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7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미사
엄은혁 안드레아 본당신부님 강론말씀
†찬미예수님!
아멘.
한주간 잘 쉬셨는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청하셨듯이 그때 그들이 지켰던 신앙을 잘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누군가 순교자에 대해서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여긴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렇게 두려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신앙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기 교회 테르뚤리아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 믿음을 싹 틔울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것이 얼마나 값지고
중요한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선조들은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 번째 독서 지혜서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는 표현은 하느님과
함께 가까이 있는 그런 사람들은 평화를 누린다고 했습니다.
그 평화는 하느님을 믿어야만이 그분과 가까울수록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그 길이 고난하고 파멸의 길로 보입니다.
지혜서에는 여기에서 필요한 단련 2가지를 얘기합니다.
첫째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리고 다음은 믿는다면 그 길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의 찰라가 왔을 때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릴 수 없다면 주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신뢰와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 손안에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이 지혜서 말씀입니다.
지혜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그 사람을 찾아가서 돌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돌보심은 바오로 사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
당신 목숨 값을 치르고서라도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이끌고 계시지만
나 자신이 주님을 떠난다면 주님과 갈라선다면 참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깨어서 제발 그분과 함께 합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참생명, 참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닌 것을 버리라는 것이며 십자가는 나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십자가를 말합니다.
참생명인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감내하며 나를 따라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 그것을 따라야 자기 목숨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목숨 값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십니까?
하느님은 충분히 설명해 주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46년 26세의 짧은 생을 마치며 교우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3가지 조심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교만(마귀)입니다. 교만은 자기자신이 아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자기자신을 하느님보다 높이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은 세속(물질=돈)입니다. 물질만을 쫓아갈 때 하느님 나라를 잃게 됩니다.
세 번째는 육신(쾌락)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느님을 믿고 제발 우리네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은총을
생각하고 편협된 생각으로 가져가면 안됩니다.
제발 이 세상 삶만으로 하느님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과 분리되지 마십시오.
순교자들은 짧은 기간 신앙을 가지고 목숨을 내놓았다면 우리는 긴시간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그것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예비자 입교식이 있었습니다. 예비자에서 예비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여러분의 자리가 있음을 확신하고 믿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강복시간>
참고로 우리나라 순교자는 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세례자 수는 약 600만명이라고 합니다.
한사람의 순교자가 600명을 삶을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사람의 희생으로 600명 정도가 진정한 평화를 알게 되었다면
나 하나의 목숨으로 600명의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면 그것은 이세상 삶에서 가장 유익한 추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받아적어 옮기다 보니 신부님 강론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