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나님,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주셔서 여기까지 도와 주신 걸 갑사합니다. 오늘도 역사안에서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과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남긴 역사적 교훈을 잘 새겨 듣고,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서 남은 생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허탄한 것을 좇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우를 범치 않게 하시고, 영원불변의 진리,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온 마음을 기울여서 정말 주의 말씀을 새겨 듣고,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우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의 세계, 하나님께서 그 정성과 애정을 가지고 만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제 사무엘상서 살펴보았는데, 조금 남았죠? 우리가 다윗 이야기 하면, 골리앗 때려잡고, 일약 인기가 있어가지고, 왕이 되었다 이런 정도밖에는 생각을 안해요. 그런데 의외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윗은 어렵고 힘든, 그리고 불행한 슬프고 괴로운 날들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멀리서 보면, 밝고 화려해보이고, 그리해 보일지 몰라도, 가까이 다가가서 그 사람의 내면, 그 사람의 가정의 갈등까지 들여다보면,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에요. 사람에 따라서 어디 약점이 있고, 무슨 근심이 있고, 무슨 콤플렉스가 있고, 여러 가지. 저는 야, 저 사람 정말 저런 사람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글쎄요? 저의 일생에 거의 아직 못본 것 같아요. 목회자가 되다보면, 우리의 삶도 한 짐인데, 자기 가정의 삶이 한 짐인데, 그 성도들의 가정, 가정, 개개인의 애환,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인제 이런 저런 가정을 보면, 겉으로는 웃고 다니고, 행복해 보여도, 그 내면에 보면 이런 저런 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사울의 가정이 왕이었지만, 우리가 끝이 불행하게 되지 않습니까? 사울도 죽고 한날에. 길보아 산 전투에서 조금 있다가 볼텐데, 왕으로 선택되면 왕이 되면 큰 행복을 갖는 게 아니라, 사울이 참, 한날 한 전투에서 사울왕과 요나단과 아비나답, 말기수아. 왕의 4부자가 한날, 한 전투에서 전사해 버리죠. 그리고 그 아들 남았던 이스보셋도 나중에 또 죽고, 괜히 기브온 사람들을 미워해서 결국은 사울의 씨가 싹다 말라버리고 마는 그런 비극이죠.
엘리 제사장 보세요. 엘리 제사장 집이 그리 편안합니까? 제사장이었지만, 아들 둘 잘못 길러가지고, 홉니와 비느하스 때문에 가정도 망하고, 법궤도 뺏기고, 나라도 망하고 그렇게 어려웠어요. 사무엘 가정은 뭐 편안합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무엘, 사무엘하지만, 늦게까지 그 집에서 한나와 엘가나가 애도 없어가지고, 하다가 아이 겨우 사무엘 하나 낳아가지고, 사무엘도 또 아들 둘, 세상에 자기 아들 잘 기르고 싶지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잘 기르고 싶었는데, 해 놓고 보니까, 요엘과 아비야가 또 그렇게 되니까. 그 이전에 수에 칠만한 사람이 별로 없죠.
아브라함 가정도. 아브라함도 어떻게 남들은 애도 잘 낳는데, 무슨 복을 어떻게 받았는지, 100살 되도록 애도 못낳아가지고, 그리고 또 하갈 들어와서 속을 썩이지. 이삭이 아마 그래도, 이삭은 별로 큰 어려움없이, 그랄 목자가 와서 우물 때문에 더러 찍자붙자 하고 시비 걸고 하지만, 그래도 이삭이 조금 사람이 워낙 너그러운 사람이고, 리브가가 착하고 그리하지만, 그래도 이삭도 그 얼마 안가서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아들도 많이도 낳지 못하게 되고, 하도 야곱이 그 뱃속서부터 어머니를 괴롭게 하고 발로 차고 하니까, 리브가가 얼마나 혼이 났던지, 내가 이같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께 항의를 하니까, 네 속에 두 국민이 있어서 그렇다. 조금만 참아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얼마나 혼이 났던지, 쌍둥이 한번 낳고 끝장 내버렸어요. 근데 또 그 사이가 안좋아요. 쌍둥이 형제간인데, 뱃속에서부터 사이가 안좋아서, 하나는 밧단 아람으로 가버리고, 하나는 세일산으로 가버리고. 아들 있긴 있는데, 아들 없는 것처럼 그렇게.
야곱의 일생은 우리가 봤지 않습니까? 험악한 삶을 살아가는 거라. 나그네 길이 일백삼십년인데, 하루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없을만큼 험악한 삶을 살았지. 유다도 보세요. 그 유다. 어떻게 뭐, 동생 파는데 앞장을 섰다가, 그 길로 만고의 죄인이 되어서 아버지 볼 낯이 없어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내려가서 수아의 딸을 취했는데, 결국은 엘과 오난, 그리고 다말하고 자기 사이라던지, 수아의 딸 죽어버린다던지, 이게 온갖 불행이 이어지는 것이거든요.
요셉도 나중에 좋았지만, 처음에 17살까지 엄마도 없이 살다가 그게 또 팔려가서 13년간이나 노예에서 감옥으로 전전긍긍하다가, 끝이 좋긴하지만. 고생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려움과 고통이 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성경은 전부 뭐, 행복하고, 착하고, 거룩하고 복받고 살았더라는 그런 얘기는 단 한마디도 안나오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애환과 고통과 심지어 제일 고민하고 제일 고통하고 제일 안타깝고 제일 많이 화나는 것은 아마 하나님이죠. 하나님 집안에도 천사가 또 반역을 해서 속을 썩이고, 인간들은 말 안듣고,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도 그래요. 여러분 주변에 정말 행복하기만 한 집이 보입디까? 그런 집이 있으면 모델 한번 소개 좀 해줘봐. 난 아직 못 봤어요. 우리 고향으로, 우리 이웃으로, 우리 성도들로 보면, 저런 사람 아무 부러울 것이 없겠다 싶은대도 가보면,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요. 거의 예외가 없이.
