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정유년(1597년·명량해전 당시) 일기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간단한 사실만 기록했고, 다른 하나는 좀 더 자세하다.
자세한 일기에 기록된 경상우수사 배설(裵楔) 관련 내용은 이렇다.
8월 17일 군영(軍營·강진)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경상수사 배설은 내가 탈 배를 보내지 않았다
/18일 회령포로 갔다. 배설은 뱃멀미를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19일 장수들에게 교서(敎書)에 숙배하게 했는데, 배설은 순순히 받들지 않았다
/25일 당포의 어부가 피란민의 소를 훔쳐가면서 왜적이 왔다고 헛소문을 내 놀라게 했다.
(헛소문이라는 걸 알고) 군사들은 안정됐지만, 배설은 벌써 도망쳤다
/27일 배설이 왔는데 겁에 질려 떨었다. 나는 슬쩍 “수사는 어디로 옮겨갔던 게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30일 배설이 적이 몰려올 것을 걱정해 도망가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부하 장수들을 불러 거느렸다.
배설이 노비를 시켜 “병이 심해 몸조리를 하고 싶다”고 청했다. 육지에서 몸조리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배설은 우수영을 떠나 육지로 올라갔다
/9월 2일 배설이 도망갔다.
이 기록을 새삼 들춰본 것은 이번 추석에 ‘핫’한 조상 이슈를 던진 분이 배설 장군이어서다.
그의 후손들이 “영화 ‘명량’이 배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 중지 요청과 제작진을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이순신 장군과의 갈등은 위 기록 정도인데,
영화에선 배설이 암살 시도에다 거북선을 불태우는 ‘악당’으로 묘사됐다는 이유다.
솔직히 영화를 보며 이런 사태를 예상했었다.
실은 배설뿐 아니라 대장선만 놔두고 뒤로 쑥 빠졌던 다른 함선 지휘관의 후손도 논란을 벌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중마다 자기 조상에 대한 평가를 문제 삼는 건 흔한 광경이어서다.
‘자손이 출세하면 조상을 붓으로 키운다’는 옛말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조상의 위상은 후손의 현재 위상과 맞물려 있다.
이에 조선이 개국하며 ‘용비어천가’를 썼듯이 각 가문마다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숭배하는 ‘문중사학’이 번성한다.
이런 문중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함이 없고, 그의 역사적 과오는 정적(政敵)의 모함으로 돌리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소설·영화 같은 허구의 창작물뿐 아니라
역사학자의 인물 해석도 문중의 비위를 건드렸다간 각종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다.
빈발하는 조상 관련 소송에
법원에선 “사자명예훼손은 유족만이 그 구제 절차를 밟을 수 있고, 후손들은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따라 내려도 문중의 소송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소송은 그 자체로 작가들을 압박해 창작의지를 꺾는 데 유용하다.
나도 법조 출입 당시 이런 분쟁이 얼마나 집요한지 목격한 뒤 우리나라 역사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정도다.
그래서 역사소설은 중국에서 소재를 찾는다.
우리에겐 많은 역사적 인물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기억나는 인물은 몇 명 없다.
조상의 역사가 중요한 건
그들의 공적·실수·과오를 평가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반복되는 현실을 살아갈 지혜와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한데 실수와 과오가 없는, 미화되고 분식된 문중의 조상들이 그런 생생한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영화 속 배설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그건 영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배설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다.
기록에 따르면 배설은 1599년 선산에서 권율(權慄)에게 붙잡혀 서울에서 참형됐지만,
그 후 무공이 인정돼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됐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싸운 배 12척은 그가 칠천해전에서 보존해낸 배들이다.
사람의 일이란 이렇게 의도치 않은 일들이 얽히고설켜 성사된다.
그러니 한 사람의 인생을 단순히 공과선악(功過善惡)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탐색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 정신적 자산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을 문중의 인물로 과보호할 게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풀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양선희 논설위원
