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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입니다.
가난에 찌들고 보잘 것 없는 반쪽자리 부모 밑에 서있는 저를 봅니다.
어린 나의 기억 속에 반쪽자리 부모는 술에 취해 길거리를 방황하다 때론 길거리에 때론 집에 꾸겨진 몸으로 누워있습니다. 술 받으러 가는 나와 동생, 돈을 빌리러 다니는 나와 동생, 차비가 없어 몇 시간 이고 걸어서 학교를 갔던 나를 봅니다. 무기력합니다. 비참합니다. 나의 부모를 쳐다보는 나의 어린 눈은 무책임한 부모,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 무능력한 부모, 가진 것 없는 저 초라하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부모를 봅니다. 늘 사람들에게 굽신거리고 쩔쩔매는 저 사람, 나는 죽기보다 이런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나에게 늘 그리운 어머니는 온데 간데 흔적 없이 바람처럼 먼지처럼 사라진지 오래이며 늘 기억속의 그리운 어머니입니다. 그리움의 쌓여 원망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 그리움으로 나에게 독하고 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아프다하여 말할 이 하나 없고 아프다하여 표현 할 줄 모르는 제가 있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로 지독하고 무서운 부정의 내가 되었습니다. 원망의 눈물로 나를 지키고 화로 나를 지키고 사람들의 동정으로 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마음에 피난처는 원망 가득한 세상에 대한 복수심 이였습니다.
그저 동네 어른들이 하는 수근거림에 나는 늘 고개를 숙이고 늘 착한 척 무장하였고 집에서는 식구들에게 사나운 들짐승 이였습니다.
늘 세상은 불공평하고 어찌하여 우리부모는 나를 낳았을까? 어찌하여 이리도 나의 부모는 무지하고 가난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일까? 자식 낳아놓고 책임지지 못하는 저 무책임하기 이를 때 없고 독한 나의 부모였습니다.
이런 나의 부모를 진저리 치게 싫어했고 넌덜머리나게 미워하고 원망 했습니다.
부모가 나를 선택했다는 굳은 믿음 이였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부모에게 이런 고생 시키려고 낳았냐고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부모님의 모습이 못 마땅할 때 마다 이꼴 저꼴 안보고 살고 싶으니 온힘 다해 나 좀 죽여 달라 아버지께 소리쳤습니다. 그러다 죽도록 맞곤 했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으로 아버지가 살아가신다는 걸 알지 못할 때입니다.
되갚아 주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나에게 상처 준 모든 이들에게 말입니다. 그리고서 부모님을 훈계하고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며, 화를 내며, 저는 부모님을 가르쳤습니다.
당신들의 삶의 틀렸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사시라고 말입니다.
이런 ‘나는 되갚아 주 겠다’ 하는 마음이 클수록 부정적인 나로 변했고 되갚아 주지 못함에 더 억울해하고 분했습니다. 늘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답이 아닌 더 큰 문제로 나에게 부메랑의 되어 돌아왔습니다. 나의 마음은 뿌리 없이 썩어가는 나무였습니다. 더욱더 눈덩이 굴리듯 원망은 더 커졌고 부정의 생각들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이들은 나를 늘 당당하고 의리 있고 유머 있고 장난 끼 많고 고집스러운 나였다고 말들 합니다. 직장에서는 센스 있고 능력 있는 저였다 하였습니다. 이런 말들들 들을 때 마다 나는 더 능력 있는 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없던 저는 가족에게 만큼은 가슴 아픈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였습니다. 집안 식구들과는 대화하기가 싫었습니다.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답답하고 능력 없는 가족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벗어나려 선택한 결혼 생활은 어떻게 형용이 안 됩니다
결혼생활의 외로움을 벗어나려 선택한 것, 나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선택한 것은 동네방네 내 남편 욕을, 시댁 욕을 바리바리 하고 다니는 것 이였습니다. 친하다는 사람들에게, 조금 안다는 사람들에게 내 외로움을 벗으려 안간힘을 쓰며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욕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여겼습니다. 내가 욕을 하는 것이 나를 살게 한다고 철석 같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부메랑이 나에게 돌아올 차례가 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3자 대면을 시골 어디 촌구석 억세다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나 하는 3자 대면을 했습니다.
지옥이었던 시간 이였습니다. 그 고성과 욕지거리 속에 저는 고개를 들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서움에 벌벌 떠는 나는 그저 미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내가 다 뒤집어 씌고 나는 천하에 거짓말쟁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찌 이리도 등을 돌린단 말이냐?’ ‘어찌 저렇게 같이 했던 일들도 나에게 다 뒤집어 씌우고 있단 말이냐?’
