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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사회봉사활동과 나의 삶
1989년-1998년
라이온스클럽 이 취임식 사진 넣을 곳
1부회장 정진문 축사 (사진1번)
1. 나에 어린 시절
나는 1944년 8월 26일 청원군 사주면 용정리 “지금은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서
아버님 정경모 어머님 이유순 님의 10남매중 5번째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홍역이 만연 하여 홍역을 앓고 그병이 나아야만 호적에 올리는 바람에 1살이 줄어들었고 바로 아래인 남동생은 홍역을 잃다가 죽는 사고가 발생 했다. 내가 어릴때였지만 그 동생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9남매는 모두 홍역을 견디고 다 살아 남았다.
해방되기 전이니 당사의 우리나라 경제는 말이 아니였다. 그런 상황에서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니 그 당시 농촌 사정은 더욱 악화 되었다. 당시 우리집도 보리죽을 쑤어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보리고개를 넘기기 위하여 덜읶은 보리싹을 잘라다가 먹기도 했다. 당시의 농촌은 부농이 아닌 집들은 풀이나 나무껍질을 삶아서 먹는 일이 있었고 그들은 그 나무나 풀의 독으로 부황이라는 몸이 뚱뚱 붙는 병에 걸려 죽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 형제분은 4분이신데 큰아버지들 께 만 농토를 넘겨주시고 우리는 농토를 한평도 물려 받지 못했다. 아번님은 농촌이 희망이 없음을 알고 청주시내로 나오셔서 목수일을 하시며 더 배워서 대목일(절을 짖는 일)을 하시였다. 그러나 그런일은 많지가 않으니 가난은 집안을 엄습했다. 나는 강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니다가 2학기 때는 청주시내 한벌국민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나에 어린 시절은 정말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에 내가 살만하게 되었을때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하였으나 마음만 앞서고 이웃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준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술을 마시러 포장 마차엘 가보니 한 겨울인데 가난한 부부는 아기가 둘이 있는데 그 추운 겨울에 아기 기저귀 살돈이 없다며 알몸을 끓어 안고 업고 장사하는 것을 보니 지난 날이 생각이 나서 아무도 모르게 조금 도와 줬다.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도와 주고 보니 오히려 내 마음이 더 편해지고 뿌듯함을 느꼈었다. 아주 가난한 사람을 보면 좀 도와 줘야지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하루는 옆 상가에서 약국을 경영 하시는 사장님이 나와 식사를 하든 중 봉사단체에 한번 들어가면 어떠나는 제의가 들어 왔다. 어떤 봉사 단체이냐 하니 라이온스 클럽 이란다. 그분과 자주 만나면서 라이온스 활동에 대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 혼자 봉사 한다는 것 보다는 여럿이 뭉치면 좀더 나은 봉사 활동을 할수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1989년에 입회 원서를 청주 무심천 라이온스 클럽에 제출 하고 회장님을 면담하고 기다렸는데 얼마후 이사회의에서 통과 됐다면서 다음 달부터 나오란다. 같이 입회하는 회원은 건축사도 있고 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이었다. 60여명의 회원들 앞에서 입회선서를 하고 명단을 보니 병원장도 계시고 거의가 다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겨우 공인 중개사 이니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 했다. 회원들과 만나는 것 조차 쑥스러웠다. 그리고 남을 위하여 서로 돈을 조금씩 모아서 봉사 활동을 한다니 좋은 일이 아닌가? 하여간 봉사 활동이니 하며 매월 월례회를 빠지지 않고 꼭 나갔다. 그리 봉사를 시작 하면서 차츰 직책이 주어졌다. 이년후 테일테스타. 테마. 총무. 3부회장. 2부회장. 1부회장. 회장. 회장후 이사. 이런 순이였으나 나는 입회후 7년 만에 회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장 재직중 추억에 남는 것은 유능한 사람을 여럿을 입회시켰다. 그 중에는 현직 변호사도 있었다. 이년 후 에는 신규식 회원의 추천으로 현직 도지사이신 정우택 지사님이 입회 하였다 정 지사님은 참석 불가한 월례회 날은 꼭 비서라도 보내셨다
사진 2번
회장 당시인 1998년 전회장님들과 기념 사진 넣을 곳
제 1회 전국 라이온스 대회에서 우수봉사 크럽상을 타고서
2. 부모님의 어려움 극복
무작정으로 청주시내로 이사를 하신 아버지께서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지금의 남주동 육거리 시장 부근에서 쌀전을 시작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보부상들이 쌀을 사러 농촌으로 또는 시외버스를 타고서 다니던 시절이였다. 그러면 그들이 가져온 쌀을 부모님이 다시 사들여서 다시 서울에서 쌀을 사러온 사람들에게 매매하는 장사를 하시였다. 그 장사 덕분에 그래도 먹고사는 데는 그런대로 지장이 없었다. 장날 하루 종일 쌀을 사들이는 돈이 장사 밑천이고 그게 전 재산 이였다. 그런데 하루 종일 그 돈 전대를 차고 장사를 하시다가 너무 돈 전대가 무거워서 잠간 쌀 점포 안에다 놓고 변소엘 다녀 와 보니 전 재산인 그 돈을 누가 훔쳐간 것 이였다. 그 후로는 모든 일이 어렵기만 하여 생활은 말이 아니였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배운게 목수일 뿐이니 우마차를 만드는 공장을 시작 하셨다. 당시 농촌에서는 농작물 운반을 위하여 우마차는 꼭 필요한 것이라 일이 많았다.