첫댓글 위 단체장 중의 한 분과
오늘 오전에 통화를 해본 결과
서암공파 뒷개의 모인이
미리 작성하여 와서
협조를 구하기에
양해를 하였다 하였습니다...
이는
성산배씨 족보와
경산지, 대동운부군옥 등의
탄생 배경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기에
여기에 밝혀 두는 바입니다...
참고로
독해하시기에 편하게
행간을 정리하였으나
틀린 맞춤법 등은
그대로 두었슴을 첨언해 둡니다...
하늘빛 배윤호 14.09.30. 10:16
어제는 배한동위원장님과 배재영 부위원장님께서 서울에 살고 있는 종친들의 모임인 화수회에 다녀 왔습니다.
서울에 계시는 종친님들 또 서울까지 걸음을 하신 두분께 감사 드립니다.
또 오늘은 뒷게에 재관종인께서 지역의 유림대표들을 만나러 나가셨습니다.
유림대표들이 우리가 싸우는 일에 힘을 보태는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감사 한 일 입니다.
출처 : 성산(성주)배씨서암공파 다음카페
참고 : 하늘빛 배윤호 = 위 카페의 카페지기, 영화<명량>비대위 대변인임. * 뒷(개?)/(게?)
1.유림(儒林) : 유학을 신봉하는 선비의 무리. 또는 그러한 모임.
2.향교(鄕校) :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 향교는 유교문화 위에서 설립·운영된 교육기관으로, 국가가 유교문화이념을 수용하기 위해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키면서 지방에 세운 것이다. 향교의 연원은 유교문화이념이 소개되는 때부터 비롯되지만, 향교가 적극적으로 설립된 것은 숭유억불과 유교문화이념을 정치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시대부터이다. 조선왕조는 유교문화이념을 수용하여 지방 사회질서를 유교문화 논리에 접목시키며, 과거제 운영을 유교 교육과 연계시키려 했다. 이러한 사회문화의 기초기구로서의 기능을 담당한 것이 향교이다.
유교(儒敎) : 인(仁)을 근본으로 하는 유학을 받드는 교.
제정일치를 종지로 삼고,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공자와 맹자가 그 대표적 성인이다.
유학(儒學) : 중국의 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고 그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는 전통적인 학문.
요(堯)임금, 순(舜)임금으로부터 주왕(周王)에 이르는 성천자(聖天子)를 이상으로 하고, 인(仁)과 예(禮)를 근본 개념으로 하여, 수신(修身)에서 비롯하여 제가(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는 실천을 중심 과제로 한다. 경전으로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등이 있다.
3.유도회 : 유교 신도 단체
1945년 전국 유림 2,500여 명이 성균관 명륜당에 모여 첫 회합을 갖고 유도회총본부를 설립했다. 이때 위원장으로 김창숙이, 부위원장으로 김성규·이기원이 선출되었다. 그뒤 유도회총본부 회장에 1970년 이가원, 1974년 임병진 등이 선출되었으며, 1993년 4월 김상구로 바뀌었다. 설립 목적은 유도정신에 입각하여 도의천명과 윤리를 실천하고 수제치평의 대의를 선양하여 사회질서를 순화하려는 것이다. 주로 성균관과 지방 향교 및 성균관대학교의 발전에 관한 사업과 기타 교육·교화·학술 등에 관한 사업을 경영하고 있다.
교육법에 의하여 재단법인 성균관을 설립하여 명륜전문학교를 성균관대학으로 승격시켰고, 다시 전국 유림들의 재산을 모아 성균관대학교로 발전시켰다. 조직은 서울에 위원장 아래 재무부·조직부·총무부·교화선전부·정경부 등과 별도로 청년유도회와 여성유도회가 있고, 그외 지방에 시·도 본부 15개, 지부 276개, 향교 232개가 있다. 주요행사로는 공자탄강일과 매년 봄·가을에 석전제(釋奠祭)를 주최하고, 매월 2회 분향례(焚香禮)를 개최한다. 정기간행물로는 격주로 〈유림신보〉를, 연간으로 〈명륜교감〉·〈생활예절〉 등을 발행하고 있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3가 51번지에 있고, 전체 교직자는 1만 8,000명 정도이다.
4. 박약회 : 대한민국 고유의 유학문화를 연구·계승·보급하며, 이를 현대화·생활화하여 선현의 숭고한 이념을 오늘에 되살려 실천함으로써 현 실정에 맞는유학문화 창달·계발·계도'를 목적으로 2003년 7월 25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다.
<주요 사업>
1. 유학문화와 관련 조사·연구 및 논문집·학술서의 발간과 보급
2. 선현 유적지 답심 및 보존·계승사업
3. 심포지움, 세미나 등을 비롯한 제반 학술행사
4. 유학문화와 관련된 인성도덕교육용 교재의 개발과 보급을 통한 도덕성 함양 교육사업
5. 각 지회의 유학문화 관련 지원사업
6. 회지 및 기관지 발행
7. 기타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
5.담수회 : 민족문화 창달 및 주체성 확립 도의와 윤리사상 고취앙양, 미풍양속 조장을 통한 국민총화 기여를 목적으로 1978년 6월 12일 대구에서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다. 사무실은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 39-1에 있다.
<주요 사업>
1.민족문화 발전사업
2.선행자 표창
3.도의, 윤리사상 연구 발표
허위사실이 진실이 되고, 왜곡.날조한 사실이 정당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일례인 것 같아, 씁쓸하기가 짝이 없군요.
정절공 할배를
태
의 입맛에 맞추어
억지 논리로
폄훼한 주체 세력들(이색의 문하생들)이

