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마음을 언제나 평등하게 가져라 ③
【本文】
頌曰(송왈)
欲成無上菩提道 욕성무상보리도인댄 也要常懷平等心 야요상회평등심이어다. 若有親疎憎愛計 약유친소증애계하면 道加遠兮業加深 도가원혜업가심하리라.
노래하노라.
위없는 보리도를 성취코자 원한다면 언제나 평등한 마음을 품을지라. 만약에 가깝고 멂 미움 사랑 따진다면 도는 더욱 멀어지고 업은 더욱 깊어지리. |
|
【解說】
야운(野雲) 스님의 자경십문(自警十門) 마지막 노래입니다. 본문에서 누누이 밝힌 바가 있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야운 스님은 노파심으로 거듭 강조하시고자 게송을 지어 노래하십니다.
欲成無上菩提道인댄 也要常懷平等心이어다. 욕성무상보리도 야요상회평등심
위없는 보리도를 성취코자 원한다면 또한 늘 평등한 마음을 품을지라.
욕성무상보리도(欲成無上菩提道)는 '위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성취하고자 원한다면'이란 뜻입니다. 무상보리(無上菩提)란 '위없는 깨달음'이란 뜻으로, '범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Anuttrasamyak-sambodhi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번역한 말'입니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약칭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최상의 깨달음을 말하는데, 범부ㆍ외도ㆍ성문ㆍ연각ㆍ보살에 대해서 불타(佛陀)의 지혜는 가장 수승하고 더 위가 없고 진실하고 보편타당한 바른 절대의 진리를 깨달아 증득했으므로 이 같이 말합니다.
야요상회평등심(也要常懷平等心)은 '또한 언제나 평등한 마음을 품어라'라는 말씀입니다. 야요(也要)는 '또한 요한다.'는 의미입니다. 야(也)는 '또, 또한'의 뜻으로 가벼운 발어사(發語辭)로 쓰였습니다. 상회(常懷)는 '항상 품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항상 품어야 하느냐 하면 평등심(平等心)입니다.
무상대도(無上大道)인 보리도(菩提道)를 구하는 이는 늘 마음에 평등심을 품고 살라는 당부이십니다. 자경십문의 열 번째는 대중생활을 함에 있어서 친밀하고 소원함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취사(取捨)의 마음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너와 나란 분별심으로 인한 사랑과 미움의 마음을 떠난 평등한 마음을 가질 것을 법계의 성품을 들어 경책하셨습니다. 이처럼 간곡한 말씀을 불자들은 누구나 명심하고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불자라 할 것입니다.
若有親疎憎愛計하면 道加遠兮業加深하리라. 약유친소증애계 도가원혜업가심
만약에 가깝고 멂 미움 사랑 따진다면 도는 더욱 멀어지고 업은 더욱 깊어지리.
약유친소증애계(若有親疎憎愛計)는 '만약에 친밀하고 소원함, 그리고 미워함과 사랑함을 따짐이 있다면'이란 뜻입니다. 약유(若有)는 '만약 ~있다면'의 뜻이고, 친소(親疎)는 '친밀(親密)하고 소원(疎遠)함을 말함이니, 즉 친분(親分)이 가깝고 멂을 뜻합니다. 증애(憎愛는 애증(愛憎)과 같은 말로 '사랑과 미움'을 뜻합니다. 계(計)는 "헤아리다, 따지다, 계산하다'의 뜻입니다.
도가원혜업가심(道加遠兮業加深)는 '도는 더욱 점점 멀어져 가고, 업(業)은 더욱 깊어져 간다'는 뜻입니다. 도가원혜(道加遠兮)는 '도는 더욱 멀어짐이여'라는 뜻이니 도가 점점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혜(兮)는 영탄조의 어조사입니다. 이는 어세를 멈추었다가 다시 어세를 높일 때 쓰입니다. 업가심(業加深)은 '업은 더욱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업(業)을 강조하여 업해(業海)라 하였으니 업의 바다가 더욱 깊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문장을 연결하여 해석해 보면 이러합니다.
"만약에 친밀하고 소원함을 가리고 미워함과 사랑함을 따진다면, 도는 더욱 점점 멀어짐이여! 업의 바다는 더욱 깊어짐이로다!"
그러한 즉 만약에 마음에 평정심을 잃고 차별심을 낸다면 진정한 수행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와 가깝고 멂에 따라 사랑과 미운 마음을 내어 도모하는 마음을 낸다면 수행자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어 결코 아름답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교를 다른 말로 공문(空門)이라 함은 앞에서도 적은 바 있습니다. 이 텅 빈 문에 들어 온 이들은 좋고 나쁨도 없고, 신분의 귀하고 천함도 초월해 있습니다. 모든 성품이 텅 비어 있음을 알기에 사랑과 미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친소(親疎)가 있으며 애증(愛憎)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도(道)에서 십만 팔천 리나 떨어져 있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업(業)만 증장시킬 뿐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중도(中道)를 행하는 길입니다. 중도는 양변(兩邊)에 치우침이 없는 길입니다. 중(中)이란 정야(正也)라 했습니다. 천하에 바른 길이 중도입니다. 이것은 곧 해탈도(解脫道)요, 보리도(菩提道)인 것입니다. 여기에 어찌 치우친 마음을 내어 갈 수 있습니까? 양변(兩邊)에 치우친 생각을 낸다면 이는 중도(中道)가 아니라 편도(偏道)를 가는 것이기에 해탈도(解脫道)가 아닌 윤회도(輪廻道)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윤회도(輪廻道)는 업(業)의 길입니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와 오욕락을 떨쳐 버리고 무상대도를 증득하여 대자유인이 되려고 큰 뜻을 품고 삭발염의(削髮染衣)하였는데 해탈도가 아닌 윤회도로 가게 된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출가 수행자 뿐만 아니라 재가 불자도 야운 스님의 게송을 명심하고 평등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시기를 합장합니다.
이상으로 야운 스님의 자경십문(自警十門)을 하나하나 모두 공부하였습니다. 이 열 가지 자경십문은 수행자가 어떤 마음자세로 수행에 임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자경십문(自警十門)을 다시 한 번 하나하나 살펴서 경책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
첫댓글 제가 성격이 급해 가끔씩 후회하는데
평등심을 유지하기가 바로 도를 득한거네요 ㅎㅎ
성격이 급하신 것 같지는 않은데... _()_
이 평등심을 항상 유지하려면 마음에 사상(四相)이 없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사상이 없는 자는 성인이지요.
평등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더라구요. _()_
자꾸 공부함으로 해서 조금씩 조금씩 가능한 한 평등심을 기르도록 해야지요. _()_
저도 늘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이를테면 저 상불경보살의 마음이 곧 평등심입니다. _()_
잘 읽었습니다._()_
감사합니다. 비니초님.. _()_
각박한세상살다보니평등심을 유지하기가 힘드내요 ()
1234567890/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