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장사익을 사람들은 가수로 부르지 않는다. 소리꾼, 또는 가객(歌客)이라 칭한다. 혼이 실린 그의 노래는 소름을 돋게 한다. 판소리를 하는 국악인도 아니고, 클래식을 전공한 성악인도 아니고, 밴드에 음(音)을 보탠 로커도 아니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로 올라와 보험사 영업사원, 점원, 노점상, 카센터 직원, 주차대행요원 등을 전전했다. 그리고 남들이 은퇴할 나이 46세에 데뷔했다. 그의 노래에는 그래서 인생이 녹아있다. 온 몸을 돌아나온 노래는 청중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팬들에게 왜 그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무조건’이라고 대답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같은 노래라도 어떤 때는 소름이, 어떤 때는 신명이 솟아난다.
토종 소리꾼 장사익이 미국 4개 도시(뉴욕, 시카고, 워싱턴 D.C., LA)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히 LA 도로시 챈들러 뮤직홀에서 열린 마지막 공연은 3200여 객석을 가득 메웠다. ‘대전 블루스’ ‘열아홉 순정’ ‘댄서의 순정’ ‘님은 먼 곳에’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눈물을 훔쳤다. ‘동백아가씨’를 부를 때는 그도 울었다. 어떤 이는 그의 노래가 ‘한국인’이라는 뜨거운 피를 공급해줬다고 했다. 모두들 가슴이 후련했다고 한다. 그가 부르는 트로트는 트로트가 아니다. 장사익표 울림이다. 그의 샤우트 창법에는 묘한 울림이 들어있다. 슬프지만,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 여백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진정한 한의 실체, 한류의 원형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교민들에게는 그것이 눈물이며 신명이었을 것이고, 미국인들에게는 전율이며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이번 공연 타이틀은 '사람이 그리워서'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도 닦듯이 쌓아온 온갖 시름 설움 마음의 벽을 제 노래를 들으면서 다 씻어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한 공연입니다. 사람이 그리워서 찾았던 옛 시골장에서 막걸리 마시고 노래하듯 그냥 그렇게 잘 노시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일 뉴욕에서 시작해 시카고 워싱턴 DC LA로 이어지는 장씨의 미주 순회공연은 그가 자비를 들여 기획하고 준비한 공연이다. 집을 담보로 2억5000만원을 대출받았고 거기에 수억원을 보탰다. 처음부터 손해볼 걸 알면서 추진했고 공연장도 애써서 뉴욕시티센터 시카고 오디토리엄 시어터 등 폼나는 곳으로 골랐다.
"3년전 협연으로 미국 여러 도시를 돌았는데 그때 언젠가 이곳에서 한번 제대로 놀아봐야겠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찰대로 차서 비우지 못하는 동포들의 가슴앓이를 보면서 저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동포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무리를 해서라도 최고로 좋다는 공연장만 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충청도 촌놈이 마흔이 넘도록 15개 직업을 전전하다 태평소 하나만 잘 불면 밥은 먹고 살지 않을까 싶어 '딱 3년만 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미국까지 와 대접을 받으니 모든게 너무 고맙고 그래서 이젠 돈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다고.그는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는다.
“마음이 세상에 나오면 노래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내 노래에 나를 담았을 뿐이다. 특별한 음악세계랄 것이 없다.” 그의 겸손이 가슴에 닿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 그는 상주이면서도 ‘비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그에게 노래는 삶이고, 삶이 노래인 것이다.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놓아 울었지(노래 ‘찔레꽃’). 찔레꽃을 닮은 장사익.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찔레꽃 가시로 그들의 가슴을 찔렀고, 찔레꽃 향기로 그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목놓아 울어서 행복한 장사익, 그리고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