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무엇을 보았는가?
"몸이 긴장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몸이 긴장했는가 마음이 긴장했는가"
사야도의 물음은 다시 마음을 쳤다. 온갖 통증과 가려움증에도 버텨내느라 긴장을 했는데 그것은 몸이 긴장하기 전에 마음이 긴장했던 것이다. 마음 따라 몸이 굳은 것이었다. 그런데 몸의 통증만을 살피다가 마음 챙김을 놓친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17 간의 여행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어보니 나도 좌선하면서 다리가 아파오면 자세를 바꾸곤 했었는데 이 통증에 대한 관조를 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맨 처음 좌선을 시작했을 때 10분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부좌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복숭아뼈 부위가 매우 아파왔었다. 그런데 통증을 무시하고 좌선에 집중하면 통증이 사라져 버리고 나는 그냥 좌선만 하면 되었었다.
좌선을 끝내고 가부좌를 틀었던 발목하나를 제자리로 옮겨 놓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꼼짝 못하고 누웠다가 일어나야 했었다.
좌선을 시작한지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약 40분 정도 있으면 복숭아 뼈 부위에 통증이 온다. 그러면 자세를 바꾸고 다시 좌선을 했었다.
오늘 아침에 복숭아뼈에 통증이 오면 나는 몸이 근질근질 해지면서 따분해지려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게 바로 분별심과 주착심이다. 따분해지는 것과 통증에 주착이 되어 입정을 놓쳐버리는 것.
이 마음을 계속 관조해보니 따분해지는 마음도 없고 통증도 없는 자리가 있다. 그리고 통증은 있으나 마음이 통증에 물들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여여한 그 상태가 있다 그 상태가 바로 입정처라는 것이 알아채진다.
어느 정도 좌선을 하고 나면 몸이 뒤틀리고 지루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었는데 앞으로는 지루해지는 기분을 자세히 관조하고 통증도 함께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바라보는 훈련을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공부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그 곳에 있는 법설들을 읽다보면 항상 같은 말인 것 같아 지루해지고 느슨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마음이 느슨해지면 풀어진 채로 살다가 어느 순간 다시 읽어보면 한글자 한글자가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한꺼번에 쏙 들어온 순간이 있다.
어제도 그런 체험을 했다. 단지 표현이 다를 뿐이지 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설명하는 말이 나의 상태와 맞아 떨어지면 내가 조금 공부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을 반조하면서 살피고 공부하는 습관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정처가 육근에 사용되어질 때 완전한 공부가 순숙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아직도 좌선과 염불을 통해서만이 조금씩 입정을 체험해가고 있다.
좌선을 하면서 생각이 있을때 와 없을때가 같아지는 연습이 필요한데 아직 생각의 모양을 확실하게 객관화 시키지 못해 힘이 든다.
그런데 오늘 통증에서도 여여한 느낌을 갖고 보니 나도 모르게 습성에 젖어 하고 있는 좌선의 한 행태를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인 것 같다.
더 세밀한 관조가 나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