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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찾은 인연
조 춘 성(zenithhealth@hanmail.net)
마을은 오월의 따스한 봄볕을 가득 안고 설렘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초등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환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벌써부터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성싶다. 먼 길을 달려온 노독의 탓인가. 우선 고향에서 가져온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평상시에는 마시지 않는 술이지만 오늘만큼은 친구의 권함을 물리칠 수 없다. 한 잔 받아 마시니 알딸딸해 온다.
둘레 길에는 나뭇잎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의 푸른빛으로 치장하고 있다. 숲은 회색빛 도시의 삶에서 찌든 심신을 일시에 청량하게 해준다. 산행대장의 뒤를 따라 산길을 타박타박 걷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푸른 숲과 어울려 청청하다. 카메라를 맨 친구들은 시야에 들어오는 사물 하나하나에 포커스를 맞추노라 바빠 보인다.
‘지리산 둘레길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 위에 애환을 부려놓고 오갔을까. 삶의 기쁨도 즐거움도 아니, 수고로움도 모두 이 길에 부리고 운명처럼 이 길을 걸었으리라. 등짐을 멘 보부상들이 이 길에서 다리쉼을 했을 것이며, 산마을 처녀총각이 밤 마실 오갈 때 달빛에 기대어 더듬거렸을 길이다. 어찌 그뿐이랴. 역사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지 아니한가.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갯길에 올라 산모롱이에 조붓하게 자리한 마을을 바라보니,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갈림길에는 이정표와 함께 산악회 리본들이 다소곳이 매달려있다. 먼저 걸었던 이들의 따뜻한 손길이며 배려가 아닐까싶다.
민가가 보이는 언덕길 위에는 이곳 사람들의 보물섬 같은 다락 논들이 오월의 햇살아래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스트레칭이나 하듯, 서로 어깨를 맞대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다락 논은 이들에게 생존이요, 눈물이리라. 돌덩이 하나하나에 그들의 숨결과 애환이 다 녹아있어 보인다.
시간이 거지반 점심시간에 이르자, 차츰 허기가 느껴졌다. 둥구재를 넘기 직전의 황토방 간이식당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단숨에 동동주 한 잔을 들이켰지만 허기가 여전하다.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마음씨 고운 아낙네가 잽싸게 담아내온 쌀밥과 묵은 김치, 그리고 산채나물로 허겁지겁 빈 창시를 채우고 나니 행복감으로 포만하다.
둥구재는 경상도 함양 땅과 전라도 남원이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이다. 옛날 함양에서 남원고을로 시집 간, 신부는 가마를 타고 둥구재를 넘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래, 둥구재는 산마을 사람들의 아리랑길이요, 소통의 길일 성싶다.
마을로 접어드는 큰 도로는 대부분 콘크리트길로 잘 다듬어져 있다. 산허리를 허물어 시멘트로 포장한 신작로다. 찢기고 상처 난 자리에 새 살이 돋아, 이름 모를 꽃들이 각기 다른 미소와 향기를 품으며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다. 배고픈 시절에는 이것들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니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무한한 사랑과 경이로움에 놀라울 뿐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오늘의 트레킹 종착지인 금계마을에 도착했다. 인원확인이 끝나자 차에 올라 이동을 시작했다. 계곡을 끼고 달리는 애마도 신선한 공기를 실컷 마신 탓인지 조용히 숨을 고르듯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내가 지리산을 처음 찾은 것은 이십년 전 여름날이었다. 친구와 구례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중산리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석대피소에 이르자 태풍이 심하게 불어 계획을 취소하고 백무동으로 하산해야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백무동 길을 오갔지만 정거장 역할 정도였다. 오늘은 그렇게 하룻밤 쉬어가기를 소망했던 펜션에서 쉼 없이 흐르는 계곡물소리 들으며 명상에 잠겨보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다음날 아침, 모닝콜소리에 일찌거니 잠에서 깨어났다. 벽송사 길을 탐방하기로 했다. 벽송사는 승용차로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여 산사 뒤쪽으로 돌아가니 희미하게 나있는 좁다란 숲길이 눈에 띄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니 퀭한 눈의 모형 빨치산이 매복초소에서 선하품 하고 있고, 그 뒤편에는 산죽 밭이 질펀하게 펼쳐져 있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는 빨치산들이 부상을 당하면 산죽 밭, 비트(비밀아지트)에서 숨어 지내며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낮에는 군경합동토벌군에 쫓겨 다녀야 했으며, 밤이 되면 살인적인 추위와 싸워야 했으니 지리산에 갇혀 생쥐 꼴이 된 이들에게는 불을 보듯, 소멸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으리라.
하산하여 산사에 들어서니, 금방 기침起枕하여 예불을 준비하는 선방스님과 공부하는 중생이 더러 눈에 띄었다. 스님과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벽송사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한국전쟁 때 남부군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어 당시 토벌군에 의해 소실됐으나 다시 복원된 절이라 했다. 높은 산속에 파묻혀 있어, 찾아오는 불자가 별로 없다며, 마침 사월 초파일이 가까워졌으니 선방에 가서 예불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니 선방문고리만 잡아도 부처님의 은혜가 통한다며 시주를 부탁했다.
동절기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여 혹자들은‘지리산의 툰드라’로 일컫기도 하는 칠선계곡위에 장중하게 서있는 벽송사는 천왕봉정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비록 규모가 작고 초라해보였지만 억겁의 세계가 숨겨져 있어 보였다.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쓰러진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칠선계곡을 바라보니 가슴이 시리다 못해 아려왔다. 휑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차장으로 내려서니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길에서 찾은 인연들이 오래도록 마음 안에 앙금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첫댓글 저도 지리산을 몇차례 다녀온 적 있지만 조춘성님 글 읽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겨울 지리산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밤이네요!!!
강종숙님!
안녕하시지요.
행복한 연말되세요.
ㅋㅋ 더듬거렸을... 이 부분이 인상적인데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종종 들리겠습니다.
산죽밭과 비트 ..그길을 걸으며 마음이 찹팝했던 기억이 납니다..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지리산 산행기 보니 마음이 먼저 달려갑니다..올 봄 둘레길을 걸어 봐야겟습니다..감사합니다
그러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