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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조의 여왕 |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다. 지난 1월 초 내 환갑기념으로 아내가 3년간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성지 순례’를 보내주더니 귀국하자마자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2박3일 여행을 가잔다. 혼자 다녀온 후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가족과 함께 충청북도 단양팔경을 필두로 강원도 영월의 단종 능 유명산 몇 곳을 다녀왔는데 미리 계획을 세운 탓으로 아주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사실 환갑하고 결혼기념일이 겹쳐 가족들이 한 날을 정해 기념축하파티를 해준다고 하는 것을 거절 한 바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냥 조용히 보내고 싶었지만 아내의 간청에 가족 여행을 한 것이다. 가족여행이래야 우리 부부와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 그래서 셋이다. 그런데 이번 2월에 신학대학원에서 한 과정을 마치고 수료식을 한 다음 날 아내가 “우리 졸업 여행가요” 하는 게 아닌 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죽을 때가 다 되었나봐. 돈도 없으면서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네. 그침, 우리 여행 떠나요. 어디든지 서울을 떠나요.” 멋쩍게 웃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내가 무심한 남편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 온다. 아내의 허탈한 심정을 생각하며 잠시 망설였다. 문득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컴퓨터를 꼈다. 폐기 직전에 있는 노트북. 십여 분이 지나서야 초기화면이 뜬다. 전라북도를 검색했다. 그리고 싼 콘도와 지역정통 음식점, 아내가 좋아하는 한정식 나물 많은 집도 찾아 놓았다. 날짜도 잡았다. 모든 것을 확정 진 후 아내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전 날 저녁 출가한 큰 딸과 작은 딸이 모처럼 여행인데 이번에는 두 분만 가시란다. 그 두 딸은 우리를 두고 ‘톰과 제리’ 관계라고 하는데 난 아직까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게 뭐냐고 하면 웃기만 한다. 집에 혼자 남을 작은 딸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처럼 단 둘만의 여행이라니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가슴이 벌렁벌렁 흥분이 된다. 단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만인가. 사실 2002년 빚 보증으로 인해 화장실 두 개 있는 아파트에서 나온 이후 단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언제나 주위를 의식해야 했고 또 시골에서 모친이라도 올라오시면 난 언제나 거실 소파에서 자는 신세였으니 말이다. 모처럼 마음 다 비우고 지방도737호 하늘 길 드라이브코스를 따라 달렸다. 아직은 나뭇잎이 푸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대자연을 만끽하며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 역시 그 조그만 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조잘 거린다.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떻다며....’ 그러면서도 내 입에 연실 오징어와 땅콩을 쑤셔 넣는다. 산세가 다소 험하고 구불구불한 지리산을 넘는 데 아내가 “힘들지” 한다. “아니야, 이렇게 당신과 단 둘이라면 ....참 다음부터는 우리 둘이 올 때는 관광투어로 1박2일 코스로 하자” “싫어. 당신이 힘들어서 그렇지 그래도 당신하고 있는 게 더 좋아” (우 매 우매, 이 우 찌노. 마누라가 날 이처럼 생각하고 있다니 히히히) 살며시 아내의 손을 끌어 당겨 꼬~옥 잡았다. 거칠어진 손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진다. 미소 짓는 아내의 모습. 그저 미안 할 따름이다.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차안이 훈훈했다. 무주구천동 33경을 찾아 드라이브를 계속하면서 결혼 전 아내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20곡을 녹음 한 그리고 30년을 간직해 왔던 텦을 틀었다. 'A time for us'에 이어 ‘호밍 코라스’ 그리고 ‘Butter flly' 가 은은하게 이어진다. 아주 분위기가 끝내주고 아주 죽어준다.