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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경제에 대하여...
1. 머리말
2007년 올 초부터 시작된 태국 경제의 혼란상은 지난 7월 2일 태국 정부가 달러에 연동된
準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미 신용공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에
큰 주름살이 지고 있었지만 환율제도를 변경한 이후에는 혼란상은 더욱 심해졌다.
환율은 급격히 상승하였고, 기업의 투자는 중단되거나 연기되고 있으며, 해고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붕괴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당초 6%대로 예측되던 성장률은 4%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 되었다.
8월 들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력을 얻어 160억달러이상의 자금을 도입하기로
하였으나 태국은 원조 기관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어 당분간 경제정책의 입안이나
집행에서 상당한 구속을 받게 될것이다.
40개 이상의 금융회사가 영업을 일시 정지하였고, 세수부족으로 큰 폭의 적자가 예상되던
재정수지를 균형으로 맞추기로 하였다.
또한 세수 확보를 위해 부가가치세를 기존의 7%에서 10%로 인상하기로 하였다.
환율 인상으로 인플레 압력이 증대되는 가운데 올해의 물가상승률을 9%이내에서
안정시키고, 성장률은 4%이상을 넘지 않도록 권고받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진정되지 않고 쿠데타설과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지는 일종의 공황(Panic)
현상까지 대두되고 있으며, 동남아 전체의 파급현상도 아직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만 해도 새로운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하여 세계의 개도국이 부러워했던 태국 경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경제 전체의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자본 자유화가
그 원인이라는 데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태국은 1992년 일종의 역외 금융센터인 BIBF(Bangkok International Ban-king Facility)를 창설하여 자본 자유화를 추진하였다.
인도차이나의 개방과 함께 이들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을 하고 자본자유화를 추진하며
나아가 방콕을 국제 금융도시로 만든다는 취지에서 발족한 것이었다.
이후 태국은행들은 낮은 이자율로 외화를 도입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외국 자본의 중개역할을 하였다.
자본력이 취약한 금융 기관들은 외자의 중개를 통해 큰 돈을 벌 수도 있었고 잘못되어도
대부분의 개도국 금융 기관들이 그렇듯이 정부가 그 부담을 떠안을 것으로 생각 했을수
있다.
차입자들도 바트의 안정 때문에 환위험에 노출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도입된 자금이 원래의 목적대로 인도차이나 등 제3국으로 대출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그것도 부동산부문 등 비실물부문에 투자되었다는데 있다.
원래 외자가 급격히 유입되면 자국화의 수요를 증대시켜 단기적으로는 국내 화폐의
가치는 상승한다.
그러나 도입된 외자는 언제인가는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하여 상환되어야 하므로 외자가
수출산업에 투자되고 경쟁력이 제고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절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태국화 바트가 이러한 상식과는 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태국의 대일교역 의존도가 대미교역 의존도보다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바트는 미달러화에
연동됨으로써 95년 이후 엔화가 저평가되면서 전체적으로는 고평가되는 결과를
초래 하였다.
바트화의 고평가는 두가지 측면에서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첫째는 고평가 때문에 외자가 수출산업보다는 서비스부문으로 유입된 것이요,
둘째는 바트화 고평가 자체가 기존의 노동집약적 수출상품의 경쟁력을 저하시킨 것이다.
그 결과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줄어들지 않고 확대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부동산시장에서 공급과잉으로 미분양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997년 2월 현재 방콕지역에만 해도 최대 40만호의 주택 (아파트, 콘도미니엄)이 팔리지
않고 있었는데 이는 3년전의 16만5천가구에 비해서 대폭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현재 건축중인 27만호 정도가 3년내에 추가로 공급될 것으로 보여 미분양 문제는
조만간에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주거용뿐만 아니라 사무실용도 동일하였다.
2년내에 공실률은 35%에 이르게 된다.
결국 부동산담보를 안고 영업을 했던 금융회사들이 부실화되면서 문제가 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미 2월에 소로스의 헷지펀드가 기초가 허약한 태국경제에 주목하고 바트를
공략했다는 말이 있었고 2월 중순에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중앙은행장회의에서 태국은행
총재는 회원국들의 공동대처를 요구하고 있었다.
