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실수를 저지른 직원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물었더니, “사표를 내겠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옮길 직장도 정하지 않고, 사표를 내는 일을 큰 형벌로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오너도 아닌 직원이 이렇게‘사표로서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일은 엎질러진 물을 그릇 안에 도로 담겠다는 말처럼 부질없다. 회사를 스스로 떠나는 행위는 사적 처벌일 뿐이다. 벌어진 문제를 동료들에게 고스란히 남겨두었으니, 떠나면서 ‘책임졌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전문 직장인으로서 진정 책임지는 자세는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회사의 공정한 심판을 기다리는 태도가 옳다. 실패를 직원의 학습 투자로 간주할 지, 징계가 필요할 지 여부는 조직이 이치에 맞게 정할 일이다. 회사의 처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가서 거취를 결정하면 된다. 기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더욱 위험에 노출되고 실수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바닥부터 성공한 경영자라면 이를 잘 알고 있다. 실수를 통해 역량이 더욱 향상된 귀한 인적 자원을 책임지라고 내보내기만 하는 경영자는 역사의식이 없는 졸렬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대개 직장인에게 권한과 책임은 항상 붙어 다닌다. 막 나가는 회사는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따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때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를 깊이 연구해 본 적이 있다. 책임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responsibility이고 하나는 accountability이다. 혹자는 전자를 책임(성), 후자를 책무(성)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두 단어의 영어 뜻을 일반인이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책무성(accountability)'이라 함은 조직 활동의 부정적 결과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근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역할과 관련된다. 혹자는 이를 ‘설명 책임(책무)’이라고도 한다. 이에 비하여 ‘책임성(responsibility)’은 권한과 매칭된 ‘관리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념은 양도 가능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책임성의 경우 권한과 함께 대리인에게 관리 책임을 양도할 수 있지만, 책무성의 경우는 권한은 양도할 수 있어도 잘잘못을 답하는 설명 책무는 절대로 양도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책무성은 오너십과 떼어 낼 수 없는 언표이다.
책무성이 현대적 의미의 설명책임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책무(accountability)가 회계와 밀접히 관련된 것은 영어 단어를 보아 추정 가능하다. 회계는 부기(bookkeeping)에서 시작되었다. 더브닉(Melvin J. Dubnick, 2002)은 현대적 책무성의 유래로서 1066년 노르만의 영국정복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영국왕인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자, 친척인 노르망디 공작 윌리웜이 왕위를 주장하고 영국을 정복한다. 20년이 지나 윌리엄 I 세왕(William, the Conqueror: 동일인물)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국의 모든 재산을 등록하는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이렇게 완성된 재산 대장을 ‘Domesday Book’이라 불렀다. ‘domesday’는 ‘doomsday(심판의 날)’의 고어이다. 1086년 1년 만에 완료된 영국민의 재산 센서스 장부는 왕국을 경영하는 기초 데이터가 되었으며, 윌리엄왕은 비로소 영국을 완전하게 장악하게 된다. 왜냐하면 왕의 대리인이 방문하면 영주나 백성은 재산이 늘어난 원인과 줄어든 변동이유를 설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지속가능성, 투명성과 아울러 조직 거버넌스의 핵심 목표의 하나인 책무성의 최초 실현으로 간주한다.
조직에서 관리책임자와 설명책무자는 동일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리책임자는 대리인으로서 주인이 부여한 권한의 범위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책임도 한정적이다. 관리책임자에게 문제가 된 일을 왜 했는지 물으면 상사가 시켜서 했다고 답하면 그만이다. 반면에 설명책무자는 그르친 일이 벌어진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없다. 질책을 받을 때 아래 사람을 손가락질 한다면 당신은 관리책임자일 뿐 오너인 설명책무자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리더라 함은 부하에게 가는 힐난의 검지 손가락을 잡아채서 이를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실수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내 탓이오” 리더십을 조직원들이 내재화 하였다면, 그 조직은 오너십이 넘치는 강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과 싸우고 경쟁하는 일은 무모하다.
조직학습에서는 단일순환 학습과 이중순환 학습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아지리스(Chris Argyris)가 주창한 이론이다. 관리책임은 주어진 틀 안에서 효율을 도모하는 단일순환 학습의 범주에서 논의되는 매니지먼트의 개념이다. 설명책무는 틀 파괴적인 대안을 창조하는 이중 순환 학습의 범주에서 발현되는 거버넌스의 개념이다. 최근 경영학 분야에서 화두가 되는 홀라크라시(Holacracy)형 조직들이 조직원의 권한 및 책무성 강화, 이중순환 학습의 증대, 거버넌스와 같은 핵심주제를 내재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당연시 되어온 위계적이고 중앙 집권적 인 기업의 통제 경영은 4차 산업혁명이 앞 당길 미래 사회에서 조직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미시권력을 가진 조직원 전체의 두뇌와 열정을 최고로 활용하는 새로운 조직형태의 출현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손가락질 하는 책임경영의 시대에서 “내 탓이요”하는 책무경영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끝>
ZDNET 칼럼 전체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