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계단은 피난시절의 애절함과 설움 등 애틋한 아픔과 향수를 갖고 있다. 40 계단은 계단이 40 개여서 이름 붙여졌는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뚜렷한 것이 없다. 지금의 중앙동 지역은 거의 바다여서 산 중턱인 영선고갯길로 넘어 다녔는데 1909년 영선고갯길의 산이 영선산인데 이 산을 깎아 중앙동과 초량 앞바다를 메꾸어 현재의 중앙을 택지를 만들었는데 당시 바다를 메울 때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해방 후의 귀환동포와 6.25 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이 이 주위에 판자촌을 이루고 살아 영주동과 동광동 판자촌으로 갈려면 이 계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구호물자를 내다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도 유명했다. 40 계단 가는 길에는 피난시절의 조각상이 있어 피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젖을 물린채 아이를 데리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 산중턱이라 물을 길러 나르는 모습 지게꾼의 모습 그 시절에 자력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고 있다.
뻥튀기를 하는 보릿대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앞의 남매인듯 보이는두 어린이가 귀를 막고 있는 장면이 우리의 어릴적 기억을 떠울리게 한다.
요즘 애들이야 먹거리가 풍부하게 넘쳐나 뻥튀기 같은건 아예 쳐다 보지도 않지만 뻥하면 튀어나오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우리는 박상이라고 하였지.
이곳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경상도 아가씨라는 대중가요가 나돌고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부터인데 경상도 아가씨란 노래 가사에 40 계단이 나온다. 40 계단에 기대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래었고 밤이 되면 부둣가를 바라보며 배들의 불빛을 보고 향수를 달래었기에 대중가요가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경상도 아가씨의 노랫말과 계단의 유래가 새겨져 있는 기념비가 있는 계단이 원래의 40 계단이 아니다.
원래의 계단은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지금은 주위에 집을 지으면서 좁은 계단이 되어 옛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지만 아코디온을 연주하는 조각상 뒤에 보이는 함속에 음향기기가 들어 있고 가운데 전자 센스가 부착되어 손을 갖다 대면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나온다.
경상도 아가씨
노래 박재홍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이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고향길이 틜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사 하더래도 살아보세요 정이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요에맺힌 내고장이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영도다리 난간우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던날 밤 옷소매를 끌어잡는 경상도 아가씨가 서러워서 우는구나 그래도 잊지못할 내고장이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40 계단은 피난시절의 애절함과 설움 등 애틋한 아픔과 향수를 갖고 있다. 40 계단은 계단이 40 개여서 이름 붙여졌는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뚜렷한 것이 없다. 지금의 중앙동 지역은 거의 바다여서 산 중턱인 영선고갯길로 넘어 다녔는데 1909년 영선고갯길의 산이 영선산인데 이 산을 깎아 중앙동과 초량 앞바다를 메꾸어 현재의 중앙을 택지를 만들었는데 당시 바다를 메울 때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해방 후의 귀환동포와 6.25 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이 이 주위에 판자촌을 이루고 살아 영주동과 동광동 판자촌으로 갈려면 이 계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구호물자를 내다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도 유명했다. 40 계단 가는 길에는 피난시절의 조각상이 있어 피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젖을 물린채 아이를 데리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 산중턱이라 물을 길러 나르는 모습 지게꾼의 모습 그 시절에 자력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고 있다.
뻥튀기를 하는 보릿대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앞의 남매인듯 보이는두 어린이가 귀를 막고 있는 장면이 우리의 어릴적 기억을 떠울리게 한다.
요즘 애들이야 먹거리가 풍부하게 넘쳐나 뻥튀기 같은건 아예 쳐다 보지도 않지만 뻥하면 튀어나오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우리는 박상이라고 하였지.
이곳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경상도 아가씨라는 대중가요가 나돌고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부터인데 경상도 아가씨란 노래 가사에 40 계단이 나온다. 40 계단에 기대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래었고 밤이 되면 부둣가를 바라보며 배들의 불빛을 보고 향수를 달래었기에 대중가요가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경상도 아가씨의 노랫말과 계단의 유래가 새겨져 있는 기념비가 있는 계단이 원래의 40 계단이 아니다.
원래의 계단은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지금은 주위에 집을 지으면서 좁은 계단이 되어 옛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지만 아코디온을 연주하는 조각상 뒤에 보이는 함속에 음향기기가 들어 있고 가운데 전자 센스가 부착되어 손을 갖다 대면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나온다.
경상도 아가씨
노래 박재홍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이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고향길이 틜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사 하더래도 살아보세요 정이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요에맺힌 내고장이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영도다리 난간우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던날 밤 옷소매를 끌어잡는 경상도 아가씨가 서러워서 우는구나 그래도 잊지못할 내고장이 이북고향 언제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