3월초 재무부는 부실화된 10개의 금융회사들에게 자본금 확대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태국 금융회사에는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졌고 2주일 동안 7억5,000만달러
이상이 빠져 나갔다.
태국 금융계에 대한 신임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바트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은 거세지기 시작했으나 태국정부는 투기자금에 대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전의를 발표하곤 하였다.
외화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들도 원리금 상환 부담의 증대를 들어 환율 인상에 반발하고
있었다.
또한 환율인상이 가져올 물가상승 압력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7월들어 정부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최근 태국에서 벌어진 경제혼란의 근본 원인이
태국의 취약한 사회 경제적인 구조에 근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 하고자 하는 것이다.
태국의 경우 급격한 자본자유화로 외화의 유입이 많았고 이것이 부동산 등 비실물
부문으로 유입되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도록 한 경제구조에는 문제가 없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2. 수출산업 구조 고도화 문제
최근의 사태가 나기전까지 태국경제는 개발도상국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었다.
안정된 거시경제 지표하에서 고도성장을 계속하여 아시아의 호랑이 혹은 용 등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88년 이후 성장률은 매년 8% 이상에 이르렀고, 수출도 순조롭게
증가하였다.
제조업은 활발한 외국인 투자에 힘입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재정수지는 소규모이지만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통화공급도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하여 경제에 무리를 주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물가는 개도국 수준으로는 상당히 낮은 5%대에서 안정되어 있었다.
비록 이번에 주 화근이 되었지만 환율도 미달러에 주로 연동되어 84년 평가 절하를
단행한 이후 계속 안정세를 유지했다.
정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수출주도정책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고 그들에게 상당한
공업발전을 위탁하는 등 전체적으로 민간주도의 경제운용을 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GDP대비 8% 정도에 까지 이른 경상수지 적자였다.
이는 외채의 누적을 가져왔지만, 수출이 순조롭게 증가하고 있었고 DSR이 11%선에서
유지되는한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경상수지 적자는 예상외로 큰 문제였다. 막대한 경상수지 보전을 위해 14~15%에
유지되었던 실질이자율은 기업의 비용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부동산 구매자의 부담을
증가시켜 부동산시장의 침체에도 기여하였다.
경제의 기반을 허약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대부분 무역수지 적자에 기인하므로 기본적으로 태국 경제의
근본문제는 과도한 무역수지 적자로 귀착된다.
80년대 들어 태국의 무역수지는 1986년 일시적으로 균형을 이루었을 뿐 계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된 87년부터 90년까지 적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여
90년에는 처음으로 100억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91년부터 무역수지 적자폭은 다소 감소하기 시작했고 94년 약 90억 달러의 적자로
이 기간에는 다소 안정세를 보였으나 95년 다시 140억달러 이상, 그리고 96년에는
수출의 부진으로 16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무역수지 적자는 경제체질의 취약성에 따른 것이지만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확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태국도 경기확장이 투자수요를 증대시키고 투자재 조달을 위해 수입을 확대하는
동아시아의 국가들의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88~90년 태국이 10% 이상 성장하자 86년 균형을 이루었던 무역수지는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결국 태국정부는 경기과열의 부작용을 의식하게 되었고 91년부터는 8%대의 성장률로
낮아지게 되었다.
90년대 초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의 안정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당시 무역수지 적자폭이 감소한데는 일본의 엔고가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 되기도 한다.
90년대 들어 소위 제2차 엔고가 진행되면서 일본기업은 태국 자회사에서 수입을
확대 하였으며, 엔고 자체가 태국 상품의 경쟁력을 제고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의 주 수출시장은 아세안, 미국, 일본 등이며 수입은 압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대미 수출은 1994년 18.2% 증가하여 93년의 9.3%에 비해 대폭 높아졌으나 95년에는
오히려 4.9%로 떨어졌다.
더구나 대미수출 증가율은 총수출 증가율 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대일 수출의 경우 94년과 95년 21% 이상 증가하여 93년의 10.4% 증가에 비해 엔고로
일본에 대한 수출이 증가했다고 생각되지만 총수출 증가율보다는 결코 높지 않다.
