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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아침 식사를 하고 만달레이로 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갔다.
육로 교통여건이 나빠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한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중부의 도시이다. 미얀마 제2의 도시로,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콘바운 왕조의 수도였다. 양곤 북쪽 716km에 위치하며, 이라와디 강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는 약 100만이고 만달레이 주의 주도이다.
만달레이는 1857년 2월 13일에 민돈 왕이 만달레이 언덕 기슭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면서 세워졌다. 새로운 수도의 면적은 66km²였고 4개의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413헥타르 면적의 성은 2,032m 길이의 성벽과 너비 64m, 깊이 4.57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을 따라 169m 간격으로 감시를 위한 금빛 물부리가 달린 포탑이 서있었다. 각각의 방향으로 3개의 문과 해자를 건너는 5개의 다리가 있다. 1857년 6월에 옛 아마라푸라의 궁전은 해체되어 코끼리를 통해 만달레이 언덕의 새로운 위치로 이전되었고 2년 후인 1859년 5월 23일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불과 28년 후인 1885년 11월 28일, 제3차 영국-미얀마 전쟁의 패배로 미얀마가 영국령 인도에 병합됨에 따라 만달레이는 왕조 시대의 최후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어 많이 파괴되었고, 윌리엄 슬림 경의 지휘 아래 영국 제14군단이 재점령했던 1945년 3월에 12일 포위기간 동안 또 다시 최악의 손상을 입었다.
그래도 만달레이는 미얀마에서 양곤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이며, 중앙부에 위치한 덕분에 철도, 도로, 비행기, 강을 운항하는 기선 등을 이용한 내륙교통과 교역로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도가 된 네피도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만달레이는 미얀마 중앙에서 주요 상업, 교육, 의료의 중심지이다.
아울러 만달레이는 버마 문화의 중심지로 여겨진다.
'미얀마 불멸의 심장'을 뜻하는 만달레이에는 불교신자가 많으며 중요한 불교 중심지로서 수많은 승려들의 본고장이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소형 쌍발여객기이다
오늘도 비행기가 제시간에 안 오고 한 시간 정도 늦었다.
낮게 떠서 50여분 가니 비행장이 있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비행장이라고 한다.
만달레이 시에서는 차(茶) 도매, 견직조, 술의 양조 및 증류, 비취세공, 황동 및 구리 주조, 금박업 같은 산업을 하며 성냥, 목공품, 금은그릇도 생산한다.
철도와 비행기편으로 남쪽에 있는 양곤, 북쪽에 있는 미치나와 미얀마로드의 출발점인 라시오까지 연결된다. 가까이 있는 아바, 아마라푸라, 사가잉시가 만달레이 도시권에 속한다.
이곳에는 문리과 대학교를 비롯해서 사범대학 1개교와 농업·의학·기술 전문학교, 기술고등학교, 예술학교 등의 교육기관이 있다. 박물관과 현대식 병원도 하나씩 있다. 양곤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간지가 발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주변지역은 미이틍게강과 마기이(마다야) 강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마다야 가까이에 있는 사이긴 구릉지대에서는 설화석고가 나며 이것은 만달레이에서 제작하는 불상(佛像) 재료로 쓰인다. 평원지대는 미얀마의 건조지대 일부이지만 길이 67㎞인 만달레이 운하를 통해 36,400㏊나 되는 지역에 대규모로 관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마하간다용 수도원으로 갔다.
만달레이의 대표적인 수도원으로 미얀마 최대 규모의 탁발의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탁발이란 스님들이 드실 음식을 사람들이 공양하는 것을 뜻하는데 수백 명의 스님들이 긴 줄을 이루어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모두 나와 탁발을 한다.
만달레이 마하간다용 수도원에는 천여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비파사나등을 수행하는 곳인데, 천 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한꺼번에 탁발 공양하는 경건하면서도 놀라운 탁발공양의식이 유명한 곳이다.
