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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2005~2020]/번개산행기
2007-08-14 09:50:41
[번개] 서락산 단독유람기
2007. 8. 12. / 박광용
산행일 : 2007. 8. 6~7. (월~화, 1박2일), 이틀 모두 높은 구름 가득, 가끔씩 비.
코 스 : 설악동-비선대-천불동계곡-중청산장(1박)-대청-비경능선-설악동
동반자 : 나의 그림자
지난 목욜부터 콧물이 줄줄 흐르는 게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김총의 처방(?)대로 V-C를 억수로 먹었다. 하루 10g을 먹었는데 김총은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더 먹으란다. 금욜, 토욜을 어렵게 힘들게 보내고, 일욜 분당 불곡산 정기산행? 우리의 호프 부종이가 대장을 맡은 날이라 아부(?)하는 심정으로 참석한다. 몸 컨디션도 체크할 겸, 3시간을 거의 쉼 없이 걸었는데 날씨 탓인지 보통 때완 달리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그래 그런가 저녁이 되면서 몸이 좀 개운해진다.
밤 늦게 서락산행을 결심하고 곁의 눈치를 살피니 흔쾌히 다녀 오란다. 이제는 서로가 뭘 원하는지를 아나 보다. 하지만 날씨가 불안하니 자주 연락을 달란다. 안 그러면 걱정돼서 마음이 불안해진단다. 그러마 약속하고 배낭을 꾸린다. 1박 해야 하는 산행이라 부엌, 침대, 옷장과 먹거리를 챙기니 부피가 커진다. 소주 한 병 챙기는 것을 잊었다.
차편은 승용차 기름값이면 버스요금 충당할 수 있겠다 싶어, 동서울터미널에서 우등고속을 타고 속초로 가자. 올 때도 막걸리라도 한 잔 하려면 당연히 버스가 좋겠다. 근데 휴가철에 첫차 승차권이 남아 있을라나? 하루 전에는 예매도 안 된다고 하니 아침 일찍 나가 보는 수 밖에 없다. 속초에서 들머리 이동은 택시? 버스? 가서 현지 상황에 따라 대처하자.
새벽 5시에 잠에서 깨고, 곁이 챙겨주는 반찬을 배낭에 담고 출발이다. 곁은 괜시리 걱정스러운 눈치다. 이럴 때 확실하게 믿음을 줘야 한다. ‘나의 산행스타일 알자나? 절대로 무리한 산행은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라’는 입맞춤으로 이별을 고한다. 이른 새벽 택시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 예정대로 6시25분 미시령터널 통과하는 직통우등고속 표를 구하고, 앞에 나가 문을 연 식당에서 아침을 챙겨 먹는다. 혹시 싶어 V-C도 챙겨두고, 갑자기 부르트기 시작한 입술에 바르는 약도 구입했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하고 화양강휴게소에서 15분간 휴식한 후 다시 출발한다. 예정보다 20분 늦은 9:35 경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눈앞에 보이는 택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얼른 올라탄다. 새벽에 비가 내렸나 보다. 길은 젖어있고 움푹 페인 웅덩이를 지나면서 물을 튕긴다. 설악동 앞에 이르자 차가 조금 밀리기 시작한다.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는 게 낫겠다.
10:10에 신흥사 매표소를 통과하고 비선대로 향한다. 어디로 올라갈까? 지금 시간에 지금 나의 컨디션으로 공룡을 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조금은 무리겠지? 아직 몸살 뒤끝이니까 이번에는 천불동으로 한 번 올라보자. 그래 그렇게 해보는 거야. 결심을 하고 나니 천불동으로 올라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까까머리 학창시절에 귀면암까지, 그리고 애들이 어릴 때 규빈이를 목말 태우고 양폭까지 올라본 기억이 아물거린다. 최근의 산행에서는 천불동으로 하산만 했지 올라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비선대 산장을 지나 구름다리 아래에서 잠시 세수도 하고 오늘의 산행일정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17:00까지 중청산장에 도착한다면 큰 무리 없을 것이고, 예약은 못했지만 기다려보면 거기서 잠도 잘 수 있겠지 뭐. 그러니 서둘 이유가 없어지고 천천히 가기로 마음을 다진다. 오랜만에 널널 산행, 맘껏 느끼며 쉬어가자.
