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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31코스 제1부
진부령미술관-진부령로-흘리길-
백두대간종주기념공원-흘1리마을-
흘리삼거리-흘리령길-알프스리조트-
마산봉주차장-흘리령길122번출입구
20250924
1.코스 소개 : 두루누비
1)코스개요
- 인제 진부령미술관에서 출발해 고성 소똥령마을에 이르는 구간이다.
-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길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 길은 DMZ트레일(적계로) 및 향로봉 일원과 연결되어 있다.
2)관광포인트
- 인제와 고성을 잇는 옛 고갯길인 진부령
- 고성읍출장사무소 건물을 개조해 만든 진부령미술관
- 다채로운 전시로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진부령미술관
- 아름다운 설경으로 유명한 백두대간 봉우리 마산봉
- 다양한 농촌 체험프로그램과 여름철 휴양지 야영장을 운영하는 소똥령마을
- 칡넝쿨로 그물을 엮어 물고기를 잡았다는 칡소폭포
3)여행정보(주의사항)
- 산불조심기간에는 도보이용이 불가하므로 우회로(31-1 코스)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소똥령마을에서 숙박 및 체험이 가능하며, 여름에는 마을축제가 열리고 있다.
- 숲길 구간은 맷돼지 출몰 등 우발적 상황 발생이 빈번해 방문객의 사전 준비 및 주의가 필요하다.
- 주요경로 : 진부령미술관 4.0Km 흘2리 안심회관 2.3Km 흘리임도 8.2Km 소똥령마을
- 길이 14.5km, 소요시간 5시간, 난도 어려움
- 시점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령로 663
대중교통) 고성 간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흘리)’ 버스 이용, 진부령 정상 정류소 하차
- 종점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간성읍 소똥령마을길 82
대중교통) 고성 간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흘리)’ 버스 이용, 장신리유원지 앞 정류소 하차
2.이중섭의 '황소'처럼 희망의 미래를 향하여
DMZ 평화의 길 31코스 탐방을 위해 진부령에 왔다. 지난 번 30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할 때 진부령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진부령의 여러 곳을 살펴 보고 평화의 길 탐방을 출발하기로 하였다. 고성문화원에서는 진부령을 이렇게 소개한다. "고성 지방에서 영서쪽으로 통하는 관문은 진부령(陳富領)이다. 진부령은 수성지 기록에 의하면, '영서로 통하는 소로가 매우 험하고 좁아서 1632년(인조10년) 관에서 모집한 역승(役僧)이 처음 개통한 고개인데, 통행이 적고 비교적 순탄한 길이어서 통행이 용이하나 겨울에는 눈으로 길이 막힌다." 진부령의 표고는 520m로 굉장히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진부령의 가을은 온 산과 계곡이 불이 붙은 듯 온통 붉게 물든 단풍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DMZ 평화의 길 31코스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진부령미술관~흘리령길122출입구) : 진부령에서 살펴볼 곳은 진부령 미술관, 진부령 전망대, 백두대간 진부령쉼터이다. 먼저 진부령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 뜰에 여러 빗돌들이 세워져 있다. 진부령(陳富嶺) 표석,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와 설화희생충혼순국비,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진부령유별시비(陳富嶺留別詩碑)와 진부령유별시 기문비(記聞碑) 등이다. 이식(李植,1584~1647)은 대사간 재임시 1631년(인조9년) 8월에 간성 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는 간성에서, 승려와 군민을 동원하여 진부령 고갯길을 우마차가 다니는 길로 확장하여 산업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고, 간성지(杆城誌)를 발간하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그가 1633(인조11년) 1월, 부제학을 제수 받아 간성을 떠날 때 간성 군민들은 눈 덮인 진부령까지 따라와 전송하니 선생이 남긴 칠언절구가 진부령유별시(陳富嶺留別詩)이다. "西行正値北風時(서행정치북풍시)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雪嶺參天鳥道危(설령참천조도위) 눈 덮이어 음산한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 自是人情傷惜別(자시인정상석별) 이제 인정에 마음 아픈 이별을 하네./ 君來饑我我留詩(군래기아아유시) 그대들 배 주리며 따라왔는데 나는 이별시를 남기네."
