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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국권회복과 근대적 시형의 모색
미적 완상 그 자체 난초 4 이병기 |
빼어난 가는 닢새 굳은 듯 보드롭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대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히 않고 우로雨露 받어 사느니라.
출처 《 가람 이병기 전집 1: 시조 》(2017) 첫 발표 《문장》 (1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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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李秉岐 (1891~1968)
전라북도 익산 출생.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우고, 1921년 결성된 조선어연구회 간사를 맡으면서 국어연구에 헌신하였다. 1923년 《조선문단》을 통해 시조와 수필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가람시조집》(1939) 발간 등 현대시조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청 학무국 편수관으로 취임하여 국어교재를 편찬하였다. 《국문학전사》(1957), 《국문학개론》(1961)을 비롯하여 국어국문학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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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의 시인
가람 이병기는 가람학(嘉藍學) 정립의 필요성이 주창될 정도로(이경애, 2017), 국어국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국학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존재이다(최원식, 2012).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그 의기를 꺾지 않았고,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청 편수관을 역임하며 한글 및 국어교육의 초석을 닦았다. 또한 1920~1930년대 시조부흥운동의 주도적 인물로서 전통시조의 현대화 방향을 제시한 고전문학 이론가이자, 직접 현대적 시조를 창작하여 우리 시조의 수준을 드높인 천성(天成)의 시인이기도 하다. 가람 시조의 높은 미적 완성도는 감각파 모더니즘 시인 정지용마저 감탄할 정도였는데, 정지용은 “송강(松江) 이후에 가람이 솟아오른 것이 아닐가 한다", "마침내 시조(時調)들이 시인을 만나서 시인한테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로서 감성의 섬세와 신경의 예리와 관조의 총혜(聰慧)를 갖춘 천성(天成)의 시인을 만나서 시조가 제 소리를 낳게 된 것이니 "(정지용, 1939)와 같이 찬탄하기도 하였다. 잠시 가람의 <별>(1932)을 살펴보자.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드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작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가곡으로도 불리는 이 시를 보면, “문 열자 선뜻! / 먼 산이 이마에 차라."로 시작하는 정지용의 <춘설>(1939)에서 느껴지는 신선하고 섬세한 감각적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등의 표현은 전통적인 시조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현대적 감수성을 내포한 감각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저 별은 뒤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와 같은 표현에서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라"라고 끝나는 김광섭의 <저녁에>(1696)만큼이나 정제된 서정적 풍경이 환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가람의 시조는 현대시 이상으로 감각적 세련미와 서정적 절제미를 갖추고 있는, 오롯이 아름답기만 한 시의 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완성도 높은 그의 시세계는 별, 난초 등 동일한 소재를 형상화한 당대 모더니즘 작품과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가람의 시조는 시조라는 맥락 안에서만 감상하기보다는 당대의 모더니즘 작품과 비교하여 감상할 때 그 진면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시조의 혁신
가람의 시조가 그의 시적 천품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가람은 192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시조 개혁론을 제시하였는데 〈시조는 혁신하자>(1932)가 그의 대표적인 시조론이다. 가람은 여기서 시조 창작의 여섯 가지 혁신방안을 주장한다(김용직, 1996: 382-388; 정주아, 2019: 261-264). ① 실감실정을 표현하자, ②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 ③ 용어에서 구투(舊套)를 버리자, ④ 격조(格調)에 변화를 주자, ⑤ 형식이나 형태의 제한을 벗어나 연작을 쓰자, ⑥ 읽는 시조로 하자 등이 그것이다. 가람은 고시조가 개인적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관용적 · 관행적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머문 점을 비판하면서, 현대의 시조는 '제 마음속에 맺힌 절실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해야 하며, 그러한 개성적 시조 창작을 위해 구투의 탈피, 소재의 확대, 격조의 변화, 형식적 제약의 탈피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조 개혁론에서 가람이 '부르는 시조'에서 '짓는 시조, 읽는 시조'로의 전환을 강조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시조를, 고시조처럼 음악의 틀 속에서 향유되고 창작되는 '시-가(詩-歌) 일체물’이 아니라 현대시처럼 '시-가(詩-歌) 분리물'로 전환함으로써 현대시와 같은 위상을 확보하자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람의 시조 개혁론의 궁극적 목표는 시조를 현대시와 대등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가람은 새로운 시조를 고시조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라 현대시와 대등한 존재, 최소한 현대시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인식되기를 기도(企圖)했던 것이다. 가람이 시조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문학가인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자연스레, 또한 기꺼이 문장파(文章派)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신진 문학가를 발굴하고자 한 것도 이에 연유한다.