수통에 물을 채우고 10:55 비선대를 출발한다. 마등령 갈림길을 지나고 토막골 갈림길에는 펜스를 쳐뒀다. 금지구역이란다. 서락의 온 구역이 금지구역인가 보다. 지도에 빨간 줄로 산행로 그어놓고 그 길로만 다니라는 뜻인 모양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설악골(여기도 금지구역 안내판을 달아놨다) 입구도 지나치고, 조금 더 나아가면 11:20 잦은바위골(금지구역) 입구에서 잠시 쉬어간다.
몸살 뒤끝이라 그런지, 구름 낀 날씨 탓인지, 온 몸이 땀투성이다. 쉬어가며 물을 충분히 마셔둔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나아가면 11:55 이번에는 왼편으로 칠선골(금지구역) 입구를 지난다. 화채능선에서 흘러내린 지능선 사이 골짜기로 아직도 사태가 많아 위험한 구간이라 들었다. 특히 칠선폭포는 약 50미터나 되는 폭포지만 수량이 적어 마른 폭포일 때가 있다고 들었다. 외서락 만경대에서 바라본 칠선폭포의 사진은 기억 속에서 꿈틀거린다.
다시 철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잘 다듬어 놓은 돌길을 따라 가면 12:15 어느덧 양폭이다. 산장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계곡물에 발 담그고 김밥을 먹는다. 한 줄 반을 먹고 나니 배는 벌떡 일어나고, 충분히 휴식하며 물통에 물도 채워둔다. 근데 시끄러워야 할 양폭이 의외로 조용하다. 내 주변에도 부부 등산객 한 팀만 보일 뿐 아무도 없다. ‘천둥번개가 손님들을 다 쫓아버렸다’는 택시기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휴가 나온 사람들은 아마도 시설 좋은 놀이공원에 빠져들었나 보다.
주변을 정리하고 13:05 양폭을 출발한다. 폭포의 수량이 풍부하여 그 모양새가 지난번보다 한결 좋아 보인다. 13:14 천당폭을 지나고 나무둥걸이 넘어지면서 파손시킨 철계단을 조심해서 오르면 13:19 또 하나의 늘씬한 폭포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폭포의 이름을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지난번 공룡 실패 후 하산하면서 재일이가 찍은 사진에도 이 폭포가 있었다.
이 무명폭을 올라 잘 다듬어 놓은 돌계단을 오르는데, 13:20 경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옷자락이다.
“어~? 이게 누고?”
“으이~, 니 언제 왔노?”
“김총, 니 여기 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가족은 우짜고 니 혼자 이라고 있노?”
“뭐~ 내 휴가니까 나도 하루는 내가 써야지. 4시까지 내려가서 비선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간이야 충분하겠네. 근데 니 어디로 갔다 오는 기고?”
“새벽에 출발해서 공룡 타고 지금 내려 오는 기지 뭐. 공룡도 보수공사 많이 하고 있더라. 돌길을 만들고 있고 헬기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더라. 그래 니는 우째 여기로 왔노?”
“빨리 갔다 오네. 나야 그냥 발길 닿는 데로 다닌다 아이가? 오늘 아침 첫차 타고 속초에서 설악동으로 들어왔다. 여기 천불동으로는 늘 내려오기만 했는데 오늘은 오르면서 보니까 새롭고 게안네. 내는 오늘 중청에서 자고 내일 공룡을 함 타 보까? 아니면 비경능선을 타든지 궁리 중이다.”
“날씨 걱정 많이 했는데 게안네, 뭐? 나는 내일 오후에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다. 부산도 함 가야 하는데 우째 할지 좀 보고…”
“그래 잘 가라. 가족들 잘 챙겨주고…”
“그래 니도 조심하고, 내일 연락이 되면 전화나 함 해보자. 잘 갔다 온다.”
“그래 그라자.”
참으로 서락도 정말 좁다. 거기서 김총을 만날 거는 또 뭐꼬? 가족하고 지낼 거라는 생각만 했지, 혼자 공룡 타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근데 헤어지고 나니 사진 한 장을 박아두지 못해 아쉽다.
이제부터는 고도를 계속 높여야 한다. 양폭이 750이었나? 중청까지 거의 900을 높여야 하니 숨이 턱에 닿고 배낭 등받이도 온통 땀으로 젖어버렸다. 계곡길이라 뒤돌아봐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부지런히 오르기만 하면 된다. 돌계단을 올라 마지막 용을 쓰고 나면 14:20 무너미고개다. 잠시 신선대 오름길로 올라 사진 몇 장을 남겨둔다. 몇 번을 봐도 장엄하기만 하다.