‘살수가 없구나, 나는 이제 다 살았구나’ 라는 생각만 되풀이 했습니다. 몇 칠 몇 달을 정신과를 다녀도 소용이 없고 약을 먹어도 그때 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잠을 잘수도 생각을 멈 출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남편에게 이혼도 요구했습니다. 부탁이니 제발 이혼 좀 해달라고 말입니다. 아이들과 남편이 잠든 새벽길에 나와 저는 운전을 하고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저수지에 가서 몸을 던지려 걸어 들어갔습니다. 다 왔는데 차마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아 울고 또 울고 처참한 발길로 다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둘러본 나의 모습들 뒤로 집, 남편 , 아이들은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모습을 마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길로 지인 분에게 전화를 했고 펑펑 울어가며 그간 결혼해서 살아온 이야
기를 하고 내가 힘들어 했던 시간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언니는 “바보야 이런 바보야 어찌 그리 살았다 니, 나이가 몇인데 그러고 살았어? 그 당당하던 네가 어찌 그리도 아프게 살았냐. 이 녀석아!!! 그리고 언니는 울던 저를 진정 시키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소라야 언니 100%로 믿지. 그럼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언니는 행복한 가족 캠프를 소개를 했고 카페도 소개를 했습니다. 당장은 캠프가 없으니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읽으라하고 몇 권의 책을 더 소개 했습니다. 나는 그길로 카페에 들어가 제목에 와 닿는 글은 다 인쇄를 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캠프에 오기 전 까지 언니가 늘 아침마다 전화해서 저의 상태를 물었고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들을 때는 그래 알아듣다가도 뒤돌아서면 저는 깜깜한 방에 밧줄로 저를 꽁꽁 싸매는 느낌 이였습니다.
그리고 64차 캠프에 참가 하게 되었습니다. 금산님과 차를 같이 타고 가는 내내 저는 한마디 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나는 나를 찾지 못하면 정말 이젠 끝이겠지.’ 이 생각만 가득했고 ‘여기서 나를 내보이면 나를 내려놓으면 사람들이 또 손가락질 하면 나는 어떻게 살지. 그럼 나는 정말 죽어야겠다.’ 라고만 생각 했습니다.
캠프가 시작되고 노래를 부르는데 처음부터 눈물이 나와서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노래를 불러도 이야기를 들어도 쏫아져 나오는 눈물이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가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흐렸습니다. 그래 소라야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나에 대한 아픔이 고통이 밀려오고 나를 볼 방법조차 몰랐던 저를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도 웃었습니다. 나는 살아도 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머리가 너무나 혼란스럽고 답답하였습니다. 윤진언니(거북이 한의원) 말에 온 삶 마음 일기를 꼭 서야 한다는 말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먼지 몰랐습니다. 일기가 멀 의미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어 일기를 쓸 때 마다 카페에 있는 일기형식을 또 읽고 또 모르면 다시 또 읽었습니다. 혼자 큰 소리로 선언도 해 가면서 일기 하나에 1시간 2시간씩 써 내려갔습니다. 카페에 글을 올리고 나면서 혼란에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부모를 신앙으로 받아드리고 100%로 어머니 아버지 모습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에 부모님을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어린 시절 나를 비참하고 비통하고 억울하게 만든 부모의 모습을 책임 져야 한단 말입니까? 숨이 막혀 왔습니다.
온 삶 마음 일기를 쓰면서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임져야 한다는 말속에 나의 모습들이,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세상에 어느 날은 눈물이 번벅이 되어 일하는 도중에 나와 3시간을 차에서 울다가 일을 하기도 하고 내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그저 나에게 미안하고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던 인정해주지 못했던 어린 나의 모습과 마주할 때는 아픈 나의 가슴을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나를 왜 이렇게 낳았어?”란 말이 부모가 아닌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에 나는 나의 부모님의 모습에 내가 맞추어놓은 관념과 허상을 보았고 뛰고 있었던 나의 심장을 저 스스로 돌로 만들어 놓고 내리 치고 있었습니다. 무너지는 가슴을 나 스스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나의 부모님의 마음에 죄송한 마음이 쓰나미 처럼 밀려 왔습니다.
너무나 무너지게 아팠습니다. 내가 만든 부모님의 허상의 모습들에 용서를 빌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무능력은 나의 마음 볼 줄 모르는 무능력 이였고 아버지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 이였습니다. 아버지의 무책임함은 나의 선택에 대한 무책임 이였습니다.