오히려 태국의 수출은 아세안으로 급증하였는데 93년의 경우 43%, 95~96년의 경우
각 35%씩 증가하여 총수출 증가율 14%(93년), 21%(94년), 23%(95년)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신 수입의 경우 엔고로 일본기업의 신규 및 확장 투자가 시현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95년을 보면 대일 수입(30.3%)이 오히려 총수입 증가율(28.8%)을 상회하여 이 시기에
새로 진출 했거나 확장한 일본 기업으로 인해 오히려 수입유발 효과가 더 높았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결국 92년 이후 1995년 3/4분기까지 진행된 엔고로 인해 태국이 크게 덕을 본 것
같지는 않다.
태국의 대일 의존형의 수입구조가 경직적이라는 점을 비추어 볼 때 환율변동이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크다고 할 수는 없고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태국은
고정 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한편 상품별 수출구조를 보면 현재 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수출상품을 편의로 크게 농산물, 경공업 및 자원 가공제품, 전자를 중심으로 한
중공업제품, 그리고 기타 부문으로 나누어 보면 최근의 수출 추이에서 보이는 특성은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노동 집약적 부문의 부진이다.
농산물의 경우 95년 18% 이상 증가했으나 96년에는 수출이 감소하였고 특히 올해
1/4분기의 경우 감소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경공업 제품 및 자원가공분야의 경우도 수출은 감소하고 있다.
의류, 신발, 플라스틱 제품의 수출은 95년 23.6%로 급증했으나 96년에는 -19.6%로
상황이 급변했고 감소추세는 97년 1/4분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다른부문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편 전자부문 등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중공업부문의 수출은 현재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1990년대 초반의 성장세에 비하면 증가율이 대폭 떨어졌다.
특히 컴퓨터, 에어컨, TV, VCR 등의 수출이 90년대 초반 급증했으나 최근 그 증가세가
완만해지고 있다.
예컨대 컴퓨터의 경우 95년 39.4%, 96년 27.8%가 증가했으나 97년 1/4분기 들어 2.0%로
급격히 둔화 되었고 95년과 96년 각각 16.2%, 9.7%가 증가한 TV, 라디오의 경우
올해 들어 1/4분기에는 2.3% 증가하는데 그쳤다.
에어컨의 경우 상대적으로 신규수출 상품으로 96년의 수출은 91년에 비해 65배나
증가한 것이지만 역시 최근 둔화되고 있다.
IC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성장세가 높은 수출상품은 원동기 및 모터,
자동차 및 부품(실제로는 오토바이) 등 상대적으로 기술집약적인 품목도 있으나 아직
그 규모가 작기 때문에 태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더욱이 공업국을 지향하고 있는 태국이 공업의 기초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의 수출에서는 아직 미미하여 이 부문의 수출은 96년 총수출의
3%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근에 대대적인 투자가 진행되는 자동차의 경우 일제차가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 결과 오히려 수입 유발 효과만 높을 뿐이다.
또한 도요타 자동차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동남아 다른 국가에도
자 회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내수 판매가 주 목적이지 다른 국가에 수출을 확대할
유인을 갖지 못한다.
또한 철강은 이제 전기로에 의한 냉연부문을 건설하는 단계이며, 석유화학부문의 경우
상당한 규모로 투자되어 있지만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경쟁력이 약하다.
특히 반도체 칩의 경우 아직 트랜지스터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알파텍전자
(Alphatec)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합작으로 반도체조립부문에 진출할 예정 이었지만
기업만 도산하고 말았다.
결국 태국은 전통적인 수출 상품의 경쟁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가운데 이를 대체할 만한
기술 및 부가 가치가 높은 수출 상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섬유 등 전통적인 경공업제품의 수출감소, 전자부문의 부진 등은 국민경제의 공업개발
주기상, 그리고 태국이 아직은 노동력이 풍부한 국가라는 점에서 향후 상당 기간은
주도산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태국 경제의 취약성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태국의 섬유산업은 1995년말 현재 고용인원만 해도 114만명에 이르고 있는
중요한 산업 이지만 급격히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어 최근의 고용감축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 6월에만 하더라도 타이-아메리칸 섬유(Thai-American Textile)와 타이 멜런 섬유
(Thai Melon Textile)가 상당수의 종업원을 해고하였다.