다시 뒤돌아 내려와서 다시 조금 오르면 가야동계곡(금지) 갈림길을 지나고 14:35 희운각산장(해발 1,200)을 지난다. 지난 수해로 유실됐던 철계단이 보수를 끝냈고, 가야동계곡 상류를 건너는 새로운 다리가 설치돼있다. 목재를 이용한 것이 철제보다는 좋아 보인다. 지난번 소청에서 하산할 때도 길이 잘 다듬어져 있었는데 이제 그 마무리를 완전히 끝냈나 보다. 이번 오름길의 돌길과 계단도 훨씬 깔끔하게 단장돼있다.
거의 30분을 신발코만 보고 올랐나 보다. 15:05 소청 오름길의 전망바위다. 뒤돌아볼 수 있는 조망이 끝내주는 그런 곳이다. 지금껏 계곡을 올라오느라 조망은 바랄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소청에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을 타고 오르는 것이니 숲이 벗겨진 곳에서의 그 조망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구름이 높아 이런 장관을 볼 수 있게 허락한 서락의 신령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나? 공룡이 꼬리를 흔들며 춤을 추고, 화채능선은 그 자체로도 늠름하다. 저기 멀리에는 울산암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오른쪽으로 달마봉이 홀로 외롭다. 공룡에서 뻗은 천화대는 범봉을 우뚝 세우고, 신선대의 웅장함은 천불동을 가려버린다. 오른쪽으로 그림의 떡 화채봉이 뾰쪽하고, 그 아래로는 칠성봉이 휘하의 바위 불상을 뽐내고 있다. 뒤로는 대청과 중청이 구름모자를 쓰고 있고, 지난해 수해로 망가진 북사면의 사태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먼저 올라있는 산객 부부가 똑딱이 카메라 들고 설치는 나를 보고
“햐~~!! 이래서 올라오는 것 아닙니까? 그죠?”
“그러게요.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정말 좋습니다.”
“제가 사진 찍어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여기 들어가면 자연이 훼손되는 겁니다. ㅎㅎ”
“ㅎㅎㅎ 최근 들어본 말 중에 제일 명언입니다. ㅎㅎㅎ”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한 말씀 드려가지고… 저는 자연 훼손하는 인물이지만 두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찍어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들은 사진 많아요.”
“자주 오시나 보죠?”
“자주는 아니고 가끔 오는데 여기로만 다니니 풍경이 눈에 익어서요.”
“아~ 예~~, 그럼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
쉬엄쉬엄 오른다. 급할 게 없으니 서둘 이유가 없다. 30분을 올라 또 다른 전망대에서 외서락을 돌아본다. 높이가 높아지면 그 풍광도 다르다. 주변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솜다리를 찾아보지만 어느 바위틈에서도 내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더라.
계단을 올라 마지막 힘을 다하면 16:00 드디어 소청이다. 여기가 봉정암으로 가는 삼거리이고 보니 불과 2년 전만 해도 훼손이 많은 상태였다. 특히나 작년의 수해로 훼손이 심했는데 이렇게 돌로 다듬어놓으니 깔끔하고, 주변에는 야생화들이 모두 제 잘난 멋을 뽐내고 있다. 괜찮게 잘 다듬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어라~! 청년 셋 중에 한 명이 다리를 절고 있다. 불러 세우고 파스를 좀 뿌려두라고 전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자신들도 중청산장에서 묵을 거란다. 조심해서 다니라며 갖고 있던 지도를 건네주려 하지만 자신들도 좋은 지도는 갖고 다닌단다. 지나친 관심은 화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비교적 평탄한 길을 가면 중청산장이다. 중청봉은 오를 수가 없기에 빙~ 돌아가는 사면길이 더욱 정겹다. 끝청 갈림길을 지나면서 눈앞에는 거대한 대청과 중청산장이 고생한 나를 반기는 듯하다. 대청은 구름모자를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있고, 가끔씩 천 개의 불상을 비치는 석양의 붉은 기운도 구름에 따라 나타났다 곧 사라진다.
드디어 16:20 중청산장에 도착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수 차례 다녀갔지만 여기서 잠을 잘 생각은 처음이다. 산장을 예약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산객도 많지 않는 것으로 봐서 수월하게 잘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어~ 근데 아직 이른 시간인데 예약자를 먼저 들여보낸다. 지리에서는 정해진 시간이 되어서 침상을 배정했는데 여기는 실행방법이 많이 다르다.
