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다시 장만하고
글 장 순희
집 없는 사람들은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신혼 초가 1994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가 신혼 이였을 것이다.
결혼 초는 원주시 단계동에서 6년을 살았다. 그리고 태장동으로 이사를 해서
2년 정도 살다가 대흥 아파트를 구매하게 되었다. 태장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바다약국 골목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분식집을 하면서 태장동으로
오게 되었다. 헌 기와집을 전세 2,000만원에 얻어 살림집과 같이 부터 있어 딸아이를
유치원 보내고 난 다음 나는 분식집을 운영을 했었다.
그 때는 태장동에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주로 군인들 대상으로 먹거리 음식점들이
운영되었던 시절 이였었다.
나 역시 주손님이 군인들이라 김밥과 라면 , 떡볶기가 주로군인들이 고객 이였었다.
나는 음식을 만들어도 내 가족과 내가 먹는 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분식점을 차리고는 그런대로 장사가 잘되었다. 한 2년하고 나니 집주인인 전세로 있던 것을
월세로 하자고 해서 분식점은 그만두고 다시 다른 음식점을 얻어 이사를 했다. 그러다 그 집에서는
오리고기와 삼겹살을 팔었는데 처음에는 그런대로 아는 지인들이 고객이여서 잘 되었는데 1년도
안되어 장사가 잘 안되어 그만두고 대흥 아파트를 구매했다.
구매하고는 한 2년 동안 집에서 글 쓰며 책 읽으며 소영 소희 학교 보내고 그랬었다.
그러다가 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서 공부만 하기는 주머니 사정이 여유 치 못해 남의 음식점 서빙을 다녔다.
한 3년 동안 서빙을 다니다가 다시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아 나의 가게를 내야 공부를 할 것 같아
태장동에 원주곱창이라는 작은 가게를 얻어 곱창음식을 하면서 다시 국어국문학과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국어국문학을 공부하면서는 학우님들과 많은 교류를 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글 무리여행도 다니며 또 국문학과 행사에 참석도 하고 그런대로 뜻 있게 보냈는데 국문학과는 졸업을 못했다.
곱창음식업을 하다가 누구 말다나 다 말어먹었다.
가게를 단계동으로 넓히고는 곱창음식업이 잘안되어 원주곱창은 폐업하고 다시 문화교양학과를 편입해서
식당 서빙을 용역으로 다니면서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했다. 즉 대학교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교학사학위를 취득하고는 대학원을 진학원서를 넣었다.
행정학과 대학원
행정학과는 문화교양학과를 공부하면서 행정학과랑 반반씩 신청하여 행정학학과 과목을 더 많이 공부한 것 때문에
대학원은 행정학을 선택했었다.
행정학을 공부할 때는 나의 가게 태장동에서 청마루를(처음에는 고기앤술로 오픈했다가 나중에 상호변경으로 청마루)
오픈하고 대학원행정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7년 입학해서 2019년 여름학기 졸업을했다.
장순희 나의 이미지는 차게 보인다.
그러나 막상 나를 대하면 따듯한 성격이다.
친정 부모님이 늘지 않게 나를 나아줘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남들에게 어려 보인다.
애들 아빠와 내가 구매했던 집을 매매했었던 것은 친정오빠 장병열 오빠에게 대출을 해준 것과 원주곱창 할 때 망해 마련했던
아파트를 팔어 어느 정도 은행부채를 값고 나머지는 신용회복을 해서 값았다.
그리고 난 다음 다시 내 집을 마련한 것은 장순희 내가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어 내가 많이 다쳤다.
허리 척추 골절 1번이 완전 부려졌을 정도로 다쳤었다.
그래 한 2년 동안 물리치료를 다니다가 내가 들었던 내 자동차보험회사랑 합의금으로 사천오백정도 합의금으로 합의되었다.
그 합의금으로 대출금 값을 까 생각하다가 남의 집에 임대료 주느니 차라리 내 집을 사면
그 임대료는 집 대출금으로 내면 내 집이 되기 때문에 집 구매하는데 사용하기로 해서 내 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아마 나는 딸 소영 소희 대학교 그리고 내가 대학원을 가지 않았다면 좀 더 일찍
내 집을 마련하지 않았을 까 하면서 지금 마련한집에 오래도록 살며 나의 노후를 대비하고 싶다.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집 없는 사람들은 내 집 마련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데
지난번 LH 공사 직원들처럼 땅 투기 행각을 하는 짓은 두 번 다시 없기를 바램 을 해본다.
어떤 사람들은 집한 채 같고 살아가는데도 어렵게 집을 마련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임대사업을 하면서도 살아간다.
우리나라 옛 법에는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살아도 되는데 요즘에는 두 채 이상 가지면 세금 폭탄을 내린다고 한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집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는 정부정책일 것이다.
이 정부정책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유지되어 집 없는 국민들에게 내 집 한 채식은 가지고 살도록 유지해주길 바라면서
장순희 진기영부부의 나의 집 마련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