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가] '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⑩ㅡ중간점검: 반론 그리고 보완
아홉 번에 걸쳐 하나의 주장을 폈다. 화폐가 무엇을 담보로 삼는가를 묻고, 사상의 계보를 짚고, 중국과 유럽의 내력을 살피고, 세계연방은행이라는 기구를 구상했으며, 그 잣대를 우리 자신에게 들이대 원화가 이미 지가본위 화폐임을 진단하고 기본지대를 제안했다.
지난 회 말미에 밝힌 대로, 여기서 한 번 멈추려 한다. 지금까지의 주장에 어떤 반론이 가능한가.
생소한 용어와 생소한 개념이 폭넓게 전개되면 반론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연재를 이어오는 동안 여러 갈래의 비판을 들었다. 그 가운데 정당한 것도 있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도 있으며, 이미 답한 것을 다시 묻는 것도 있었다. 그것들을 한자리에 놓고 가려보는 것이 이번 회의 일이다.
먼저 밝혀두자면, 넷 가운데 하나는 필자가 완벽한 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
첫째 반론 — "위기 때 돈을 풀 수 없지 않은가"
가장 아픈 지적부터 꺼낸다.
현대 경제는 신용의 신축적인 팽창과 수축을 통해 굴러간다. 그런데 화폐 발행을 지대라는 물적 한계에 묶어두면, 급격한 위기나 새로운 기술에 따른 자금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한 통화 긴축을 부를 수 있다. 금본위제가 대공황에서 세계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그 경직성 때문이었다.
정당한 지적이다. 그리고 케인스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던졌을 물음이기도 하다. 그는 평생 금본위제의 족쇄와 싸웠으니, "금 대신 땅을 족쇄로 삼으려 한다"고 할 법하다.
세 가지로 답하되, 완전히 답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하나, 금과 지대는 성질이 다르다.
금본위의 치명적 결함은 금의 양이 경제성장과 무관하다는 데 있었다. 경제는 자라는데 금은 그대로이니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이 생겼다. 반면 지대는 경제와 함께 자란다. 도시가 커지고 길이 나고 사람이 모이면 지대 총액이 늘어난다. 저량에 묶는 것과 유량에 묶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금본위의 만성적 디플레 편향은 지대본위에 없다.
둘, 예외 절차를 명문화한다.
규칙에 묶는다는 것과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다. 물가안정목표제가 일시적 이탈을 허용하되 중기적 복귀를 요구하듯, 지대본위에도 같은 장치를 둘 수 있다. 평시에는 검증된 총지대의 8할 정도만 발행하고, 위기 시에는 이사회 결의로 한도를 넘되 사유와 규모와 복귀 시한을 공표하는 방식이다.
오히려 예외 절차가 명문화되어 있어야 규칙이 지켜진다. 금본위가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절차 없이 태환을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다. 한 번 규칙을 깨면 신뢰가 통째로 무너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셋, 기술 혁신 자금은 총량이 아니라 배분의 문제다.
새로운 산업에 돈이 가지 않는 것이 통화량이 모자라서인가. 한국의 사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신용은 넘치는데 그 신용이 부동산 담보로 쏠려 생산적 투자로 흐르지 않는다. 담보의 성격을 바꾸면 같은 통화량이라도 배분이 달라진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8할이라는 비율이 2008년이나 2020년 같은 국면을 감당할 수 있는지, 위기 시 이탈의 폭을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아직 논증되지 않았다. 이것은 설계가 답해야 할 숙제다.
둘째 반론 — "지대를 어떻게 정확히 재는가"
두 번째 비판은 이렇다. 토지의 지대는 위치와 기술과 산업구조와 금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가변적 개념이니, 이를 정확히 산정해 화폐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거대한 관료 체계를 요하며 부패와 평가 오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 지적에는 되받을 것과 인정할 것이 섞여 있다.
되받을 것 — 가변적인 것은 지대가 아니라 지가다.
이 연재의 출발점이 바로 그 구분이었다. 지가는 미래 기대의 함수이므로 기대가 바뀌면 요동친다. 반면 지대는 지금 그 자리에서 실제로 오가는 임료다. 관측되는 사실이지 추정치가 아니다. 앞선 회에서 쓴 대로, 땅값은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만들어내지만 지대는 지금 벌어지는 생산과 거주와 왕래가 만들어낸다.