이 사울이 어떻게 다윗을 죽여야 되겠나. 겨우 한다는 짓이 자기 사위이기도 하고, 국가 일등공신인데, 그걸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는 이런 사울의 모습을 봐요. 이게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거야. 우리는 워낙 안 유명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다 드러나지 별로 욕 안먹지요? 우리가 욕 잘 하기는 하고, 막 드러난 인물들, 정치인들, 연예인들하고, 그 사람들은 삶이 드러나서 보이게 하니까, 욕을 먹는 것이고, 우리는 아직 그만큼도 유명하지 않으니까, 안드러나서 욕 안먹지, 우리가 우리의 삶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욕 안먹을 사람 없고, 다 거기서 거기고 그렇습니다.
다윗도 그렇고, 다윗이 나중에 보세요. 끔찍한 세월을 보냅니다. 정말. 하여튼 비극을 불러온 노래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게 한 민족의 어려움을 가져와요. 다윗도 어렵게 만들고, 사울도 어렵게 만들고 하여튼, 온 나라 전체를 큰 회오리에 휘말리게 합니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누구하고 또 비교당하면 기분 나쁜거야. 조심해야 되겠죠. 사울이 이 말이 심히 불쾌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바로 여러분, 정치인들은 바로 정치적으로 해석합니다. 목회자들은 또 자기 목회에 유익이 있나, 손해가 있나, 바로 손익계산서 나와서 목회자는 생각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또 돈으로, 금전으로 생각하고. 그러니까 별 수가 없이 인간이 그렇다는 거에요. 그런 것을 보거나 할 때,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다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다 그렇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고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너는 오직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그러니까 사위를 삼을테니까, 여호와의 싸움을 용감하게 싸우라. 자꾸 전쟁에 내 보내려고, 전쟁에 내보내서 가능하면 제발 죽어도 나가 죽어라. 사위를 내보내면서 제발 살아서 돌아오지말고 죽어서 돌아오너라. 이게 사울의 소원이라.
옛날에 로마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로마가 끝없이 전쟁을 해요. 왜 전쟁을 하느냐? 전쟁하는 이유는 어떤 나라를 뺏앗아서 노략물을 가져오는 것도 그것도 유익이 있었지만, 전쟁하는 이유는 그 장군들이라는 것을 전쟁을 안하고 놔두면, 조직이 있고, 힘이 있고, 칼이 있으니까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에요. 그래서 부단히 전쟁을 일으켜서 장군들을 나가서 싸우게 해요. 싸우게 할 때, 황제의 맘은 이기고 돌아오라. 속으로는 제발 죽어 돌아오라. 죽고 돌아오지마라. 근데 막 그 로마 장군들은 한번 나가면 또 어느 한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야 백마를 타고 개선문으로 쫘악 들어오는거야. 그러면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인기가 있으면 요즘같으면 국회의원 한자리가 나오는 것이거든요. 어떻게든 이기려고 얼마나 연습하고, 얼마나 닦달하고 해서 이기고 들어오는거야. 개선문으로 들어올 때, 로마시민들이 들떠서 환영하고 하면, 승리자가 백마타고 높은 단상에 로마 황제가 앉아있죠. 우로 봤! 그러면 경의 표하는 게 아니고, 내가 올라가야 되니까, 좀 내려오라. 조금 있다보면 그 놈이 올라가 있어요. 올라가 있지않으면, 계속 황제는 이래서 경의를 표하면 두렵습니다. 겁이 나는 거에요. 저걸 어떻게 내쫓아서 어디 가서 죽게 하나. 끝없이 전쟁을 일으켜 계속 퇴물, 군대 개선장군 부담스럽고 하니까, 어떻게든지 그걸 쫓아내서 맞아 죽게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큰 장군이 무슨 큰 전투에서, 먼데까지 가요. 동방까지 가니까. 전사했다고 하면, 겉으로는 슬픈 척하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는 거라. 잘 죽었다. 진작 죽지 그래. 로마 전쟁이 다 그런 전쟁입니다. 그런 것 처음 듣죠? 그런 것 좀 듣고나서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보거나, 역사를 보면요. 그래서 언제든지 나라가 내부적으로 불안하면, 외부에 전쟁을 일으킵니다.
우리도 뭐, 북풍, 병풍하는 것 다 그런 것 아닙니까? 김일성한테, 김정일한테 가서, 한나라당이 선거철되면 뭐 좀 해달라는 거야. 서해 와서 말썽을 좀 부려달라. 돈 좀 주고. 여러분, 다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내부가 불안하게 되면, 괜히 서해 가서 또 저질러요. 그래 남쪽이 또 밀고 올라왔다고 방송하면서, 국민 정서 모으고. 그게 정치라는 거에요. 그런 걸 보면서, 저는 참,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양심에 어떤 철판 같은 것도 깔고, 얼굴에 소가죽도 쓰고 해야 하는 것이지, 정신 있으면 못하는 거야. 양심이나 정신 있으면 정치 그런거 못해요.
그래서 자기 딸을 주어서 다윗을 전쟁에 내보내서 계속 죽게 하겠다. 그래가지고 주겠다고 해 놓고 딴 사람 줘버리고요. 둘째딸 미갈이 아마 더 얼굴이 아름답고 했던 모양인데, 미갈을 경품으로 내놓아서 블레셋 사람 양피 일백을 가져오면, 미갈을 준다 해가지고. 사울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야비하게 합니다. 정치, 자기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 혹시라도 자기 라이벌 될만한 다윗을 몰아내기 위해서,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서, 온갖 수작을 부리는 모습을 볼 때, 이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에요. 근데 전혀 그런 면이 안보이고,
진짜 인류 역사에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 요나단이란 인물이에요. 참 진짜 희안한 인물이에요. 다윗이 나중에 사울의 딸 미갈을 준다고 하니까, 가서 양피 일백이 아니고 이백을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양피란 것은 블레셋 남자 100명을 죽여야 100명의 생식기를 잘라오는 건데, 그런 못된 짓, 그런 혐오스런 짓을 하다가는 백번이나 맞아죽을 거다. 그래서 제발 그거 하다가 죽고 돌아오지 마라. 양피 일백을 원했는데, 세상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이백을 가져왔어. 그리고 미갈을 끔찍이 사랑한거야. 다윗이. 이래도 안죽고 저래도 안죽고 참 큰 일이요. 사울이 볼 때.