태국의 인건비는 최근에 임금이 올랐다 해도 아직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94년 섬유산업의 시간당 임금은 태국이 1.41달러로 한국의 4달러, 홍콩의 4.4달러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결국 경쟁력의 상실은 품질을 고급화하지 못한데 연유하는 것이다.
3. 구조개선 없는 성장
태국경제의 문제점은 수출구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저임을 기반으로 한 노동 집약적
경공업에서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 하는데
실패했거나 적어도 지체한데 있다.
그렇다면 왜 산업구조 고도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가.
태국경제는 그동안 사회경제적인 구조의 개선없이 외형 성장에만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창의적인 태국 기업가의 부족, 소득격차 등 경제의 불균형과 이로 인한
결과에 따른 인력 부족, 그리고 정부의 일관성있는 정책의 부재는 산업구조 고도화와
관련하여 특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창조적 기업인의 부족과 외자
태국의 기업인은 주로 화교 기업인이다.
왕실계 자본이 대주주여서 국민 기업화하고 있는 시암 시멘트 그룹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름있는 그룹은 화교 소유이다.
물론 태국의 화교는 다른 동남아 국가의 경우에 비해 현지인과 잘 동화되어 있는
편이기에 민족간의 분쟁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교기업들의 특성은 제조업 보다는 상업이나 유통업에서 단기적인 이윤을 얻는데
훨씬 더 관심을 많이 가진다.
이번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 하였지만 태국의 실업계를 이끌어온 기업들은 금융, 부동산,
호텔업에 많았다.
설사 태국기업이 제조업에 진출 하더라도 소비재 부문에 까지도 일본이나 서구 기업과
합작을 통해 단순하게‘대리점’역할에 머무르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제조업 부문은 1960년대부터 진출하기 시작한 외국기업 특히 일본 기업에게
맡기고 있었다.
일본 기업은 태국이 수입 대체 정책을 시행할때 시장을 우회하기 위한 소비재의 투자를
시작하여 제1, 2차 엔고를 겪으면서 태국의 공업 부문을 장악하게 되었다.
전자 산업의 마쓰시타, 산요, 도시바 그리고 자동차 업계의 도요타, 미쓰비시, 닛산
등은 태국 공업의 지도를 그려온 기업들이다.
동남아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태국에서도 외자기업의 유치는 자본 부족과 기술
이전을 동시에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처럼 되었고 외자 유치 환경 개선에 온 힘을
들여왔던 것이다.
그러나 외자기업 유치를 경제개발정책의 근간으로 해 온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수상이
최근 “(다국적기업은) 개도국의 사업 상당부분을 먹어치우는것”이라고 한 것처럼
항상 이로운 존재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범세계화 시대에 따라 현지화(Localization)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은 다국적 기업이 민족 기업과 같이 국민경제를 생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국적 기업은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 언제나 다른 나라로 생산 설비를 이동해 갈수있다.
90년대 들어 태국의 최근 가장 주요한 수출 부문으로 성장한 컴퓨터 부품업의 경우 주로
다국적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약 5만명을 고용하여 태국내 최대
고용 창출 기업인 미국의 전자 업체 시게이트(Seagate)는 최근 태국내에서 확장을
하지 않고 다른 동남아로 눈을 돌리겠다고 하였다.
외자기업 중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본기업은 소위 국제 산업
분업이라는 미명하에 경쟁력이 저하되는 저부가 가치 부문을 태국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키고 있으며 이제는 태국의 경제 정책에 다양하게 개입하기도 한다.
1997년 5월초 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산요 반도체(Sanyo Semiconductor Co),
카세트 테이프 제조 업체인 TDK Co, 그리고 혼다 자동차(Honda Cars Manufacturing Co)의
경영인들은 태국 노동부에 청원서를
제출 하였는데 그 안에는 태국의 경쟁력을 잃을 정도로 최저 임금을 인상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었다.
