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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나라 '미얀마'
김해숙 (선혜)
미얀마로의 여행을 계획 하는 것은 한 번쯤 사람의 마음을 망설이게 한다. 그 이유는 미얀마가 세계 최빈국이며 나라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지 '인연'이 없으면 가 볼수 없는 나라가 미얀마라고도 한다. 불법 하나만 믿고 찾아 가는 여행길에 나의도반 모임은 기대 반 걱정반으로 3월27일 방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새벽에 일어나 환승을 거쳐 도착한 양곤은 이미 밤이 되었는데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어둡고 습했다. 그래서인지 양곤에 도착한 첫날 부터 피곤이 엄습해왔다.
<바간>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난 우리 일행은 바간 행 비행기를 타며 이런 걱정을 모두 지워 버렸다. 미얀마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여행객들에게 안전한 나라였다. 오늘의 일정은 냐우시장 - 쉐산도 파고다 - 틸로민로 파고다 - 쉐지곤 파고다 -칠기공방 -아난다사원- 부파야 마누하 사원 - 남파야 이다.
바간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도시로 불탑 유적지가 2500여기에 달하며 불탑의 규모도 아주 컸다. 불탑구조를 보면 아래층에 있는 세개의 단은 삼법인, 단하나를 위에서 보면 사각형인데 이것은 사정제 , 그위의 단은 팔각형으로 팔정도 그위는 부처님 발우를 엎어 놓은 형상이며 맨 위층은 일산을 올려 놓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불교 중흥에 앞장 선 아노라타왕의 '쉐산도 파고다'는 탑 위에 올라가서 바간의 아름다운 불탑들을 사방으로 관망 할수 있었고 , 틸로민로왕의 흰 우산이 꼭지점을 향해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세웠다는 < 바간의 전경> '틸로민로 파고다' 는 내부를 둘러 볼수 있었다.
아노라타왕이 코끼리를 타고 황금빛 모래 언덕에 세웠다는 쉐지곤 파고다는 개금불사 중이며 규모가 아주 컸다 . 미얀마의 전통 방식대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불탑들을 둘러보며 수행의 시작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일임을 실천했다.
오후에 둘러 본 ' 마누하 사원'에는 큰 발우가 있었는데 우기 시 스님들이 공양할 양식을 보시는 하는 곳이다. 우리 모도는 기꺼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큰 발우 안에 마음을 보탰다.
마누하 사원을 만든 마누하 왕은 상좌부 불교를 포교해주지 않아 남파야 사원이라는 힌두 사원에 갇혔다고 한다. 감옥으로 쓰였던 힌두 사원마저도 건축 조각 이 아름다웠다.
'아난다 사원'은 다문제일의 아난존자의 이름을 띄고 있으며 불교의 상상의 산인 수미산안의 안나파타푸타라는 호수 안에 있는 동굴사원을 본짜 조성한 사원이다. 지금도 매년 1~2월에 스님들의 경전 축제가 열리고 있다.사원매부에는 불상을 중심으로 세갈래의 길이 있는데 불상에서 제일 가까운 첫번째 길은 승려들이 다니는 길로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부처님의 상호는 근엄하며 무섭기까지 했다. 두번째 길은 왕족들이 다니는 길이고 , 세번째 길은 일반불자들이 다니는 길인데 거기서 바라보는 부처님의 상호는 인자하고 온화하여 첫 번째 길과 대조적이었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불상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았다. 탑위에서 바라 본 바간은 시간이 멈춘곳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불탑과 조용한 바람소리 무성한 나무들은 나를 뒤돌아 보게 하며 가슴에서 불심이 끝없이 용솟음 치게 했다.
"냐우 시장'은 바간의 재래시장으로 아침에만 잠깐 열리는 시장이다. 우리나라 50~60년대의 시장과 같은 모습으로 미얀마인들의 순박한 생활상과 정을 엿볼수 있는곳이다. 미얀마인들의 몸은 키가 작고 왜소해 보였는데. 영양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따라 오며 보내는 애절한 눈빛에 눈물이 핑 돌았으며 같은 아이사인으로서의 연민이 느껴졌다. '칠기 공방'은 바간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모든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나무로 엮어 만든 그릇 사이를 말총으로 메워 틈을 없앤 다음 옷칠을 하여 무늬를 그려 넣고 또 칠을 하여 칠기 그릇을 생산해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분업화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으로 칠기 그릇을 구입했다.
