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정체성과 종로 모던”
그 옛날 약 50년 전, 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 가면 시골 사람들이 묻는다.
“서울에서 왔다는데 서울 어디에서 왔나요?”
“서울 종로에서 왔습니다”
“오! 종로-”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은 종로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입을 벌리고 부러운 듯 쳐다본다. 그만큼 서울 종로는 특별났다.
시골만 그런 건 아니다. 서울 중랑구나 수유리 등 변두리 사람들도 종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아직도 그러한 로망에 있는 분들은 종로에 와서 한번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1980년대 이후 강남 개발과 함께 강남이 크게 발전하고 상대적으로 종로는 크게 낙후되면서 종로에 대한 명예와 상징성이 크게 퇴색됐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최고 주먹 종로의 우미관 김두한이 일본 야쿠자의 종로 침투를 막으며 싸울 때도 ‘종로는 조선의 자존심’이라며 종로를 지켰다.
아! 종로. 대한민국 1번지이자 서울의 심장인 종로.
오늘날 종로가 걱정스럽다. 8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명문 학교들이 떠나가면서 종로 명성도 시나브로 떠나갔다. 정부의 주요 관공서 일부와 서울대학교는 일찌감치 이전을 했고, 종로5가 고속버스 터미널 등 경제, 사회, 문화적 거점들도 숱하게 떠나갔다. 더불어 동숭동과 혜화동, 사직동, 효자동, 가회동, 삼청동 등 여러 유명 동네의 재벌들과 저명인사들도 대부분 강남 등지로 이사를 갔다. 인구 30만 명대에서 현재 인구 14만 명으로 감소된 것이 그 절실한 반증이다.
지금도 젊음의 거리로 불리던 종로 2가는 텅 비였다. 연말연시 또는 무슨 특별한 날이면 사방팔방에서 종로2가로 몰려들던 인파가 지금은 오히려 밖으로 나가는 현상이다. 지난 1월1일 0시 종로2가 보신각에서 타종을 칠 때 모여드는 인파까지는 아니더라도 종로2가는 서울의 청·장년 모두가 모이는 장소였다. 그런 종로가 현재 보여주는 초상은 거의 슬럼화된 도심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 두가지 이유만이 아닐 것이다. 정부 정책의 변화 속에서 경제, 문화적 흐름이 바뀐 탓도 있겠고,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달라진 배경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인구 고령화 속에서 저출산 세태와 맞물린 주민 감소 현상도 한 몫 했겠지만 더욱 아쉬운 점은 1991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자치행정의 안일함이다.
1995년 민선 종로구청장이 선출되어 제1기와 제2기 민선 구청장 시절에는 중앙집권적 행정에서 자치구 행정으로 전환되는 과도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별도로 종로 정체성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고 본다. 그 당시 구청 공무원부터가 생경한 자치행정 체제를 갖추고 정립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민선 구청장과 함께 우왕좌왕 했을 때였다. 종로 정체성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셈이다.
2002년부터 민선 제3기, 제4기 종로구청장 시절 만해도 특별히 종로의 20년 이후 현상을 감지하지 못했을 때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종로의 명성에 안주하여 그냥 종로의 자치행정을 가꾸기에 유념할 뿐이었다. 사실 그때부터 종로 인구가 점차 감소 현상을 일으키면서 미래 종로에 대한 도시공학적 대비책이 요구되기는 했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만 해도 종로의 정체성 훼손에 대한 염려보다는 현상 유지를 더 신경 쓸 뿐이었다. 문제는 민선 제4기, 5기, 6기였다. 2010년도부터 약 12년간 3선을 하면서 종로구 지방자치 행정을 이끈 시절이 병폐였다. 한마디로 잃어버린 세월이다.
종로는 살아본 사람만이 갖는 긍지가 있다. 일종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종로에서 살아 온 주민들의 독특한 애향심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을 갖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종로에 대한 독특한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이다. 대한민국 1번지로서 그리고 서울의 중심지 도심으로서, 특히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처럼 600년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 따른 명성과 명예를 가슴에 담고 있다. 골목골목 스치는 곳마다 역사가 있고 문화가 담긴 동네인 만큼 종로는 특별한 정체성이 스며든 곳이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1번지로서 현대화의 길목이었으며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런 종로의 정체성을 지난 12년간 민선 자치는 간과했다. 어쩌면 종로의 정체성을 모른 채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알아야 면장도 하고 느껴야 움직이는 법인데, 종로구 자치 속에서 종로의 정체성을 살리고 이어가기는커녕 오로지 정파적 진영논리에 빠져 가산주의적 행정으로 종로를 최악으로 만든 셈이다. 그 과정을 일일이 열거하자니 오히려 지면이 아까울 뿐이다.
이제 새로운 민선 8기 종로구청장 시절을 만나 다행스럽게도 ‘종로 모던’을 모토로 새로운 종로 정체성 살리기를 추동하는 모습이어서 기대가 크다. ‘모던’이라는 말은 1920년대 모더니즘에서 파생되어 새롭고 혁신적인 문화를 창조하는 의미에서 유행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대화의 상징이었던 종로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차원의 ‘종로 모던’부터 성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