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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57) 2024. 1. 31
다윗의 용사들 이야기
사무엘하 21:15-22
오래된 적을 ‘숙적’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숙적’이 있었는데, 바로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은 지중해 크레타섬 출신 사람들로써, 가나안 땅 남서쪽의 비옥한 해안 지역을 점령하고 살았습니다(오늘날의 가자 지구). 그들은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처럼 어릴 때부터 전쟁 기술을 훈련받은 전사들의 나라였습니다(삼상17:33).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칩입하였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들과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블레셋과 치른 수많은 전투 중에 눈에 띄는 전투가 있습니다. 바로 소년이었던 다윗의 특별한 믿음과 능력이 드러난 전투입니다(삼상17장). 당시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있었습니다. 키가 3m에 육박하고, 50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놋투구를 쓰고, 7kg이 넘는 창을 든 용사였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말을 내뱉었음에도 이스라엘의 장수 중 그 누구도 골리앗과 감히 맞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러 온 다윗이 골리앗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분노한 다윗은 자신이 나서서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사울 왕에서 요청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은 물론, 맹수들로부터 양을 안전하게 지킬 만큼 물매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그가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골리앗은 그를 조롱하였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을 의지하지만 나는 네가 모독하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선포하고 물맷돌을 날렸을 때 한방에 이마를 명중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골리앗의 칼을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오래된 ‘숙적’ 답게 이후에도 블레셋은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이후 주로 초창기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삼상). 그리고 삼하 5장에서 블레셋을 크게 이긴 후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21장에서 갑작스럽게 블레셋과의 전쟁 내용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즉, 아마 다윗 재위 초기,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있었던 일을 부록같이 덧붙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은 블레셋과의 전쟁하던 당시 다윗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4명의 용사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위기일발의 다윗>
블레셋과 전투하던 다윗이 위기에 몰렸습니다.
15~16절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성경에서 ‘네피림’(히, 느필림)이란 단어가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6:4과 민13:33). 네피림은 네필의 복수형으로 ‘거인들’이란 뜻으로 ‘습격이나 공격하는 자들’을 부르는 대명사입니다.
이 네피림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족속이 바로 ‘아낙 자손’과 ‘르바임 족속’입니다.
출애굽 이후 여호수아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 돌아온 정탐꾼들이 아낙 자손이란 거인족을 보고서 놀라서 벌벌 떨며 ‘그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다’며 자조한 일이 있었습니다(민13:33).
아낙의 아버지는 ‘아르바’인데, 그들이 사는 곳이 헤브론의 옛 이름인 기럇 아르바입니다. 헤브론은 사라가 죽은 곳이며(막벨라 굴)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했던 곳입니다(창 23:2, 27). 기럇 아르바에는 기골이 장대한 아르바의 후손들, 곧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수 15:13).
그런데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 갈렙(“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에 의해서, 아낙 자손들을 헤브론에서 몰아내고 점령하였습니다(수14:13-15, 15:14).
수11:21~22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다윗에게 물맷돌을 이마에 맞아 죽은 가드 사람 골리앗은 블레셋 땅에 살아남은 아낙 자손이 분명합니다. 골리앗은 네피림인 것입니다.
블레셋 족속 중에도 특별히 아낙 자손들이 전투에 참여한 것입니다.
다윗이 지친 것을 보고, 거인족의 후손 중의 하나인 이스비브놉이란 사람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비브놉은 삼백 세겔의 놋 창을 들고 있었는데, 1세겔(Shekel)이 11.4g이므로, 삼백세 겔은 약 3.4kg에 해당합니다. 새 칼은 철로 만든 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은 이미 철기 문명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무기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거대한 몸집에 위협적인 신무기로 무장을 하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음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비새의 승리>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 구원자가 나타납니다.
17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바로 스루야의 아들이자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죽입니다.
아비새는 다윗의 조카이자 요압의 동생입니다(2:18, 10:10, 18:2, 20:6). 그동안 요압의 그늘에 가려 있던 아비새의 업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위기에 처했던 다윗은 아비새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것입니다.
다윗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일이 생기자,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다시는 전쟁터에 나오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여기서 ‘맹세하여’ 말했다는 것은 강력하게 요구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그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며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유능한 전사의 역할보다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그의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의 생존이 이스라엘 왕국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비브놉이 죽은 후 블레셋은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그대로 물러설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십브개의 승리>
또다시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18절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 죽였고.”
이때 거인족, 아낙 자손의 후손이 장수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삽’입니다(망치나 호미 아닙니다. 삽입니다~^^).
이때 십브개란 장수가 삽을 쳐 죽였습니다. 십브개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입니다(대상20:4).