빗돌들을 살핀 뒤 뒤쪽의 전망대에서 간성읍 지역으로 내려가는 진부령로 고갯길과 산줄기를 살폈다. 진부령로에는 금강산건봉사를 홍보하는 대형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꼬불꼬불 고갯길은 가팔라 차량들은 깊은 숨을 쉬며 올라오며, 내려가는 차량은 긴장하여 조심스럽다. 북동쪽에 삼봉이 가늠되는데, 삼봉 북서쪽에 향로봉이 있을 것이다. 진부령 전망대에서 내려와 진부령로 아래에 있는 백두대간 진부령쉼터로 내려가니, 백두대간 진부령 표석과 진부령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 남쪽에서 자유롭게 오를 수 있는 백두대간 최북단은 진부령이며, 군부대의 허락을 받으면 향로봉까지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은 진부령 백두대간 표석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며, 매년 10월에 고성군에서 개최하는 향로봉 등산대회에 참가하여 향로봉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진부령 미술관으로 올라갔다. 후다닥 3층 이중섭 상설전시실로 들어가 황소 그림을 살폈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한창 행복한 시절과 해방 이후의 고난과 궁핍의 시절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이중섭 생애는 눈물이 아롱진다. 진부령 미술관의 '황소' 작품이 진품일까? 길손은 그것도 모르는 채 오직 이중섭에 빠져 '황소'를 감상하고 나왔다. 이중섭의 '황소'는 결코 스페인의 투우가 될 수 없다. 한국의 착하고 고생하는 소, 불행을 견디면서 희망적인 미래를 향하여 황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강인한 의지의 소이다. 황소의 타오르는 눈빛이 강렬하다. 황소의 큰 울음이 화면 밖으로 터져 나온다.
이중섭의 '황소' 작품에 대하여 나무위키에 실린 일부를 소개한다. "이중섭이 1953년 38세 때 그린 작품으로 활력이 넘치는 붓 터치와 과감한 묘사, 그리고 황소의 기운을 순간적으로 잘 포착한 작품이다. 가족과 함께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인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화에 따르면 1955년 당시 대구 미국문화원장이었던 미국인 아서 조지프 맥타카트 박사가 스페인의 투우를 보는 것 같다고 그림을 칭찬하자 이중섭은 오히려 그 말에 큰 상처를 받고 평안도 사투리로 "뭐라고, 투우라고? 내가 그린 소는 그런 소가 아니고 착하고 고생하는 소, 한국의 소란 말이우다."라고 외친 후에 자리를 뛰쳐나와서 여관방에서 몇날며칠을 울면서 자기 그림이 투우처럼 보이면 틀린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나무위키)
진부령 미술관과 '백두대간의 관문 향로봉' 철문 사이에 DMZ평화의 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평화의 길 31코스 탐방을 출발한다. 진부령로에서 황태판매장&한식당집 '진부령 광장' 맞은편 흘리길로 이어간다. 이 길은 간성읍 흘리 마을과 알프스리조트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마산봉으로 올라간다. 이 길을 따라 오르내린 지가 몇 년이 지났다. 이 길 북쪽으로는 백두대간 능선길이 이어진다. 이 능선길을 따라 진부령으로 내려간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흘리길의 첫 번째 굽잇길을 돌아가면 한전KPS 백두대간 종주 보존회에서 조성한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이 있으며, 백두대간을 종주한 여러 산악회에서 세운 종주기념비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산림이 울창하고 산이 높다 하여 흘리(屹里)라 불렀고 속칭 밖(外)흘리, 안흘리 등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마을의 면적이 광활하여 지역별로 구분할 때 칭하던 이름으로 현재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흘리길은 흘3리 진부령에서 흘1리 마을로 들어간다. 흘1리 마을 입구에는 흘1리 마을 표석, 피망 조형물, 2000년 친환경농업우수마을 표석, 흘1리 백두대간 생명숲 탐방로 안내도, 2001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 표석 등이 설치되어 있다. 피망 조형물로 보건대 이 지역에서는 피망이 주 농산물인 것 같다. 흘1리 마을로 들어서면 병풍바위 능선이 동남쪽에, 마산봉 능선이 동북쪽에 길게 이어진다. 그 서쪽 기슭에 알프스 스키장과 리조트가 있었지만 2006년에 문을 닫았다. 그 건물들과 이들이 성행할 때 영업한 스키렌탈 등 여러 시설들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서 길손의 마음에 찬 바람을 일으킨다.
흘1리마을에는 수리봉이 예쁘장하게 솟아 마을을 지켜주고, 남쪽에 신선봉이 뾰족하게 솟아서 존재를 드러낸다. 알프스 스키장&리조트가 운영되던 지난 시절의 영화가 사라진 탓에 마을이 썰렁해 보이고 움츠려 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흘리삼거리에서 흘리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가고, 평화의 길은 왼쪽 흘리령길로 이어간다. 흘리삼거리 흘리길에 흘리복지회관 건물은 폐쇄되어 있다. 흘리 마을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흘리령길 북쪽의 광산초등학교 흘리분교장도 2024년 3월 폐교했다고 한다. 길손의 마음이 자꾸 휘청거린다.