일몰을 바라보며 찾아 간 에야와디강의 부파야는 바간에서 제일 먼저 조성한 불탑으로 부처님께서 대반 열반에 드실때 불자들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안계시면 우리는 누굴 의지 하냐는 질문에 부처님꼐서 자등명 자귀의 법등명 법귀의 " 자신을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라고 설하셨다. 또한 제행무상 불방일정진이라~
모든것은 영원한것이 없으니 . 정진하는데 힘을 다하여라 라고 설하셨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안계시니 불탑을 조성하여 부처님을 대신하여 참배 하라고 설하셨다. 그리하여 스님들의 상의가사 하의가사 추울때 입는 두툼한 가사를 곱게 접어 두고 스님들이 사용하시는 발우를 거꾸러 엎어 놓은다음 스님들께서 사용하시는 지장주를 올려 놓은 모습이라고 한다. 최초의 불탑 복발 원형형태는 파고다 였다. 강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많은 미얀마인들이 탑 주위를 거닐고 있었다
<만달레이>
바간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만달에이에 도착했다. 셋째 날의 일정은 우빼인 다리, 마하간다용 수도원 ,실크공방 마하무늬 파고다 - 금박공장 -만달레이 왕궁 -쉐난도 파고다 -구도도 파고다 -만달레이 힐이다. 만달레이는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이 계신 곳이다. 그래서 인지 수행승들의 탁발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우뺴인"이라는 사람이 티크나무로 놓은 다리가 아주 유명했다. 다리의 길이는 1.2km이며,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호수 위의 다리를 걸으며 '우빼인'ㅇ[ 대해 생각해 보았다. 죽어서까지 미얀마인들의 생활 터전을 만들어 주고 있으며 , 여행객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하고있다. 보시의 공덕은 시공을 초월했다.
"마하간가용 수도원'은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으로 스님들의 탁발 의식을 볼수 있는 곳이다. 오후 불식을 하는 스님들의 발우는 아주 컷으며 ,사시에 맞춰 두 줄로 걸어오는 모습은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에 담을수 있었다 . 그러나 두줄 사이의 비집고 들어가거나 스님들 가사를 만지는 행위는 금지되어있다.
위대한 현자라는 뜻의 마하간다용 수도원에서 공양하는 스님들은 편단 우견을 주로 한다. 편단 우견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 보이고 왼쪽 어깨는 감추는 것인데. 이는 지혜를 드러내 보이고 탐심은 감추기 위함이다. 거리로 탁발을 나가는데 스님들은 모두 통견을 하는데 몸전체를 가사로 가림으로써 보시하는 여인들로 부터 탐심을 유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구호사미승"은 흰색 승복을 입은 어린 행자스님이다. 은사스님의 허락을 받아야 사미계를 받을수 있다고 한다. 말그대로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나 미얀마에는 까마귀가 참으로 많은데. 탁발을 다녀와 공양할때 까마귀가 마구 날라드는데 혼자서 까마귀를 쫒으면서 공양을 할수 있을때 . 사미계를 내려 준다고 한다. 쫒을구 까마귀오 미얀마에서 출가의 경험은 아주 큰 경력이 된다고 한다. 스님들은 공양할때 묵언을 하며 오후불식을 하기 때문에 한번에 공양하는 양은 보통의 두세배에 달한다
마하무니 파고다는 위대한 현자라는 뜻으로 1784년에 조성하였다. 부처님이 오백나한 데리고 라카인주에 순례 하셨을때 일주일동안 선정에 드셨는데 드쟈민이 내려와 불상을 주었고 부처님께서는 불상에 마정수기를 내리시며 ' 내가 열반에 든후' 나를 대신하리라 라고 설하셨던 불상을 모신곳이 바로 마하무늬 파고다 이다. 그러하여 미얀마의 3대 성지 이며 미얀마 인들이 찾는곳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신쀼라는 성인식을 하고 단기 출가를 하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9세의 출가자들이 흰옷을 입고 많이 와 있었다. 이곳의 부처님은 좌불로써 개금불사로 울퉁불퉁한 모습이며 , 남자들만 금박을 사서 부처님 좌상에 붙일수 있다. 지금까지 금 4톤 정가 개금불사에 쓰였다고 한다.
금박을 만드는 공장은 근처에 있었늗네. 특이하게도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부처님 개금 불사에 쓰일 금이기 때문에 그 만큼 신성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부처님 섬기는 것을 더 우선시 하는 미얀마인들의 지극한 부처님 사랑에 목이 메었다. 이곳 법당의 풍경 또한 열린 공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안식처이다 휴식처요 기도처로 제공 되고 있었다. 만달레이 왕궁은 공파웅 왕조의 역사 유적지 이다. 가로 2km세로 2km에 달하는 정삭각형의 넓은 왕궁이며 바깥에는 해자로 둘어싸여있다. 영국군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영국군의 신식무기 앞에 무릎을 꿇은 슬픈 왕궁은 말이 없었다 나무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올라 무너지고 만 왕궁의 웅장함만 말없이 바라 볼뿐이다.