전투 장소인 곱이 어디인지는 정확지 않습니다. 역대상 20:4에서는 곱을 게셀이라고 말하는데, 게셀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해안 평야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사는 베들레헴 남서쪽 약 6㎞ 지점에 있는 곳입니다.
삽이 죽자 블레셋은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그대로 물러설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엘하난의 승리>
또다시 블레셋과 곱에서 전투하게 되었습니다.
19절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이번에 대표 장수로 나온 인물은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였습니다. 라흐미의 체격도 골리앗 못지않게 거인이었습니다. 그가 들었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습니다. 예전 골리앗이 가지고 있던 창 자루의 모양과 동일합니다.
이번에는 베들레헴 사람의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라흐미를 죽였습니다.
라흐미가 죽자 블레셋은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그대로 물러설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의 승리>
이번에는 가드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20~21절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이번에는 블레셋 출신의 거인족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대신 블레셋 사람의 체격이 묘사되는데,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지고 있으며 키가 큽니다(괴물 이미지).
이 가드 사람이 이스라엘을 조롱하였는데, 이것은 골리앗이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과 여호와를 조롱하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런 오만한 가드 사람을 죽인 것은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은 암논의 교활한 모사(謀士) '요나답'의 형제입니다(13:3). 한편 '삼마'는 다른 곳에서 '시므아'라고 기록되기도 하였습니다(13:3, 대상2:13).
이것을 보면 다윗 왕조는 다윗 가문의 남자들이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누이의 아들들인 요압과 아비새와 비록 죽었지만 아마사와 아사헬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사무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짓습니다.
22절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이렇게 여러 번 거듭되던 블레셋의 가장 강력한 용사들의 공격에도 다윗과 다윗의 부하들은 그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누구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다윗과 다윗의 부하들을 이길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이스라엘을 점령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사단의 세력은 성도의 약점을 노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약점이 적에게 노출되었습니다. 즉 피곤하여 지친 모습을 보이고 만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적에게 약점을 보인다는 것은 적의 사기를 올리고 더욱 집중된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거인족의 후손인 이스비브놉이 이 기회에 다윗을 죽이겠다고 달려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도 때때로 연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이 사단의 세력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단의 조종을 받는 세력들은 교회가 약점을 보일 때, 목회자가 약점을 보일 때, 성도들이 약점을 보이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해 옵니다.
벧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은 교회와 성도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 것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향한 과도한 언론 보도와 비난 – 빌미를 주지 않아야).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행동거지에서 약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적 싸움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아비새가 나타나 그의 생명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했습니다.
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을 도올 용사들을 세워주시고 이스라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아무리 용사라도 혼자서는 사단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미리암을 붙여주시고, 후에 70인 장로를 붙여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을 붙여주신 것처럼, 다윗에게도 이스라엘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이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아말렉 부족과 전쟁을 치를 때에, 여호수아가 대장이 되어 그들과 맞서 싸웠습니다(출17장). 그러나 그만 싸운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의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로 하여금 돌에 앉게 하고 피곤한 모세의 손을 내려오지 않도록 양쪽에서 부축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모세, 여호수아, 백성, 아론과 훌이 혼연일체가 되어 힘을 모아 이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동지가 필요합니다. 중보기도 해 주고, 격려해주는 신앙의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신앙은 혼자 떠나는 여정이 아닙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듯이, 신앙생활은 지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여정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 부대끼면서도, 함께 있을 때에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고, 서로의 좋은 점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아무리 강해 보이는 대적일지라도 믿음으로 대적하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대적들은 모두 거인족이었습니다.
이스비브놉은 삼백 세겔의 놋 창을 들고 새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는 베틀 채 같은 창 자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19).
블레셋 출신의 거인족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여섯 개씩인 괴물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20).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윗의 용사들이 그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어떤 체격을 가졌는지, 어떤 무기를 들었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겼을까요? 저는 다윗이 골리앗을 맞아 싸우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해답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들은 자신의 힘만 믿고 달려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가 싸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맞닥뜨리는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악한 세력들이 강성한 것을 보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리고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한다면 마귀는 놀라서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대결해야 합니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넷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일이 생기자, 다윗의 부하들은 다시는 전쟁터에 나오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하면서, 그 이유를 ‘왕은 이스라엘의 등불’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며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민족의 등불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불씨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왕상11:36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왕상15: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대하21: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왕하 8:19).
시편 132: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입니다. 이 등불이 꺼지지 않고, 그 불씨가 500년 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살아나서 온 세상의 빛, 이스라엘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눅2:32).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을 향해 다윗과 같이 세상의 빛이 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영적 전쟁을 수행해 나아가 하는 주님의 병사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오늘 본문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지 마십시오.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도교회 성도들이 동역자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대적일지라도 믿음으로 대적하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워 뒤로 물러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면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비추는 등불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의 선한 싸움을 마친 후에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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