물론 태국이 다국적 기업에 의해 산업 주권을 상실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자동차와 전자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이해가 태국의 이해와 맞아 떨어지리
라고 보기도 힘들다. 일본 기업들은 자본재, 원료 및 중간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는 태국 무역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태국 기업으로서 공업 부문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암시멘트, CP그룹, TPI그룹, 사하비리아, 알파텍 등은 최근 몇년 사이에 공업 부문에서
활발한 투자를 해왔지만 최근 전 2개 그룹은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을 더 많이 하고있고
후 3개 그룹은 이번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석유 화학업계의 TPI, 철강의 사하비리아는 공업국으로 발전하는 태국에서 소재 부문에
진출 했지만 막대한 투자비로 인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자 산업에서는 칩업체인 알파텍의 경우 부가 가치가 낮은 집적회로(IC)에서 반도체
조립 부문으로 고도화하기 위해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합작으로 막대한 투자를
시작 하였으나 자금 조달길이 막히는 바람에 텍사스쪽에 위약금만 배상하게 되었고
결국 알파텍은 부도상태에 이르렀다.
태국에서 정작으로 필요한 기반산업의 진출이나 발전에는 아직도 길이 먼 것이다.
(2) 경제적 불균형과 그 결과
태국은 경제적 불균형이 심한 국가이다.
이 글은 불균형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일단 도농간의 격차, 지역간 격차는 특히 지적할만 하다.
도농간의 격차는 공업이나 서비스업에 기반한 도시 지역과 농업에 기반을 둔 농촌
부문의 격차이다.
지역간 격차는 방콕과 지방의 격차로 나타난다.
먼저 알 수 있는 사실은 태국이 경제 발전 단계가 훨씬 낮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
비해서도 농업 고용 구성비가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이나 말레이시아에 비하면 그 차이는 현격하다.
물론 1980년대의 고도 성장을 반영하여 고용 구조가 고도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태국의 경우 농업 고용 구성비가 80년 이후 14% 포인트가 감소 하였고 이는 상당한
급속도의 변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도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생산성 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큰 것이다.
여기서 생산성은 농업과 제조업 부문의 1인당 부가가치(국내총생산)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즉 태국의 경우 제조업의 1인당 생산은 1993년 농업의 그것에 비해 11.8배에 이르고
있는 실정인데 비해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각각 2.4배 및 1.8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가 낳은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공업 부문에서 활용할 인력양성을
어렵게 한 것이다.
예컨대 높은 소득격차로 인해 농촌부문의 많은 학생들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다.
태국의 중학교 진학률은 1990년대 현재에도 50%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70% 정도의 노동력이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을 갖고 있다.
이런 인력으로는 산업구조를 고도화 하기도 힘들고 농촌부문의 잉여노동력을 근대
부문으로 쉽게 전환하기도 힘들다.
결국 소수의 기능 인력에 대해서는 임금 상승폭이 커지는 것이다.
태국의 잘못된 인력 정책은 노동 시장을 왜곡하기도 한다.
태국에는 농업부문에서 노동력이 근대부문으로 잘 전환이 되지 않는 가운데 불법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고용되어 있는 것이다.
태국에는 주로 버마인을 포함하여 거의 100만명에 가까운 불법 노동자들이 어업,
플랜테이션, 저임이 필요한 노동 집약적 업종에 고용되어 있다.
이들은 태국인들 보다 훨씬 낮은 임금에 고용되어 있고 근대 부문에 적합하지 않은
태국인들은 대만, 중동, 싱가포르 등의 건설현장에서 20만명 정도가 고용되어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노동력이 유입된 것은 93년 이후 정부가 인력 양성을 위해 의무 교육을 6년에서
9년으로 확대 하면서 일시에 인력부족 현상이 발생하여 나타났지만 어쨌든 태국의
노동 시장의 이중성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쓸만한 기능 인력은 극히 부족한데 교육제도 자체가 노동 시장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있다.
태국의 대학생에서 차지하는 이공계 비율은 극히 낮아 1993년 현재 16.2%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제적 불균형이 가져오는 또 하나의 결과는 공업 시설이 방콕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엄청난 과밀 과소 문제가 등장하고 이는 경제 효율을
저하 시키고 있는 것이다.