흘리령길을 따라 알프스리조트 출입구를 지나면 향로봉-진부령-마산봉을 잇는 백두대간 능선 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는 흘1리와 흘2리의 경계를 이루며 마산봉 등산로 출입구이기도 하다. 흘2리 지역으로 넘어가 마산봉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흘리령길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향로봉 능선이 활짝 열린다. 인제의 매봉산과 향로봉 능선의 칠절봉도 가늠된다. 그리고 향로봉 동남쪽에 세 봉우리로 이어진 삼봉이 분명히 확인된다. 그리고 마산봉 정상의 말머리에서 말꼬리로 이어지는 마산봉 능선이 말의 허리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흘리령길에서 향로봉 능선의 장쾌함과 마산봉 능선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북에는 향로봉이요, 남에는 마산봉, 그 동쪽에 고성이 있구나.
흘리령길을 따라가며 흘리령이 어디 있는지 의문을 품고 흘리령을 찾아보려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흘1리와 흘2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가 흘리령일까? 마산봉 주차장을 지나 흘리령길122번 입구의 고개가 흘리령일까? 흘2리 마을로 더 들어가야 흘리령이 있는가? 흘리령을 놓칠까 조바심하지만, 흘리령길에서는 백두대간 향로봉 능선 감상에 취하고, 향로봉 정상 모습에 가슴이 펄펄 끓는다. 향로봉 정상에 올랐던 그날의 모습이 아득한 그리움으로 밀려들고, 얼마 전 30코스 탐방 때 진부령에서 칠절봉 출입구를 거쳐 적계삼거리까지 백두대간 트레일을 걸었던 모습이 생생하게 향로봉 능선에 비쳐진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5.0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43분
국도 46호선 진부령로에 해발 520m 진부령 도로표지판을 단 기둥이 서 있다. 진부령로 서쪽의 진부령 전망대로 올라간다.
진부령 전망대는 뜰 뒤쪽에 있고, 뜰에 여러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맨 앞에 진부령(陳富嶺) 표석이 세워져 있다.
진부령은 오랜 옛날 동서를 잇는 유일한 오솔길로 보부상이 넘나들던 길로서 기록에 의하면 1631년 간성현감 택당 이식께서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개설하였다고 함. 그후 1930년에 차량 1대가 겨우 넘을 수 있는 비포장 지방도로로 보수관리하여 오다가 1981년 국도 46호선으로 승격, 6년여 공사 끝에 1987년 9월 20일 2차선 도로로 확포장되었으며 1989년 영상(嶺上) 도로 측면에 위치한 향로봉지구 전투 전적비를 이전하면서 이 표지석을 세움. 1989년 8월 18일 고성군수
관리번호 : 17-2-46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간성급 흘3리 산 1-18번지 건립자 : 육군 2307부대 관리자 : 제 12보병사단(51여단 1대대)
맹호 수도사단 용사들은 단기 4284년 5월 7일부터 동년 6월 9일까지 걸쳐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계속하여 설악산으로 진격하였으나 패주하던 적은 중동부 요충지인 인제를 방비하기 위하여 설악산과 향로봉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괴뢰 제5군단 예하 제11, 12, 13사단을 증원하여 우리 수도사단 및 제11사단에 89회라는 희유의 반격을 기하여 왔었으나 도처에서 연전연승을 자랑하는 용사들은 그 반격을 격퇴 분쇄하고 설악산 및 향로봉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오늘의 광범위한 중동부 일대를 수복하는 데 혁혁한 공훈이 되었으며, 전 장병들의 영웅적인 전투는 높이 찬양되었다. 이 지구에서 장렬하게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전물 장병의 명복을 빌며 자손만대에 길이 그 위혼을 전하고자 여기에 전적비를 세우고 이를 기념한다. 단기 4290년 7월 15일 (서기 1957년 7월 15일) 제3군단 세움
1957년 7월 15일 간성읍 흘리 산1-81번지에 6·25 당시 향로봉지구 전투를 기리는 전적비를 설치하였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적비가 노후됨에 따라 1973년 9월 29일 최초의 위치에 다시 건립하였으나, 진부령도로 확포장으로 교통에 불편을 주어 1989년 8월 이 자리에 이전보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맹호 수도사단 용사들은 단기 4284년 5월 7일부터 동년 6월 9일까지에 걸쳐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계속하여 설악산으로 진격하였으나 패주하던 적은 중동부 요충지인 인제를 방비하기 위하여 설악산과 향로봉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괴뢰 제5군단 예하 제11, 12, 13사단을 증원하여 우리 수도사단 및 제11사단에 89회라는 희유의 반격을 기하여 왔었으나 도처에서 연전연승을 자랑하는 용사들은 그 반격을 격퇴 분쇄하고 설악산 및 향로봉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오늘의 광범위한 중동부일대를 수복하는 데 혁혁한 공훈이 되었으며, 전 장병들의 영웅적인 전투는 높이 찬양되었다. 이 지구에서 장렬하게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전몰장병의 명복을 빌며 자손만대에 길이 그 위훈을 전하고자 여기에 전적비를 세우고 이를 기념한다. 단기 4290년 7월 15일 제3군단 세움
오른쪽에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진부령유별시비(陳富嶺留別詩碑), 왼쪽에 진부령유별시비 기문비(記聞碑)가 서 있다.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진부령유별시비(陳富嶺留別詩碑) 뒷면에 원문과 번역문이 새겨져 있다.