'쉐난도 파고다'는 민돈왕의 아들 티보왕이 아버지의 집무실 장식품인 티크나무를 뗴어 그대로 옮겨 만든 목조 건축물이다. 검게 옻을 칠한 다음 티크나무에 조각을 하여 조각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낸 수작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배경으로 잃어버린 감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근처에 있는 구도도 파고다는 제 5차 경전 결집을 한장소로 현재는 석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해인사 와 같은 곳이다.
'만달레이 언덕'은 해발 230m 높이에 있는곳으로 부처님이 오백 나한을 이끌고 순례를 다녀갔던 장소로써 내가 열반에 든뒤 이곳은 불교 도시로서 발전할것이며 왕조는 부귀영화를 누릴것이라고 예언하셨다고 한다. 올라가는 길은 버스로 갈수 없어서 작은 트럭을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올라갔지만 , 정산은 깨끗이 단장 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만달레이의 일몰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몰을 보는 것은 어디서나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며 하루를 뒤돌아 보게 만들어 준다
<혜호> 만달레이 에서 비행기로 30여분 가량 날아 오니 , 혜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혜호는 문화 휴양의 도시이다. 넷째 날 다섯째 날의 일정은 인레호수 였으며 실크공방 - 전통대장간- 팡도우 파고다 - 은세공픔 공방 - 버다웅족과의 만남 - 인뗑재래시장 방문이다. 혜호공항은 해발 1300m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제법날씨가 선선했다. 인레호수는 해발 800m 정도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 오다보니 이름모를 이국땅의 꽃들이 우리를 반겨 주고있었다. '인레호수'는 길이가 22km ,폭이 11km인 바다같이 아주 큰 호수이다. 이름에서 그뜻을 찾아 볼수 있는데 인은 큰호수를 나타내고 레는 숫다 4를 뜻한다 처음 네개의 종족들로 수상 마을 이루어졌었다고 한다. 인레 호수에는 주로 인따족들이 수상가옥에서 수상 경작을 하며 살고있다. 배를 타고 호수 위를 가다보면 , 외발 노젓기를 하는 인따족들을 만날수가 있다. 외발 노젓기의 유래는 몽고족의 침입때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왼쪽 팔을 잘라버렸기에 주장하는 학자가 있지만 이들의 말이 광활한 호수에서 한발로 노를 젓고 한손으로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한다. 인따족의 강인한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수 있었다. 실크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연사는 연꽃의 줄기가 재료인데 연사로 만들어진 옷감은 값이 비쌌다. 단아한 여인들의 자그만한 몸집에서 끊임없이 연사가 나오는 듯 했다. 전통 대장간 , 은세공품 공방, 또한 수상가옥의 전통 공방에서 모든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기 방식대로 사는 이들이야 말로 문명의 시간을 멈춘 사람들임이 틀림없었다.
'팡도우 파고다' 의 부처님상은 원래 가난하게 사는 인레 호수 주변 사람들을 위해 찾아가는 부처님이었다. 가난하게 사는 인따족을 위해 불상 다섯분을 모셨는데 매년 11월에 열리는 축제에서 반야용선인 뒤집히는 바람에 불상이 호수에 빠졌고 네분의 불상은 건졌지만 한분의 불상은 찾지 못하다가 이자리에서 어부가 건졌다고 한다 . 그래서 조성된 파고다가 '팡도우 파고다'이며 다섯분의 불상을 모시게 된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하니 인따족의 각별한 사랑을 느낄수 있었다. 산속에서 링을 목에 걸어 미인임을 자랑하는 ' 버다웅족'은 수상 가옥에 가게를 열어 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평생 목과 무릎에 링을 차고 있기 때문에 .링을 푸는순간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민족의 침입때 혐오감을 주어 살아 남기 위하여 , 산짐승들로 부터 몸을 보호 하기 위하여 링을 차는 풍습이라고는 한다. 허나 이종족들에게는 미인이 되기 위해 링을 더한다고 하니 그모습이 아름답기 보다는 오히려 애처로왔다. 이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하나같이 못생긴 사람들일 것이다. 그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하여 버다웅족 목각인형을 하나샀다 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달리니 시인이 된듯 했다.
가도 가도 끝었는 호수여 인따족의 인정이 묻어나는 호수여 집안에서 손 흔드는 아낙네의 해맑은 미소를 그림삼고 물장구 치며 노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노래삼아 외발 노젓기하며 고기 잡는 아저씨들에게 '밍글라바'로 장단 맞추리라
인뗑에 있는 재래시장은 우리의 5일장과 닮았다. 물줄기를 따라 모여든 각 마을 사람들이 이곳 시장에서 정담을 나누고 물건을 바꾸어 가는 곳이다. 산속에 "빠오족"여인들도 삼삼오오 장을 보고 있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이유는 이들은 고산지역에 거주하며 차를 재배하며 살기 때문에 빛을 빨아 들여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가에 모여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우리와 똑같았다. 인뗑에도 리틀 바간이라고 불리는 불탑 유적지가 있는데 돌보지 않고 방치하여 지금은 나무와 잡초만 무성하다 . 무너진 불탑 사이를 나무 한 그루가 주인인양 비집고 들어서 있다. 순수하고 맑은 이곳 사람들의 인정은 그대로 두고 불탑 유적지는 잘 보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양곤>
어제 저녁 순환 비행기를 타고 혜호에서 만달레이 , 바간을 거쳐 양곤에
왔다 밤에 보는 쉐다곤 대탑이 멋있다고 해서 쉐다곤 대탑은 어젯밤에
관람했다.