어머니의 위선과 도피는 나의 마음 외면한 위선임을 알았고 어머님의 그리움을 원망으로 뒤덮어 버린 나의 위선 이였습니다. 어머니의 도피는 나의 마음을 보려하지 않는 도피였고 어머님의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나의 마음의 도피였습니다. 독하디 독한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철저하게 지독하고 냉정한 저였습니다. 오로지 제 모습 이였습니다.
부모님의 입을 틀어막고 나만 잘났다고 부러지지 않으려는 나무가 고개를 그렇게 들고서는 부모를 가르쳤고 부모님 가슴에 차마 뱉지 못할 수 없는 언어의 폭력으로 부모의 가슴을 돌로 내리치고 매질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아픔도 어머님의 아픔도 모르는 나는 그리 자식으로 나를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고 나의 거울을 닦으려 그리도 목을 매듯 애를 썼습니다.
일기를 통해 보는 나의 허상과 관념 속에 내 부모님을 매도하고 내가 나를 버렸음을 알았습니다
부모님도 당신들 사랑하는 방법조차 몰라 당신들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대한 책망으로 살아가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삶도 어머님의 삶도 저는 살아보지 않았습니다. 살아보지 않은 나의 부모님의 삶을 판단하고 분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부모님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 이였음을 온 몸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저는 저에게 그렇게도 미안하다 이야기 했습니다.
미안하다 소라야, 미안하다 내아가야, 미안하다 내 딸아.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외로웠니?
미안하구나 ..저는 이렇게 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내가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괜찮아 소라야, 장하다 소라야, 참으로 잘살아주었다 내 딸아, 그렇게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제가 저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를 살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가슴 깊이.......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음 압니다. 부모님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함을 가슴 깊이 스며들게 참회 합니다. 저보다 더한 아픔 속에 죄책감의 관을 쓰시고 자식 볼 때 마다 말 한마디 훈계 한마디 제대로 못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요동치는 죄송함으로 참회 합니다.
“왜 버렸어 나를...” 이 말이 어머니 몸 구석구석에 가시가 되어 당신을 찌른다는 걸 몰랐습니다. 어머님 용서하세요. 그리고 미안해 말아요. 어머니. 그 누구보다 위대한 나의 어머님입니다. 이젠 어머님이 그립지 않습니다. 제 마음 속에 계시니까요.
늘 원망하던 나의 부모님은 세상 그 누구보다 당신의 삶을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가시며 시대를 앞서가신 열정적인 저의 유일무이한 부모님 이십니다. 저의 신앙 이십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나의 부모님 이십니다. 감사함으로 저에게 그 자리 그대로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늘 자기세계만 집중하는 나의 철없는 남편..나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결혼을 선택하고 도피처로 선택하여 이 결혼을 했습니다. 외롭지 않으려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남편에게 시댁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사람, 일 잘하는 사람, 말잘 듣는 사람, 알뜰한 사람, 하며 남편의 비위 시댁의 비위를 맞추며 살았습니다. 처참하고 비굴하게 말입니다.
사랑이, 나의 노력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화는 오로지 아이들 몫으로 남았고 힘없는 아이들은 늘 화풀이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결혼생활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남편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고 나는 그 옆에서 남편의 눈길 한번을 받기 위해 그리도 주의를 맨 돌았습니다. 남편의 잘못된 점만 콕콕 질러서 막말을 하였습니다. 나를 외롭게 만든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말입니다. 이런 제가 더 비굴하고 비참했습니다. 누군가 사과 맛으로 결혼 생활에 비유해 보라 길래 저는 구역질이 난다고 했습니다. 역겹다 했습니다. 남편은 이기적이고 매정하고 독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온 삶 일기를 통해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비굴하고 비참하게 거지처럼 당장 마음 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사람처럼 살고 있었던 저였습니다.
나를 따뜻하게 인정한번 하지 못한 매정한 사람은 나였고, 나만의 아픔만 있다하여 남편의 아픔이 있을 꺼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저는 이기적 이였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남편에게 폭언을 일삼았던 저는 이기적이고 독한 사람 이였습니다.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말 한마디 못하는 나 자신에게 등 돌려 버린 독한 저였습니다.
겉모습이 강하다하여 마음속은 차디찬 강철이라 여겼고 외로움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나의 아픔만 알아주어야 하고 남편은 아픔이 있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미리 마음먹고 있었던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단정지어 버린 제 모습 이였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함이 나를 인정하지 못함이 내가 느끼고 깨어날 때 까지 남편은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해주었고 그 속에서 저의 모습만 있었습니다.
