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천재 프로 골퍼 타이거 우즈의 첫 번째 골프 선생인 듀런이 네 살 때 우즈를 보고 한 말이 있다. “저는 놀라 나자빠질 뻔했습니다. 믿을 수 없고, 두려웠습니다. 어드레스 자세도 완벽하고 클럽을 백스윙의 정점까지 완벽한 자세로 올린 후 공을 하나씩 치는 거예요. 꼭 모차르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축소판 투어링 프로였습니다. 잭 니클라우스를 데려다가 그 아이의 크기로 몸을 줄여 놓는다면 아주 똑같아질 것입니다. 그 아이는 천재였습니다.” 듀런 선생은 우즈를 모차르트와 비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모차르트는 한 편의 악곡을 쓰기 전에 머릿속에 완전히 구상을 마쳤다고 합니다. 저는 타이거한테 그걸 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샷을 머릿속에서 완전하게 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어린 시절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이나 왕과 같은 모습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것이 신비화 작업인지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지는 환상인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타이거 우즈는 2009년 현재 이미 신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골프를 전혀 치지도 좋아하지도,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타이거 우즈의 이름과 매력적인 하얀 웃음 앞에서는 마음이 턱 하니 풀리기도 한다. 그는 골퍼로서 대성했고, 지금도 기록 갱신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골퍼 이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75년생이니 아직도 그의 인생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모차르트가 천재의 상징이 된 것은 어려서부터 그 재능이 각별했고, 더 중요한 건 그 재능이 활짝 꽃 피어 음악사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각별한 모습을 보여주어 부모를 놀라게 한다. 우즈의 아버지인 얼 우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모차에서 옹알이를 하고 있던 아기 타이거가 엉금엉금 기어 나와 장난감 골프채로 골프를 쳤다.
마흔 살이 넘어서 친구의 권유로 뒤늦게 골프에 빠진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타이거는 그렇게 골프를 시작했다. 돌잔치에서 골프채를 잡은 것도 아니고 저가 스스로 기어 나와 골프채를 잡고 공을 쳤다는 건, 아이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장난감을 잡은 정도이다. 하지만 얼 우즈는 이런 사실이 매우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는 미국의 그린베레 출신이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타이거라고 미리 생각해 놓았다. 월남전에서 만난 월남군 중령 운구옌 풍은 얼 우즈의 파트너이자 여러 차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터에서 맺은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고 얼 우즈는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 운구옌 풍은 매우 탁월한 군인이었다. 그래서 얼 우즈는 그의 호랑이 같은 모습을 보고 ‘타이거’라고 불렀다. 얼 우즈가 타이거를 보았을 때 이미 마흔 살이 넘었고, 전처와의 사이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직업군인으로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를 많이 하다 보니 아내와의 사이가 멀어졌고, 방콕으로 전근을 가면서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리고 방콕에서 태국의 육군성 비서로 일하고 있던 쿨티다 라는 예쁜 아가씨를 만나 첫눈에 반해 청혼을 하고 골프 천재 아들을 낳았다.
쿨티다는 아들의 이름을 엘드릭이라고 지었다. 얼은 아내의 이름을 받아들이면서, 옛 전우를 생각하는 마음에 타이거라고도 불렀다. 얼 우즈는 혹시 운구옌 풍이 살아있다면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을 보고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그는 월남전의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다.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를 통해 골프를 배웠다. 라운딩을 같이 하면서 ‘아들아. 인생을 알려거든 골프를 배워라.’는 가르침을 통해 성장했다. 이것이 타이거 우즈의 살과 뼈라면 영혼과 정신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어머니 쿨티가 아들 타이거에게 인상적인 말을 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화가 났을 때 넌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너의 골프채를 가지고 복수를 하면 돼. 그것이 너를 대신해서 말을 해주는 최대의 무기인 거야. 장차 너의 골프채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수없이 많이 하게 될 거야. 너의 골프채가 너를 대신해서 말하게 해라.”
타이거 우즈는 흑인이다. 골퍼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백인사회에서의 인종차별은 타이거를 비껴가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에 입학해서는 집단 따돌림에다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때 어머니는 분노보다는 실력을 폭발시키라고 조언했다. 실력이 있다면 아무도 너를 우습게 볼 수 없다. 타이거에게 실력이란 바로 골프였다. 골프채가 그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타이거는 골프채로 모든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내 가슴속에도 읽는 순간 각인되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세상사…, 이 풍진 세상, 섭섭타 말고, 너의 연필이 너를 대신해서 말하게 하라.’
타이거의 혈통은 매우 복잡하다. 아버지는 반은 흑인이고, 반의 반은 아메리카 인디언, 다른 반의 반은 중국인이다. 한편 어머니는 반은 태국인이고 반의 반은 중국인이며, 또 다른 반의 반은 백인다. 이런 혈통을 타고난 타이거는 자신을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며, 아시안 아메리칸이라고 한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저는 미국인이고, 그 사실에 대해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이것이 저의 본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협조와 격려 덕분으로 제가 단지 한 사람의 골퍼일 뿐이고 하나의 인간일 뿐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종 차별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빈정 대었던 혈통 문제는 그가 아마추어 시절에 이미 아주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장차 위대한 골퍼의 반열에 설 것이 확실한 타이거 우즈에게 더 이상 언론이나 사람들은 그의 피부색이나 혈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어떤 기록을 세우느냐 어떤 포즈를 취하느냐에 몰두한다. 타이거는 과연 골프채로 모든 걸 말하고 있다. 타이거의 아름다운 스윙 앞에서 세상은 침묵하다가 박수를 보낸다. 흑백이 사라지고, 혈통이 사라지고 골프 공만이 창공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불교의 대 긍정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있는 현상을 받아들이다. 그리고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타이거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들의 인종관일 뿐 저의 인종관은 아닙니다. 저는 최고의 흑인골퍼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최고의 골퍼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골프는 백인 우월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스포츠였다. 타이거 우즈 역시 골프를 치면서 보수적인 클럽들의 차별을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타이거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주니어 선수로의 기록을 세웠다. 주니어 아마추어 대회를 3년 연속 우승한 전례가 없는 업적 이외에도 그는 최초로 롤렉스 주니어 올 아메리칸 팀에 4년 연속 선출되었고, <골프 다이제스트>지의 올해의 선수에 연속 3년 연속 선정되는 대 기록을 남겼다. 스탠퍼드 대학생이었던 타이거는 U S 아마추어의 94년 역사에서 최연소 우승자이기도 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편지를 보내주었고, 우즈는 자랑스러워했다. 프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타이거 우즈는 미국의 온갖 탁월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학과 공부 역시 열심히 하는 지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마추어 세계를 떠나기 위해 대학 공부는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아마추어로서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 시절에 그는 아마추어로서 이미 모든 걸 이루었다. 아마추어로서 그는 이런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마추어 골퍼로서 추앙을 받았던 바비 존스의 철옹성 같은 명성을 허물어뜨렸다.”