이전투구하는 과정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허위족보를 만들며



조선은
지상천국이었고
이상국가가 되어야 했던 검미다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시선은 잘 차려진 젯상으로
향했던 것이 문제지요


정절공 할배께서 건국한
조선은

만신창이가 된 채
쪽바리들에게
허무하게 먹힌 검미다

사색당파를 만들어
서로 칡넝쿨이 된 검미다
진정한 유교국가였다면
입으론
그래서
피투성이
족보가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것을 고려할 때, 족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한심한 사례이네요.
모든 위조족보의 진원지가
어디였는지를
파악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슴미다

성주 유림들이 성산배씨 족보를 만들 때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를 반추해보게 됩니다.
흥해배씨였던 서암공파가 성산배씨에 감쪽같이 숨어들었던 비사의 한 단면이 드러난 것일 뿐이죠.
배씨도 속이고, 유림도 속이고, 기자도 속이고, 세상도 속이고, 여하튼 기만전술의 대가들입니다.
저 성명서가 기사화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 유림들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한자(문)에 능숙한 전국의 유림들이 서암공파 족보를 들여다 보고, 어떤 일갈을 할지도 흥미가 있어집니다그려......
일갈은 커녕
모른 척
헛기침만 할 것 같은데요


성산배씨도 팔고
유림도 팔고

검은 개가
흰 개로
둔갑될리는 만무할낀데


개들이
마구잡이로 짖어대다가

몽둥이 세례를 받고서야
끝이 날 것 같네요

경주배씨도 팔고
그런다고
세상 물정 모르고
결국에는
放於利而行이면 多怨이니라. <論語>

위의 말씀도
모르는 것인가


선.악 구분이
분명해야 할 유림들 조차
부화뇌동을 하다니


맹자님의
상심이 클 것 같아
제 마음은 한없이 아프네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
非禮勿視하고 非禮勿聽하라 <論語>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
공자님을 따르는 분들이
가장
공자님
성명서엔,,,경주라는 지명을 쓰지 않은 것이,,,먼저 눈에 띄는군요.
성산배씨 서암(書巖) 배덕문(裵德文)이란 구절을,,,
한 지역 유림 단체장을 맡고 있는 분들이,,,그냥 그러녀니 하고,,,허용을 한 것일까요?
다른 조잡한 내용들은 차치하고,,,배덕문과 배설 4형제간,,,부자관계의 모순점을,,,지적해두고 싶네요.
먼저 성명서엔,,,배설의 4형제 중,,,막내인 역은,,,언급을 안한 것부터가,,,이상하고요.
1592년 기준시
* 배덕문은 68세,
* 장남=배설은 42세(배덕문의 나이=26세에 배설 출산)
* 차남=배건은 37세(배덕문의 나이=31세에 배건 출산)
* 3남=배즙은 28세(배덕문의 나이=40세에 배즙 출산)
* 4남=배역은 ?
배설과,,, 장남 배상룡과의,,, 부자관계 모순점(1592년 기준)
* 배설의 나이=42세
* 배상룡의 나이=18세(배설이 24세에 배상룡 출산)
1대(세)를
25년으로 맞춘
결과인 것 같슴미다