西行正値北風時(서행정치북풍시)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雪嶺參天鳥道危(설령참천조도위) 눈 덮이어 음산한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
自是人情傷惜別(자시인정상석별) 이제 인정에 마음 아픈 이별을 하네.
君來饑我我留詩(군래기아아유시) 그대들 배 주리며 따라왔는데 나는 이별시를 남기네.
문정공(文靖公) 이식(李植) 선생의 자(字)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또는 택구거사(擇癯居士)요, 조선조 사대(四大) 문장가이고 한문학의 태두이며 덕수(德水)인이다. 광해2년 문과에 급제하여 많은 화관을 두루 거쳐 형조, 예조, 이조판서에 오르고 대제학을 네 번 역임하였으며, 선조실록 개수와 광해일기를 수정하여 영의정에 특 증(贈)되고 여주 기천서원, 경성 화곡서원, 지동 부연사에 배향되었고 택당집 외에 많은 저서를 저술하였다. 1631년(인조9년) 8월에 대사간 재임시 인조대왕의 아버지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숭함이 고례가 아님을 주장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서 간성 현감으로 좌천되어 임지에 부임하여 낙후된 소읍이라고 소홀히 하지 아니하고 감사에게 청하여 관아와 사원을 보수하고 자혜성경으로 피폐된 민심을 수습하고 향학을 장려하기 위하여 양사재(養士齋)를 창건하고 유생을 모집하여 강학에 힘쓰는 한편 개간사업을 장려하여 소득증대에 기여했다. 당시 진부령의 도로는 한 사람씩 다니는 소로길마저도 유실되어 통행이 두절되는 등 통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승려와 군민을 동원하여 우마차가 다니는 길을 확장하여 내륙지방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산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간성지(杆城誌)를 발간하여 인구현황, 행정구역을 알리는 등 많은 자취를 남기었다. 1633(인조11년) 1월, 부제학을 제수 받아 떠날 때에 간성 군민들은 치정을 못잊어 눈 덮인 진부령까지 따라와 전송하니 선생은 인정에 못잊어 유별시를 남기었다. 조정에 돌아가서 영동치정의 폐단인 태강실신(㑀講失信), 전결자각(田結自覺), 역졸급전(驛卒給田), 여정도산(餘丁逃散)을 상소하여 폐단을 없게 하였으며, 유생들이 조정에 출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선생이 떠난 후 군민들은 거사비를 세우고 경택제를 지어 강학을 하였으며, 선생이 하세하자 군민들은 은공을 못잊어 해물을 취합하여 부의하고 부인이 하세할 때도 이와 같이 하였다. 이에 360여 년이 지난 후 고성군청과 고성문화원에서는 선정사역(善政史歷)과 치자와 치민의 정을 잊지 못하여 진부령 개설사 및 당시 군민의 정성이 담긴 유별시와 기문을 돌에 새기어 후대에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우노라. 2006년(丙戌) 10월 24일 고성군수 咸炯仇, 고성군문화원장 黃鍊仁
전망대 뜰에서 전망대로 올라와 진부령 고갯길을 내려본다. 천오백년 고찰 금강산건봉사 24km 대형표지판이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다.
진부령전망대에서 국도 46호선 진부령로 고갯길을 내려본다. 진부령로는 간성읍 진부령리, 장신리, 광산리, 교동리로 이어진다.
진부령 전망대에서 내려와 진부령 고개를 넘어 진부령로를 따라 백두대간 진부령쉼터로 내려간다.
백두대간 진부령쉼터에 백두대간 진부령 표석과 진부령 아가씨 노래비, 맨 오른쪽 뒤에 진부령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진부령쉼터에서 국도46호선 진부령로 고갯길을 내려보면 천오백년 고찰 금강산건봉사 24km 대형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노래비 앞면에 예쁜 글씨로 '진부령'과 '아가씨' 글자는 중앙에 세로로, '노래비' 글자는 맨 아래쪽에 가로로 새겨져 있다.
노래비 앞면에 '진부령 아가씨'의 작사 박건호, 작곡 이호, 노래 조미미를 밝히고 가사가 새겨져 있다.
진부령 고갯길에 산새가 슬피 울면/ 길을 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는데/ 구비마다 돌아가며 사연을 두고/ 말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님아/ 아~울지 마라 진부령 아가씨야// 청계수 맑은 물에 구름이 흘러가면/ 굽이굽이 얽힌 사연 잊을 수 있으련만/ 돌아서는 발길마다 사연을 두고/ 말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남아/ 아~울지 마라 진부령 아가씨야
표석 아래에 진부령의 위도와 경도, 지리 위치를 새겨 놓았다.
