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뇌를 착취한다, ‘팝콘 브레인’
<KISTI의 과학향기> 제3121호 2018년 04월 04일
최근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기반 IT 기업에서 일한 몇몇 개발자가 양심선언을 했다.
이들 기업의 수익은 사용자가 얼마나 오랜 시간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기업은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붙잡을지 고민해 사용자의 정신을 이른바 ‘납치’하려는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데 몰두한다. 사용자의 기호와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해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떠나면 궁금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 1.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소셜 IT 기업은 눈을 뗄 수
없는 정보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알고리듬으로 우리 뇌를
납치하고 착취한다. (출처: shutterstock)
우리 뇌는 전보다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한다
이런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우리 뇌는 전보다 더 강한, 팝콘이 터지듯 크고 강렬한 자극을 원하도록
변할 수 있다. 이를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 한다.
데이빗 레비(David Levy) 미국 워싱턴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가 만들어낸 용어다.
2011년 6월 CNN을 통해 처음 소개된
‘팝콘 브레인’ 증상은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지나치게 사용하거나 여러 기기로 멀티태스킹을 반복할 때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뇌에 큰 자극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바람에 결국에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팝콘 브레인을 가진 사람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한다.
잔잔하고 미묘한 요소들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새로운 소식이 뜨지 않았나 10분이 멀다 하고 스마트폰 화면을 켜보면서도 방 청소나 설거지 같은 살림살이는 뒤로 미루기 일쑤라면 팝콘 브레인을 의심할 만하다.
급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아닌데 여기저기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넷 접속을 반복하는 것도
전형적인 증상이다.
인간의 뇌는 강렬한 자극을 선호한다.
한 가지 자극이 반복되면 지루함을 느껴서 그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중독’의 시작이다.
중독은 크게 유해 물질에 의한 신체적 중독과 약물에 의한 정신적 중독으로 나뉜다.
신체적 중독은 원하지 않은 독성 물질이 몸 안에 들어간 상태여서 해독제를 통해 신속한 치료를 해야 한다.
반면에 정신적 중독은 자발적으로 특정 성분을 섭취하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하다가 발생한다.
당사자가 깨닫기 전까지는 심각성을 알기 어렵다.
인터넷 중독은 뇌를 바꾼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견딜 수가 없는 증상을 ‘인터넷 중독 장애(IAD)’라 부른다.
아직 정식 질환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위험성은 충분하다.
일반적으로는 학업이나 업무와 관련성이 없는데도
인터넷에 하루 6시간 이상 접속하는 행동을 6개월 넘게 지속할 때 인터넷 중독 장애라 판단한다.
2011년 중국 연구진은,
하루 10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14~21세의 학생 17명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해서
인터넷 중독 장애가 뇌의 구조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하루 2시간 미만 동안 인터넷을 사용하는 16명의 대조군에 비해 뇌 신경 섬유가 모인 백질 부위가
현저히 두꺼웠다. 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감정 조절, 의사 결정, 자기 제어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2014년 5월 초 미국정신과협회(APA)의 연례 대회에서는
인터넷 중독 장애를 보이는 청소년은 뇌에 비정상적인 특징이 나타났다는 발표가 있었다.
한두 건의 실험이 아닌 최근의 연구 13건을 종합한 결과다.
인터넷 중독 장애는 부정적인 정신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연구가 지적하는 부작용만 해도
우울증, 자살 충동, 강박 장애, 식이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장애 등 다양하다.
예전에는 인터넷 중독의 주범으로 컴퓨터가 지목되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사용 인구는 이미 4천만 명을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용 시간도 길어져서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2013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금단 현상, 내성, 일상생활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중독 위험군이 10~19세의 25.5%에 달한다.
2012년에는 중독 위험군이 18.4%였던 것에 비해 1년 만에 7% 이상 높아진 수치다.
사진 2. 스마트한 생활을 위한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shutterstock)
팝콘 브레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은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 기기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CNN은 인터넷 접속 시간 기록하기, 하루 인터넷 사용량 정하기 같은 딱딱한 방법 이외에 2분 동안 창밖 바라보기, 전자 기기 쓰지 않는 시간 가지기, 문자 메시지가 아닌 전화로 연락하기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예방법을 제안했다.
3년 전 방법이지만 지금도 그대로 적용돼야 하는 수칙들이다.
팝콘 브레인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과 못다 나눈 대화를 이어가자.
글: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