그래서 18장 28절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그래 딸 둘을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 해봐도, 끝까지 안 죽는 걸 보고, 사울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을 보고, 함께 하는 걸 알았다는 거야. 그래서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또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대적이 되니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괜히 두려워해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을 보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을 계속 염려하는 거에요. 염려할 것은 염려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을 괜히 염려해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은 늘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도 보면 그 교회를 안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누구냐. 교회 염려증 환자가 있어요. 그래서 쓸 데 없는 소리를 하고 다녀요. 내가 교회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 목사님 그런 말하면 안돼. 어쩌구 저쩌구. 내가 교회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 장로님 그러면 안돼. 자기가 그러면 안되는 거야.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쉽게 안 넘어 갑니다. 그런데 그 교회 염려증 환자가 애 먹이는 거야. 괜히 염려안해도 될 것을 염려해가지고. 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만들어요. 그런 사람들 교회안에 꽤 있습니다. 그런 이간질하거나 하는 것은 자기가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여성들도, 권사님들 조심해야 해. 대개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마귀의 춤을 추는 것인지, 제 정신인지, 마귀의 춤을 추는 건지, 정말 교회를 위하는 것인지 그런 것도 분별도 못하면서. 그러니까 굉장히 위험한 경우에요.
제가 전에 밀양 무안에 갔을 때에는요, 여성들은 교회 손을 띄게 했어요. 처음에는 여자들이 막 입이 이만큼 나와서 무슨 저런 시대도 모르는 겁대가리 없는 목사가 와서. 전 어지간한 일은 여자들 안 시킵니다. 여자들은 집에 돌아가서 가정에 성실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일절 여자들 교회에 와서 잠깐 와서 봉사하는 건 몰라도, 여자들을 그렇게 교회일에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남자들, 남자들 안 움직이거든요. 그리고 여기 혹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하는 얘기인데, 금요철야 같은 거 없애요. 빨리. 금요일날 철야하고, 토요일날 누워 자려고 하려면 없애라구요. 처음에 그것도 없앤다고 하니까, 입이 이만큼 나와 가지고. 여러분, 대개 금요일 철야 같은 것은 남자들은 잘 안나오고, 여자들만 열심파 여자들만 나오는데, 그 모습이 참 안좋아요. 우리야 하나님 앞에 아무 일이 없지만, 세상 사람들이라던지, 안믿는 남편들이 볼 때, 한밤중에 심야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보고 열심낸다 생각하지 않고, 목사를 보고 열심낸다고 생각해요. 그 남자 교회에 나오겠어요? 목회를 할려면, 분별력은 없어도 눈치는 있어야지요. 다 싫어합니다. 신 불신간에 다 싫어하는 거에요. 그래서 철야를 없애버렸더니. 예배마치면 여자들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괜히 뭐, 학생들도 그렇고 여성들이 교회에 노닥거리고 있어서 속 썩이고 하지 말고, 부리나케 집에 가서 하고, 집에 가정에 반듯하게 하고, 그걸 되게 강조를 했거든요. 처음에는 막 야, 이거 듣도 보도 못한 소리 듣는다고 떨떠름하더니, 철야를 없애버리고, 여성들 빨리 빨리 보내주고, 애들 집으로 쫓아버리고 하니까, 남자들이, 그 교회에 안나오던 남자들이 야, 무슨 그런 천연기념물 같은 목사가 또 있냐? 한번 가보자. 우리한번 가보자. 상판떼기 한번 보자. 결국은 남자들 다 나왔어요. 심지어 양조장 주인까지 나왔어요. 무안 막걸리, 양조장 주인까지 나왔다니까. 그 양조장 주인은 원래 법대 출신이었는데, 고아처럼 어렵게 살기도 하고, 말이 많고, 만고에 반골이야. 항상 그저 어디 누가 뭐 있다면 맞서고, 교회에 술한잔 먹고, 술 그 집에 많이 있으니까, 와서 땡깡 부리고, 시비나 부리고, 딴지 걸고. 자기 부인이 교회에 나왔었거든. 맨날 교회에 와서 애먹이던 사람인데, 예배마치자 마자 부인들을 빨리 빨리 집으로 돌려보냈더니, 이분이 감동받아서 교회나온 거에요. 그 후에도 거의 다 나오고, 저가 올 때, 남편 교회 안나온 집이 두 집인가 남아 있었어요. 아직도 안나와요. 그건 기념으로 아직 안나오는 거에요. 여러분, 철야같은 거 없애고 부인들을 빨리 빨리 집에 보내면 남자들이 다 전도가 된다는 거에요. 우린 물론 뭐, 위급하고 다급하고 민족이 위기에 처하고 어떤 그런 일이 있으면 철야를 할 수도 있고, 금식도 할 수 있지만, 괜히 습관적으로 금요철야 한답시고, 한밤중에. 여러분, 밤에는 잠을 자는 거에요. 좀 하나님도 주무시게 놔둬요. 하나님이야 잠은 안주무시지만. 그건 비본질적인 것이에요. 금요철야 그런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자연법칙에도 어긋나는 것이고, 아무 데도 안맞는 거에요. 괜히 하는 거에요.
제가 무안교회에 근 10년 가까이 있으면서 뭘 해서 성장한 것이 아니고, 안할 짓만 안 해도 교회가 성장합니다. 다 없애버려요. 헌신예배도 그런 것도 없애버렸지. 또 조직을 보니까, 쓸 데 없는 부가, 신앙부가 있어요. 교회 전체가 신앙부이지, 뭐 따로 신앙부에요? 예배부가 또 따로 있어요. 예배부는 당회가 원래 예배부에요. 이름도 전혀 쓸 데도 균형도 없고 그냥, 조직이라는 게 헝클반클한데. 그런데 그렇게 부가, 교인이 한 50명되는데, 부가 9개부에요. 물어보니까 자기가 무슨 부인지 아무도 몰라요. 부서활동도 안하면서 부만 떡하니 임명해가지고, 이게 도대체 뭐냐? 이게. 그래서 싹 없애버렸어요. 구조조정을 하게, 4개만 놔두었어요. 교회가 전도해야하니까, 전도부. 필수적이죠. 전도해서 오면 교회에서 교육을 해야 하니까 교육부는 있어야 되요. 전도와 교육을 잘하기 위해서 시설이라던지 재정이 있어야 하니까, 재정관리부가 있어야 하겠고, 교회 밖에 손을 펴야하니까, 사회부가 있고 4가지 외에는 필요가 없는 거라. 대개. 경조부가 있던데, 경조부는 사회부가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조직의 개념도 없는 거에요. 너절한 부서를 만들어서 감투를 씌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싹 없애버렸어요.