한반도 지도에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 표시와 현위치 그리고 거리가 새겨져 있다.
백두대간은 국도의 등줄기로서 남과 북을 잇는 주축이며 자연 생태계의 핵심축을 이루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그 실체나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이미 상당 부분이 단절 또는 훼손되었으며, 현재도 '보전과 이용'이라는 상충된 가치 사이에 마찰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백두대간은 지형, 기후, 토양, 수문 등 자연 환경과 온갖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 그리고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복합적인 3차원의 공간으로서 매우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2006.9.9
'강원도 중심'과 '강원도 세상' 문구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진부령陳富嶺, 529m)은 칠절봉(1,172m)과 마산(1,052m)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으로 간성읍 흘3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관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이어주는 주요 교통로로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과 인제군 북면을 직접 연결한다. 추가령·대관령과 함께 3대 영(嶺)에 속한다. 진부령은 진벗령, 조장(朝場) 그리고 조장이 변음된 조쟁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진부'의 우래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변 지역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기후 조건을 이용하여 명태를 건조시키는황태덕장이 다수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스키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또한 진부령은 가을단풍으로도 유명하며, 이곳을 찬미하여 부르는 '진부령 아가씨'라는 노래도 있다.
백두대간보호지역 : 본 지역은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백두대간보호지역'입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 세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서 총길이는 약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큰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입니다.
백두대간 진부령쉼터에서 진부령 고갯길을 내려본다. 중앙 뒤에 보이는 산봉은 삼봉, 그 왼쪽으로 향로봉이 있을 것이다.
진부령쉼터에서 진부령 아가씨 노래비와 백두대간 표석, 백두대간 안내판, 진부령 고갯길을 살피고 진부령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진부령 미술관의 위치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 지역이지만 고성군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서 운영하는 진부령 미술관은 진부령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0년 고성읍 출장사무소 건물을 개조해 진부령 문화스튜디오로 개관하였고, 2005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4개 전시관을 갖춘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매년 기획 전시회를 개최하여 다양한 분야의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중섭 상설 전시실에서는 대향 이중섭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2.7mX 4m의 대형 액자에 담긴 황소 작품도 볼 수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진부령 미술관 현관 외벽에 상설전시 이중섭 특별전과 초대전 최원우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진부령 미술관 3층 이중섭 상설전시실 왼쪽 벽에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 1916~1956) 화백의 안내판이 게시되어 있다.
이중섭 약력 게시판 옆에 이중섭 동판 부조상과 그 아래 예전의 이중섭 특별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진부령 미술관 3층 이중섭 상설전시실 입구 왼쪽 벽에 여러 게시물이 전시된다.
진부령 미술관 3층 이중섭 상설전시실 입구 왼쪽 벽에 결혼 사진을 비롯하여 이중섭 관련 여러 사진들이 전시된다.
전시실 오른쪽 벽과 중앙 벽에 이중섭의 그림들이 전시된다.
전시실 중앙 벽과 오른쪽 벽에 전시되는 이중섭의 그림들을 살핀다.
전시실 왼쪽의 움푹 들어간 벽면에 2.7mX 4m의 대형 액자에 담긴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황소' 작품이 걸려 있다.
이중섭에게 소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농경사회에서 소는 삶의 이로움과 고된 노동, 인내의 상징이었고, 그 자체가 가족·민족의 운명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전쟁, 이산의 현실은 그에게 소처럼 끊임없는 인내와 버티는 힘,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을 요구했습니다. 황소는 바로 이중섭 자신, 그리고 자신의 가족, 나아가 고난을 겪는 한국인 전체를 비유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출처] 그림이야기 이중섭 황소|작성자 리뷰휴먼
진부령 미술관 옆에 DMZ 평화의 길 안내판과 산불조심기간 중 평화의 길 30코스 대신 우회로 이용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DMZ 평화의 길 안내판에 평화의 길 조성경위, 31코스와 BI(상징기호)에 관한 소개글, 맨 아래 31코스 방문인증 코드가 붙어 있다.
평화의 길 31코스 : 14.47km, 5시간 소요. 고성 31코스는 진부령미술관에서 시작해 소똥령 숲길을 지나 소통령 마을로 연결되는 노선입니다. 대부분 숲길 구간으로 난도가 높은 편이며, 멧돼지 출몰 등 우발상황 발생이 빈번하여 이용자의 사전 준비 및 주의가 필요합니다. 소똥령은 옛날 한양에 가는 길로 산세가 험해 산적들이 자주 출몰했다는 이야깃거리를 보유하고 있으나, 소똥령 숲길로 잘 정비되어 최근에는 이용자들이 증가 중입니다. 노선 내에 3~400년 된 소나무 등 아름다운 숲길과 칡소폭포, 소똥령 구름다리 등의 주요 자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진부령 미술관 일원은 산림청의 DMZ 트레일(적계로) 및 향로봉 일원이 연결되는 구간으로서의 특성을 보유합니다.