가변적이라는 이유로 기준이 될 수 없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어떤 지표도 기준이 될 수 없다. 물가지수도 해마다 변하고 국내총생산도 분기마다 바뀐다. 문제는 변하느냐가 아니라 관측 가능하고 조작하기 어려우냐다.
되받을 것 — 관료 체계는 이미 있다.
한국은 표준지와 개별 공시지가로 전 국토의 토지를 해마다 평가하는 체계를 30년 넘게 운영해왔다. 독일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떠밀려 몇 해에 걸쳐 겨우 마친 전면 재평가를 우리는 이미 매년 하고 있다. 새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저량 통계를 유량 통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인정할 것 — 포획의 위험은 실재한다.
다만 부패와 포획에 관해서는 비판이 옳다. 세상에 화폐 발행만큼 포획의 유혹이 큰 권력도 없다. 평가 기구가 특정 세력에 장악되면 인류 전체의 화폐가 하나의 실패 지점에 걸린다.
그래서 앞선 회에서 보충성 원칙을 세웠다. 평가는 지역이 하고, 검증은 상위 단위가 교차로 하며, 발행만 연방이 맡는다. 여기에 덧붙일 것이 하나 있다. 감시자는 외부의 감사관이 아니라 당사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한 필지의 평가를 서로 볼 수 있게 하면 누군가 유독 낮게 평가받는 것이 곧바로 드러난다. 공시지가가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지대 계정도 같은 방식으로 공개하면 된다.
인정할 것 — 얇은 시장의 문제.
임대차 시장이 얇은 농촌이나 자가 위주 지역에는 관측할 임료가 없다. 인근 유사지 감정, 공개 입찰, 자기신고와 공매 옵션의 결합 같은 방법이 거론되지만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다. 이 역시 남은 과제다.
덧붙이면 지난 회에서 짚은 적산법 문제가 여기에 겹친다. 현행 제도는 지대를 땅값에서 역산하고 있으니, 재는 방법 이전에 재는 방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 순환을 끊는 일이 지대 계정 구축의 첫걸음이다.
셋째 반론 — "원화를 없애자는 것인가"
세 번째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흔한 오해이니 다시 짚어둔다.
세계연방은행과 그 화폐를 이야기하면, 각국의 통화를 없애고 하나의 세계 화폐로 통일하자는 주장으로 읽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층위가 다르다. 중국인은 여전히 위안으로 장을 보고, 독일인은 유로로 월세를 내며, 우리는 원화로 월급을 받는다. 국내 경제는 그대로다. 새 화폐가 쓰이는 곳은 나라와 나라 사이다. 무역대금을 정산하고 외환보유고를 쌓고 국제 투자를 매개하는 자리. 지금 그 자리를 달러가 차지하고 있는데, 그 자리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은 유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다. 유로는 회원국의 마르크와 리라와 프랑을 없앴고, 그래서 각국이 통화정책 수단을 잃었으며, 위기가 왔을 때 환율로 조정할 길이 막혔다. 그리스가 겪은 고통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이 구상은 그 위험을 지지 않는다. 각국은 자기 화폐와 자기 중앙은행을 그대로 갖는다.
국내 개혁도 마찬가지다. 기본지대는 원화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원화가 무엇을 근거로 태어나는지를 바꾸자는 것이다. 화폐의 이름이 아니라 담보의 성격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넷째 반론 — "이상주의적 구상 아닌가"
마지막 비판은 총평의 성격을 띤다. 이 제안은 실현 가능한 금융 모델이라기보다 강력한 철학적 경고장으로 읽는 편이 타당하며, 복잡한 현대 금융을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필자는 앞선 회에서 이 연재가 완성된 통화이론이 아니라 국토 쪽에서 화폐 쪽으로 건네는 문제 제기이자 공동 검증의 요청이라고 밝혔다. 그런 뜻이라면 옳은 독해다.
그러나 이상주의라는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 연재가 다룬 것들은 대부분 상상이 아니라 작동 중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주택과 상업용 건물 대출을 예금과 금융채의 30% 이내로 묶어두었다. 부동산 담보 신용이 통화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한을 씌운 것이니, 사실상 본위도를 제도적으로 조절한 사례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모든 토지가 임차권이며, 2012년부터 20년 계획으로 취득세를 연간 토지세로 옮기고 있다. 8년차 평가에서 임대료 폭등도 건설 위축도 없었고, 오히려 자가 점유자의 주택 구매 비중이 60%에서 78%로 올랐다.
