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종류의 광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왜 나만 이레 ’이런 말을 자주 하고 듣곤 합니다 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없어서 걱정 많으면 많아서 걱정 자식이 없으면 없어서 걱정 있으면 있어서 걱정 비가 안오면 안와서 걱정 자주 오면 자주 와서 걱정 그런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광풍을 만나면 이 광풍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피하거나 외면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그래 나에게도 이런 어려움이 닥칠 수 있고 이 어려움이 오래 갈 수 있다’이 광풍을 인정하게 되면 이 광풍을 물리치고 이겨내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태풍이 왜 오느냐, 하나님은 이런 태풍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해마다 태풍의 피해 심각하니까요? 그런데 만일 태풍이 없으면 바다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마다 태풍이나 풍우 때문에 피해를 입지만 이런 태풍이나 폭우가 없으면 그 이상의 몇 배 아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태풍이 불어야 바다가 뒤집어져서 산소를 공급합니다. 그래서 바다에 플랑크톤이 살고 플랑크톤이 살아야 고기가 살고 고기가 살아야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인생의 광풍은 이와 마찬가지라 봅니다. 그래서 인정하자는 말이지요. 광풍이 있어서 고통과 어려움은 있지만 이 광풍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더 깨닫게 되고 감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인생의 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어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크게 복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울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이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핍박이 결국 주님을 더 붙들게 되고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쌓이는 것처럼 인생의 광풍이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합니다.
여기에 인생의 광풍을 만난 사람 있습니까? 인간관계속에서, 질병 속에서, 경제적인 면에서, 환경적으로 광풍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까? 챨스 스펼전 목사는 인생의 광풍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면 주님의 마음을 신뢰하라’ 누구에게나 찿아 오는 이 광풍을 우리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이겨내느냐 하는 문제는 깊이 있게 생각해야할 부분입니다. 인생의 광풍 속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내가 누구인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알아야 이 광풍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대학생이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 수강신청을 하는데 들어야 될 과목을 다 신청을 했는데 한 과목이 남길레 야생조류학을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 보니 강의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강의를 집중하지 못하고 졸다가 다른 책을 펴놓고 보다가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중간고사를 취루는데 시험 내용이 네 쌍의 새 다리를 그러놓고 여기에 맞는 새를 그려 넣어 라는 것입니다. 새 다리를 보고 새를 그려 넣기는 해야 되는데 아는 것이 없으니 대충 그렸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 던져 주듯이 제출을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교수님이 보니까 빵점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넣지 않을 것을 보고 나가는 학생을 불렸습니다. ‘학생 학생은 빵점인데 그래도 이름을 써 놓고 가야지’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학생이 뒤를 돌아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하는 말이 ‘제 다리를 보고 이름을 알아맞히어 보십시오’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면 인생을 멋있게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님이 배를 타고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시며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주님은 피곤하셔서 배 밑에서 주무시고 한 참을 가다가 광풍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찌 할 수 없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 광풍을 잠잠케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배 밑에서 주무실 때 베개를 베고 주무셨다고 마가복음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꾸벅 꾸벅 졸고 계신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복음을 전파하시고 다음의 사역을 위해 푹 주무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는 지역특정상 쉽게 광풍이 몰려오는 지역입니다. 해저 180이나 되고 가파른 언덕 때문에 광풍이 쉽게 옵니다. 그런 점으로 보아 제자들은 이런 광풍을 많이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바다와 광풍의 생리를 잘 아는 역전 노장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노력으로 이 광풍은 막을 수 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광풍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 광풍을 자기 능력으로 힘으로 해결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힘으로 안 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매서운 광풍으로 인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냥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풍의 속성을 잘 아는터라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다급합니다. 공포의 절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다급하게 깨우는 제자들의 소란으로 잠에서 깨어나 바다를 보시고 꾸짖어 셔서 광풍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광풍을 잠잠케 하셨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오히려 더 큰 광풍이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몰아쳤습니다. 제자들은 오히려 더 무서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희가 두려워하고 귀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사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더 큰 광풍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가 누구인가 다시 한번 정리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희생시키며 우리를 사랑하신 자들입니다. 