(적어도 내 기분에는) 거기에다 전 영록의 ‘애심’ ‘Good night my love' 'Good-bye' 우 메 어쩔꼬. ’노예들의 합창‘을 들을 때는 건장하고 초코렛 근육질의 노예들이 쇠사슬 발목을 얽매인 채 쇳소리를 내며 끌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를 잡기 위해 30년 전 골방에 앉아 몇 날 몇 밤을 지새우며 심지어는 굽어진 무릎을 펼 수가 없어 쩔쩔 맬 때가 생각난다. 지금도 그 애절했던 마음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아내가 아는지 모르겠다. 연실 먹을 것을 내 입에 넣어주던 아내가 ‘다뉴브 강’ 이 흘러나오자 “벌써 몇 번째 듣는다. 그치.” “왜 듣기 싫어서..” “아니 그만큼 오랜 시간 당신이 운전을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 거라면 몇 번을 들어도 난 좋아. 그런데 난 해바라기 인가봐 ” “왜” “으응, 운전 할 때마다 당신 쪽으로 몸이 자꾸 기우러지니까 후훗”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씨익 웃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무슨 상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을 정도다. 결혼 한 지 30년. 모처럼 단 둘만의 여행은 마치 신혼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짧은 2박 3일의 여행. 처제가 문자를 보내왔다 “이 세상에서 제일 루 행복한 두 분만의 시간 되시와요 좋은 밤^^ 호호” (뭐하자는 겨 알아서 잘 한다구) 그리고 막내딸이 수시로 문자를 보내면서 훈훈한 가족 사랑을 느꼈다. 더욱 더 흐뭇한 소식은 이번 학기에 대학원을 입학한 큰 딸이 수석 장학생으로 선발 되었다는 것이다. 그 자랑스러운 딸이 또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시야가 가물가물해지고 흐려진다. 아내가 “장학금을 받는 건 아빠를 닮았나봐” “아니야 목소리 좋은 당신 닮아 성악을 하는 거지” 아내가 활짝 웃는다. 아내가 웃는 모습만 보아도 난 배부르고 행복해진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큰 딸은 음악대학을 다닐 때도 입학학기를 제외하고는 졸업 때까지 장학금에 전 학기를 올 A로 금메달까지 받은바 있다. 콘도에서 아침 식사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해준 아내가 식탁을 닦으면서 “에그 글쟁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식사를 했으면 식탁이라도 닦아 주면 화장 할 시간 버는 건데 나 몰라라 한 쪽에서 글만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미안 한 마음에 얼른 행주를 빼앗아 식탁을 닦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내다 버렸다. 모처럼 단 둘만의 여행 즐겁기도 했지만 너무도 짧기만 하고 아쉽기만 했다. 얼마 있으면 곧 개강이 된다. 이번 학기는 다소 시간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그동안 못다 한 공부를 위해 책이라도 볼 생각이다. 그런 사정을 안 아내 역시 나보고 나이 생각하고 몸 좀 그만 학대하라고 한다. 이번 여행길에도 남편의 자존심 살리려고 자기의 카드를 슬그머니 내게 주고 계산하라고 하는 여자. 당신은 정말 내조의 여왕이다. 언젠가는 내손으로 여행비를 마련 투어를 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보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온양에서 아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해물 탕 집’을 114를 통해 알아놓고 해물 탕 집에 가자고 했더니 누가 ‘해물 탕’ 먹는다고 했냐며 짜증을 낸다. 나는 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내 생각하고 정 했는데...속도 모르고 또 아내가 화를 내는 것 같다. 식당 앞에서 내리는 아내를 향해 “나 그냥 갈 거야. 그러니까 얼른 차에 타” 정말 속이 상했다. 이래서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 ‘톰과 제리’ 관계라고 하는 것 같은 데 아직도 그 부분은 이해가 안 된다. 언제 짜증을 부렸냐는 듯 아내가 어린 아이 처럼 해물 탕을 맛있게 먹으며 연실 작은 입을 벌려 떠들어 댄다.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내조자의 끈끈한 사랑과 함께 잠시 후면 보게 될 딸들을 생각하니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아내의 카드를 넌지시 건 냈다. “왜?” “응 이건 내가 낼게” 그렇게 해서라도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밤안개가 자욱한 길을 따라 내 고향 평택을 지나면서 “여보 이제는 정말이지 작은 일에도 나 화 안 내고 잘 할게” “아니야 나도 잘해야지. 잘 할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늘 내 곁에 있어줘야 해” |
첫댓글 한 편의 수필 같습니다.정치와 사상 같은 목적성 글 보다 순수한 삶의 모습이 담긴 바로 이런 글이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