DMZ 평화의 길 31코스는 진부령정상 버스 정류소 앞 진부령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진부령 동쪽 보도로 넘어간다.
진부령정상 버스정류소 앞에서 국도46호선 '진부령로'의 진부령(陳富嶺) 정상과 진부령 미술관을 돌아본다.
진부령(陳富嶺)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고성군 간성읍 흘리를 잇는 고개. 도로명은 진부령로. 광복 후부터 6.25 전쟁 전까지는 북한으로 넘어갔으나,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 수복하였다. 모 공병단에서 확장 공사를 하였으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그 건설 공로를 치하하여 세운 비석이 있다. 해발고도는 520m로, 백두대간을 넘는 강원도 고개들 중 가장 낮아, 미시령터널이 개통되기 전에 폭우 또는 폭설로 한계령, 미시령이 다 통제될 때 가장 마지막까지 차가 다닐 수 있는 고갯길이었다. 또한 민간인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자동차 도로 고개 중 가장 북쪽에 있다. 인제와 고성의 경계라고는 하지만, 정확한 군 경계는 진부령 정상이 아니라 남쪽에 있는 군계교다. 진부령 정상에 있는 흘리가 고성군 간성읍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 경계 자체가 애매한 편이라 정상에 있는 진부령 미술관은 인제군 소속이다. 평창군 진부면과는 상관없고, 흘리 위에 간성읍 진부리가 있다. - 나무위키
진부령정상 버스정류소에서 진부령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보도로 넘어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진부령 미술관 오른쪽 벽 옆에 설치되어 있는 DMZ 평화의 길 안내판에서 31코스 탐방을 출발했다. 맨 왼쪽에 평화의 길 30코스 탐방로 출입문이 있으며, '백두대간의 관문 향로봉'이 적혀 있다.
진부령로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건너편에 '흘리커피'점과 황태판매장&한식당인 '진부령 광장'이 자리한다.
진부령 광장 앞에서 진부령 미술관과 진부령로의 해발 520m 진부령 정상을 돌아본다.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에서 흘1리마을로 가는 흘리길로 올라간다. 오른쪽 뒤에 선돌교회가 보인다.
흘1리 마을과 마산봉으로 이어지는 흘리길이 꼬부랑 고갯길이다.
진부령로에서 흘리길로 들어서 흘리길을 올라오다가 뒤돌아 보았다.
흘리길에서 진부령 미술관을 내려본다. 백두대간 능선이 맨 뒤 중앙에서 왼쪽 산봉과 오른쪽 산봉으로 이어져 진부령으로 내려온다.
한전KPS 백두대간 종주 보존회에서 조성한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 입구에 표석과 백두대간 기념공원 보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한전KPS는 한국전력공사 계열사로, 전력 설비 건설·정비 업체라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 표석 뒷면에 '벽남(碧南) 서석천 선생을 기리며' 추모글이 새겨져 있다.
선생은 1932년 7월 29일 경상북도 영주군 단산면 사천리에서 태어났다. 영주농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전력공사 발전사업단장, 한국중공업 부사장, 한전KPS 사장을 역임했다. 재직 중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이끈 공로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우리나라 전력산업 기술선진화에 이바지했다. 현장 근로자들을 아끼고, 그늘진 곳의 사람들을 위해 애썼고, '합규보다 합리'를 우선하는 일처리로 현실 정의구현에 매진했다. 우리 국토와 자연을 사랑하고 겨레의 얼을 숭상해온 벽남은 통일의 염원을 안고 1994년 한전KPS 연합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계획을 실행하고, 방송을 통해 국내에 전파했다. 백남은 은퇴 후에도 기필코 백두산 병사봉까지 완주할 날을 고대하며 후진들을 이끌어오다. 뜻밖에 얻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2015년 4월 28일 8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한평생 사람과 자연과 겨레의 얼을 소중히 여긴 선생의 고결한 뜻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 그의 발자취를 남긴다. 2016년 6월 12일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 표석 오른쪽에 백두대간 기념공원 보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 기념공원 보존 안내문 : 이 공원은 1994년 4월 1일 한전KPS(주) 사창립 10주년 기념행사 일환인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고, 단절된 북한의 백두대간을 이어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고성군과 협의하여 정식허가를 얻어 조성한 곳입니다. 백두산의 돌을 포함한 전국에서 수집한 자연석과 나무를 심어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여 매년 전 직원의 뜻을 모아 보존 관리하고 있는 의미 깊은 장소입니다. 최근 사후관리는 염두에 두지 않고 무질서하게 기념비를 설치하여 주변 경관을 해치며,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어 이를 엄격히 관리하고자 합니다. 이 공원에 기념비나 기타 표시물을 남기시려면 사전협의를 거쳐 지정된 장소에 설치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하는 설치물은 임의철거 대상임을 공지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백두대간이 살아야 겨레가 산다/ 북녁 백두대간길 열리길 기원하며
한전기공주식회사(한전KPS) 창사 10주년 기념 백두대간종주 등반기념비와 백두대간 보존회원비가 기념공원 중앙에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에 여러 산악회와 단체 등에서 세운 백두대간 종주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에서 흘1리 마을로 이어지는 흘리길을 올려본다.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 앞쪽에 백두대간 안내도와 주요 산의 높이가 적힌 백두대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진부령로 갈림길에서 흘리길로 들어와 첫 꼬부랑 언덕길을 돌아서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으로 올라왔다.