이사야 43장3절에 애굽의 보화도 구스의 지정학적으로 좋은 위치도 스바의 아름다움도 너희들을 위해 다 대속물로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천지를 창조했고 우리를 위해서 식물을 내었고 동물들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면 예수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왜 이런 위험에서 건져 주시는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광풍을 잔잔케 하셨다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보여주신 것은 이런 능력의 주님이 내 인생을 붙들어 주시 않겠는가? 내 인생을 인도하지 않으시겠는가? 다시 한번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요 주되신 것을 명백하게 가르치기 위해 시청각 교육을 시킨 사건이 광풍을 잔잔케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9장 20절을 가면 드디어 제자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듣게 됩니다. 내가 누구이며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를 깨닫게 되는 사건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광풍이 찾아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를 본문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의 광풍이 찾아올 때 맨 처음 주님께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하는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이 안전수칙을 설명합니다. 이 안전수칙을 승무원들이 나와 설명하려고 하면 그 설명을 듣는 것이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으로 인식 될까봐 그런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항 측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승무원이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이 비행기가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되면 천정에서 자동으로 산소마스크가 내여옵니다. 그러면 그것을 배꼽에 되고 호흡을 하면 됩니다.’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누군가가 설명을 잘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고 웃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안 듣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남이 나에게 칭찬을 하면 10가지 정도는 기억을 한답니다.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 그 이야기를 할 때 언제이며 몇 시쯤인지, 그리고 누구누구가 함께 들었는지, 또 누구누구가 그 말에 동조를 했는지, 그때 누구누구는 무표정 이였는지 상세히 기억을 하는데 대충 10가지를 기억한답니다. 그리고 유익한 약속은 6가지 이상을 기억한답니다. 몇 시에 누구를 만나게 되어있고 장소는 어디고 어떤 사건 때문에 만나고 하는 세부적인 것 까지 잘 기억을 한도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 이외의 것들,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것들은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가끔씩 저번 주의 설교가 무엇 이였는지 물어보면 잘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내용에서 은혜를 받았습니까? ’하고 물어 볼 것 같으면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고 하여튼 은혜받았습니다’하는 식입니다. 하여튼 늘 감사하지요 제 탕해도 괜찮으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말씀만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행할 바입니다. 이 말씀만 기억한다면 풍랑은 오지만 광풍은 맞이할 수 있지만 절대로 빠져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네 믿음이 어디있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 왜 내 말을 믿지 못하느냐 왜 내가 약속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하는 질책이 오늘도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제자들은 광풍이 오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현실만 보이고 광풍의 무서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만난 광풍에서 모습이라면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셔야합니다.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영생을 주시위해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러면 예수께서 내 인생을 위해 무슨 약속을 해 주셨는가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믿으십니까? 내 인생의 청사진을 이 시간에 다시 꺼내여 놓으시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몇 년 전입니다. 예본이가 초등학교 3-4학년정도 되었을 때라 여깁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데요 잠을 자야 되는데 다들 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현관에 불이 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본이에게 ‘나가서 현관 불 좀 끄고 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본이가 무서워서 갈 수없다는 것입니다. 저가 그 말을 듣고 예본이에게 ‘예본아 주님이 어디에 계시지’그랬더니 ‘아이, 알았어!’그러면서 마지못해 나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이 안 들기를 바랍니다. 흔히 하는 목사의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본이는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본이 마음에 계시고 그러니까 현관을 나가도 예수님이 함께하시니까 무서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가서 현관에 불을 끄고 와라. 이런 말을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미리 간 것입니다. 믿고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킬 도구로 말씀을 사용했다고 믿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 위로하기 위해서 흔히 하는 말이라고 듣지 마십시오. 이럴 때 목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는 식으로 말씀을 듣게 되면 변화는 없습니다. 말씀 앞에 좀더 겸허한 자세로 이 말씀을 받아 믿고 이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하신 이 말씀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과 약속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시킬 만큼의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가 날마다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개인 개인을 두고 원하시는 삶을 계획하시고 계십니다. 분명히 내가 누구며 주님이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들의 청사진 속에 주님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인생의 광풍이 찾아올 때 공포가 아닌 믿음의 자세로 주님께 그 문제를 들고 나가야합니다. 차분한 자세로 그러니까 광풍이 있음을 시인하자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인생의 선장이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의 인생 속에 광풍을 만나도 주님이 동시에 타고 있는 인생입니다. 사실 우리의 선장이심을 보이기 위해 우리에게 광풍을 보내시기도 합니다. 허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포는 불신이며 의심입니다. 한국 사회문제 심리학회의 학회지에 20-30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의 결과를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설문내용은 ‘요쯤 어떻게 지내십니까?’