그리고 성미 없애버렸어요. 요즘에 와서 목회자가. 옛날에는 목회자가 밥을 못먹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다같이 10시 1반이라고 모아서, 밥을 해가지고 갖다 드릴 수는 없고, 밥할 때 쌀 한줌씩이라도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목사 가족이 굶지 않게 하자. 그게 원래 성미였거든요. 지금 어디 목사 굶는데 어디 있습니까? 시골교회라도. 그런데 올 때마다 쌀 보자기 가져오는 거 폼이 안나요. 그래서 없애버렸지요. 구역 헌금 없애버렸어요. 구역예배할 때마다 얼마 돈을 내야한다. 그거 낼 때마다 천원짜리, 이천원짜리 내는데 바깥으로 소문만 더럽게 나는 거에요. 모일 때마다 헌금내야 한다고 해서. 모양새가 안 좋아요. 그런 너절하고 비본질적인 것, 비본래적인 것, 헌법에도 없고, 그냥 어떻게 돈 몇푼 모으기 위해서 만든 것 싸그리 대청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 사임하고 나올 때도, 그런 얘기했어요. 그 교회가 작년이 100주년이거든요. 제가 갔을 때, 90년쯤 된 교회인데, 성도 100명이 안되는 거에요. 맨날 60-70명, 70-80명까지 올라가봤다고 해요. 올라갔다가 한무더기, 설 쇠고 나면 또 우르르 나가버리고, 추석지내고 나면 또 누구 따라 나가고 하니까. 한 100명은 넘겨보려고 얼마나 몸부림 쳤는지, 전도폭발로, 전도주일로 폭발 흔들기가 자자해요. 구석구석에 선물 주던 것, 그릇하고 수건하고 박스 박스 꽉꽉 차있어요. 제가 가서 아무 폭발도 안했거든요. 하나님 말씀을 조용히 그냥 가르치고, 없앨 것만 살살 없애고, 안할 짓만 안하니까, 그냥 조용히 100명 넘어가버려요. 나중에 140-50명까지. 제가 나오기 전에 그랬죠. 성도들 앞에 가서, 제가 이 교회에 와서 뭘 잘 해서가 아니라, 한 것은 1년에 성경강좌를 한번씩 한 것이죠. 1월 1일. 마지막 주간에. 그것 하나는 한게 있고, 나머지는 한 게 별로 없어요. 안할 짓만 안해봐라 교회가 성장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교회가 너절한 비본질적인 엉뚱한 프로그램 자꾸 가져오지 말라고. 그 뒤에 목사님이 새로 오셨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우리교회도 거의 너절한 그런 것 없습니다. 깨끗하고 단순해요. 쓸 데 없는 걸 많이 만들어. 그래서 성도들을 못살게 해요. 달달 볶아서, 죄지을 틈을 안준다 그런 뜻인 모양인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쓸데없는 염려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하고, 온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조용히.
19장 30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 다윗이 참 지혜롭게 행합니다. 나이가 얼마 안되도요.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말하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에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하고,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한 일이 없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요나단이 아주 정확한 말을 하는 거죠. 정신 똑바로 박힌 게 요나단 한사람 밖에 없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요나단만한 인물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좀 그 아들들 이름을 요나단, 이런 이름을 지었으면 할텐데, 맨날 요셉이나 하고. 어떻게 요나단이 교회에 별로 소개가 안되었어요. 진짜 인물입니다. 거룩한 사람이에요.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대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아찔한 거죠. 워낙 다윗이 체격이 그렇게. 다윗은 체구가 큰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민첩할 정도의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잽싸게 피했기 때문에, 단창이 벽에 박히고 다윗은 살았죠.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에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이런 일을 한번이 아니고, 두 번격고, 세 번 격고 몇 번하고 나니까, 다윗이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내 생명 온전치 못하겠다. 결국 망명길로 들어서는데, 요나단이 다윗을 지켜내려고 여전히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이게 사울왕의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 부리는 악신이 하니까, 사울도 자기 맘을 자기가 맘대로 못해요.
자, 여러분 중에 자기 마음을 자기가 맘대로 못하는, Self control이 안되는 그런 사람 있다면, 마음의 운전대를 악신에게 뺏기는 수가 있어요. 마귀에게.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 있으면, 귀신이 자꾸 우리 마음의 운전대를 빼앗아서 운전하려고 해요. 자기 마음을 자기가 맘대로 한된다 그런 경우는 뭔가 이상이 있는 거에요. 귀신 들은 사람치고, 내가 귀신 들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어떤 귀신은 멍청하게 하다가 들통이 나요. 그래서 본인도 알고, 남도 알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걸 자기인 줄 알아요. 자기가 자기 속에 자기가 들어 있는지, 자기는 눌리고 귀신이 들어있는지 잘 분별 못해서, 어제 예로 들었던 고향교회의 오판식같은 사람은 그걸 자기가 전혀 자기속에서 귀신이라고 알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인정하고 살았어요. 그 아내도 거칠고 욕하고 싸움잘하는 게 자기 남편인지 알았지 귀신인지 모르는 거야.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거에요. 여러분, 네로 황제 있죠? 네로도 자기 본 정신이 아닙니다. 그건 귀신이에요. 마귀야, 마귀. 그러니까 왕들 중에 악독한 그런 경우는 보나마다 다 악령들입니다. 또 왕들도 왕들이지만, 왕비들. 왕비들 암투가 벌어지고, 권력을 서로 차지하려고 자기 아들을 권좌에 앉히겠다고 막 압력을 가하고. 전부 독사에요. 그런 영적인 안목이 열려져야 목회를 할 수 있어요. 그런 것을 모르면, 교회가 막 악에 소용돌이 휘말리는데, 뭐가 안되고 당하는데, 누구에게 당하는지도 몰라. 눈에 안보이니까. 그래서 나중에 요나단이 다시한번, 마지막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충고를 합니다. 옆에서. 그래서 다윗을 보고 아무래도 너 위태하니까, 들에 숨어 있으라고 했어요. 내가 아버지한테 한번만 더 확인을 해보고, 내일 아침에 내 부관하고 나와서 네게 사인을 하겠다. 내가 화살을 쏘아서 화살이 네 앞에 있지 아니하냐? 빨리 달음질하라, 내가 아이보고 그리 말하면, 다윗보고, 너는 내게로 돌아오지말고 도망을 가라. 이렇게 서로 사인을 한거야. 마지막으로 요나단이 사울에게 가서 다윗의 입장을 변호하고 그리하면 안된다고 하니까.
