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비록 나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판정을 이끌어내고 트로이아 전쟁으로 이어지는 불씨를 당겼지만 아프로디테 그녀 역시 올림포스 신들의 미끼가 되었다.
결혼생활
아프로디테의 남편은 올림포스에서 가장 추남인 헤파이스토스였다. 게다가 다리가 몹시 불편했다. 아프로디테가 그와 결혼한 것은 장애신을 평생 보살펴 주겠다는 봉사의 정신이 아니라, 헤파이스토스의 기술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올림포스의 신들이 헤파이스토스를 붙들어두기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아내로 얻어주겠다'고 약속하였고 아프로디테를 그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가장 못생긴 헤파이스토스와 결혼은 했지만 '결혼 따로, 연애 따로'의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헤파이스토스이지만, 애인은 내 마음에 드는 모든 남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프로디테의 남성을 빨아들이는 관능적 아름다움은 그 어느 신의 무기보다도 강력하였다. 무기(武器)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요염한 아름다움이라는 소프트웨어로 승부를 냈다. 아프로디테에게는 무기(無器)가 무기(武器)인 것이다. 그녀가 등장하는 신화를 보면 한 무리의 그룹이 아프로디테의 시중을 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청춘의 여신 헤베와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 그리고 계절의 여신 호라이, 정욕의 여신 히메로스, 욕망의 신 폰토스, 우아함의 여신 카리테스, 순종의 여신 페이토, 마지막으로 신과 인간을 상대로 사랑의 장난을 치는 에로스가 있었다.
아프로디테에게는 무기로서 '사랑을 일으키는 띠'가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가슴을 감싸는 일종의 브래지어 구실을 하지만, 일단 무기로 사용할 때에는 그 어느 누구도 감당치 못하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제우스의 애정행각도 바로 아프로디테가 이 띠로 부리는 농간이었다. 제우스의 복잡한 연애 때문에 속이 상한 헤라도 아프로디테의 띠를 빌려서 유효 적절하게 써먹은 적이 있었다. 트로이아 전쟁 당시에 전세가 트로이아 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그리스 군의 편을 든 헤라는 아프로디테의 띠로 제우스의 정욕을 유발시켜 사랑을 나누는 사이를 이용해서 포세이돈으로 하여금 그리스 군을 도와 전세를 역전시켜 놓았다. 헤라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가 황급히 상황을 되돌려 놓았지만 전사자가 다시 살아나나? 그동안 입은 트로이아 군의 손실을 아주 컸다.
자유부인 아프로디테의 남성편력 (1)
아프로디테의 애인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은 자는 전쟁과 폭력의 신 '아레스'였다. 헤파이스토스와 정반대로 체격도 좋고 힘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남성미 만점의 터프가이였다.
그들의 불륜행각은 올림포스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말았다. 대장간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남편 헤파이스토스만 정보가 늦어 가장 늦게 알았을 뿐이다.
어느 날 대낮부터 뒹구는 남녀의 꼴사나운 모습을 본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그들의 관계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려주자, 화가 치민 헤파이스토스가 보이지 않는 그물로 간통현장을 덮쳐 두 신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이것이 바로 헤르메스 편에서 다루었던 <아프로디테-아레스의 간통사건>이다(그림: 전쟁과 폭력의 신 아레스).
하지만 망신을 당했다고 해서 그들의 불륜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눈치볼 것도 없다는 듯이 네 명의 자식을 생산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데이모스(공포), 포보스(낭패), 하르모니아(조화), 에로스(사랑)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포세이돈이 중재에 나서서 사태를 무마시켰다고 하는데,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아버지 아레스를 쫓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참살하는 전쟁터에서 언제나 그 곁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으며, 에로스와 하르모니아는 아프로디테를 따라 다녔다. 그러나 에로스에 관해서는 올림포스 신들 이전에 존재했던 자연발생적인 신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여기서는 일단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자식으로 해두겠다.
처용(處容)의 마음씨를 본받았는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헤파이스토스는 테바이의 왕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 때 자신이 직접 정성을 들여 만든 목걸이를 선물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이며 이것이 나중에 테바이 왕가와 아르고스에 재앙을 불러왔다.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 간통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있을 때, 아폴론이 헤르메스를 놀리려고 '너 같으면 아프로디테를 어찌 하겠느냐'고 물었다. 능구렁이같은 헤르메스는 천연덕스럽게 '차라리 저 그물에 홀딱벗은 아레스가 나였으면 좋겠다'고 받아쳤다. 그런데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직접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기회를 노리던 헤르메스는 아프로디테와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어느 날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에게 아프로디테가 신발을 날치기 당했다. 아프로디테는 헤르메스를 찾아가서 그 신발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자 '맨 입으로는 안되지'하는 헤르메스에게 아프로디테는 '이렇게 하면 되겠죠?'하면서 그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대었다. 그 결과 그들 사이에서 중성인 '헤르마프로디토스'가 태어났다.
포세이돈도 아프로디테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가 올림포스에 들어온 첫날부터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도 아프로디테와 관계를 가졌고 그 결과, 시칠리아의 엘뤼모이 족의 조상인 에뤽스가 태어났으며, 아프로디테는 디오니소스와도 사랑을 나누어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해산하고 보니 아이의 아버지가 대체 누구인지도 올랐다. 왜냐하면 디오니소스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하룻밤의 풋사랑이었는데 다음날 디오니소스는 인도로 머나 먼 여행길에 올라야 했고 디오니소스가 떠나자 곧바로 아도니스를 불러들여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며 그 아이의 아비로 헤르메스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그림: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아이를 낳고 보니 대체 누구의 자식인지 여신인 그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태어난 아이가 '프리아포스'이다. 프리아포스는 흉칙한 모습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아프로디테의 버림을 받았는데 일설에 의하면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를 미워한 헤라가 아프로디테의 배를 쓰다듬어 태아의 모습을 흉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