배덕문은
26세에 낳았고
배설은
배상룡을
24세에 낳았다



보통 15세를 전후로
혼례를 치루었다는 걸
깜박했을까요








배설의 장남이 배상룡


역이
배설의 동생






딴엔

범죄를
노렸을 검미다


대가 임란공신

조오현
명문(
)집안이라고

중요한 증거물을
잘 정리하셨슴미다
어래산님

배설을
그 시대엔
배설의 아부지가 배덕문
즙과
왜곡.날조한
서암 배덕문가는 성주를 관향으로 하는 삼한갑족?....ㅋㅋ....ㅉㅉ....소설 같지 않은 소설 같은 족속들!
아래는 [성산(성주)배씨 서암공파]란 다음 카페 카페지기이며,
영화<명량>비대위 대변인(하늘빛 배윤호)이 그 카페 [한 줄 안부]방에 남긴 글입니다.
하늘빛 배윤호 14.10.08. 15:01
수질3 [水疾] 【명사】
배를 탔을 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증세. 심하면 구토를 하기도 한다.
유의어 뱃멀미 , 선취 2 (船醉) , 선훈 (船暈) [1]
┗ 하늘빛 배윤호 14.10.08. 15:03
판서공 할아버지가 앓았다고 하는 병은 바로 수질입니다. 이 수질은 배멀미를 말 합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배를 잘 타고 전쟁을 잘 하였습니다.
그러니 수질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모함 인 것입니다. [0]
배설의 후손이란 자들이, 배설에 대해 그동안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놓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랜 수중생활로~ 어쩌구저쩌구~ 한 기억이 나는데....오늘은 영화배급사를 고소한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곤, 배설 처럼 도망을 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땐 이미 때가 늦을 것이지요......
배설에 관한 사실들에 관하여, 왜곡을 하고 날조를 하는 자들은 정작 누구이며, 명예훼손을 하는 자들이 누군인지 많이 헷갈리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후손이란 자들이,,,수질이란 단어가,,,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위의 성명서에도 있지요.
"오랜 해상생활로,,,수질이 악화되어,,,휴가를 얻어,,,치료를 하느라~~"
쥐뿔도 모르는,,,가짜 학생이,,,천자문을 갖고,,,공자님의 면전에다,,,침을 뱉은 격이라 할까요......
썩은 계란으로,,,바위를 치니,,,바위만 더럽혀진다 할까요......
<<하늘빛 배윤호 14.10.19. 10:55>>
오늘 아침에 역사소설의 중견작가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관련한 역사 소설의 출판을 상의 하였습니다.
그래서 11월 29일에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또 이번주에는 진해에 배설장군의 묘가 있고 마을에서 400년이 넘도록
제사를 모시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하여서 방문 해 보려고 합니다.
요즘처럼 자기 할아버지 제사도 모시지 않고 있는데 400년이 넘도록
마을주민들이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의 일이 잘 풀려가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모든것들이 우리 자손들 일가들이 마음으로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하늘빛 배윤호 14.10.19. 11:13 >>
