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강천산 단풍에 쏙 빠지다
2017.11.5. (일)
이른 아침(07:30) 동래역을 출발한 버스,
이 갈바람 겨우 버스 바닥 신세는 면했습니다.
단풍 명소 순창 강천산 간다는데
안내군(?)석이면 또 어떻습니까?
11:10 주차장 가기 직전 금성산성 들머리,
시작이 편해서 좋습니다.
금성산성 보국문(외남문)으로 들어섭니다.
담양호가 저기 아래...
사적 제353호 금성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1409년(조선 태종 9)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으며
1622년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첩(城堞)을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담양군 금성면과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603m)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담양읍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내성 앞에는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가 있다.
문루는 두 군데 남아 있다.
외남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우진각 지붕을 얹은 누각이다.
내남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얹은 중층 누각이다.
정상에 오르면 담양읍을 비롯하여 금성산성으로 오르는
평야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앞에는 무등산과 추월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담양호가 펼쳐져 있다.
1994년부터 성곽복원사업을 착수하여 외남문·내남문·서문·동문을 복원하여
외남문은 보국문(補國門), 내남문은 충용문(忠勇門)이라 명명하였다.
2010년까지 약 7,000m가 넘는 성곽 보수를 비롯해
동헌 등 관아 시설, 대장청 등 군사 시설, 민속촌 등을 조성하여
금성산성을 호국안보 학습장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 두산백과에서-
충용문(내남문)
호남창의회맹소 전투지 - 금성산성
1908년 호남창의회맹소 본진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투를 치른 곳이다.
호남창의회맹소는 호남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부대를 규합하여 결성한
연합의병 지휘부로 기삼연이 대장이었다.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 본진은 1908년 1월
혹한을 피하고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금성산성에 머물렀다.
이때 의병부대의 동향을 탐지한 일제 군경의 습격으로
의병 30여명이 전사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였다.
기삼연은 인근에 몸을 숨겼으나 일본군의 추격으로 붙잡혔고
의병들의 구출작전을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총살, 순직하였다.
금성산성은 임진왜란때도 의병의 활동 거점이었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도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 현지 안내도에서 -
보국문이 아래로 높다랗게 보입니다.
잠시 올랐을 뿐인데...
100여 년전 이 곳에서 의병들이
일제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많은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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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으로 가는 길, 이렇게 멋질 수가 없습니다.
산중 암자에 이만한 보시가 또 있을까요?
이 둥글 하나씩만 옮겨 드려도...
동자암(童子庵)
이걸 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하죠?
둥글 한 토막씩 날랐을 뿐인데
향기로운 차 한까지 대접 받습니다.
무술 시연하던 동자 스님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알아보니 이제 대학생들 되어 모두 하산했다고...
다시 성안으로 들어갑니다.
방어하기에 유리하도록 성을 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성이 있고 내성이 있고...
내성 동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
꼭 이중으로 성문을 만들었습니다.
낙엽 쌓여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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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동문 성벽에 올랐습니다.
바라만 봐도 가슴 탁 트이는 전망,
천하 명당에 삼삼오오 점심 자리 폈습니다.
ㅇㅇㅇ님, 금새 빈 그릇만... 왠일이냐고 여쭈니
바로 "이~ 몸이 늙어서 몸 보신 할라꼬 먹었다..."
ㅎㅎㅎ
마음 통하는 님들과 함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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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성곽길 따라 순라꾼 마음으로 걷습니다.
운대봉(586m)
감히 근접 못할 철옹성 처럼 보입니다.
그럼 더 올라야지요
영차!!!
운대봉 오르니 성벽은 길게 뻗어 있습니다.
카!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답니다.
이 상큼함!!!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끝 모를 산그리메...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습니다.
금성산성 산성산(연대봉 603m)
성벽 따라 가을이 막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을 따라 가렵니다.
송낙바위
구장군 폭포와 북문으로 가는 갈림길,
옛 초소나 지휘소가 있을 법합니다.
오른쪽으로 구장군폭포로 내려가는 길,
누드(?)계단이 있어 수월합니다.
강천산 계곡이 가까워 졌습니다.
강천호수를 가로 질러
댐 위, 저 다리를 건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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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내려서니 ㅇㅇㅇ님이 젤로 좋아하는...
참고로 갈바람은 고운 단풍을 젤로 좋아한답니다.
이 아름다움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구장군 폭포
폭포가 두 곳인데
한곳은 남성 다른 한곳은 여성을 상징하고 있다는데
갈바람 눈으로는 구분을 못하겠습니다.
자세히 함 보세요
그리고 알려주세요, 어디쯤이 남성 상징인지...
옛 마한시대에 혈맹을 맺은 아홉 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차라리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다시 싸워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산성길에서 만난 가을은 여기 개울에
아주 흠뻑 빠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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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하다는 강천산 현수교
폭 1m에 연장 78m, 높이 50m로
1980년 8월 2일에 설치되었다고,
올라가는 계단부터 정체됩니다.
갈바람은 현수교의 아찔함보다
아래로 보이는 저 고운 풍경에 반해
다시 또 현수교를 건넙니다.
저길 보고 어찌 반하지 않겠어요?
건널땐 몰랐는데 건너고 나서 바라보니
계곡에 걸린 현수교도 참 이쁩니다.
그렇죠?
함께 부대낄 때 보다 멀리서 바라 볼 때가
더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멋있는 사람 아닐까요?
강천사
개울에 흠뻑 빠졌던 가을은 강천사 내려와
노오랗고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개울물이 노오랗고 빨깐색이었나요?
강천사 금강문
반 단풍진 메타세콰이아 길 지나니
가을은 개울 벤치까지 내려와 서성이고 있습니다.
쉬었다 갈꺼나...
연리지, 진한 뽀뽀에 잇빨 쏙 빠지겠고!
병풍바위
병풍을 비단처럼 휘감아 떨어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설에 의하면 병풍바위 밑을 지나온 사람은
그동안 지었던 죄들도 깨끗이 씻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합니다.
내려가는 길 가을이 따라옵니다.
함께 하자고...
16:20 제2주차장
수많은 사람들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가을이, 단풍이 이렇게 불렀나 봅니다.
떠나기 전에 한번쯤 꼭 만나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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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구룡별관 해물탕, 이제까지 눈이 즐거웠으니
지금은 입이 즐거울 시간입니다.
세상에는 소중한 세가지 금이 있는데
바로 황금, 소금, 지금이랍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함은 '지금'이라지요?
지금 무엇을 할 수 없다면 모든 게 다...
여러분의 지금은 어떠하십니까?
많이 즐겁고 행복하셔야지요,
바로, 지금 가을길 떠나는 행복한
나그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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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17. 11. 9
갈바람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