아이고, 사울왕이 요나단을 보고, 20장 30절을 보세요.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임마,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당에 사는 동안에 너와 네 나라는 든든히 서지 못할거야. 이 등신아.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고와 빨리. 그는 죽어야 될 놈이야.’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정치적으로 하면 그렇죠. 정치적으로 하면 사울의 말이 맞는 거야. 이새의 아들이 땅에 있는 날 동안에는 요나단은 나라가 온전치 못하다는 거야. 굉장히 계산합니다. 지나치게 따지고 계산하는 것도 이것도 악령들이 하는 겁니다. 악령들은 돈 버는 데는 귀신들입니다. 돈 잘 버는 그런 사람들은 대개 악령들이. 성령이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은 돈벌이 은사가 없어요. 악령들이 돈을 잘 벌어요. 부동산 투기 아주 잘하고, 이런 돈 잘굴리고 이런 것들. 그러니까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전부 마귀가 갖고 있어요. 경제. 거의 다 자칭 유대인의 회라 하나, 실상은 사탄의 회라 하는 유대인들이 돈을 다 갖고 있어요. 돈과 명예와 권세와. 그러니까, 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물질적인 것들이. 마귀는 그런 것이 전공입니다. 그런 것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멍청하니 있다가 뺏기고 이용당하고, 남 좋은 일 시키고. 그 사람들은 수단 방법 안 가리죠. 여러분, 주가 조작은 이명박만 하는 게 아니고, 다 합니다. 워런 버핏이라는 미국 프리메이슨, 미국의 조지 소러스라던지 전부 다 짜고 치는 겁니다. 금융시장 자체가 원래, 조작하려고 만든 겁니다. 금융시장은 조작안하면 아무 재미가 없어요. 조작해서 주가를 출렁거리게 해야 가진 자가 버는 거에요. 괜히 개미들이 무슨 뭐해서 될 것같이 여기는데, 아무 것도 안되요. 요행이 어쩌다가 소가 뒷걸음치다가 소 뒷발에 개구리 밟히듯이 어쩌다가 한 것 이리 하는 것이지. 그 줄곧 주식시장에 들락거리면 패가망신합니다. 그 사람들이 맘대로 주가 조작합니다. 전쟁까지도 만들어가면서, 불안하게 해서 주가를 일단 출렁거리게 해요. 출렁거리게 하는 게 큰 손들이야. 그래서 돈 가지고 돈 버는 거에요. 이런 것은 마귀의 종들이 훨씬 잘합니다. 수단 방법을 안가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수단도 가려야 되고, 방법도 가려야 되니까, 그 사람들하고 게임도 안되요.
김영삼 대통령일 때 세계화한다고 하면서 우리 금융시장을 개방했거든. 개방하니까 제일 먼저 유대인들이 들어온거죠. 그 앞에는 유대인 못들어왔어요. 지금 다 넘어왔잖아요. 우리 은행지분, 거의 외국인이 다 갖고 있고, 좋은 회사 양질의 주식은 전부 외국인이 다 갖고 있잖아요. 수시로 팔고 수시로 빠지고. 먹튀라고 하죠? 먹고 튀는 사람들. 먹고 튀고, 먹고 튀는 사람들. 노동자들 뼈 빠지게 일해 봤자, 노동자들은 겨우 투쟁해서 1년에 겨우 5%, 10% 올라가는데, 물가가 그만큼 따라 올라가니까, 올라 가는 게 아니에요. 마찬가지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실은. 주가 조작도 하는 거에요. 제가 진화론 이야기할 때, 황우석 교수만 날조한 게 아니라, 다 날조했잖아요. 지금까지. 이게 세상이라. 이런 것도 보는 안목이 있어야 그런데 안 빠지지. 멋모르고 덤볐다간 큰일 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기질이, 까짓것 막가는 막가파가 있고, 끝장을 보는 파가 있고, 바닥을 보고 이런 기질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번해보고 안되면 물러서야 되는데, 그걸 본전을 건지겠다고 끝장을 가다가 완전히 바닥을 보는 그런 기질들이 다른 나라는 없는데, 한국 사람은 거의 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손을 안대야지, 손댔다가는 큰일납니다. 제 주변에도 꽤 성실한 사람들이, 일할 때는 성실히, 주식이나 도박을 안할 때는 성실한 사람인데, 거기 손댔다가 완전히 패가망신한 사람이 여럿입니다. 여기 와서 주식이란 도박이 우리는 밑천이 작아서 안되는구나. 여기와서 깨닫고 손땐 사람이 여럿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윗과 요나단이 이별합니다. 영영히 사울의 곁을 떠나서 망명길로 가는데 21장을 보세요.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가 홀로 수행원도 없이 이리 다니느냐?’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 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이거 거짓말이거든요. 그렇죠? 다윗이 거짓말했다니까. 이런 거짓말은 꽤 많이 있습니다. 굉장한 훌륭한 그런 사람들이 거짓말해요. 이것 거짓증거하는 것하고 다른 것입니다. 거짓증거는 법정용어이고, 이건 생활거짓말인데, 대개 좀 하얀 거짓말이야. 꾸며서 둘러대는 거짓말인데.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너무 너무 배가 고프니까,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다윗이 달라해서 먹었어요. 먼 훗날 이 사건을 예수님이 기억하고 있다가, 다윗이 시장할 때 한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고 베드로를 변호한 적이 있었죠? 베드로가 그날이 안식일인데, 예수님 따라다니면 대개 배가 고픕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까, 무심고 밀 이삭 잘라서 비벼서 입에 떨어 넣었어. 또 그걸 누가 감시하고 있다가 안식일인데 왜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느냐? 그러니까 유대교가 이렇게 째째한 거에요.
