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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물며 지난주 통영을 거쳐 한산도 제승당을 찾았습니다. 8월의 한낮, 폭염 속 제승당 활터 주변은 적막감이 지나쳐 낮은 긴장감마저 일으켰습니다. 어쩌면 무심코 올려다 본 단청 모서리에 작은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파닥이고 있었던 것이 긴장감의 실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위가 워낙 고즈넉했기에 처절한 날갯짓과 더불어 공포로 할딱이는 나비의 심장소리조차 들릴듯 했지만 끈적이는 거미줄에서 벗어나려 뒤챌수록 다만 옥죄어들 뿐, 자기 몸부림에 지레 사색이 될 지경입니다. 살고자 하는 작은 나비의 본능적 몸짓은 미구에 닥칠 죽음 앞에서야 끝이 나게 생겼습니다. 거미는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며 한 번씩 줄을 당기듯 제 줄에서 우쭐우쭐 탄력을 받습니다. 그 상황에서 동행과 저는 진지해졌습니다. 저걸 어쩔 것인가. 나비를 살려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가. 나비를 살리자니 거미가 울고, 거미를 좋게 하자니 나비가 죽게 생겼기에 말입니다. 하찮은 미물간의 일이라고 장난 삼아 한 말만은 아닙니다. 거미의 '줄'이나 나비의 '날갯짓'은 둘의 생존이 걸린 실존적 상황이라는 것과, 먹고 먹히는 사슬에 대한 엄연한 질서를 인정했기에 시작된 갈등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비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거미에 대한 염오감을 배제한 채 저 둘 사이에 개입해얄지 말지를, 개입하게 된다면 우리 자신에게 어떤 당위성을 부여할지를 잠시 고민했습니다. 동행은 마침 긴 우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여름 소나기에 대비한 것이었지만 하늘은 짱짱하기만 해 이따금 양산인 양 펼치기는 했어도 실상은 거추장스러워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나비를 살려주자’는 쪽으로 정황이 몰리기 시작한 결정적 동기가 우산에 있었으니, “살려주고 싶어도 팔 길이로는 단청에 닿을 수 없으니 장대같이 긴 이 우산이 없었다면 생각뿐이지 않았겠냐”는 게 동행이 지적한 포인트였으니까요. 굳이 가져올 필요가 없었던 우산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되짚어, 하필 나비와 거미의 숨막히는 숙명적 구도에 우리의 눈길이 간 것, 제승당 ‘저 정자’가 아닌, ‘이 정자’에 발길이 닿은 것, 타이밍 맞추어 그 시간에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산도로 들어온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이번만은 나비를 살려야 한다는 자연스런, 그러나 필연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행이 우산을 치켜들고 나비 날개에 엉킨 거미줄을 훌쩍 걷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자유의 몸이 되어 가뿐히 날아갑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머리 맞댄 또다른 ‘피조물’의 존재를 알 턱이 없을 테니 거미줄에 걸려든 것도, 일촉즉발 목숨을 건진 것도 제 알 바 아닐 것입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들도 순간순간 더 높은 존재의 자비로운 손길, 측은지심에 깃대어 지금까지 생명을 부지하고 있건만, 막 살아 날아간 저 나비처럼 그 존재를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우리를 만남으로써 기적을 체험한 나비처럼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누군가가 베푼 기적의 산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유는 나비에게 치우친 것이니 배를 곯게 된 거미로서는 억울한 일이자 우리로선 미안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그보다는 반칠환의 시 <먹은 죄>를 떠올려 보는 것이 상황에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다 그 ‘먹은 죄’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서로 정죄할 수도, 서로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먹은 죄’라고 할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다만 살려고 그리 했을 뿐이라면 그게 무슨 죄겠습니까. 부정하고 부인하고 모함하고 변덕부리고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안면 몰수하고 뒤통수 치고, 용렬하고 비겁한들 다 자기 살려고 한 짓인데 그게 무슨 죄가 되겠냔 말입니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그저 인간사일 뿐일 테니까요. <먹은 죄>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
첫댓글 카페가 새단장을 했군요. 산뜻하고 세련된 이미지입니다.
작가님의 심성이 너무 여린가봐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시가 생각나요. 반갑고 감사합니다
여린 건 아니구요, 어립니다.^^ 철이 없구요. 나잇값 못하구요.
호주가 아닌 한국이야기에, 금방이라도 산사의 풍경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좋은글 많이 쓰시고 그곳에서의 뜻하는 모든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네, 한국에 오니 호주서 쓰던 한국 이야기의 한계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한번 여행을 하니 느낌이 많이 다른 걸 보면요. 그래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한가 봅니다.
죽을수밖에 없는 나비를 ... 구원, 영생을 주기위해 이땅에 오신, 그분의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그렇지요... 참새 한마리도 그 분의 뜻 안에서 떨어집니다...
먹은죄~ 거참, 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요. ㅎㅎ 누구랄것도없이 ㅋ
반칠환님의 시를 좋아합니다. 이 분의 시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바로 가슴에 꽂히지요.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민 모두에게 보내는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