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1556)
틴토레토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가 1556년경에 그렸고,
지금은 런던 국립미술관에 있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는
원래 베네치아의 산 트로바소 교회(Church of San Trovaso) 안에 있는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 경당 오른쪽 벽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다.
1720년에 진품은 복제품으로 교체되었고,
왼쪽 벽에는 <최후의 만찬>이 쌍을 이루며 걸려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록한 반면에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요한복음사가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만찬 때에
악마가 이미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했고,
세족례를 통해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셨다고 기록했다.
틴토레토는 요한복음서의 내용에 따라
예수님과 베드로를 중심인물로 화면 전경에 서로 대면시켰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푸른색 겉옷을 탁자 위에 벗어놓으시고 붉은색 속옷을 입으시고
흰색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승이며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이며 사람인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사람에게 무릎을 꿇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머리에는 후광이 해처럼 빛나고 있다.
그분은 청동대야에 물을 부어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려 하신다.
그러자 베드로가 깜짝 놀라 두 팔을 벌리고 허리를 앞으로 숙이면서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6.8)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발을 가리키고 그를 올라보시며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8.14-15)
베드로의 오른쪽 발은 대야로 향하고,
예수님의 걷어붙인 왼쪽 팔과 평행을 이루며,
이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예수님 사랑의 모범을
베드로가 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 끝에서 촛대를 들고 서 있는 제자가 요한복음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이다.
그는 촛불을 밝혀 들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한 예수님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 모두가 세족례를 눈여겨보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위에 관심을 갖지만
예수님 멀리에 있는 사도들은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려 모닥불을 째기도 하고,
커튼을 젖히고 밖으로 나가는 제자를 바라보기도 한다.
왼쪽 뒤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제자가 바로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하고
예고하자, 요한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13,26) 하고
말씀하신 다음에 빵을 적셔 유다에게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요한 13,27) 하고 말씀하시자,
유다는 빵을 받고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겼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려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이 그림은 밤이라는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어둡다.
표면의 광택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어두워진 것도 있겠지만
어두운 배경은 화가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틴토레토는 캔버스 위에 흰 석고를 초벌로 칠했는데,
경우에 따라 그 위에 백납으로 밑그림을 그리거나
바로 반투명 광택을 칠하기도 했다.
왼쪽에서 커튼을 젖히는 유다나
그와 대응되게 수건으로 발을 닦고 있는 오른쪽의 제자나
모두 스케치를 약간 벗어난 상태일 뿐이다.
틴토레토의 전기 작가 카를로 리돌피(Carlo Ridolfi 1594-1698)에 따르면,
틴토레토가 너무 많은 주문으로 늘 고생했고,
항상 서둘러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그가 그린 그림들 가운데는 가끔 미완성인 것 같은 작품이 있다고 했지만,
아마도 화가는 어두운 성당의 벽 구석에서
이 두 인물이 희미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미켈란젤로가 <논 피니토>에서
말끔하게 잘 다듬어진 중심인물과 대조되도록
다듬지 않고 거친 미완성의 부분을 남겨두었는데,
그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인물 크기의 급격한 변화와
검은색을 바탕으로 한 흰색, 심홍색, 초록색, 노란색과 오렌지 빛 노란색의 대조,
바닥 타일의 한쪽으로 쏠린 원근법,
선동적인 인물들의 자세 등
이 모든 역동적인 요소들은 그림에 독특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 장면으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수난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절정을 이루며
그러한 사실은 이 그림이 걸린 경당의 제단 위에 있는 십자가로 암시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