한참 동안 주변을 둘러보고 대청을 올라볼 생각도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을 텐데 하며 그냥 쉬기로 했다. 취사장 옆 탈의실이 눈에 띄어 젖은 옷부터 갈아입고, 17:00가 되어서야 저녁을 준비한다. 내일 아침은 누룽지 삶아 먹으면 되고, 점심용으로는 주먹밥을 준비해 둔다. 밥을 좀 많이 했나 보다. 점심용 주먹밥의 양이 많아졌다. 옆에서 저녁을 먹던 부부 산객이 권하는 소주 한 잔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네. 담에는 꼭 소주 한 병 챙겨오자.
식사를 마칠 때쯤 비예약자를 부른다. 제일 귀퉁이 취사장 출입문 옆에 침상을 배정받아 모든 짐을 내린다. 자리를 정돈하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니 붉은 기운이 바위불상들을 훤히 비추고 있는 것 아닌가! 그 광경에 넋을 잃고 한 동안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전히 대청은 구름에 싸여있다. 바깥 기운이 차가워 웃옷을 하나 더 겹쳐 입고 다니기로 한다. 밤 9시면 산장내의 모든 불을 소등한단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와보니 은하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별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중간중간 문자를 몇 번 보냈기로 큰 걱정은 않았을 것이지만, 곁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하니, 서울에는 비가 억수로 왔단다. 전화 안 했으면 마음 토라질 뻔했겠다. 일기예보로는 내일도 비가 올 것이고 천둥번개를 동반한단다. 근데 여기는 높은 구름만 끼여있고 비 방울 하나 맞질 않았으니 영서와 영동은 이렇게 차이가 나나 보다. 곁을 안심시키고 잠자리에 든다.
여러 번 잠에서 깨어 뒤척거리기도 하면서 새벽 03:45 자리에서 일어난다. 취사준비를 마치고 아침으로 어제 남겨뒀던 누룽지를 끓여 먹는다. 김치와 깻잎장아찌가 까끌한 입안을 무마시킨다. 느릿느릿 준비하고 05:00 배낭을 울러 맨다. 05:30경이 일출이라는 안내방송이 있었기로 시간을 맞춰보려 하지만 일출이라는 게 ‘볼 수 있으면 장땡이고 못 보면 본전’ 아니겠는가? 오늘도 구름이 높아 해면으로부터의 일출은 기대하기 어렵겠다.
죽음의 계곡 출입금지 안내판을 지나 05:19 대청봉에 이른다. 한참을 둘러보지만 검은 구름에 가린 해는 볼 수가 없겠다. 아예 빨리 결심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는다. 내 평생 이 문이 열릴 것 같지가 않으니 지금의 기회를 맞아 ‘아니 간 듯 다녀오기’로 하고 재빨리 몸을 숨긴다. 이 비경능선은 북동으로 뻗어있으니 내려가면서 일출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길은 분명한데 워낙 사람의 흔적이 뜸한 지라 조금만 부주의하면 길을 놓치기 십상이다.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앞이 훤하게 밝아온다. 똑딱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지금껏 산행하면서 일출이란 것을 찍어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높은 구름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이라 해면에서 오르는 일출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시간적으로도 예정보다 7~9분 늦은 걸로 봐서 구름을 뚫고 오르는 해가 좀 더 힘들었나 보다.
잠시 바위 전망대에 올라 몇 컷의 사진을 찍어보지만 주변이 너무 어둡다. 흔들린 사진만이 가득하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가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다시 올라오고, 오른쪽 길을 찾아가니 이건 더더욱 아니다. 갖고 다니는 GPS로 위치를 확인해보지만 계곡에서 잘 터지질 않는다. 조금 더 위로 올라온 지점에서의 위치로 확인해보니 둔전골 상류에서 헤매고 다닌 모양이다. 잠시 길이 보이질 않으면 바로 앞에까지 가보면 길을 찾을 수 있는데 미리 단정하고 길을 확인하지 않으면 길 찾기는 어려워진다.