하는 질문인데 그 질문에 60%가 불안하게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불안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정치, 경제, 취업문제로 불안하고 사랑까지도 불안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불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본다든지 차가 자기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놀랠 때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안정을 찾습니까? 부모 품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최선을 다해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광풍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면 이 문제 때문에 놀래고 힘들었든 부분을 가장 안정을 되찾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주님께 가자고 나온 그 자세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귀중하게 깨달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실 광풍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광풍을 믿음으로 봅시다.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을 하나 주어다가 농가 헛간에 있는 암탉둥지에다 넣었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한 배의 병아리들과 함께 부화하여 함께 자랐습니다. 독수리는 스스로를 닭이라고 생각하고 평생토록 닭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땅을 헤지어서 벌레와 곤충을 잡아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닭들처럼 꼬꼬댁 꼭꼭 수다를 떨었습니다. 때로는 날개를 파닥여서 공중으로 몇 길을 날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독수리도 늙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하늘에 떠있는 멋진 새 한 마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단단한 금빛 날개를 별로 퍼덕이지도 않은 채 세찬 기류를 타고 당당하게 날고 있었습니다. 늙은 독수리는 경탄하는 눈으로 새를 올려다보며 ‘저 새 이름은 뭐지? 하고 물었습니다. ‘저건 새들의 왕인 독수리야’닭들이 말했습니다. ‘저 새는 하늘에서 사는 새야 우리는 땅에서 사는 새고’ 독수리는 일생을 닭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자녀처럼 살아갑니다.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본분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고민을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 앞에 맡기는 결단을 하십시오. 모든 문제는 주님이 해결하심을 깨닫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광풍이 올 때 영적 근육이 단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광풍 때문에 더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도대체 저가 뉘기에’예수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광풍을 만나면 그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결과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광풍 때문에 주님께 찾아온다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분만 붙들고 있다면 내 마음에 무서운 광풍이 일게 됩니다. 주님은 삭게오를 향하여 ‘삭게오야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는 이 말씀에 삭게오의 가슴에는 엄청난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그는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삭게오의 이런 행동은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인생의 광풍을 향해 명하십니다. ‘잔잔할 찌어다’그러시면서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인생의 광풍으로 믿음을 회복시켜주시는 믿음의 광풍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대면한다면 예수님 앞에 나와 오랫동안 침묵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주님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면 분명히 우리 가슴에 엄청난 광풍을 발견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광풍만 몰아친다면 영적능력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엄청난 바람이 불 것입니다.
샬롬 산업대표이사 김정매씨의 간증입니다. 그의 회사는 신선초 분말녹즙을 가공하여 파는 곳입니다. 한 동안 사업이 잘 되었는데 어느 날 나주에 있는 공장에서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황급히 나주 공장으로 가 보니까 소방차는 십 여대가 이미 와있는 상태였고 공장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김정매씨는 이런 상황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않아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런 아픔을 주시는 것입니까? 저가 얼마나 힘들게 새운 공장인지 하나님이 아시잖아요?’그러면서 주저앉아 있는데 소방관 한 사람이 오더니 ‘소방차가 5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물건 하나도 못 건지고 다 탔을 것입니다’그러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김정매씨는 무엇인가 마음에 큰 소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소방관의 이 말 한마디가 김정매씨에게는 예수님이 주신 큰 광풍이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타지 않은 물건들을 골라내서 수출하고 들어온 돈으로 다시 물건을 만들고 이런 반복된 과정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니까 그분께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화재가 난지 3년만에 일천평의 땅에 공장을 더 크게 지을 수 가있었습니다. 그리고 10여가지의 건강식품 14가지의 화장품을 만드는 최첨단 시설 속에서 화려하게 재기를 한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표창 농림부표창등을 받으면서 직원도 더 늘어나는 성공한 사례입니다.
그는 이런 일련의 광풍을 통해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광풍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광풍이 몰아닥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광풍이 오FOT동안 불어 올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광풍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적 광풍을 허락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이 광풍을 가지고 주님께 찾아오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매달립시다. 주님 앞에 밤을 새워서라도 광풍이 잔잔케 해 달라고 부르짖어 봅시다. 분명히 우리의 기도 속에 말씀 속에 새로운 영적 광풍이 불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절대 우리의 기도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더 좋은 비전을 볼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소유할 것입니다. 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고 예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광풍을 통해 더 큰 영적 광풍을 소유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