알래스카는 석유에서 나오는 지대를 기금으로 적립해 모든 주민에게 조건 없이 배당한다. 반세기 가까이 굴러왔고, 줄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저항에 부딪힌다.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는 토지를 팔지 않고 임대해 그 지대를 공공이 거두어 순환시킨다. 토지사유제 국가에서도 지대 공유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독일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전국의 부동산을 재평가해 2025년부터 새 기준의 재산세를 시행하며, 건축이 가능한데 비워둔 땅에 더 높은 세율을 매길 수 있게 했다.
유엔 통계위원회는 2021년 생태계회계를 국제통계표준으로 채택했다. 화폐 환산 부분만 아직 비어 있다.
이것들은 구상이 아니라 제도다. 이 연재가 한 일은 흩어져 있는 이 사례들을 하나의 원리로 꿰고, 그 원리를 화폐의 층위까지 밀고 나간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제안도 있다. 전국 지대통계의 신설은 세율도 화폐도 건드리지 않으며 예산도 크게 들지 않는다. 주택법 시행령의 임대료 산정 조항 개정은 복잡한 입법이 아니라 행정적 결단으로 가능하다. 이상주의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다섯째 물음 — "그래서 누가 이득을 보는가"
비판이라기보다 요구에 가까운 것이 하나 더 있다. 지난 회에서 기본지대를 걷어 모두에게 배당하면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다"고 했다. 좋은 말이지만 실제로 몇 퍼센트가 이득을 보는가. 숫자 없이는 믿기 어렵다.
다행히 이 물음에는 이미 계산이 나와 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가 오래전부터 제안해온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의 시뮬레이션이다.
그가 제시한 설계의 원칙은 넷이다. 건물이 아니라 토지에만 과세하고, 극소수 과다보유자가 아니라 전체 토지 소유자에게 부과하며, 용도별 차등과세를 폐지하고 인별로 합산하며, 세수 순증분은 전 국민에게 균등 분배한다. 지난 회에서 제안한 기본지대의 설계와 거의 같다.
그리고 결과가 이렇다. 재산세를 포함한 전체 부동산보유세 실효세율을 0.37~0.76%로 높이고 세수 순증분을 전액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 순수혜 세대가 전체의 83.4~85.9%에 이른다. 누진세 구조를 도입하면 90%를 훌쩍 넘어선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이 숫자가 왜 결정적인가.
지금까지 보유세 강화가 번번이 좌초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2024년 기준 주택보유자 1,562만 명 가운데 2.9%인 46만 명 정도만 냈다. 부담자는 뚜렷한데 혜택을 입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니 소수 기득권층이 조세저항에 나섰을 때 그것을 막아설 사회세력이 없었다.
국토보유세는 다르다. 순수혜자가 85%를 넘고 누진구조에서는 90%에 이르면, 그들이 방파제가 된다. 대다수 국민에게 이것은 남의 세금 문제가 아니라 자기 배당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회에서 걷는 이야기와 주는 이야기는 반드시 한 문장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이 이런 뜻이다.
다만 한 가지를 짚어두어야겠다.
이 시뮬레이션이 상정한 실효세율 0.37~0.76%는 지난 회에서 역산한 목표 수준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자본화를 절반으로 낮추려면 실질 할인율에 준하는 수준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계산의 값어치를 깎지 않는다. 오히려 경로를 보여준다. 첫 단계에서 이미 정치적 다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지 위에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길이 그려진다. 캔버라가 20년 일정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목표는 멀되 첫 칸은 이미 계산되어 있다.
그러나 말로 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는 받아들였고, 하나는 절반씩 나누었으며, 하나는 오해를 풀었고, 하나는 사례로 답했으며, 마지막 하나에는 숫자로 답했다.
그런데 이렇게 답하고 나서도 남는 물음이 있다. 이 기준이 정말 모두에게 공정한가.
앞선 회에서 "모두에게 조금씩 불리한 기준이야말로 공정한 기준의 표지"라고 썼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 실제로 나라마다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하나씩 따져보아야 한다. 어떤 나라는 얻고 어떤 나라는 잃는다면, 그 득실이 어디서 갈리는지를 보여야 한다.
다음 회부터 그 검증에 들어간다. 오늘의 세계 화폐질서를 쥐고 있는 나라에서 시작해, 자원 강국들을 거쳐, 지금의 질서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들까지 차례로 가볼 참이다.
먼저 미국이다. 그리고 그 회차에서 뜻밖의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지대를 사회가 환수하자는 이 사상은 원래 그 나라에서 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