원래 갔던 길이 옳은 길임을 확인하고 06:50 그 길을 따른다. 아침부터 40분 이상 한바탕 진을 빼고 나서 물을 들이킨다. 아니 이곳 능선길에는 물이 없으니 물 아껴 먹어야 한다. 비경봉 아래에 샘터가 있다고는 하나 내가 찾을 수 있는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초콜릿과 홍삼사탕으로 급한 마음을 달랜다. 그러고 보니 저쪽 관모봉능선 북사면의 사태도 아주 심각한 지경으로 보인다. 지난 여름 수해 때 그렇게 된 모양이다.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고 07:25 다른 전망대에서 몇 장의 사진을 건진다. 대청에서 흘러내린 그 능선길이 환상이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공룡은 그 새끼들까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내 생에 이런 공룡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앞으로도 계속 의문이다. 지금은 그냥 이 상황을 즐기는 거야.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길을 재촉하여 나아가면 08:00 텐트 두 동은 설치할 수 있을 만한 공터가 나오고 바위 벽 아래에는 제단인 듯 돌을 쌓아 위에 평평한 돌을 얹어놓았다. 여기서도 잠시 쉬어가며 행동식을 꽤나 많이 먹어둔다. 물은 한 모금으로 아껴가며… 주변이 트이지 않아 답답하지만 쉬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길을 나아가면 저 봉우리가 만경대 갈림길인가 보다 여기고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왼쪽 옆으로 우회한다. 잠시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나오기도 했지만 아까처럼 힘들이진 않았다. 경사가 예사롭지 않은 게 이상하다 여겼지만 별 탈이야 없겠지 하며 나아가니 08:50 만경대 갈림길인 듯한 봉우리에 오른다.
어렵쇼? 뒤돌아보면 앞이 턱 막혀있네. 아뿔싸!!! GPS로 확인해보니 이곳은 비경봉 북쪽의 작은 봉우리인 것이다. 앞을 막아선 봉우리가 비경봉이고… 그렇다면 지나쳤던 텐트 칠 수 있는 공간이 만경대 갈림길이란 말인가? 이런 이런?? 이렇게 거리 감각이 둔하다. 눈 맵시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그러니 만경대 갈림길로 알고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돌아온 바로 그 봉우리가 비경봉이란 말이지? 도로 돌아 올라갈까? 무릎을 치지만 두 번이나 알바한 마당에 되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여기 비경봉 북쪽의 작은 봉우리에서의 조망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으니 그 또한 만족하며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대청에서 뻗어 내린 시원스런 능선의 줄기를 비경봉이 떡~하니 막고 있으니 그게 흠이라면 흠일까? 저 아래 칠성이가 나를 보고 손짓하며 웃고 있고 저 너머에는 집선인가 보다. 그 너머로는 금권성의 봉화가 우뚝하고 가벼운 차림의 관광객들이 오가며 휴가를 즐기는 듯하다.
좀 더 가까워진 건너편의 공룡은 더욱 선명하고, 저기가 범봉의 위치인데 지금까지 보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라 위치 판단에 장애가 된다. 늘씬하던 모습만 보아왔기로 반대편에서 보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 그렇다면 저 넘이 칠형제봉인데 이 넘도 왜 이리 다르게 생긴 거야? 그러면 저 골짜기가 자즌바위골일 테고, 그 오른쪽 깊은 골짜기가 서락골, 그보다 왼쪽은 용소꼴이다. 지금껏 서락을 다녔지만 이처럼 하나하나 따져가며 감상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작은 행복이 나를 기쁘게 한다.
한참 동안 천불동 계곡이 이루는 장관을 이모저모 뜯어본다. 이제 내려가야지. 이 길로 이렇게 내려가면 되겠다. 마음 속으로 지도에서 본 대로 나아갈 길을 그려본다. 잘못하면 토골이나 소토골로 내려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5분쯤 내려가면 금권성 방향을 알리는 표지가 나일론 줄에 매달려있고, 아마 이 줄을 넘어가면 피골능선으로 가는 길인가 보다. 이런 하나의 표지가 이토록 마음의 위안이 된다.
화살표를 따라 내려가면 09:35 전망이 훤히 트이는 곳, 칠성이에서 잠시 머문다. 조금 전 비경북봉에서 느낀 감흥이 되살아난다. 고도가 조금 낮아졌고 시야의 각도가 조금 달라졌을 뿐 볼 수 있는 건 똑같다.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 걸까? 꿈 속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우뚝 솟은 바위 하나를 돌아 조심조심 길을 따라 내려간다.
