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유투브 영상을 보았는데,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2022 봄 대한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광복으로 역사혁명을 시작한다 3일차 1부
사기 조선열전에 나타난 패수 위치 고찰 정규철ㅣ
한국 교과서 세종 육진의 위치비정 비판 최원호ㅣ
아래는 유투브 영상 댓글란에 비판한 내용이다. 문맥을 조금 다듬고 한 단락은 아예 이동시켰다.
// 최원호,
이조선 시기 동북면 위치를 모르는군.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동북면의 6 진 위치는 지금의 두만강과 그 북쪽 영역까지도 아니다. 이조선과 명 시기의 요하와 압록강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지역의 란하와 란하 하류 동쪽 지류인 지금의 청룡하였기 때문에, 6 진이 설치된 곳도 지금의 조양 북쪽 보국도 부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압록강.두만강을 고려.이조선의 북쪽 국경선으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한 식민사관.동북공정 지리 논리를 선전.홍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일본이 청국과 이조선의 국경 지역 지리 중 란하 중.하류와 황하 상류를 삭제하고 두 물길을 연결하여 변조하고 <청사고/지리지> 기록에 맞추어 란하.황하.요하 유역의 모든 지명을 동쪽으로 적절하게 재배치한 식민사관 지리 논리와 일본의 조작을 암묵한 결과 어쩔 수 없이 억지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는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를 한국인이 나서서 선전.홍보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대가 한국인인가?
그리고 두만강을 건너 여러 길이 기록된 것은 선춘령까지의 로정이다.
또 이태조가 윤관 공로를 몰라도 너무 몰랐군. 윤관 구성 지역은 정도전이 주군을 설치하고 참로를 구획한 토문강 남쪽 어이후강 변인 단천.길주.북청.함흥 등의 삭방도에서 북으로 500 여 리, 동서 방향으로 각가 500 리 쯤 떨어진 영역이고 이 동서 1000 리 길이에 대략 500 리 폭 지역에 고려의 정평.홍원.화주.고원.영주.길주.공험진.선춘령 등이 있었다.
이태조가 자신들의 한계 곧 서쪽의 화주.함주부터 동북쪽으로 공험진.선춘령까지의 영역을 되칮지 못한 한계를 공감하고 지위하면서 정도전에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일 뿐이다.
//정규철,
패수가 조백하였다고?
헐!
<한서/지리지>에는 요동 동쪽에 흐른다는 낙랑군 패수현의 패수와 지금의 백하인 전한 시기 750 리 길이 고수가 흐른다는 주석이 있는 어양군 어양현이 병기되어 있고, <후한서/군국지> 어양.낙랑 2 군 주석에는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2000 리, 5000 리 떨어졌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낙양에서 5000 리 떨어진 낙랑군 지역을 흐른 패수가 낙양에서 2000 리 떨어진 어양군을 흐른 고수가 될 수 있을까?
<한/지><후/지> 주석이 엉터리라는 말인가?
임승국 역주의 <환단고기/북부여기> 원문에는 계연수가 자신의 비정을 잘못 끼어넣은 `패수는 금 란하`라 되어 있다. 이것을 안경전이 어떤 근거로 패수는 금 조하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잡소리니라. 심백강도 마찬가지 개소리이고.
또한,
패수를 지금의 조백하 곧 전한.북위 시기의 고수와 포구수를 위만이 망명 시 건너고 전한 고조 유방이 국경선으로 정한 그 패수라고 주장한다면,
패수의 서쪽과 동쪽에 요동.낙랑군이 설치되었고 그 요동군에는 대요수.염난수가 흘러내려야 하고 또한 낙랑군의 중심에는 부.준왕 조선의 왕검성과 이후 고구려의 평양성, 고려의 서경, 이조선의 평양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대체 언제 어느 사건 여파로 지금의 요동 요양 또는 한반도 평양으로 이동되었다는 말인가?
지리 논리의 비약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그것은 역사지리가 아니라 망상이고 개지롤이니라.
또한 <수경주>에서 패수가 흐르는 방향이 이전의 동남쪽에서 서북쪽이라 했다고 하여 곧바로 대한반도의 대동강이라고 비정?하는데, 그런 어리석은 해석 말라. 력도원은 대한반도는 커녕 지금의 대릉하나 지금의 요하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패수를 금 란하라 한 계연수의 지리 인식이 현재의 한국 사학도들이 고민하고 받아들여야 할 가장 단순하고 사실에 직도하는 문장이니라. 력도원과 <한서/지리지>를 편찬한 반고의 설명이 가장 정확한 것이고 이를 계연수와 패수를 해성의 헌우락이라 한 신채호가 지금의 란하 중류 지점인 반가구수고 부근을 발로 밟으면서 남긴 기록이니라.
한편 계연수는 패수를 란하 본류라 하였지만 그것은 부정확한 것이고 신채호의 `해성의 헌우락`이 정확한 비정이니라. 즉 지금의 란하 중류가 청 시기의 봉천성.부 치소가 있는 성경 심양 승덕현이였고 지금의 중국전도에 표시된 작은 글씨의 승덕 지점이니라.
결국 작은승덕의 남쪽 240 리 떨어진 지금의 반가구수고 표시 지점의 동쪽 지역이 청 시기의 봉천부 해성현이고 그 작은 해성현 지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지금의 란하로 흐르는 작은 물길이 한 시기의 패수이고 청 시기의 어니하니라.
따라서 신채호가 언급한 해성의 위치를 지금의 요동 해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 무지무식한 멍청한 짓이며,
동시에 식민사관.동북공정 논리를 선전.홍보하는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