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1921년 12월에 조직된 한국 최초의 민간학술단체로 조선어학회의 전신.
국어학의 연구와 한글 맞춤법의 정리를 목적으로 조직한 학술단체이다.
1921년 1월 계명 구락의 주최로 박승빈의 조선어학 강습이 12일간 개최되었다. 이 강습이 끝나던 11월 28일 국어학의 연구 기관을 두자는 중론이 있어 참석인자 20여명의 결의로 조선어학 연구회의 창립준비위원 및 규칙 기초 위원을 선정하였다.
1921년 12월 3일 주시경(周時經)의 문하생 임경재(任暻宰)·최두선(崔斗善) 등 10여 명이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1931년 우리말과 글의 연구·통일·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학술단체. 국어연구 및 국어 운동 단체. 한글확회의 전신.
1933년 이 학회에서 만든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오늘날까지 우리 국어표기의 기준이 되고 있다.
1947년에 '큰 사전' 첫 권을 발행하였다.
※ 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
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
1942년 10월, 일본 경찰은 조선어 학회를 학술 단체를 위장한 독립 운동 단체라는 이유로 탄압하였다.
조선어 학회의 사무소에 있는 조선어 사전 편찬의 원고 카드가 몰수당하였고, 회원인 33 명의 학자가 체포되었다. 체포된 학자들 중에서 이윤재, 한징 등은 모진 고문으로 옥사하였고,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은 징역 6 년에서 3 년까지 선고되었다. 이 사건은 일제가 한국 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모국어 연구를 탄압한 대표적 사건이었다.
□ 한글학회
한글을 보급,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한 국어연구운동단체.
1921년 12월 3일에 창립된 ‘조선어연구회’ 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명칭로 고쳐졌고, 다시 1949년 9월 5일 조선어학회 정기총회에서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글학회는 국어학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언어학자들의 힘을 집중시키는 일과, 민족의 말과 글을 정리하는 일에 큰 목표를 두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