흘리길을 따라 고성군 간성읍 흘리 산1-111번지 일원의 급경사지 붕괴위험지역을 정비사업하고 있는 곳을 지나간다.
흘리길의 급경사지를 돌아서 산비탈의 흙을 깎아내고 산비탈을 보호하는 공사를 뒤돌아본다.
흘리길을 따라가며 중앙 뒤 마산과 오른쪽 뒤 병풍바위 능선을 가늠한다.
중앙 뒤에 병풍바위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흘1리 마을 입구 왼쪽 앞에 흘1리 표석을 비롯하여 여러 설치물이 조성되어 있다. "산림이 울창하고 산이 높다 하여 흘리(屹里)라 불렀고 속칭 밖(外)흘리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마을의 면적이 광활하여 지역별로 구분할 때 칭하던 이름으로 현재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고성군청)
흘1리 마을 입구에 오른쪽부터 흘1리 표석, 피망 조형물, 2000년 친환경농업우수마을 표석, 흘1리 백두대간 생명숲 탐방로 안내도, 2001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 표석 등이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 생명숲 탐방로 안내도에서 진부령~향로봉 구간과 미시령~대간령(사이령) 구간은 출입 통제 구간이다.
흘리길에서 남쪽 방향을 바라보면, 흘1리 농산물 집하장이 있다.
흘리길 왼쪽에 진부령 목장펜션 출입구가 있고, 오른쪽 뒤에는 백두가든 음식점 간판이 보인다.
진부령 목장펜션 출입구 맞은편 건물 뜰에 말 조형물이 서 있다. 진부령 목장펜션과 관련된 것일까?
흘리길 오른쪽에 백두가든 음식점&민박이 자리한다. 중앙 맨 뒤에는 병풍바위 능선이 이어진다.
스키렌탈 기웅스포츠가 오른쪽 앞에 있고, 왼쪽 뒤에 마산봉 능선, 오른쪽 맨 뒤에 병풍바위 능선이 보인다.
오른쪽에 보신탕과 토종닭, 청둥오리 음식점인 하얀식당이 있고, 중앙 왼쪽 뒤에 마산봉 능선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흘리길 북쪽에 창고 건물이 있는데, 진부령 피망 농산물 집하장인 듯.
흘1리를 가르는 개천의 다리에서 오른쪽에 솟은 수리봉을 살핀다. 중앙 맨 뒤에 신선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왼쪽은 진부리 방향, 오른쪽 위는 흘리삼거리이며 그 오른쪽에 흘리보건지소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
진부령 정상에서 1.8km를 걸어왔다. 왼쪽 방향으로 진부리 3.4km 거리, 바로 위는 흘리삼거리이다. 오른쪽 앞에 수리봉, 중앙 맨 뒤에 신선봉이 솟아 있다.
평화의 길은 흘리삼거리에서 흘리길과 작별하고 왼쪽 흘리령길로 이어간다. 삼거리 중앙의 작은 뜰에 비석3기와 한강오백리발원지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 흘리보건진료소 입구에 흘리보건진료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중앙 맨 뒤에는 신선봉이 솟아 있다.
흘리삼거리 작은 뜰에 한강오백리발원지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서 1.1km 거리의 흘1리 해발 710m에서 한강이 발원한다고 한다.
흘리삼거리 작은 뜰 오른쪽에 흘리복지회관이 폐쇄되어 있다. 복지회관이 왜 폐쇄되었을까?
흘리삼거리 작은 뜰에 3기의 비지정문화재 비석과 설명안내판이 서 있다. 왼쪽부터 설명안내판 내용을 알아본다.
●함동석 시은비 (咸東錫 施恩碑) : 1931년 이 마을에 흉년이 들었을 때 당시 면장이었던 함동석이 구호 양곡이 지원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 점을 마을 주민들이 높이 평가하여 1932년에 건립하였다. ●김치원 불망비 (金致元不忘碑) : 면장 함동석과 함께 1931년 흉년으로 인한 마을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흘리 구장으로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점을 마을 주민들이 높이 평가하여 1932년에 건립하였다. ●나병규 기념비 (羅炳奎 紀念碑) : 일제치하에서 이 지역의 청장년들에게 구학문과 신학문을 교육하여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컸던 나병규 선생을 기념하여 그 제자인 한도성을 비롯한 9인이 1933년에 건립하였다.