여러분, 째째한 것도 마귀입니다. 대개요. 진짜 귀신은 못을 하나 박았는데도 탈난다고 하고, 흙 하나 찍어 발랐는데 탈난다고 하고 정말 귀신은 째째합니다. 그래서 그 이삭을 잘라먹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낫을 대면 안되. 손으로 이삭 비벼먹는 것은 죄가 아니고요. 배가 고플 때에 길을 지나가다가 포도 한송이 따먹은 것은 죄가 안되요. 그릇에 담아가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이게 율법인데, 그러니까 베드로가 이삭하나 잘라 비벼먹은 것은 죄가 아닌데, 안식일인데 잘랐으면 이게 추수를 했다는 것이고, 비볐다니까 타작을 했다는 것이고, 훅 불었으니까 많이 걸려요. 안식일에 하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변호할 때, 다윗이 시장할 때 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시장하다는 것은 목숨이 걸린 거라. 배고프면 죽으니까. 그래서 평소에 같으면 제사장외에는 먹지 못하는데, 시장하기 때문에 먹는 것을 하나님이 허물치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끔직히 아끼고, 제자들이 이런 저런 실수해도 예수님께서 와서 계속 커버해요. 항상 변호하고. 생명이 우선입니다. 의식과 생명이 걸렸을 때는 항상 생명 우선이에요. 이게 하나님 법칙이죠.
거기서 빵을 얻어먹고, 골리앗의 칼을 거기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챙겨서 가드로 갑니다. 21장 10절. 그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지금 왕이 되지도 않았는데, 왕이래. 외국에서는요. 다윗이 생각할 때 나같은 시골소년을 누가 알아볼 수 있으리요. 하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골리앗 고향동네 가드로 갔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알고 갔거든. 그런데 알아보기 못하기는, 오히려 그쪽에는 더 잘 알고요. 이미 그 땅의 왕이라고 그래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이런 것보면 다윗이 즉석 연기가 일품이라. 순발력있게 연기를 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거라. 아기스왕이 그 신하에게 이르되 ‘이게 이거 미친놈 아니냐? 저 미친 거 봐라. 어찌하여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당장 내쫓아라.’ 해가지고, 다윗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휴~ 죽을 뻔했네. 젠장’ 거기서 아슬아슬하게 나오고요.
그곳을 떠나서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아둘람 굴에 가서 굴이 꽤 큰 굴인데, 굴에 가서 피신을 하는데, 그때쯤 되니까, 사울이 다윗이 사라졌다하니까, 다윗만 잡을 게 아니라, 다윗의 형제, 아비 다 삼족을 멸하라 그냥. 이렇게 나오니까 전부 피신해서 다윗이 숨어있는 아둘람 굴로 꾸역꾸역 모여오는데 거기 몰려드는 사람이. 22장 2절.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와, 분통터지는 자, 살림 거덜난 자, 개인 파산 신고한 자, 개인 회생하는 자, 카드 돌려막기 하는 자, 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와. 신 불자 뭐 이런거. 그래서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400명 가량이라. 여기 계신 분이 400명이죠? 전부다 백수에다가, 참가비 깎아달라는 자와 이런 사람들 모여가지고. 여러분, 다윗이 센 것은, 여기서 센 것은 남자만 센 거에요. 대개 여자도 그만큼 되거든요. 애도 딸려 있어요. 그래서 다윗이 먹여 살려야 되는 사람이 한 1,000명 정도에요. 다윗의 양심에 약탈 그런 거 못하잖아요. 지금 바야흐로 야당이 된 거야. 야당이 뭐야? 들판에 쏘아 다니는 당. 들판에 쏘아다니고, 아둘람굴에 숨고, 하길라산으로, 마온 황무지로, 들판에 계속 들판에 몰리는 야당이 된 것인데, 이 야당보고 차떼기해줄 사람도 없고, 앞으로 큰 일 났어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 10년을 이런 생활 할텐데, 다윗이 이렇게 지금,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도 위험이지만, 진짜 문제가 이렇게 꾸역꾸역 모여온 게 400명이나 되니까, 천명이나 되니까, 무얼 가지고 먹여 살립니까? 기업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그래서 보니까 싹수가 노라니까, 그런 당에는 정치적이면 안 들어와. 뿌리가 있어서, 지금도 제가 보기로는 열린우리당에 들어온 것보다는 여전히 한나라당에, 야당할 때도 한나라당에 더 많이 들어와요. 이 권력의 세계하고, 정경유착이라는 것은 잘 안 끊어집니다. 전부다 이해득실 따져서 계산하고 그리하니까. 다윗이 얼마나 힘드는지, 22장 3절. 거기서 모압으로 가요.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좀 붙여 삽시다. 구차하게 망명생활 요청하고요. 하나님께서 거기 있지 말라고 했어요.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해서 다윗이 떠나서 헤렛 수풀에 얼마간 있게 됩니다. 그때 사울왕이 놉의 제사장들, 아히멜렉하고 다윗에게 빵을 주고 했다고 해서, 거기 제사장들 80명을 때려 죽입니다. 22장에 있는 얘기이고. 23장에,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그일라를 다윗이 가서 또. 그렇게 또 망명당하면서도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해롭게하면 또 가서 한 건씩하고 그리해요.