태국의 경우 방콕과 제2위 도시의 인구가 거의 30배 정도에 이르는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을 정도로 모든것은 방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방콕은 세계 최대의 교통 혼잡 및 환경오염을 자랑하고 있으며, 교통난으로 초래되는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수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소 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저해하게 되며, 기업은 결과적으로
과소 지역에 입지하지 않는 현상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콕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잠재 실업이 존재하는 반면에 방콕에서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3) 비효율적인 정부부문
내각 책임제를 정치 체제로 선택하고 있는 태국의 정권은 자주 바뀌기로 유명하다.
1980년대 초부터 88년까지는 프렘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안정적인 정국 운용을 통해
정치 안정을 기했지만 경제는 제2차 석유파동과 그 후유증으로 극심한 외환부족에
시달렸다.
87년 이후 경기가 크게 개선 되었는데 이 시기에 오히려 정국의 불안정은 훨씬 심했고
정권은 자주 바뀌었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경제성과와 정치 안정이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하며 바로
이 점 때문에 태국은 정치 상황과 경제가 별개의 관계라는 말도 듣는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치의 안정, 효율적인 정부의 일관된 정책 등은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88년 태국에는 선거에 의한 민선수상이 내각을 구성하였고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의
개방을 통해 이 지역의 맹주로 발돋음하기를 희망하였다.
당시의 수상 차차이씨는‘전장에서 시장으로’라는 구호로 태국 경제의 도약에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다.
엔고로 일본 기업의 투자가 붐을 이루어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군부의 위협은 계속되었고 성장기에 경제적 안정을 달성할만한
조치는 취하지는 않았다.
1991년 2월 쿠데타 직후 국민의 존경을 받던 아난수상의 임시정권이 있었다.
92년 3월 쿠데타 주역이었던 수친다씨에게 내각을 넘길 때까지 1년도 채 못된 시기에
그의 정부는 169개의 법률안을 통과시켜 전임 수상 차차이씨의 2년 동안의 49개안 통과에 비해 엄청난 효율성을 보여주었다.
법률의 상당부분은 태국경제의 산업경쟁력 배양을 위한 경제자유화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새로 들어선 수친다씨는 그러나 국민의 저항에 부딪쳐 유혈 사태와 함께 물러났고
단 기간의 아난 제2차 임시 내각이 헌법 개정을 마무리짓고 총선거를 실시하여 92년
9월 민주당 주도의 추안내이 들어섰다.
추안 내각은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와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의 지지를 받았으나
94년말 토지 개혁과 관련하여 농업차관의 부정으로 95년 5월 내각이 붕괴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등장한 정권은 태국 국민당의 반한씨의 연립정권이었다.
수상이 된 반한씨는 태국정치의 대표적인 금권 정치가여서 걸어다니는 현금 자동지급기“
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반한수상은 1년반 정도 있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96년 11월 현재의 샤발릿수상으로
정권이 넘어온다.
현재의 샤발릿수상도 96년 선거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쓴 것으로 평가되고 근본적으로
개혁 지향이 아니다.
이와같이 정권이 자주 바뀌어 일관성있는 정책을 수립 시행 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각 정권은 항상 5~6개 정당이 연립을 하기 때문에 정파간의 이해 관계가 달라
정책 집행의 효율성이 거의 없다.
실제로 각 정당은 집권을 위해 엄청난 돈을 선거에 사용하고,권력에 있는 기간이
얼마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경 유착이나 오직의 문제는 언제나 태국 정치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정경 유착은 가장 기본적인 사업 관행이 되었고 정부에서 입안하는 정책이란 있을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한 예가 태국 방콕에 건설하는 고속철도 사업이다.
이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것으로 홍콩의 사업가 고든 우씨가 추진하는것
이지만 97년 후반기인 현재까지도 질질끌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수출 진흥 정책의 경우에도 정부정책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태국의 부동산 시장이 한때 들떴을때는 외자의 유입이 큰 역할을 했지만 소위
지하경제 - 마약밀매, 매춘, 지하복권 등에서 나온 돈이 이 분야에 진출한 것도 한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효율적인 정부의 존재로 인해 이들 지하 경제의 활동이 활성화된 것이다.
올해만 해도 처음 환율 문제가 불거졌을 때 환율 제도를 변경할 것인가를 두고
태국 정부는 상당한 시간을 낭비하였다.
