사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정치 쟁점화 했던 정적 숙청 사건이다. 1547년 9월에 부제학 정언각과 선전관 이로가 경기도 과천의 양재역에서 '위로는 여왕, 아래로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익명의 벽서를 발견하여 임금에게 보고했다. 윤원 형 일파는 이 사건이 윤임파에 대한 처벌이 미흡해서 생긴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그 잔당 세력을 척결할 것을 간언했다.
이 말을 들은 문정왕후는 명종으로 하여금 윤임의 잔당 세력과 정적들을 제거하도록 한다. 그 결과 한때 윤원형을 탄핵하여 삭직케 했던 송인수와 윤임과 혼인 관계에 있던 이약수를 사사하고, 이언적, 정자, 노수신, 정황, 유희춘, 백인걸, 김만상, 권응정, 권응창, 이천계 등 20여 명은 유배되었다. 그 중에는 특히 사림계 인물이 많았다. 중종의 아들인 봉성군 완도 역모의 빌미가 된다는 이유로 사사되었으며, 그 밖에도 애매한 이유로 많은 인물 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그러나 1565년 문정왕후가 죽고 소윤 일파가 몰락하자 이 때 희생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신원되었으며, 이 사건 자체도 소윤 일파의 무고로 처리되어 노수신, 유희춘, 백인걸 등 유배되었던 사람들이 다시 등용되었다. 이 사건은 사실 익명으로 쓰여진 벽보를 소윤 일파가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다지 대단치도 않는 일을 소윤 일파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의로 확대시킨 사건이었다. 인순왕후 심씨 인순왕후 심씨는 청릉부 원군 심강의 딸로 1532년에 태어나 14세 나던 1545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551년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그는 13세의 나이로 요절했고, 더 이상 후사를 이을 왕자를 낳지 못했다. 이후 1567년 명종이 죽자 대비가 되어 16세된 선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였다. 하지만 1568년 선조에게 친정을 시키고 물러났으며, 1575년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죽은 후 명종의 능인 강릉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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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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