다윗이 걸어갔던 길을 쭈욱 정리해보면, 피신하고 망명당하던 길이 험악한 길입니다. 맨 먼저 출발지점이 베들레헴, 자기 아버지 양을 치다가 출발해서, 놉으로 갔지요. 놉으로 갔고, 그 다음에 거기서 가드로 갔는데, 거기서 들통 나서 아둘람 굴로 갔다가,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갔다가, 헤렛 수풀로 갔다가, 그일라로 갔다가, 거기서 안되서 십 황무지에 가서 또 들통나서 하길라 산으로 갔다가, 하길라산에서 또 쫓겨서 마온 황무지로 갑니다. 마온 황무지에서 엔게디로, 엔게디에서 다시 가드로, 다시 가스에서 시글락으로,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헤브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이렇게 한 10년 동안 이리저리 쫓겨다닙니다. 그렇게 힘들었어요. 혼자거나 한 두 명이나 여나무 명이거나 이 정도 같으면 어디 가서 얻어먹던지, 주워먹든지, 훔쳐먹든지 뭐 살수 있겠는데, 숨는 것도 한둘이어야 숨지. 한 천명씩 되는데 어디 가서 숨습니까? 사울은 한 3천명을 풀어서 기어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따라다니고 수색대를 파송하는데, 희안한 게 다윗의 눈에는 항상 사울이 보여요. 그런데 사울의 눈에는 다윗이 한번도 안보이는 거에요. 그것도 다윗이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천명씩 데리고 다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눈에는 다윗이 안보이고, 다윗의 눈에는 사울이 보여요. 그러니까 살아남는 것이죠. 잘 아시는 대로 굴에 있을 때, 옷자락을 자르고서 살려준 적도 있고, 추격당하는 사람은 늘 잠을 못 자는데, 추격하는 사람이야, 쉬어가면서 자면서 누워자는데, 물병하고 창을 가져가서 돌려준 적도 있고. 얼마든지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또 이 사람은 자기 원칙이 있어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해도, 자기 원칙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손을 들어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해치지는 않겠다. 혹 전쟁하다가 죽는 것은 할 수 없고, 늙어죽는 것은 할 수 없고, 하나님이 그리 죽이는 것은 몰라도, 내가 내 손을 들어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해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해서, 자기 졸병들이 아이고, 명령만 하십시오. 두 번 찌를 것 없습니다. 한번이면 끝납니다. 다윗이 허락안해요. 몇 번이나 다윗을 부추겨도 허락을 안해요. 사람이 자기 신조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신조가 있고 또 지조가 있어야 돼. 요즘 사람들은 신조도 없고, 지조도 없어요. 이리 끌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면 저리 끌리고. 그야말로 갈대야. 아무 줏대머리도 없고, 그냥 분별력도 없고, 신조도 없고, 지조도 없고 그저. 돈을 보고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다니고. 뭐 또 이적을 보면 이리 끌려 다니고. 목자 없는 양같이,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성경책을 또 손에 들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내가 지금도 생각해보니까, 여기 온 사람들도 걱정이라. 여기까지 온 사람도 어디까지 안 가겠나 말이야. 여기까지도 왔는데. 지금 휴가철도 아니고 방학도 아닌데,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들은 어디까지 안가겠나 말이야. 걱정스럽다니까 솔직히.
하여튼 이렇게 다윗이 어렵게 다니는데 한번은 마온 쪽에 있을 때인데, 거기 그 근방에 거부가 있어요. 나발이라는 미련한 놈인데 부자에요. 미련한 게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말이야. 다윗이 거기에 상당히 오랫동안 다윗의 주둔군이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는 나발에게는 다윗의 군대가 거기 오랫동안 진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울이 되고 담이 되고, 사는 게 보존되고 약탈도 안되고, 그 정도 같으면 자기도 알겠지. 은혜를. 그리 생각하고 그때는 다윗이 한 천명되는 사람이 먹고 마실 게 아무 것도 없고 딱 떨어졌어. 너무 급하니까 소년 열명을, 청년들 열명을 나발에게 보냈어. 가서 많이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차떼기까지 그런 건 아니고, 너무 어려우니까, 우리 병사들이 배가 고파하니까 좀 도와달라. 좋은 날에 왔으니까, 양털 깎을 때 왔으니까, 타작할 때 왔으니까, 네 가정이 평안하고, 네 산업도 평안하고 하면서 다윗이 사자를 보냈어요.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야,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뭐하는 놈이야? 근일에 까닭없이 주인 버리고 집나온 노예가 많다더라.’ 하면서 다윗이 보낸 소년들, 다윗을 통 싸잡아서 까닭없이 집을 뛰쳐나온 노예로 취급하는 거에요. 얻어먹으러 갔는데, 한푼도 안주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어. 그냥 보낸 거야. 다윗이 보니까 그냥 왔거든요. 뭐야? 그냥 온거야? 아, 그런 거야? 물어보니까 나발이 여차여차히 말하더이다. 다윗이 ‘뭬야?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400명이 전부 칼을 차고. 다윗이 잘 화를 안나는데, 이게 배은망덕한 놈이야. 우리가 여기 있어서 자기 산업이 보존된건데, 이런 은혜도 모르는 놈 하면서, 응징한다면서 400명 칼을 차고 진격해 들어가는 거죠.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 어떻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귀띔을 했어요. 그랬더니 아비가일이 건포도, 무화과, 포도주 해서 빵하고 있는대로 다 챙겨가지고, 급히 나와서 다윗의 앞에 엎드려서 간구하는데, 그 여자 보통 여자가 아니에요. 완전히 입에 참기름을 발랐어. 말 잘해. 신구약을 통틀어서 여자 중에 말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거 같아요. 다윗이 그렇게 화가 났지만, 아비가일이 워낙 간곡한 말로 하니까, 바로 다윗의 노가 풀어졌어요. 천냥 빚도 말로 갚는다는 말이 있죠. 그래서 다윗이 주는 것을 받아서 ‘너를 앞서 보내서 나를 막아서 너의 집의 남자들 다 죽이지 않게 한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하면서 다윗이 돌아왔거든요. 아비가일이 집에 가니까, 자기 남편이 자기가 무슨 왕이나 된 것처럼 자색옷을 입고 혼자 왕의 상같은 것을 차려놓고, 실컷 먹고 배를 두들기면서 노래하고 앉았는 거야. 기분 좋을 때는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술 다 깨고 나고, ‘당신 어쩌자고, 이 시대의 영웅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자를 보내서 좀 도와 달라는 것갔다가 섭섭하게 보냈소? 어제 밤에 내가 가서 무마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오늘 장례식 준비하고 있을 거요.’ ‘응?’ 하고 그 길로 사람이 납덩이처럼 굳어 있다가 한 열흘 동안 있다가 죽어버렸어요. 이 사람은 왜 부자인지 모르는 사람이야. 부자가 왜 내가 부자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이는 부자될 자격이 없고, 누릴 자격도 없어요.