타이거는 이제 정말 ‘선수’들이 모여 있는 필드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타이거가 1996년 8월 28일 20세에 프로가 되는 순간 아직 필드의 잔디도 밟지 않았는데,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거대 스포츠 업체인 나이키 사는 5년간 사천만 달러를 지급하고, 계약 시 750만 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외에도 이런 저런 계약들을 합치면 그는 연 평균 1200만 달러의 수입이 보장되었다. 앞으로 보장된 것만 그 정도이다. 이러한 자신의 미래를 알았는지, 어린 시절 타이거는 회계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왜냐는 질문에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회계사를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첫 프로 골퍼로서 치른 밀워키 경기를 하던 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승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잠시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는 아마추어 별들 중에서 수년 동안 투어에 참가하지도 못한 골퍼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냐고 되묻고, 여기에 있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물로 보느냐고 되물었다. 타이거는 말했다.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경기에 나갑니까? 출전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건 제 확고한 신념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신념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께도 늘 말씀 드리지만 2등은 싫다. 3등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이것이 바로 제 삶의 철학이지요.” 기자는 아마도 이 철없어 보이는 타이거를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자식 이제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프로의 세계를 말이다, 하고 속으로 말했을 것이다.
타이거 우즈는 첫 PGA 메이저 대회에서 공동 41위로 경기를 마감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보냈다. “크로우즈 네스트는 앞으로 언제나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이 장엄한 골프 코스는 아마추어와 프로 선수로서 제가 활동하는 한 언제까지나 저에게 강한 도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 나름대로 흡족한 성적을 거두었고,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의 이 대회는 제 가슴 속에서 언제나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생애 최초로 PGA에서 그것도 메이저 대회에서 컷을 기록했던 곳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저는 바야흐로 소년에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타이거 우즈에게는 시대적인 운도 따랐다. 타이거가 아마추어 시절에 전 세계적으로 골프의 위상이 높아졌다. 프로 골프의 상금이 급속히 치솟아 총 상금이 100만 달러 이상이 되는 대회가 즐비했다. 더불어 골프 산업도 전반적으로 팽창하여 미국에서만 골프 인구가 2,500만 명에 이르렀고, 고급 골프 클럽을 사는 사람이 허다했다. 이렇듯 골프를 좋아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시장이 넓어지자, 그 스포츠는 젊은 스타가 간절하게 필요했다. 그때 나타난 스타가 바로 타이거 우즈이다. 물론 타이거 우즈 이전 시절에도 위대한 골퍼들이 많이 있었다. 골프 그 자체만을 사랑한다면서 프로를 거절하고 대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아마추어 바비 존슨을 비롯해,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등등 골퍼들의 이름과 업적만 나열해도 책 한 권으로 부족할 것이다. 우즈 이전에도 탁월한 흑인 골퍼는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타이거는 잭 니클라우스를 경쟁상대로 꼽았다. 어린 시절부터 타이거 우즈가 염두에 둔 사람은 바로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였다. 이른바 호랑이의 황금 곰(잭 니클라우스의 별명) 사냥이었다. 이미 타이거는 30세에 12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월터 헤이건과 타이를 이루면서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이 부분에서 2위에 랭크되었다. 서른 살 시절에 잭 니클라우스는 9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했다. 이미 타이거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골퍼로서 각인되었다. 타이거는 프로로서 선배들의 위대한 기록을 하나하나 깨나가야만 했고, 그렇게 했고,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골퍼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미 타이거 우즈는 잭 니클라우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내 생각이 아니라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의 여론 조사 결과이다. 그의 연보를 보면 년도의 우승기록만으로도 한 페이지가 넘는다. 호랑이는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타이거 우즈의 책은 대부분 골프 실용서가 많다. 아쉬운 대로 그의 평전인 <타이거 우즈의 신화>(동화출판사)를 소개한다. 타이거가 프로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아 지금의 타이거 우즈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인 존 스트리지는 타이거가 네 살 때부터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우즈의 집을 자주 찾았다. 소설처럼 읽히면서 재미있다. 스포츠 전문가인 그는 골프의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타이거 우즈의 비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라운딩>(한국경제신문)을 추천한다. 미국 최고의 골프 컬럼니스트인 톰 갤러한의 책이다. 타이거 우즈를 비롯해서, 바비 존스, 그레그 노먼,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 필 미켈슨 등 역대 골프 거장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더불어 골프의 역사까지도 잘 소개되어 있어, 우즈와 골프를 잘 알게 해 주었다. 타이거 우즈를 읽고 나니 골프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