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들!”. *수수 서리하다 주인한테 들키면 엿가락만한 대가 왜 그렇게 질기던지. 힘껏 후리면 날선 수숫대에 그어지던 선. 팽그르르 맺힌 선홍색 방울. 상처 아린 줄도 모르고 밭둑을 질러 내달렸다. 냇가쯤 와서 보면 작약처럼 물들어 있던 손. 아이들은 익숙하게 길가 쑥을 뜯어 친친 동여맸다. 놀란 형들은 담배잎을 동원했다.
뒤늦게 속상한 어머니는 머리를 쥐어박으면서도 *백년초를 빻아 발라주고 어디서 구했는지 굳힌 염소기름도 등장했다. 늘 생채기가 끊이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집안에서는 상비약처럼 *갑오징어 복판을 *확돌에 갈아놓았다가 뿌렸다. 안 낫고 근이 박히면 된장이나 똥을 붙였는데 그 이상의 비방은 없다고 믿었다. 벌에 쏘였을 때도 된장을 발랐다. 친구들과 멱살잡이하다 머리가 터져 된장을 붙이고 다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있다. 또 불에 데이면 순모 태운 재와 참기름을 섞어 발랐다.
음식물 보관이 쉽지 않았던 시절. 툭하면 잘못먹고 배앓이를 했다. “엄마손은 약손, 현주배는 똥배”. 손가락 따고 배를 살살 문질러주시던 호밋자루 같은 손. 투정부리다 어머니 무릎 베고 새근새근 잠이 들면 아침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마을 행사때 돼지라도 한마리 잡으면 이 집 저집 변소 문짝이 거덜났다.
두어 근 끊어와 멀겋게 끓이면 환장하고 달려들던 숟가락들. 모처럼 기름기 들어간 속이 편할 리 없었고 밤새 뱃속은 요동을 쳤다. 뭐니뭐니 해도 새우젓이 명약. 그 짠 젓을 서너 수저 입에 퍼넣으면 짜다 못해 써 몸서리쳤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소화가 안돼 꺽꺽거리면 찬물에 엿기름을 우려 마시게 했다.
그 당시 조막손이들은 누구든 나무에서 한번쯤 떨어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파리처럼 매달려 재롱부리고, 열매를 따고 그러다 잘못 디뎌 내동댕이쳐지기 여러번. 어지간하면 툭툭 털고 일어섰으나 팔, 다리가 부러져 몇개월 꼼짝 못하고 구들 신세지는 경우도 많았다. 윗마을 용수는 감나무서 떨어져 성년이 되도록 발을 절었다.
“똥물이 최고여”. 뼈가 부러져 퉁퉁 부어오르면 할머니는 똥물 예찬론을 펼치셨다. 한 바가지 퍼와 삼베를 올려놓고 노란 물만 걸러 먹였다. 아이들은 안먹겠노라고 펄펄 날뛰었으나 입을 강제로 벌려서라도 퍼넣었다. 뼈가 단단해진다며 구릿가루를 먹이기까지 했다.
근동에는 골골 기침을 해대는 결핵환자가 몇명씩 있었다. 쪽마루 귀퉁이서 햇볕을 골라 깔고 쪼그린 홀앗이 모습이 열린 사립 너머로 보였다. 가끔 꽃처럼 붉은 각혈을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잘먹어야 낫는다며 쑤군댔다. 동네 닭이나 개가 없어지면 그 홀앗이가 의심을 받았다. 그런 중에도 뱀이 최고라고들 떠들어댔다. 아이들이 산을 쏘다니다 구렁이를 잡아다주면 무척 고마워 했다.
어떨 땐 *십리 사탕 몇개 살 수 있는 동전을 쥐여줬다. 봄이면 어른들은 독사 주의보를 내렸다. 물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필사의 대결을 펼치던 어린 전사들. 작대기 든 손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재수없게 물리면 입으로 피를 빨아내고 할아버지의 독한 풍년초를 허물어 약처럼 문질렀다. 그래도 잡으면 횡재였다. 걱정을 들었지만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다. 독오른 놈을 보면 어른들은 변소 문지방 밑부터 팠다. 항아리 속에 소주를 붓고 산 채로 봉해 묻었다. 3년쯤 삭혀 뒀다 만병통치약인 양 한잔씩 내먹었다.
논두렁 헤집고 다니다 풀독 오르고 목욕도 자주 안해 피부병이 많았다. 참지 못하는 아이들은 살갖을 긁다 못해 피더껑이가 쇠똥처럼 올라앉았다. 그럴 땐 누런 황덩어리가 제몫을 했다. 갈아서 물에 개어 온몸에 바르면 노릇노릇 황독이 꽃처럼 올라앉곤 했다. 덩달아 기승을 부리던 종기. 고약이 흔치 않아 밀가루에 사카린을 버무려 붙였다.
이런 비방이 잘 낫기도 했으나 뒤늦게 덧나 살이 썩어들어가는 등 무지에 가슴을 치는 일이 많았다. 칠흑 같은 밤, 송아지만한 아이를 업고 십릿길 읍내병원으로 달리던 우리네 부모님 모습. 한 걸음만 늦었어도 잃었을 거라며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시곤 한다.
미신도 덩달아 주술을 부려 이유없이 허리가 아프면 *만장으로 허리띠를 만들어 두르는 등 온갖 ‘믿거나 말거나 비법’들이 대 이어 입담으로 전해 내려왔다. 비록 학술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경험과 지혜가 담긴 민간요법들. 가난이 죄인지라 변변히 약 한번 쓰지 못했어도 약손 하나로 아이들은 쑥쑥 자라줬다. 들녘의 저 파란 봄보리처럼.
▶그시절 이런말 저런말
*나숭게
냉이. 나생이라고도 한다. 된장 풀어 국을 끓여 먹으면 춘곤증이 확 달아나지만 그 시절엔 쌀을 한 주먹 넣고 멀겋게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수수
초가을 자주색 알갱이가 무겁게 고개를 드리우면 목을 쳐 밥솥에 쪄 먹었다. 차진 맛이 일품이다.
*백년초
선인장.
*갑오징어
참오징어. 어른 손바닥만 하고 등면은 외투에 싸여 있는 석회질 갑(甲)이 있다. 뒤끝이 예리하게 돌출돼 있다. 살집이 두꺼워 맛이 좋다. 아이들은 이 비린내 나는 복판을 냇가에 배처럼 띄우며 놀았다.
*확 돌
곡식을 담아 찧는 움푹 파인 돌그릇. 절구통과 비슷하나 아래 받침이 없는 앉은뱅이다.
*십리 사탕
십리를 걸어도 녹지 않는다고 그렇게 불렀다. 이 왕사탕을 볼이 미어져라 물고 다니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돌처럼 단단해 어른들은 ‘독다마’라 했다.
*만장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 오색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대나무 깃발을 만들어 조무래기들이 들고 앞장섰다. 상여가 뒤따랐다. 식이 끝나고 긴 대나무는 아이들 차지여서 서로 탐냈다. 부잣집 상(喪)엔 만장 행렬이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