죽고나서 얼마 있다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다윗이 그 아비가일에게 청혼을 해요. 그렇죠? 사람들이 그 지난번에 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지혜롭고 슬기롭고 총명하니까, 다윗이 청혼했다고 그렇게 설교하는데, 내가 물어보니까 아니야. 돈 많은 과부잖아. 돈 많은 과부. 다윗에게는 자기 어머니 뻘 되는 사람으로 나이가 많아요. 할매야 할매. 근데 결혼한 것은 너무 지금 병사들 먹여 살리고 어려우니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세요. 그냥. 그리고 그 뒤 후로도 다윗이 보니까 수시로 어떤 여자들하고 결혼을 해요. 보나마나 전부 다 돈 많은 과부들이야.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한결 형편이 피었죠. 이제는 구차하게 가서, 좀 도와 달라고 이리 안해도 괜찮아. 하나 둘이 아닙니다. 여럿입니다. 그렇고, 대개 그런 부인들인데, 나름대로 여유가 있는 이런 사람들을 여럿이 거들먹거리며 와요. 과부, 중고품 이런 사람들 가져와요. 다윗이 이게 참, 메랍이란 거 준다고 했다가 딴 데 줘버리고, 미갈이라는 것은 다윗의 첫사랑인데, 그것도 발디엘에게 줘버려서 시집 가버리고. 다윗이 광야에서 야당생활하는 가운데, 어떤 야당 지도자에게 시집 올 사람도 없고, 나발의 아내 그런 사람이나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다윗의 일생이라는 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굉장히 어렵고, 힘들고, 고독한 그런 세월을 보내요. 아무도 모릅니다. 다윗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그리고 다윗이 얼마나 골을 쌌는지, 맨 손이 왔다고 하니까, 오늘날 나발의 집에 벽에 소변 보는 놈은 다 죽여 버린다고 했어요. 우리 성경에는 한 남자라도 살려두면 이라고 의역을 했는데,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벽에 소변 보는 놈은 다 죽여 버린다 하면서 달려간 거야. 그래서 부자가 되면 나눌 줄 알아야 해요. 꼭 좀 힘들지만 나눗셈을 배워야 해요. 다윗이 이렇게 어려운 날들을 보낼 때, 그래도 자기가 범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 본색이 드러나거든. 좋을 때는 모릅니다. 좋을 때는 다 좋은데,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나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걸 다 지켜보고 있어요. 어려울 때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면서 보는 거에요. 교회도 평안할 때는 몰라. 다 좋아 보여. 교회가 어려움 닥치니까, 양과 염소가 그냥 드러나 버려요. 심판할 것도 없어요. 노회도 마찬가지에요. 노회도 한 7년 싸워봤거든요. 기도하고 싸우고, 능력 받아 싸우고, 은사 받아 싸우고, 철야하고 싸우고, 얼마나 싸우는지. 나중에 믿음으로 선한 싸움 싸우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는 각목으로 가져 나오는 파가 있더라구요. 여러분, 목사, 장로가 모인 데서도 목사, 장로로 이루어진 노회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판단이 안되고, 결국은 최후의 판결은, 최후의 심판은 남아 있어요. 하나님이 해야 되요. 지구상에 그렇게 법과 대학이 많고, 변호사가 많고, 판검사가 많아도, 여기 있는 땅에서는 완전한 판결이 안됩니다. 최후의 심판은 남아 있는 문제에요. 다윗의 위대한 점은 이렇게 어려울 때도 자기 신조, 자기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 순전하고 정직하게 끝까지 그리한다는 거에요. 어려울 때, 의로운 사람이 진짜 의로운 사람이라.
결국은 사울은 점점 실수해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고. 맨 끝에 보세요. 31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치매 이스랑레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사울의 아들 세명이 함께 죽고요. 3절에 사울이 패전하매 활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그가 병기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어져서 자살하고 맙니다. 사울이 자살한 거에요. 화살도 맞았지만, 자살해서 끝장을 냈어요. 왜냐하면 그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조롱당하는 것을 싫어서 자살해 버린 거에요. 그걸 보더니, 그 무기 병기든 자, 부관도 왕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칼을 배에 대고 엎어져서 끝나 버렸어요. 이렇게 사울왕의 4 부자가 한 날 한 전투에서 길보아산 전투에서 끝장이 났고요,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왕자들의 다 목을 잘라서 온 전국으로 갖고 시위를 하고 돌아다니고, 목도 없는 시신을 벳산 성벽에 대롱대롱 달아놨어요. 그 소식을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듣고 장사들이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 왕자들의 모가지도 없는, 머리도 없는 시신을 수습해다가 길르앗 야베스로 가져와서 화장해서 7일을 금식했더라 하면서 사무엘상서가 끝이 납니다.
다윗이나 사울이나 그 가정들이 이 정계에 나가서 정치만 안 나갔으면 이렇게 험하지 않을텐데, 정계에 나가서 이렇게 험한 삶을 사는 거에요. 사무엘하서는 후에 보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서 참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그러나 그가 망명길을 들어서서 숫한 세월들을 큰 환란과 어려움에 그런 과정 가운데서 연단을 받고, 그 연단받는 중에서도 그 순전함과 정직함을 굽히지 않는, 그 지조를 깨지 않는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참고 바르게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요시야 원문보기 글쓴이: 요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