3번째 사진 넣을 곳
리호관광 호텔에서 1997년 무심천 라이온스 클럽 회장 이취임식 사진
취임사 중요 강조 사항
1. 인화단결
2. 우수회원 확보.
3. 더 봉사하기
4. 알찬 봉사 하기
5. 농촌 의료 봉사
3. 일반 봉사 활동
IMF 가 오자 직장은 없어지고 거리로 떠도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 했다.
우선 그 분들을 조금 이라도 도와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사진들과 협의를 하였다. 막상 회장이 되고보니 봉사를 어떻게 하여야 될지 걱정이 되었다. 봉사할 수 있는 금액은 예산을 세워 한정액이 있으니 그 이상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최대한 봉사금을 더 받아내는 것 뿐이….
영운동에 사시는 할머니 한분을 도와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 왔다. 총무와 재무를 대동 하고 현장을 확인 하러 갔다. 아주 작은 방에서 마늘을 까고 게셨다. 마늘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손주인 초등학생 둘이서 마늘 까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손님이 왔다니까 힘들게 일어는 나시는데 허리가 너무 아프신 것 같았다. 그냥 그리 힘들게 일하시면 하루 얼마를 버시나요? 하자. 하루종일 일을 해서 마늘 판매상에다 갇다주면 삼천원을 받는다고 하신다. 아들만 있으면 이 고생을 안할 터인데, 아들이 IMF 때문에 직장을 잃고는 집을 나갔다고 하신다.
그러니 그리 한달 내내 벌어야 월 9만 원 정도인데 그것을 가지고 생활비와 손주들 학용품 비용을 주신다고 한다. 작은 돈을 들고 가서 뭐라 말하기도 쑥스러웠다.
두집에 그저 학용품비나 하라고 주려고 했는데. 50만원을 들고 갔다가는 그 할머님에게 전부 드리고 얼굴이 뜨거워서 뒤도 안돌아 보고 그냥 나왔다. IMF가 사람을 잡는구나! 김영삼 정부가 미웠다. 그리고서는 노인들을 살피려고 가덕 노인정 세곳을 들려서 겨울철 난방비에 보태라고 하고는 보조금을 조금씩 드렸다. 또한 매년 행사처럼 하던 장애인 단체인 에덴원엘 가서보니 참으로 대소변도 못가리는 장애우들이 여러명이 있었다. 그들을 보살피는라 힘을 쏟는 분들에게 300만원을 보조해 드리고는 와도 어찌 기분이 썩 좋지는 않했다. 불우 이웃 돕기 접수를 하다보니 이곳 저곳에서 들러오는 도와 달라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복대동 성당에도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고 하여 600만 원을 지원했다. 수동 빈체시오집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의 점심 식사를 무료로 대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수녀님들이 농산물시장에서 버린 배추잎 스러지를 주어다가 말리셔서 국을 끓이는 것을 보았다. 그곳엘 가서 100만원을 지원했다. 충북 대학교 병원에 심장병 아이 수술비가 없어 죽어 간단다. 그 어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500만원을 지원 했다. 오창에서 연락이 왔다. 팔 다리가 없는 아이가 있는데 그 어린 생명을 신부님이 키우신단다. 한이환 회장과 같이 갔다. 막상 가서 보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름도 신부님이 지어 주셨단다. ‘구원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팔 다리가 없는 생명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적 같았다. 팔이 없고 다리가 없으니 굴러 다닌다. 눈물겨워 한번 안아 주고는 100만원을 그냥 방 바닥에 놓고 나왔다.
그 외에 수도 없이 밀려오는 도와 달라는 청 어찌 다할 수는 없고 그저 최대한 노력을 하여 조금씩 이나마 도움을 준곳은 여러 집이 있었다.