원인중의 하나는 외채에 짓눌린 기업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상당한 압력 때문이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정부가 보다 확고한 정책을 도입 했더라면 즉, 바트화에 대한 변동 정도를
확대하고, 정부지출을 삭감하며,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도 강화 했더라면 문제가 이 정도
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그리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정권을 잡기 위해 10억달러를 쓴 집권층이 기득 권층의
이익을 포기하고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정부가 어느정도 개입해야 하는가는 특별한 정답이 있는것 같지는
않다.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정부가 강력한 산업 정책을 들고 민간 부문에 개입하여 성공한
경우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 민관 일체의 경제 발전을 했다면 태국의 경우 민간 주도형의 시스템을
유지했다.
이렇게 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들수있는 것은 태국 정치사를 얼룩지게 한 쿠데타이다.
수 많은 쿠데타가 일어나서 비록 국가는 안정되어 있었지만 정책은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당연히 정부가 민간 부문에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더구나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수한 관료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국 사회의 엘리트는 군부에서 대부분 나왔지만 이들이 경제 정책에 우수하다고는
할수 없었다.
또한 태국민의 개인주의적 성향, 즉 간섭받기 싫어하는 민족성에서도 연유하는 바도 있다.
이와 같은 연유에서 등장한 정부의 무간섭과 무계획성은 시장기구가 원천적으로
잘 작동할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적어도 기존의 불균형은 시장기구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 맺음말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아시아의 고도성장은 ‘영감 보다는 땀’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논박을 했지만 태국 경제가 보여주는 성과는 적어도 그의
주장이 상당 부분은 사실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태국의 투자율은 91년 이후 내내 40%를 상회 하였으며 이 높은 투자율은 경상수지
적자 그리고 외채의 증가로 나타났다.
태국의 성장률은 비슷한 시기에 투자율이 비슷한 중국이나 말레이시아에 비해서 낮았고
경상수지 적자는 더 많았는데 이는 투자 자체가 비효율적이거나 투자가 효율성 증진과
관계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경제의 장기성장에 도움이 될 제조업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보다는
부동산 부문 등 비실물 부문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나타났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태국 경제는 지금 전통 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감소하는
가운데 이를 대체할 신규 산업이 없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경제구조 측면에서 볼때 태국민 기업가들이 단기 이윤에만 집착하고
장기투자, 즉 제조업 투자를 게을리한것 그리하여 일본 기업 등 다국적 기업이 제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결국 태국의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먼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고 제조업 등 장기 과제에 투자할 기업가 계층을 육성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보면 기업가들의 혁신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적어도 경제적 불균형이 경제기반을 저해할 정도로 확대 되어서는 곤란
하다는 점이다.
최근 동아시아의 고도성장은 균형을 강조한데 기인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로 태국의 경제적 불균형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1997년만 해도 북동부의 농민들이 방콕으로 상경하여 수개월을 노숙 하면서 소득격차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였고 노동자들은 과격한 스트라이크를 하고있다.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빈곤 계층이 그동안 거의 교육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저임의 노동력은 풍부하지만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킬 숙련 인력은 부족하다는
문제를 야기하고있다.
마지막으로는 정부부문은 효율적이어야 한다. 자본자유화가 기폭이 되었다고 하지만
최근 몇년간 태국 기업인들 이 투자한 소재부문은 기반없이 사상누각 식으로 투자
되었다는 점에서 80년대 우리의 중화학공업 투자를 보는 것과 같다.
민간주도의 자율 경제가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태국 경제가 기존의 상업 자본주의에서
그리고 외자에 의한 자발적 공업발전, 즉 일종의 자유 방임에서 국가가 장기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간 산업을 육성해 나가는데는 정부의 합리적인 정책, 그리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금융개혁, 창의적인 기업가가 등장할 수 있는 그리고 기술개발에 투자가 될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 그리고 미래를 정확히 예시한 인적자원 개발 등은 결국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결국 태국의 경제 문제가 시사하는 바는 경제의 기본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가 자유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외부적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외형적인 성장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Discussion 2
1. 동남아의 경제 정책과 통화위기
우리나라도 국내 금융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지만 최근 동남아 지역의 금융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태국의 바트화 폭락 사태로 시작된 이 지역의 금융 위기는 경제전반에 걸쳐 걷잡을수
없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고 심지어는 아시아 경제성장의 동력이 쇠진되어가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게 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으며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하는 것은
근거없는 얘기라고 일찍이 주장했던 폴·크루그만의 지론이 맞는 것 같다라는 성급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사태는 예상외로 심각하다.