저녁 불빛에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쉐다곤 파고다"는 부처님
재세시 조성한 유일 불발탑으로서 그 웅장함에 입을 다물지는 못했다.
쉐는 금을 뜻하는데 이렇게 금으로 불사를 하는 이유는 욕심 많은 사람이
속히 탐심이 생기거든 불교 유물에는 손을 대지 말고 금을 가져가라는
뜻에서 라고 한다.
또 불기에 따라 해마다 부처님상이 한분씩 조성된다고
하니 올해 이 쉐다곤 파고다 안에는 수많은 불상이 조성되는 셈이다.
과연 쉐다곤 대탑 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불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여기서는 여자들도 개금불사에 참여 할수 있어서 불법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마음을 모아 동참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 까울 뿐이었다.
여섯째 날의 일정은 차욱타지 파고다 - 마하시 수도원 -= 달라에서의 문화 체험이었다.
차웃은 6을 뜻하고 탓찌는 단게와 크다를 뜻한다.
'차웃탓지 파고다의 와불상은 높이 18m 길이67로써 여섯단게에 걸쳐 조성된 와불상이다. 부처님의 휴식상은 부처님 발이 포개어져 있지 않으며 휴식상이 많이 조성된것은 영원히 우리곁에서 중생들을 구제 해주십시오 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라고 한다
속눈썹까지 사람처럼 표현하여 신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을 하도록 상호가 조성 되어있었다. 와불상 발바닥에는 108개의 문양이
그러져 있는데 , 욕계/색계/무색계를 뜻하며 더 나아가서는 우주를 더 나아가서는 온화한 마음을 나타낸다고 하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숙연해 진다.
미얀마인들에게도 띠가 있는데 한국과 달리 태어난 요일에 따라 띠가 정해진다.
또한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이 짓기 때문에 가보가 없는게 특징이다. 불교에서는 형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하시 수도원은 200여명의 스님들이 "위빠사나"수행을 하는곳이다.
매일 대중공양이 올라오는 큰절로 결혼식 후 부부가 대중공양 을 올리고 폐백을 드리며 스님의 법문을 듣는 곳이기도 한다. 만달레이의 마하간다용 수도원처럼 공양시에는 일체 말을 삼가며
일반인들도 스님 뒤를 따라 걸으며 알아차림의 행선을 할수 있는 곳이디고 하다. 이곳에서 맑은 모습의 우리나라 스님 한분은
친견했다. 열심히 정진 하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저절로 풍성해 짐을 느꼈다.
양곤강 건너편'달라'는 가난한 서민이 사는 곳이다. 강에 다리가 없어서 배를 이용하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표정들은 밝았다.
이곳에서 '사이카'라는 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를 타고 마을 한바퀴를 돌면서 문화를 체험 할수 있었다. 인력거꿑은 힘든일이지만
이것이 생계의 수단이기 때문에 이방인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폐달을 밟았다. 특이한 점은 그마을안에 힌두사원 ,이슬람사원,교회
불교사원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서로의 종교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사는 미얀마인들의 포용력에 미얀마의 무한한
가능성을 점쳐 본다 '다나까'를 바르고 하얗게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드는 선한 눈망울들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양곤에서의 일정을 끝으로 미얀마 여행이 모두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 오는 일만 남았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된다고 하듯이 이번 미얀마 여행이야 말로 나를 더없이 겸허하게 만들었으며 낯선 나라에 대한 경이로움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 시켰다.
불교의 나라. 불탑의 나라. 황금의 나라, 시간이 멈춘 나라 미얀마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큰 화두를 던져 주었다
짧은 시간동안 끊임없이 해박한 불교 설명과 미얀마에 관련된 많은 지식을 전해준 한국인 고정의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 밍글라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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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칫잉투라는 닉을 사용하시는 분에 여행기를 미얀마여행 카페에서 가져와서 조금 띄어서 올렸습니다 한숨에 글을 쓰셨기에 읽기에 조금 편했으면 해서여...
일단 내용은 못보고 사진만 봤습니다.^^
읽다가보면 그렇게 길지는 않게 느껴집니다...
가고픈 마음이 절절합니다.. 개인적으로 불교의나라는 하나도 빠지지않고 다니고픈게 소인의 소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