IMF 그것은 정말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입혔다. 천정 부지로 올라가는 금리. 또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 실제도 본인이 당했다면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팔다리가 없는아이 구원이 사진 넣을 곳
4. 의료봉사
취임시 하려고 했던 농촌 의료봉사 어느곳을 어떻게 선정 하여 하는냐? 이사진들과
머리를 맞대고 협의 하였다. 칠성땜 상류인 청천면 덕평리에 주민들이 민물고기를 날로 먹어서 디스토마 환자가 많다고 한다. 사실 확인을 위하여 덕평엘 갔다. 마을은 조그맣고 덕평 초등학교가 있었다. 실제로 이장님을 뵙고 확인 해보니 소문이 사실 이었다. 그곳에 봉사 활동을 하기로 결정 했다. 한달전부터 현수막을 갖다 걸고 주민들에게 덕평 초등학교로 무료 진료를 받으러 오시라고 광고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무심천 라이온스 클럽 회원이신 한효수 성모피부과 원장님 이동균 정형 외과 원장님. 이동규 외과 원장님. 조성환 치과 원장님. 최동석 소아과 원장님. 다섯분이서 하루종일 진료를 해 주셨다.
성모 피부과 한 원장님은 주민들 디스토마 감염 검사후 감염된 분들에게는 그 비싼 디스토마 치료제 주사와 복용하는 약을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같이 갔던 원장님들은 주민들을 진찰 하고 건강을 체크해 주고 무료로 약을 나누어 주었다. 통큰 봉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작은 성의가 타인에게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 하지만 미안한 감정만 앞선다.
이료 봉사하고서 기념 사진 넣을 곳
1997년 청천면 덕평리에서 의료 봉사후 기념 촬영
좌측부터 민경윤. 총무 김재근. 조성환 치과 원장. 회장 정진문.
성모피부과 한효수 원장. 최동석 소아과 원장. 이동균 정형외과 원장 박예현 재무
취임사 중요사항.
봉사실적 의료봉사 240만원 가덕 불우이웃 100만원
청주여중 체육부 50만원 구원이100만원
복대동 성당 불우이웃돕기 600만원 정지용 심장병 500만원
에덴원 300만원 가덕경로당 168만원 재단기금 100만원
수동 빈첸시오집 100만원
그 외 다수 봉사활동
현금 총액 총 약 2800만원
기념촬영 6장 넣을 곳
1. 회장 취임식 사진
2. 회장 이임식시 순금뺏지 수상
3. 회장 취임 축하 케이크
4. 초창기 라이온스 클럽 회원 정장 모습
5. 취임식 회원 꽃다발 증정
6. 1부회장시 최우수 회원 상 수상
봉사 활동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무심천 라이온스 클럽 회장시 당시 총재인 이명식 총재님은 충북의 모든 라이온스클럽의 회장들을 청천면 소재 청소년 수양관으로 초대하였다.
앞으로 어떤 봉사 활동을 할것인가에 대한 1박 2일의 쎄미나 였다. 훌륭한 강사님들로부터 감명 깊은 강의 도 들었다. 그 강의는 봉사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 강의중 건강에 대한 강의를 교수님 또는 기업 전무님으로부터 아주 귀중한 강의를 들었다. 하나는 금연에 대한 강의와 30년을 담배를 피웠던 사람과 담배를 전연 안피웠던 사람이 사망하자. 그의 시신을 기증받아 해부하는 영상자료 이였다. 30여분에 걸쳐 보여 주는 영상은 나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담배를 피운 사람의 배를 가르자. 나는 깜짝 놀랐다.
뱃속은 그야말로 니코친 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의사가 그의 폐를 들자 시커먼 니코친이 바닥으로 둑뚝 떨어진다. 거기에서 떨어져 나오는 니코친이 뱃속을 온통 까맣게 물들여 놓은 것이다.
나는 당시 담배를 하루 어떤 날은 두갑도 모자라 세값을 피울때도 있을 때이다. 당장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담배를 끊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담배를 평생 안피운 사람의 뱃속도 해부하여 보여 주었다. 뱃속은 너무나 깨끗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강사님은 이 영상을 보고도 담배를 피울거냐며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 하여 달라고 하였다.
담배를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아주 잘 알았다. 담배는 마약이였고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나는 담배를 끊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다른 강의 시간에 비타민 씨를 만드는 회사에서 전무님이 오셔서
그리고 비타민 씨에 관한 자료를 영상으로 보여주며 비타민 씨가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 한 것 이며 비타민 씨는 암도 에방하는 효과가 아주 크다고 말씀 하시였다. 본인은 비타민 씨를 팔러온 사람이 아니고 비타민 씨는 시중 약국에
아주 싸게 팔고 있으니 복합이 아닌 비타민 씨를 구입하여 먹으라고 하신다.
수련원을 나오자 마자 비타민씨를 하루 1000g짜리 하니씩을 아침 식후 꼭 먹었다.
봉사활동을 한다면서 얻은 정보는 나의 건강을 지켜주었으니 봉사활동을 한다는 마음 가짐이 나를 더 큰 건강으로 보답 하였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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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목 좋습니다. 원본에 정정 했습니다 내용도 빠진것 몇자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