지금 진해에 우리 할아버지의 가묘가 있다는 마을이 이주관계로 분묘가 이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방금 그곳 대책위원장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고 제가 진해로 출발 하려고 합니다.
갑자기 일이 바빠졌습니다...ㅠㅠㅠㅠㅠㅠ
출처 : 성산(성주)배씨서암공파 다음카페임.
진해에 배설의 묘가 있다면, 성주에 있는 묘는 모지요?
부끄런 줄도 모르고, 무슨 일이 잘 풀린다는 걸까요?
"참으로 감사할 따름" 이라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닌지요?
이장비 챙길 일로 가슴이 벅찬가 봅니다그려......명량에 군침 흘렸다 죽을 쑤었으니......ㅉㅉ
<< 하늘빛 배윤호 14.10.17. 18:33 >>
오늘 오전에 성주경찰서에 가서 지난 월요일에 고소한 씨제이 이앤엠과 관련하여
고소인 조사를 받고 왔습니다.
아시는분들께서는 아시는 바와 같이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던 지난번 수사를 했던
수사관에게는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항의 하였는데
오늘 가 보니까 조사관이 교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잘 받고 왔습니다.
교서에 숙배하지 않던 배설의 오만불손한 행동을 흉내라도 내는가 봅니다.
그런다고 배설의 혈손이 될리는 만무한 것인데, 고소를 남발한 대가가 무엇으로 결론날 것인지?
난중일기(1597년 11월 3일)
“(11월 3일 기축) 맑다.
일찍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더니, 선전관 이길원(李吉元)이 배설을 처벌할 일로 들어왔다.
배설은 벌써 성주(星州) 본집으로 갔는데도, 그곳으로 가지 않고 곧장 이리로 왔으니,
사사로운 정을 보아주는 (이길원의) 죄가 컸다.
(初三日庚寅 晴
早上新家造處 宣傳官李吉元以裵楔處斷事入來
裵楔已至星州本家 而不往于彼 直來于此 其循私之罪極矣).”
배설의 고향이 성주 대가면? / 선산? / 당시는 선산이 성주목 관할이라면, 지금의 구미 선산이 배설의 고향!
그렇다면, 성주 대가면 뒷개의 입향조가 배덕문이라는데, 배설은 배덕문의 아들이 아니라 배덕룡의 아들이란 결론!
즉, 선조실록의 배덕룡->배설->배상충이란 계대가 맞음.
“元均独坐船旁,抚臂长叹。俄而战退,了无影迹,或云投降,或云死贼。右水使李亿棋投水而死。左水使裴举与将士数百收其战船,且斗且战,为殊死战。却倭船而出逃走,呼居民急避乱卒。”
《워이쒸썽문집(韦旭升文集)》2卷,中央编译出版社(중앙편역출판사), 2000년 9월 초판1쇄, 544쪽
“원균은 홀로 배가에 앉아 팔을 치며 길게 탄식하더니 잠시 후 싸움에서 물러나 자취가 사라졌다. 혹자는 투항했다 하고 혹자는 적들에게 죽었다고고 했다. 우수사 이억기는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좌수사 배거는 수백 명 장사들과 함께 그 전선들들 거두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왜선을 물리치고 빠져나와 달아나,
주민들을 불러서 급히 어지러운 군졸들을 피하라고 일렀다.”
배설과 이순신, 어떻게 볼 것인가|언론 기사
하늘빛 배윤호 | 조회 13 |추천 0 |2014.10.19. 21:27
星山님,,, 위의 기사를,,, 확인해 보시어요.
대체적으로,,, 논점에 충실한 기사인 것 같은데,,,
글쓴이가 실명을 밝히지않고,,, 중국시민이란 닉을 사용한 것이,,, 아쉬움이네요......
이 자료에선,,,배설(裵楔)이 아니라,,,배거(裴举)인 것이,,, 특이한 점이고요!
배설이 안되어 골아픈 자가 배설!
우수사가 아니고 좌수사? / 배설이 아니고 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