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놀이 동시집 4/최승호 글ㆍ윤정주 그림/비룡소 발행ㆍ148쪽ㆍ1만500원
이왕구기자 fab4@hk.co.kr

"지금 장난해?" 하고 물으면 "응 지금 장난해. 말(言)로"라며, 씨익 웃으면서 응대할 것 같은 최승호(55)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네번째 권이 선보였다. 앞선 세 권의 동시집에서 각각 자음, 동물, 모음을 소재로 우리 말의 '말맛'을 살린 동시의 향연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에는 '비유'를 꺼내들었다. 수록된 71편의 동시들은 '맹/ 맹꽁/ 꽁맹/ 맹꽁이들이 코맹맹이처럼/ 울고 있네'('맹물')나 '고래들이 꼬리를 들어/ 바다를 친다/ 탕 탕 탕/ 바다가 커다란 북이다'('북')처럼 직유와 은유,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최씨는 사물과 문자형태 사이의 동형(同形)을 유추한 상상놀이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 유희의 진수를 보여준다. 가령 사슴 '뿔' 모양의 '뿔' 자(字) 한 자만 그려놓은 채 시침을 뚝 떼고 '뿔'이라는 제목을 단 동시, 이메일 주소에 쓰이는 @모양 몸통을 가진 달팽이 네 마리를 그려놓고 '이메일을 보내러 가는 달팽이들'이라는 제목을 단 동시들은 동형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환기하는 작품들.
반면 '벌때가 오면 난/ 벌벌 떨려/ -네가 우리 꿀 훔쳐 먹었지?/ 벌 눈은 무서워/ 주사바늘 같은 벌침은 더 무서워'('벌')나 '징징대지 마/ 너 자꾸 애처럼 징징대면/ 나 정말 징 친다/ 징/ 징/ 징/징'('징') 같은 동시는 동음이의어의 묘미를 맛보도록 한다.
"한국의 동시라는 것이 지금까지 뜻 중심, 의미 중심의 동시였다.
의미도 중요하지만 언어 자체의 문자형태도, 소리도 중요하다.
우리말 언어교육을 하는 데 시보다 더 좋은 장르는 없다"는 최씨의 지론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2005년 첫 권이 나온 뒤 10만부 이상 판매되면서 '베스트셀러 동시집'의 명성을 얻고 있는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5권은 올해 하반기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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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제 딸이 웃지 않은 동시는 버렸어요” [중앙일보]
『말놀이 동시집』 펴낸 최승호 시인
글자 모양·소리 최대한 활용
장난처럼, 놀이처럼 만들어
네 번째 『말놀이 동시집』(비룡소)을 펴낸 최승호(55·사진) 시인을 만났다. 성인 독자들이라면 “그 최승호 시인이냐”며 물을 법도 하다. ‘그 최승호’ 맞다. 1983년 출간된 첫 시집 『대설주의보』이후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고비』 등 문제작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휩쓴 시인 최승호다.
이제 그는 베스트셀러 동시작가로도 통한다. 2005년 첫 권이 나온 『말놀이 동시집』이 10만 부 넘게 팔렸다. 인기 비결을 시인에게 물었다. 속뜻이 생각보다 깊었다.
#글자에 뜻만 있나
그는 “글자엔 소리와 모양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상식. 그런데 그동안 우리 동시는 글자에 마치 뜻만 있는 듯, 뜻만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리의 재미를 앞세웠다. 이런 식이다.
“도룡뇽 노래를 만들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
들어 보세요/
도롱뇽/
레롱뇽/
미롱뇽/
파롱뇽/
솔롱뇽/
라롱뇽/
시롱뇽/
도롱뇽”
(‘도롱뇽’전문)
소리로 운도 맞췄다.
“오소리가 다닌/
오솔길을/
오늘은 내가 걸어가네/
오솔길 옆/
오리나무/
오솔길 옆/
오갈피나무”
(‘오솔길’중) 뜻이 어디로 튈지는 작가도 다 지어봐야 안단다.
글자의 모양을 활용한 형태시도 시도했다.
글자 ‘응’의 ‘ㅇ’안에 또 ‘응’을 쓰고, 그 ‘응’의 ‘ㅇ’안에 또 ‘응’을 쓴 시 ‘메아리’.
점점 작아져 사라지는 메아리가 글자 속에서 보인다.
왜가리 그림을 덧댄 글자 ‘왜’를 적어둔 시 ‘왜가리’(그림 참조)도 형태시의 하나다.
#타악기 리듬이 대세다
그의 시 리듬은 빠르다. “쥐다/쥐 났어/4번 쥐 다리에 쥐 났어//쥐도 쥐 나냐?”(‘쥐’중) 에서처럼 문장을 짧게 쪼개 쓴 덕이다.
이를 두고 그는 “타악기의 리듬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쿵쿵쿵쿵’ 뛰는 심장도 타악기 아니냐”면서 “타악기의 리듬은 심장을 즐겁게 뛰게 만들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마음을 현악기에 비유한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도 이젠 옛말”이라는 그.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노바디’‘미쳤어’ 등의 후크송도 모두 짧은 타악기 리듬을 활용해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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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 동시집 4』에 실린 시 ‘왜가리’. 이 그림글자가 시의 전문(全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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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동시집이 성공을 거둔 이후 신현림·안도현·도종환 등 기성시인들의 동시집 출간이 줄을 이었다. 통과의례처럼 “유명 시인을 앞세운 상업적 기획”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 세계를 갖고 있는 시인들이 동시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면 아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의 건반 수가 많아질 것”이란 이유에서 기성시인들의 참여를 환영했다.
단지 그가 신경 쓰는 부분은 “따분한 시, 교훈적인 시로 아이들을 지겹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난’처럼, ‘놀이’처럼 아이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자는 것이 그가 동시를 쓰는 목표다. 그래서 그의 동시는 중학교 1학년인 그의 딸 여래의 검열을 거친다.
“딸이 안 웃으면 몰고예요.
아이를 웃기는 것. 그것보다 큰 가치와 보람은 없을 겁니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첫댓글 감사히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