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안 계신 교회. 사실 이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어찌 교회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실 수가 있는가? 그런데 그럴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었다. 성전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성전에 자기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임재가 늘 함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어보아도 이스라엘의 죄가 심각할 땐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다. 하나님은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으로 가득하면 그 성전을 헐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왕상 9:7). 실제로 이스라엘의 범죄가 심해지자 이방 민족들을 들어서 예루살렘 성전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하셨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지만,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죄악에 빠지면 성전은 단지 하나의 건물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임하신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주님의 임재는 교회에 가득하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하면서 죄악에 빠지면 하나님은 더 이상 교회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주의 이름으로 모인 자들 중에 임하시겠다고 하셨다(마 18:20).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보다는 자기의 욕심과 자기의 생각으로 가득한 채 모이는 모임에는 아무리 성도들이 모였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는 없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엔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난다. “영광”은 히브리어로 카보드(כָּבוֹד)라고 하는데, 이 영광은 늘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한다. 임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쉐키나(Shekinah, שכינה)인데 거주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하나님의 임재 없이 하나님의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모양만 갖추었다고 하나님의 임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엘이 아직 어린 시절,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우면서 언약궤를 전쟁터까지 가지고 나가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극히 거룩한 성물(聖物) 인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셔서 전쟁에 승리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도 없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는 모양만 남았을 뿐 마음을 다해 드리는 제사가 사라진 상황에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役事)를 기대한 것은 정말 엄청난 오판(誤判)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가봇(Ichabod, אִיכָבוֹד)의 시대가 되었다. 이가봇은 카보드(영광)이 떠났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부재(不在)한 이스라엘의 처참한 모습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한다. 예배는 형식으로만 남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 앞에 겸허하게 순종하는 삶이 없는 신앙생활은 껍데기만 남은 신앙생활일 뿐이다. 이런 교회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도, 하나님의 영광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이가봇의 처참함을 보게 될 뿐이다. 우리 교회 안에 임재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언제나 볼 수 있길 간구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주의 능력이 역사하는 교회로 세워지길 소망한다.
(글/ 안창국 목사)
#하나님부재의교회?
#하나님의임재
#하나님의영광
#하나님의영광이가득한교회가되도록
#이가봇의교회가되지않길
#쉐키나
#카보드
#껍데기만남은신앙생활이되지않도록
#껍데기신앙
#하나님의임재가가득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