근데 왠 걸? 계속되는 골짜기 길이다. 아니다, 이게 아냐. 작은 능선으로 붙어야 하는데, 골짜기로 계속 내려가는 것은 안 된다. GPS를 켜보지만 골짜기가 너무 깊어 그런가? 위성을 찾지 못하나 보다. 안테나 표시가 시그널 제로 상태다. 아뿔싸! 하는 수 없다. 무조건 올라가자. 10분 정도 올라왔나 보다. 높은 구름이지만 나뭇가지 사이 하늘이 틔는 곳에서 신호가 통하고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어렵쇼? 지금 위치는 골짜기로 너무 많이 내려와 있는 게 아닌가? 휴~~!! 다시 20분 정도를 올라왔나? 왼쪽 옆으로 낡아빠진 리본이 하나 달려있다. 오~호라, 이 길이로구나! 근데 처음 내려올 때는 왜 이 리본을 찾지 못한 것일까? 이제야 한 숨 쉬고 지친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 한 모금으로 가벼운 미소를 지어본다.
이 넘의 GPS, 예전에는 한밤중에 처녀귀신으로 돌변하질 않나? 어떨 때에는 멍텅구리가 되어 아예 먹통이 되기도 하더니, 오늘은 정말 보배다 보배!! 그야말로 현재 위치의 좌표(세계측지계, 한국측지계가 아님)만 읽을 수 있는 기능을 지닌 GPS, 다른 기능은 없다. 제대로 된 지형도를 들고 다녀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다. 그것도 깊은 골짜기에서는 안되겠다. 그래도 그나마 싼 값에 만족해야겠지?
바위길을 옆으로 돌아 내려오면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확신에 찬 발걸음이 가볍다. 골짜기에서부터 조금씩 뿌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지금은 조금 굵어진 상태로 이제 와서 비옷을 꺼내 입기는 좀 어설프다. 지도를 수시로 꺼내봐야 하니 비옷 입는 게 더 거추장스럽겠다.
저 앞으로 보이는 금권성을 향해 능선을 따라 나아간다. 다시 20분을 더 내려왔나 보다. 삼발이 위에 무슨 수신장치를 설치해뒀는데 그 밑에는 새로 설치한 삼각점이 있고, 위치(좌표)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나 보다. 비를 피해 은박지를 둘러쓰고 측정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한 분에게 하산길을 확인해 둔다. 그 삼각점의 좌표도 확인해보고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아마도 국토지리원에서 나온 분이었을 텐데 말이다. 힘들고 바쁜 마음에 그럴 여유를 찾지 못했던가 보다.
“이 길로 내려가면 계곡을 건너게 되고, 저기 바위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아 넘어가면 빨간 리본이 달려 있을 겁니다. 그 길 따라가면 됩니다.”
하는 그 분의 말씀을 따라 바위봉우리를 넘어 왔는데 길이 분명치 않다. 다시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내리막을 내려가지만 또 길이 헷갈리고, 이러기를 수 차례… 금권성 성곽인 듯한 돌담을 넘어가고 길을 따라 가보니, 어렵쇼, 가는골인가 식은골인가 절벽 낭떠러지가 아닌가? 다시 돌아 올라가서 옆으로 내려오고, 12:40 비로소 금권성에 입성한다.
가만 보니 일반 관광객과는 너무 다른 복장이라, 금권성산장에 들른다. 산장지기 아저씨한테 부탁하여 구석진 곳에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갈아입고 신발도 신문지를 넣어 좀 말려본다. 커피 한 잔으로 나른한 피로를 물리치고, 걱정을 많이 해준 김총에게 금권성 입성을 신고한다. 김총은 지금 서울로 향해서 미시령 터널을 지나가고 있단다.
이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자. 옷도 갈아입었으니 크게 미안할 것은 없겠다. 탑승권을 갖고 있지 않으니 요령껏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입구에서 제지 당하고 만다. 그런 요령이란 게 내겐 어울리지 않는 걸까? 결국엔 다시 걸어 내려오는 운명이었다. 오늘은 어쩔 수 없는 날인가 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걸어야지, 뭘 타고 내려가는 그런 반칙이 어디 있냐?’며 누군가가 꾸짖는 것 같다.
13:30 암자 옆으로 난 급경사의 내림길은 계단으로 돼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옆의 난간에 의지해야만 할 지경이다. 계단이 아니면 길은 온통 수풀로 덮여있고 지나갈 때마다 종아리에 가시의 흔적을 남긴다. 차라리 나뭇잎에 맺힌 빗물로 목욕을 하는 편이 낫겠다. 비는 오지도 않는데 웃옷과 바지, 속옷까지 온통 땀과 빗물로 다시 젖어버렸다.
