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 미국포교 동기 제공하고 미 동부 한국문인협회 토대를 마련한 이 계향 보살 (2)
/ 김형근
오성장군 김홍일 자유중국대사가 귀국했을 때 가회동 집에서 베푼 석찬. 앞줄 왼쪽부터 두 번째가 유석현광복회장, 공자의 72대손 孔 德成, 김 홍일 대사, 이 계향보살님 남편 김원규 의원, 뒷줄 중앙이 이 계향 보살님.
1950년대부터 불교와 인연
이계향 보살님의 불교와의 인연도 극적이다. 1950년대 말에 집안에 들어온 골동품과 불상이 인연이 되어 30대에 불교신자가 된 이 보살님은 조계종 종정이던 송광사 효봉 큰스님으로부터 여래성이란 불명을 받고 불교신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 후 숭산스님이 이끄는 달마회에서 삼보사 창건주 이한상거사와 부인 상품화 보살, 샌디에이고 초대 한인회장을 역임한 한국불교미술계의 알려지지 않은 거장 송두영 화백 등 미주한국불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인물들과도 달마회에서 만난 도반들이다. 1960년도부터 미국을 드나들던 이계향 보살님은 1965년 10월 하와이에서 열린 국제불교부인대회에 이방자 여사와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이 행사에서 이 보살님은 한국대표로 연설을 하였다. 뉴욕으로 이민온 후 숭산스님과 뉴욕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숭산스님을 동생 남편 김판기씨에게 소개하였다. 뉴욕 한인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음악가 김판기씨의 안내로 맨하탄 일본선원을 방문한 숭산스님은 미국에 잠깐 여행하고 가려던 마음을 바꿔 미국 포교를 결심하게 된다. 이후 숭산스님은 이 보살님 집에서 한달여 동안 지내시다가 로드 아일랜드로 가셔서 홍법원을 개원하고 미국불교 포교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이보살님과의 이러한 인연으로 숭산스님은 동구와 유럽,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시면서 이 보살님에게 보낸 엽서가 무려 30여통이다. 하와이에서 열린 국제불교부인대회에 참석하는 이방자 여사와 이계향 보살님을 전송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나오시기도 했던 숭산스님은 서울에서 가진 이 보살님의 [이계향전집] 출판기념회 때도 화계사 대중들과 함께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셨다. 법안스님과는 1970년대 초 뉴욕에서 처음 인연을 맺고 이후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법안스님의 초창기 미국생활시절 많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고자 애썼던 이 보살님은 뉴욕에서 독학으로 중국 고전문학을 공부하다가 의문점이 있을 때마다 법안스님에게 전화를 하여 많은 도움도 받았다고 회상하였다.
이계향 보살님의 출판기념식에 참석한 숭산스님과 화계사 스님들
신봉승, 한무숙 선생과 함께한 이계향 보살님 왼쪽
일제하 만주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꿈 많던 소녀시절을 보내고 해방과 더불어 조국에 들어와 20여년을 귀족의 삶을 살았던 이보살님. 그리고 다시 조국을 떠나 1970년 8월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그때부터 지금까지 36년간 같은 라치몬트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그간 벌였던 문학활동, 종교활동, 친교활동을 이제 조용하게 정리하고 있는 이계향 보살님. 그는 남은 생애를 불교신앙에 좀더 매진하며 미주현대불교 후원사업을 마지막 불사로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본지에서는 다음달부터‘이계향 전집’에서 글을 발췌하여 1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 보살님의 연보를 간략하게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1928년 6월 16일(음 4월 29일) 중국 간도에서 태어나 北滿洲 뻬이안(北安)에서 成長. 父親은 3대로 내려오는 한의사(韓醫師)였고 한학(漢學)과 묵화(墨畵)와 서예(書藝)에 독특한 재능을 겸비하신 분이셨다.