태국뿐만이 아니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이 연거푸 자국화폐의 급속한
평가 절하를 거듭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장과 물가에도 심각한 악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전례없는 경제불안 때문에 외국 투자가들이 서둘러 동남아 주식을 투매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경우 9개월째 주가 하락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우선 환율 안정에 역점을 두고 고금리 정책을 통해 외화를 묶어 두려고
노력 했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국채 금리를 무려 30%선까지 인상 했으며 필리핀 정부도 단기채권
금리를 19%까지 올려 놓았으나 오히려 국내 투자자들까지 주식시장을 탈출케 하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켜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빚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조지·소로스 등 외국 투기꾼들의 행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매도하면서 실제로 말레이시아 주식 시장에서 몇몇 외국 투자자들의 거래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까지 취하였다.
물론 효과는 별로 없었다.
왜 잘 나가던 동아시아 경제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가.
과연 폴·그루그만이 예언한 것처럼 자원 집약적 성장패턴이 한계에 달한 것일까.
동아시아의 역동성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이달초 아시아개발은행(ADB)주최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 지역 경제의 위기
탈출을 위한 방향은 뚜렷이 제시되 있다.
먼저 범 세계화 시대에 외국의 대형 투자가들이 노리고 있는 바를 우리는 예의
간파해야 한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국제 시장에서의 큰손들이 각국 정부의 단기적 융화정책·금융 정책만을 보면서
외환 및 증권 시장에 들락날락 하였지만 요즘엔 한나라 경제의 건전성 전체를 평가하면서
투자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안목과 기법이 고도로 세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중요한 시사점으로서 우리는 거시 경제의 기본틀(턴더멘털스)에 충실해야 된다는
것이다.
견실한 정부재정, 원칙적인 통화운영, 소비와 투자구조의 정상성, 노동부문의 유연성,
그리고 경상수지의 균형 등이 이에 속한다.
급성장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 거시경제 운용에 있어 무리수를 두고 있다.
태국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을 경직적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여기서 나타나는 불균형(국내 인플레)을 통화량축소로 풀어보려고 하는 극히
단선적 정책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로서 정부의 합리적이고 세련된 정책능력을 든다.
상식에 어긋난 즉홍적 정책을 남발하는 국가에 대하여 국제 투자가들은 냉엄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가령 말레이시아의 경우 증권 시장의 불안현상을 막기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매를 정부의 긴급명령에 의해 일부 금지시킨 사례는 이 정부를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정부로 낙인찍는데 국제 금융계는 서슴치 않는다.
셋째로 국제금융전문가들은 한 나라에 건전한 기업가정신이 있는가 여부를 면밀히
분석한다.
특히 기업가들의 시대 적응력 유무를 예의 주시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루루 정부에 달려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 기업관행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국제투자가들은 그 곳에 장래가 없다고 판단한다.
네번째, 기술력과 기술개발 의욕을 든다.
21세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 개발과 신제품 발명에 심혈을 기울이는
국가인가 아닌가에 따라 국제 자본은 그 발길의 방향을 결정한다.
동아시아를 떠나는 국제 자본의 배경에는 이지역 정부가 기업들이 아직도 노동집약
상품에 매달려 있는데에 실망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 열거한 요인들 보다도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나라를 특징짓는 국민전반의
경제의식 수준이다.
범세계화 시대에 이젠 낡은 틀을 미련없이 털어 버리고 세계경제의 통합 과정에 과감히
동참하고자 하고 국민 의식이 있느냐의 여부가 투자 대상국을 설정하는 데에 있어
빠질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은 지금 정권 말기에 정부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초연하게 경제원칙에 충실한 정책 수행을 해 나가느냐에
쏠려 있다.
건전 재정과 충실한 금융정책, 그리고 기업가들이 그들의 미련을 유감없이 실천해
나가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소신있는 정책수행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