여기서도 계곡을 넘어가는지 건너지 않고 가는지 헷갈려 잠시 허둥대기도 하며 겨우 오래된 리본을 찾고서 안심을 한다. 샘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계곡물에는 이상하게도 거품이 일고 있다. 뭔가 화학용제를 쓰는 걸까? 아니면 배변이 섞인 물이 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걸까? 금권성에서 배낭을 정리하면서 물통을 비워버렸기로 계곡물을 마시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조금만 내려가면 되겠다 싶지만 아직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들리지도 않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내려가면 비교적 완만한 경사길이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나도 모르게 ‘아무일 없어야 될 텐데…’ 하는 기도하는 마음이다. 엿을 파는 아주머니 앞에는 몇몇의 관광객이 빙~ 둘러서있고 육폭, 비폭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얼른 이 사람들의 무리에 끼고 나니 이젠 내 세상이다.
이상, 내가 꿈을 꾼 건가?
근 9시간 동안 행동식만 먹었을 뿐 식사를 제대로 못한 셈이니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다. 14:10 가장 가까운 식당을 찾아가서, 간단히 세수하고 수건을 적셔 몸을 좀 닦아내고 젖은 신발을 잠시 벗어 말린다. 그래도 남아있는 웃옷을 갈아입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산채비빔밥으로 요기한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혼자 마음 조렸을 곁에게 하산을 신고하고, 문화재관람료 거금 2,500원을 지불했던 신흥사 매표관리소를 지난다.
몸은 차치하고라도 마음이 피곤하니 그저 택시를 타고 싶은 생각뿐이다. 빨리 속초로 나가서 버스표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속초버스터미널에는 15:30에 도착하고 매표소에서는 3시40분 차는 매진이란다. 다음 차 4시20분을 예매하고 남는 시간을 바로 앞 PC방에서 친구들의 블로그를 찾아본다. 옛날 얘기와 산행기 몇 편을 읽고 나니 벌써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다. 16:20 정시에 버스는 떠나고,,,,,,, 곁이 차려준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 그 동안 수고해준 곁에게 서락의 정기를 전해준다.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비경능선을 다녀왔다. ‘아니 간 듯 다녀오리라’ 생각했지만 예상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길을 세 차례나 잃어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엑기스라 할만한 비경봉에는 올라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엉뚱하긴 하지만 GPS란 넘이 있고, 25,000 지형도를 준비하고 있어서 힘든 상황에서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금권성에서 봉화대를 오르질 못했다. 수량이 풍부하여 토폭의 모습이 장관이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때 그 상황에서 그런 여유를 누릴 마음은 아니었던가 보다.
그리고 비록 환하게 갠 날씨는 아니지만 이틀 동안이나 높은 구름으로 조망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혜택도 서락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비록 마지막에 소토골에서 비를 좀 만나기는 했지만 길을 잃지 않고 일찍 내려올 수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힘든 발걸음을 이동해야 완벽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금권성 엘리베이터 용사(?)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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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표 ? 시각별로 정리
1일차 : 8/06 (월) 2일차 : 8/07 (화)
0625 속초행 우등고속 0345 기상
0940 속초 터미널 0500 중청산장 출발
1010 설악동 0519 대청봉
1050 비선대 0525 비경능선 진입
1108 설악골 입구 0537 일출 사진
1120 잦은바위골 입구 0545~0630 길 잃고 헤맴
1155 칠선골 입구 0652 전망바위 #1
1218~1300 양폭 계곡 (식사) 0728 전망바위 #2
1308 양폭포 0800 만경대 갈림길(?)
1314 천당폭포 0851 비경봉 북쪽 봉우리
1319 무명폭포 0908 피골능선 갈림길
1320~1335 김총 만남 0937 칠성이
1421 무너미고개 1002 토골 갈림길
1435 희운각산장 1015~1100 소토골에서 길 잃음
1505 소청오름길 전망바위 1130 신설 삼각점
1559 소청봉 1200~1220 잠시 길 잃음
1621 중청대피소 1244 금권성 입성
1700~1745 식사 (내일 준비) 1330 암자 옆 내림길 입구
2100 취침 1410 식당으로 듬
1530 속초 터미널
1620 동서울행 버스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