거울을 마주보고 나니 남편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자기를 어떻게 보여야 할 줄 모르는 채 서있고, 외로움에 겁에 질려 조금이라도 만지면 깨질 것처럼 그렇게 내 앞에 서있는 있었습니다. 남편은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운 사람 이였습니다. 따뜻한 안아줌이 그리운 사람 이였습니다. 제가 그리도 애타게 찾고 있던 걸 남편은 찾지도 못 한 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편에게 수고했어요, 당신이 이건 정말 잘해주어 내가 수고를 더네요, 당신 참 멋진 사람이 예요.”라고 이야기 합니다. 남편은 더 큰 화답으로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내가 바꿔야 나의 거울도 바뀌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체험 했습니다.
이제는 보입니다. 남편은 저에게 더없이 다정한 사람 남편이고 더없이 애틋하고 사랑 많은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지적 잘하는 딸은 통찰력이 좋은 딸이 되었고 말 많고 울음 많고 사람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아들은 자기표현에 충실하고 이제는 누구보다 활달하고 눈을 잘 맞추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몸의 인생으로 살았던 저는 이제 마음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마음공부를 통해서 말입니다. 겉치레를 잘해야 살 것 같았던 삶이 바뀌었습니다. 오로지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되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늘 책망하고 마음속으로 수천 번 수만 번 죽음을 당한 나는 스스로를 기쁨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흐뭇한 미소로 스스로를 인정할 줄 아는 기특한 제가 되어 있습니다. 온 우주가 저와 함께 하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실이 최고의 사실 알았습니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인생의 창조주로 온전히 저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희열에 환희에 찬 저의 삶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현실을 마주하는 일이 이젠 두려움이 아닌 가슴 벅찬 설레임으로 맞이합니다.
때론 혼란으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고 때론 남에게 뒤 집어 씌우는 게 편해 뒤집어 씌워놓고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현실을 바로 보는 제가 서있는 모습임을 알기에 오늘도 온 삶 마음공부를 즐기며 밝고 맑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를 통해 나를 볼 수 있음은 귀하고 귀한 인연이며 온 우주 인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체험 합니다. 나의 아픔이 다른 이들의 치유가 되고 다른 이들의 아픔이, 슬픔이 저에게 큰 치유가 되어가는 시간을 캠프를 통해 느낍니다. 마음 일기로 느낍니다.
세상의 수많은 인연들이 있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와 보니 그들은 수많은 연결고리와 함께 저와 온전히 하는 인연들입니다. 먼저 사랑하는 저의 마음의 엄마 윤진언니 온 마음 다해 감사를 올립니다. 캠프에 처음 참가 했던 저의 영원한 또 다른 나의 마음 하늬바람님 , 늘 앞길 일러주시는 밝은 달님, 늘 따뜻하게 이야기 들어주시는 오케이님,가슴 깊이 안아주시는 산책님, 푸근하게 안아주시는 금주님, 늘 호탕한 웃음으로 감정 표현 담당해 주시는 기쁨님, 노래를 가슴으로 부르게 해주시는 오픈마인드님, 늘 어머님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짱님, 온 삶이 무엇인지 이러 주시는 금산님, 양 경희 교수님, 일기를 이런 거야 알려 주시는 문 향허 교무님, 저의 일기에 댓글로 힘을 주신 노을님 소금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온 마음 다해 머리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수 많은 인연들이 지구의 와서 자신의 역할 수행을 다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다시 한 번 제가 깨어 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주시는 모든 인연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 딸아이에게 “예원아 너는 참 귀한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 하니 딸아이가 말을 합니다. “엄마, 엄마는 이 세상 우주 끝까지 최고로 가장 귀한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캠프를 참가 할 수 있도록 늘 지원해주고 어린 두 아이들을 정성껏 돌봐주는 남편과 건강하게 잘 자라 주는 아이들에게 감상담을 받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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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하하하! <나의 마음은 뿌리 없이 썩어가는 나무였습니다.>
정말 가슴아픈 사연이네요!
소라님이 그 마음의 지옥에서 마음의 천국으로 승천하신 것을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정말 세상엔 그런 삶을 살아오신 분이 있군요!
금산님이 그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의 희망이요 등대이고 구세주이십니다.
근데 그런 삶을 인과로는 어찌 해석을 하실 런지요?
그 가르침 받고 싶네요! 하하하하하! 소라님! 수고하셨습니다.
인과는 지금 이 순간 늘 받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고통스럼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를 거부하고 저항함으로 남편과 자녀들과 아픔을 다시 되풀이 하고 있었지요. ㅎㅎㅎ
금산님 좋은글 감동적인 사연 감사합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제 마음도 함께 요동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천소라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냅니다.
나를 찾을 기회를 갖게 해주신 금산님이야말로
성불제중을 실현하시는 스승이십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원심님...마음공부가 원불교 100년의 유일한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