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셔널 지오 그래피 선정 죽기전에 가봐야 할 곳 50선 자연이 차려준 밥상 테이블 마운틴 등정기 # 2
새벽 여섯 시, 이제 세 명의 노매딕들이 장비를 꾸립니다. 노매드 아프리카 지사장과 본사 여행 팀장, 그리고 뚜벅이가 세 명의 멤버입니다. 장비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워낙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일정이다 보니, 채 길도 들여지지 않은 운동화와 생수, 사과 세 알, 그리고 끝. 장비로 따지면 북한산 오를 때보다 더 간소합니다.
테이블마운틴 등반은 위험하다고 가이드 북에 쓰여 있다며 뒤로 빼던 여행팀장도, 2년 이상 이곳에 거주하면서 등반은 생각도 안 해봤었다고 말하던 지사장도, " 애인과 산은 서로 살을 부벼야 자기 것이 된다"는 뚜벅이의 쌍팔년도 철학에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계급이, 깡패인거죠.
케이블카 정거장을 가기 전에 등산로가 보입니다. 돌계단으로 난 이 등산로는 백인들이 조깅과 산책길로 애용할 정도로 크게 무리가 없는 코스입니다. 끝 지점에서 좌측으로 돌면서 본격적으로 테이블마운틴의 산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싱그런 새벽풀의 냄새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해풍, 아프리카 특유의 기분 좋은 새벽 온도가 산행의 시작을 산뜻하게 해줍니다. 대륙의 끝 산을 오른다는 묘한 상징감도 설레임의 큰 원인입니다.
이 산은 마치 바다 속에서 융기한 섬과 같습니다. 덕분에 등반자는 파노라마처럼 사방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전망에 시선이 어지럽습니다.
안개로 인해 더욱더 영험함이 느껴지는 등산로의 중턱에 벤치 하나가 바다를 보며 놓여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벤치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벤치는 누군가를 추모하는 벤치입니다.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Barney Hirschsom.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혼의 여행길에서 즐겨 이 벤치에 앉아있을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케이프타운의 거대한 식물원, 컬스텐보쉬 보타닉 가든(Kirsten Bosch Botanic Garden)에서도 모든 벤치에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벤치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봉우리의 정상입니다.
이런 식의 탁상 모양 산을 남미에서는 테푸이(tepuyy, tepui)라 부른다고 합니다. 위는 평평한 분지지만 그 테이블의 다리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입니다. 이 기암괴석들이 안개와 구름을 머금고 신선처럼 솟아있습니다.
그 절벽을 끼고 돌면 본격적인 테이블마운틴 산행이 시작됩니다. 점령군처럼 일시에 찾아온 한 무리의 안개가 몽환적인 산행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테이블마운틴의 등정이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면 그중에 야생화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산 정상에서도 수많은 야생화를 보았고, 식물원에서도 생전 처음보는 꽃과 식물을 보았지만 테이블마운틴 산길의 오름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아프리카 야생화를 보게 됩니다. 원시의 태양과, 시원(始原)의 바람과 순결한 수분으로만 자라고 있는 말 그대로의 야생화입니다. 수줍지만 당당하게, 수고를 자처한 등반객에게만 제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어느 곳은, 암벽과 야생화와 나무와 안개가 단정하게 연출된 영화 속 세트장 같습니다.
나름 편안한 능선의 산책길을 지나자, 바로 마운틴 정상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암벽로가 등장합니다.
올라봅니다.
그러나 날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안개가 시야를 가린 이 험난한 바위를, 직선으로 타고 올라간다는 것은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까 등반로에서 만난 한 영국여인의 경고가 떠올라 겁도 납니다. " 얼마 전에 미국 소년 하나가 암벽을 타다가 떨어져 죽었다우"
자세히 보니 경고는 표지판도 하고 있네요. " 바위가 가파르고 위험하니 정상까지는 플라테클립 골지PLATTEKLIP GORGE를 추천한다. 경고 무시하고 까불다 다쳐도 니 팔자!"
말 들어야죠.
추천 루트로 가는 길은 암벽 등반이 아닙니다. 다시 긴 능선을 따라서 풍경 감상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저 아래 케이프타운 시내와 켐스베이, 워터프론트 등이 병풍 한 폭에 담겨진 듯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 능선에서는 훨씬 더 수려하고 생생한 절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계곡과 작은 폭포 등을 만나며 계속 해서 테이블 마운틴의 다리 부분을 더듬어갑니다.
안개는 더 짙어져서 우리가 지나간 길을 지우개처럼 지워버립니다.
기분 참 묘해집니다. 지나온 길을 감춰버리는 케이프타운의 안개. 꿈결을 헤맨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요? 그러나 산은 어쨌든 오르게끔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산입니다.
암벽은 아니지만 산을 치고 올라가야 할 차례입니다. 돌길 사이사이로 등산길이 나있습니다.
한 호흡 씩 쉬는 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위대한 산이 서서히 제 몸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한 참을 오르는데도 단 한 사람의 등반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초행길이 주는 거리감각의 무뎌짐, 위치에 대한 불안감에 더해 안개까지 더 빨리 이 산을 장악하니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오를수록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의 변화가 겁없는 산행시도를 슬쩍 후회하게도 만듭니다.
시간은 벌써 오전 9시를 넘었습니다. 정상까지 3시간 반을 예상했는데 시간은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는 안개대로 심해지니 여유를 부릴 틈이 없습니다. 죽어라 올라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기...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의 구조, 그 끝을 비추는 듯한 광명이 얼핏 보입니다. 아아, 반갑습니다. 이 빛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요?
빛의 중앙으로 파고들어갑니다. 완전하게 등산의 끝을 알리는 지점에서 빛은 시작되었습니다.
PLATTE KLIP GORCE 정상입니다. 기념석이 하나 오롯하게 서있습니다. 정상은 그렇게 평화롭습니다.
정상에서는 정상이어서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 있습니다. 그 풍경을 보려고 사람들은 끝까지 오르고 또 오르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상은 테이블 마운틴의 식탁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 식탁 위를 걸어가면 케이블 카 정거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테이블 마운틴 꼭대기입니다. 땀흘려 오른 자가 맞이하는 아침 밥상입니다. 기계의 힘으로 오른 후보다 더 신선하고 더 식욕을 자극하는 재료들이 그득합니다.
안개가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서는 꿈길이었고, 산 오름길에서는 두려움이었던 안개가 이 곳 식탁에서는 은혜로운 구름과 이어져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변합니다.
구름. 테이블마운틴의 구름. 하늘과 산이 만나는 테이블마운틴에서 구름은 그 얼마나 고혹적이고 구체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저 아래 대서양의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오케스트라가 되고 구름은 백조처럼 발레를 시작합니다.
초행의 홀로 여행자라면 위험할 수 있지만, 전문 가이드가 있거나 여러 명의 등반이라면, 적극적으로 등반을 추천합니다. 어떠신가요? 세상에서 가장 먹음직한 밥상을 직접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
출처: 명랑여행총본산- 노매드21(www.nomad21.com 원문보기 글쓴이: 노매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