| 난초, 독자적인 미적 세계의 의미
그러나 가람이 현대시와 시조 간의 완전한 동일성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다. 시가(詩歌) 분리물로서는 현대시와 시조 간의 공통적 방향성을 추구했지만, 미적 태도 면에서는 시조의 독자적 세계를 지향하였다. 그것은 첫째, 3장 6구라는 시조의 기본 형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3장 6구라는 형식의 유지는 복잡미묘한 내면을 지닌 서정적 자아를 내세우는 데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장 6구의 기본 형식은 유지하였다. 가람의 시조에서 복잡미묘한 자아를 내세우지 않은 점도 이러한 형식적 선택에서 말미암는다. 둘째, 현대시는 모순적 세계에 대한 자아의 고뇌나 비판의식을 담아내려는 경향성을 지닌다. 이러한 경향성 때문에 미적 태도의 측면에서 현대시는 그로테스크한 특성마저 포괄할 정도이다. 그러나 가람의 시조는 모순적인 세계를 비판하는 주체를 내세우기보다 미적 완전체로서의 대상을 완상하는 주체를 내세움으로써 현대시의 편향성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독자성을 보여 주는 대표작이 바로 <난초>(1939) 연작들이다. <난초 4 > 에서 시적 대상인 '난초'는 '빼어난, 굳은, *보드롭'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줄기는 신비한 자줏빛을 띠고 있고 꽃은 하얀 빛이어서 환상적인 빛의 대조미를 낳는다. 범상한 '이슬'마저 난초와 만나 '구슬'이 된다. 이러한 완벽한 형상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난초가 본디부터 깨끗함, 정결함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티끌마저도 거부하는 순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람에게 난초는 완벽함 그 자체를 갖춘 대상이다. 그래서 가람은 난초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삶을 표상하려 하였고, 그러한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상하고자 하였다(김윤식, 1995; 유성호, 2012). 이러한 인식이 <난초 2>에서는 가람과 난초를 연인 관계에 놓여 있는 듯이 형상화한다.
새로 난 난초 닢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 뜨고 꺾이는 양을 참아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츰 별이 발 틈에 비쳐 들고
난초향긔는 물미듯 밀어 오다.
잠신들 이 곁을 두고 참아 어찌 뜨리아.
가람은 난초의 곁을 '잠신들' 뜰 수 없고 한시라도 보지 않으면 안 되며, 다른 무엇으로부터도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를 돌보고 위로하고자 한다. 난초와 일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은 <난초 3>으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난초 3>에서는 가람과 난초 사이에 '책'이 존재한다.
오날도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든 찬초 다시 한대 피어 나며
고적한 나의 마음을 저기 위로 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앉어 책을 앞에 놓아 두고
장장張張히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책이란 무엇인가? 가람은 <서권기>(1939)에서 추사 김정희의 빼어난 예술적 성취가 서권기(書卷氣)로부터 가능했음을 설명하면서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서권기란 독서의 힘이요, 교양의 힘이다. 이것이 어찌 서도(書道)에뿐이리오. 문장에서도 없을 수 없다. 위대한 천재는 위대한 서권기를 흡수하여서 발휘'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가람은 책을 읽으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난초 향을 맡는다. 책에서 읽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난초의 향과 같은 무엇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난초를 닮아 가는 행위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난초여야 한다.
여기서 가람이 책을 넘어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은 글자들의 연쇄물이 아니라 인류 기억의 구조물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무엇보다 인간다움에 대한 방향성을 담고 있는 숭고한 존재물이다. 그러나 가람에게 책은 겨우 인간의 제작품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완전체에 대한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자연으로서의 난초를 만나는 길에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니 책을 지나 난초로 가야 한다. 이 일체의 정신주의적 지향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난초> 연작들인 것이다. <난초>연작 첫머리에 놓인 <난초 1>을 살펴보자.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든 별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가람이 책을 들고 잠들었다 비몽사몽간에 선뜻 깨어 처음 바라본 것이 두어 봉오리 난초꽃의 개화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황홀한 풍경은 그저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삶의 형상 그 자체인 것이다. 가람의 시조, 특히 <난초> 연작들이 이처럼 완벽함 그 자체에 대한 묘사, 그것에 대한 지향 의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잡한 현대시와의 차별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가람의 시조에서 세계의 복잡성과 모순성은 '미진도 가까이 않고'라는 표현에 의해 절연되어 있을 뿐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이러한 단순한 완벽함 때문에 가람의 시조는 현대시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복잡미묘한 내면의 존재들, 모순적이고 억압적인 세계에 억눌리거나 그것에 맞서려는 존재들로 가득한 현대시들이 놓치고 있는 미적 세계를 독자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람의 시조는 또 다른 현대시라 볼 수 있다. 내면의 복잡성, 세계의 모순성을 보여 주는 현대시들은 독자들에게 순수한 아름다움을 맛볼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편향성과 대비하여 볼 때 가람의 '난초'들은 아름다운 대상 그 자체에 대한 미적 완상의 기회를 온전히 마련해 준다. 바로 이 점에서 가람 시조의 독보적 가치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남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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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당시에는 '조는'이었으나, 《가람시조집》(1939)부터 '굳은'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가람 이병기 전집 간행위원회 편 (2017), 《가람 이병기 전집 1: 시조》,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김용직(1996), 「서정의 주류화와 풍류의 미학: 가람 이병기」, 『한국근대시사 下』, 학연사.
김윤식(1995), 「난(蘭)과 예도(藝道)」, 『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 일지사.
유성호(2012), 「가람, 시조, 문장」, 「비평문학』 45, 한국비평문학회, 369-392.
이경애(2017), 《가람 이병기 전집》 간행을 위한 자료 정리 및 가람학 정립의 방향 연구」, 『국어문학 』 64. 국어문학회, 243-279 .
이병기(1932), 「시조는 혁신하자」, 『동아일보』, 1932. 1. 23.-1932.2. 4.
이병기(1939), <서권기>, <문장> 1(11).
정주아(2019), 「한글의 텍스트성 (textuality)과 '읽는 시조': 가람 이병기의 한글운동과 시조혁신운동」『어문연구」47(4),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51-274.
정지용(1939), <발(跋)>, <가람시조집≫, 문장사.
최원식(2012), 「고전비평의 탄생: 가람 이병기의 문학사적 · 지성사적 위치」, 『 민족문학사연구』 49. 민족문학사학회 · 민족문학사연구소, 66-81.
사회평론 교육 총서 19 『문학 교육을 위한 현대시작품론』
2024. 11. 11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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