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를 다녀와서
평소 아끼는 후배 커플 결혼식이 끝난 후 적당히 무르익은 햇살을 가슴에 안고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에서 열리고 있는 <동백꽃. 주꾸미 축제> 현장을 다녀왔다. 역시 이곳을 갈 수 있도록 충동을 일으킨 것도 따지고 보면 서해안고속도로의 발달을 들 수 있다. 교통 소요시간이 예전의 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인근에서 축제나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만 있으면 바람도 쐴 겸 핑계로 삼아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해미요금소를 빠져 나와서 군산 쪽 방향으로 차 머리를 돌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분에 빠져서 신나게 달릴 즈음 예상치 못한 일로 나를 곤혹스럽게 했으므로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름 아닌 '통행권'이 문제였다. 통행권을 받아 분명히 차 오디오 틈새에 끼워 놨었는데 서천IC를 빠져나오려니 그것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있는 그대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차를 갓길에 정차해 놓고 관리사무실로 들어 가 보란다. 이게 무신 망신이람! 자세히 설명하고 사정을 해 봐도 소용없는 고속도로통행료. 일단은 서해안고속도로 전 구간의 요금 14,100원을 고스란히 물어내야만 했는데 나중에라도 통행권을 찾았을 시에 가져오면 그 차액을 환급해 준다는 약속만을 남긴 채 등을 돌려야 했다.
그나저나 이놈의 티켓은 당최 어디로 가버린 거야? 손이 달렸나 발이 달렸나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먼. 분명히 잘 받아서 운전석 옆 오디오 틈새에 끼워 놓았건만 어디로 숨었길래 어찌 이리 사람을 병신 만드는고?
아무래도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자니 나만 바보 될 것도 같고 혹시나 정말 치매의 초기증상이 아닌가 싶어서 차 안을 샅샅이 뒤져 보기로 작정을 했다. 아직은 정신이 멀쩡함을 증명해 보이고도 싶었고 해서 천 원짜리 지폐를 똑같이 그곳에 끼워 보면서 더 깊게 쑥 밀어 넣어 보았더니 가로세로 할 것 없이 한없이 들어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원인과 범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구먼. 차 오디오 틈새가 헐렁하여 질주하는 속도에 조금씩 조금씩 밀려 들어가 급기야는 그 공간으로 쏙 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어쨌든 통행권이 없어진 이유를 알았고 가슴은 미어졌지만 그걸 꺼내려면 카스테레오를 모두 뜯어내야 하니 어쩌겠는가! 이 순간으로 모든 걸 접고 흥겨운 기분을 살려서 축제현장에 도착했다.
현장 입구에서부터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곧 드러나는 넓은 주차장. 많은 인파 속에서 흥겨운 가락의 엿 치는 피에로 장수의 즐거운 표정. 그곳 상인들의 분주하고 상기 된 얼굴에서 삶의 모습을 엿보았는데 아치형 애드벌룬을 통과하니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망망대해 바다!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흐느껴 울려 퍼지고 있고 저만치선 노래자랑을 하는지 쿵작쿵작 풍악과 함께 흥을 돋우고 있다. 잘 배열된 포장마차 앞의 간판을 훑어보니 <서산식당>이라는 코너가 눈에 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가서 <샤브샤브>와 <주꾸미볶음>에 소주한잔 곁들이고 카!
쫄깃쫄깃 쫀득쫀득 입에 짝짝 들러붙는 것이 맛은 있었는데 갑자기 속상해지는 것이다. 왜, 이런 축제를 우리 지역에선 풍성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해물 하면 우리 지역이 더 싱싱하고 영양가 있다는 건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인데 왜, 이런 주꾸미축제 같은 걸 다른 지역으로 찾아다니며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게 하는 걸까?
물론 우리 지역에서도 '꽃게 축제'니 '수산물축제'니 하기야 하지만 그 외에도 제철 음식이야 서산지역만큼 풍성한데도 드물 것인데 그것보다 우리의 행사 규모는 얼마나 빈약하고 뒤떨어져 있단 말인가 말이다.
풍성한 사계절 수산물(새조개, 겡게미, 실치, 주꾸미, 대하, 꽃게, 세발낙지 등)이 얼마나 많던가. 반드시 제철시기를 놓치지 말고 연중 내내 '먹거리 축제'를 개최하여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도록 유도를 하고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예전같이 서산갯마을이 오지라는 누명을 벗어버릴 때도 된 것이다. 고속도로 교통망이 수월해져 있어 전국의 일일생활권이 보장되는 때 아닌가. 틈만 나면 이곳 서산에 오고 싶어 할 수 있게끔 市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저런 생각과 갈증을 가슴에 안고 뒤돌아 오는 그 길은 서해안고속도로 전 구간의 통행료보다 훨씬 쓸쓸하고 아련한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론 그보다 더 값진 안타까움과 바람을 가지고 오는 제2의 내 고향! 서산으로의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가까운 이웃집이었다.
작성일: 200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