北安高女 2학년을 마치고 하르빈(哈爾濱) 사이꼬(霽紅) 高等女學校로 전학하여 졸업하고, 1945년에 創立된 만주적십자사 하르빈 의학원(滿洲赤十字社 哈爾濱醫學院)에 입학함. 2차대전 戰時 중이어서 이미 醫學院만 몇군데 있었으므로 終戰후에는 滿洲國立女專으로 계획한다 했으며 8월 10일까지 存續했다.
1945년, 8·15 해방으로 가족이 한국에 나오다. 1947년 9대독자 오빠가 죽고 이어 형부도 죽었다. 이해부터 대한민국이 수립될 때까지 미군정청(美軍政廳) 경무부장(故 趙炳玉 박사) 官房에서 근무하다.
1951년 10월, 6·25 전쟁 중에 피난지 부산에서 前室 소생 5남매를 두고 喪配한 김원규(金元圭)(3대·4대 자유당 국회의원)와 결혼.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다. 이후 부친이 1·4 後退 때, 강원도 묵호와 포항을 거쳐 부산으로 오시다.
1957년 부친이 별세하다(1898-1957).
1968년 모친이 별세하다.(1898-1968)
1970년 8월 아들 3형제를 데리고 뉴욕으로 移住.
1988년 3월 남편이 별세하다.(1910-1988)
2000년대 뉴욕에서 가진 일당스님 전시회에 참석한 이계향 보살님과 큰아들 김진모씨(오른쪽)
文學活動
1959년 [自由文學]誌에 [異國小女時節의 追憶] 으로 文壇에 데뷔.
著書
제1집 - [浮雲의 변두리] (수필집, 1963년. 凡潮社刊)
제2집 - [歲月의 그림자] (수필집, 1974년. 成文閣刊)
제3집 - [이마음 푸른 波濤] (書簡수필집, 1975년, 一志社刊)
제4집 - [뉴욕하늘 서울하늘] (日記體수필집,1976년, 螢雪出版社刊)
제5집 - [春秋戰國時代] (古典수필집, 1983년,隆盛出版社刊)
제6집 - [中共에 다녀왔습니다] (中共紀行文, 1988년, 隆盛出版社刊)
* [1988년 제 21회 文化公報部 추천도서]로 선정됨.
제7집 - [續 中共에 다녀왔습니다] (中共紀行文, 2001년, 隆盛出版社刊)
* 盧溝橋事件과 日本의 敗亡. 秦始皇帝의 生涯와 世界 八大奇跡의
秦兵馬俑. 楊貴妃의 生涯와 安祿山의 戀情 外.
제8집 - [한국 古典文學에 핀 漢文隨筆] (2001년, 隆盛出版社刊)
- 古代 隨筆文學의 起源. = 중국의 散文·일본의 散文· 한국의 散文.
- 高句麗의 乙支文德 篇.
- 新羅時代의 薛聰 篇. 慧超 篇. 崔致遠 扁.
- 高麗時代의 李仁老 篇. 李奎報 篇. 李齊賢 篇.
- 朝鮮時代의 徐居正 篇. 成俔 篇. 南孝溫 篇. 李 篇. 柳希春 篇. 四溟大師 惟政 篇. 金尙憲 篇.
- 朴趾遠 篇. 朴齊家 篇. 韓末四家篇(姜瑋. 李建昌. 黃玹. 金澤榮).
제9집 - [時空의 書]
花郞精神의 再照明. 朝鮮時代의 宮廷文學. 朝鮮時代의 閨房文學.
朝鮮時代의 紀行文學. 民族과 6·25 戰爭文學. 客地文學. 遺骨移民.
<李桂香全集>(全9卷 6冊)>을 刊行함.2001년 隆盛出版社刊.
經歷 - 한국文人協會와 한국 女性文學人會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와 미국본부의 회원
미동부한국문인협회를 創立하고,
初代·2代·3代 會長을 역임함(1989-1995)
北京大學(중국)·民族大學(北京所在)·大阪經濟法科大學(日本)·모스크바 國立大學 및 미시간 州立大學(미국) 등의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여 論文을 발표하다. [2006년 7월 1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