흘리삼거리에서 흘리령길을 따라 알프스리조트 방향으로 올라간다. 중앙 뒤에 마산봉이 보인다.
광산초등학교 흘리분교장 입구에서 2024년 3월 폐교된 흘리분교장을 바라본다.
2024년 3월 폐교된 광산초등학교 흘리분교장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다.
흘리령길 북쪽에 청수골 식당&민박이 있다. 청수골이 이 지역 지명일까? 단순한 상호일까?
알프스 스키장&리조트는 현재 운영되지 않는다. 재개장하려고 하지만 여러 장애들이 있어 사업 진척이 어렵다고 한다.
최북단 고성군 간성읍 흘리 일원은 마산봉 자락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산악스키 발상지인 대관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50년대 ‘대관령 스키장’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진부령 스키장’으로 운영된 상징적인 곳이다. 지난 1958년 대관령 스키장이 용평스키장으로 변경되면서 이곳은 산악스키와 군부대 전용 스키장으로 운영된 후 1971년∼79년까지 12회에 걸쳐 전국스키선수권대회 및 동계체전 스키경기를 개최할 정도로 국내 설상종목 최적지로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생소했던 스키는 경제부흥을 등에 업고 1984년 민간사업자가 ‘알프스리조트&스키장’ 조성에 나서면서 알프스스키장은 국내 최고의 산악스키장으로 20여년간 성업을 이뤘다. 하지만 2006년 지속되는 경영난으로 스키장 문을 닫은 후 현재까지 폐쇄되면서 마을 전체가 공동화 현상 등의 부침을 거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고성알프스스키장이 장기간 활로를 못찾자, 새로운 사업 시행자는 2023년 6월 흘2리를 대상지로 고성군과 함께 ‘주민참여형 고성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에 나서기로 하고 주민설명회를 가졌다. 이어 2024년 고성군에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해 현재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출자기관 설립 타당성 조사를 의뢰한 상태다. 이 사업은 오는 2028년까지 1500억원을 투자해 7㎿풍력발전기 7기를 설치해 49㎿를 생산한다는 계획 아래 향후 절차를 추진 중이다. 이처럼 알프스스키장이 오랜 세월 방치되면서 지역에서는 산악지대의 특성을 고려해 이곳을 중장기 ‘신성장 치유·힐링거점 권역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 강원도민일보, 김주현 기자 2025. 6. 13.
마산봉~진부령~향로봉을 잇는 백두대간 능선의 이정목이 서 있다. 왼쪽 길은 진부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다.
앞쪽 흘리령길 전신주 옆에 마산봉 등산로가 있으며, 오른쪽 뒤에 마산봉이 보인다.
흘1리와 흘2리의 경계를 이루는 이 고개가 흘리령일까? 그래서 이 도로명이 흘리령길인가?
흘1리와 흘2리 경계를 이루는 곳에 흘2리(중흘리) 표석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마산봉 능선이 이곳에서 진부령으로 이어진다.
바위봉 뒤에 마산 정상이 보인다. 마산 정상인 말머리가 왼쪽 말꼬리로 이어져 말의 등이 북쪽으로 길게 벋어 내린다.
북쪽으로 둥글봉이 왼쪽에, 향로봉이 중앙에 보인다.
향로봉 능선과 향로봉 정상을 줌으로 더 당겨 보았다.
향로봉 능선 중앙에 향로봉, 그 오른쪽 앞에 삼봉이 보인다.
향로봉과 삼봉을 줌으로 당겨 보니 그 모습이 분명해진다.
향로봉 능선 중앙 왼쪽에 둥글봉, 중앙 오른쪽에 향로봉이 확인된다.
중앙의 바위봉 뒤에 마산봉이 숨어 있으며, 흘리령길 오른쪽에 마산봉 주차장이 있다.
마산봉 주차장 오른쪽의 마산봉 등산로 출입구에 마산봉 등산로 종합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마산봉(해발 1,052m) : 금강산 1만 2천봉 가운데 하나로 설경이 뛰어나 건봉사, 천학정, 화진포 등과 함께 고성 8경에 속한 남한 쪽 백두대간의 북단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백두대간 마루금 경관을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 :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로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의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등줄기이다.
앞 왼쪽에 알프스리조트, 그 오른쪽 뒤의 인제군 북면 용대리 매봉산과 맨 오른쪽 뒤의 칠절봉이 가늠된다.
백두대간 향로봉 능선이 오른쪽 둥글봉에서 왼쪽 뒤 칠절봉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향로봉 능선 중앙에 둥글봉, 맨 오른쪽 뒤에 향로봉이 보인다.
흘리령길을 따라 흘리령길122번 입구의 고개를 넘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