수도원의 담장에는 경전의 문구를 돌에 새긴 수많은 석판이 걸려있다
원래 스님들은 마을로 탁발을 나가야 하는데 이 곳 수도원에 계신 스님들 수가 천여명으로 워낙 많다보니 수도원에서 공양을 해결한다. 대신 재가신자들이 수도원에 와서 공양을 준비한다.
마하간다용 수도원의 스님들께 공양하기 위해선 거의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뒷 쪽에 세워진 칠판에는 수개월 동안 기다리다가 오늘의 공양을 보시하게 된 사람들 명단이 쓰여 있다.
스님들께 공양하는 수개월을 기다린 오늘의 보시자들은 보통 한끼 식사에 일인당 2천원 정도의 비용으로 1천여명의 스님들께 공양하려면 전체 2백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저 우리가 보기엔 가난하게만 보이는 미얀마 사람들조차도 보시하는 일은 일상이며 행복으로 여기는 탓에 미얀마 부호들 집 쌀독에 쌀이 떨어져도 수도원 쌀독에는 쌀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오늘의 보시자들이 밥을 퍼서 스님들의 발우에 담아드린다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달리 수행자의 출가와 환속이 자유롭다.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고 철저히 계를 지키는 영속적인 수행자도 많지만, 어릴 적 신쀼 의식(출가의식)을 통하여 사원에 들어가 수행자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체험한 미얀마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삭발을 하고 단기출가자가 된다.
흰 옷의 스님은 신쀼의식을 치룬지 얼마 안 되는 아기스님이시다
일생 2-3번의 단기출가를 하게 된다고 한다.
하루 유일한 한 끼 식사를 위한 기나긴 행렬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다.
신쀼의식(출가의식)을 치룬지 얼마 되지 않으신 스님들은 따로 모여 공양을 한다.
신쀼의식(출가의식)을 할 때는 부처가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한 것을 본 따 가장 화려한 옷을 입히고 온갖 장신구로 치장을 한다.
스님들이 공양을 마치면 남는 음식을 한곳에 모아둔다.
모아 둔 음식은 남은 음식을 얻으러 오는 아이들과 들개들의 몫이다.
남은 밥을 비닐로 싸가지고 집으로 가려는지 머리에 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고 나면 기다리던 개가 마져 먹겠지.
미얀마 개는 모두 주인 없는 들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개들이 사람이나 차조차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시내 사거리에서 낮잠을 누워 자는 바람에 차들이 피해가느라고 교통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 버스도 개 때문에 제대로 못간 적이 있다.
사원을 지나 한참 걸어가니 우빼인목교가 나온다.
스님들이 따웅떠만 호수가 있어 호수 건너 마을에 탁발을 나오지 않아 우빼인이라는 장사가 있었는데 스님들이 다닐 수 있게 놓은 다리라고 한다.
무려 1086개에 달하는 티크목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1.2km길이의 목조다리로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견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티크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티크목은 물속에서 썩지 않으며 총으로도 뚫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우빼인 다리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아직 단단해 보인다.
특히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둥근 원목의 기둥들은 여전히 허리가 꼿꼿하다. 어지간히 뛰어다니거나 자전거 몇 대가 함께 지나가도 끄떡없다. 팽창과 수축이 적고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아 최고의 목재로 손꼽힌다. 정말로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 한다는 미얀마 티크목의 명성이 과연 허언이 아닌가 보다.
다리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 여러 가게가 있다.
우리도 다리를 따라 중간까지 걸어갔다.
중간 중간에 관람객들이 쉴 수 있게 정자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다.
호수 끝까지 구불거리며 길게 펼쳐진 우빼인 다리 위로 걸으며 다리 아래 논에서 논가는 농부, 낚시하는 사람, 배타고 그물 걷는 사람들을 보며 여유를 즐겼다.
카메라를 들고 프레임을 보니 바로 동양화다.
소로 논을 가는 모습에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집에서 논 밭 갈 던 옛 생각이 난다. 언제 보았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꽤 오랜만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소로 논을 삶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정말 소몰이를 잘하셔서 다른 집 논도 아버지가 많이 갈고 삶아 주셨다.
호수에서는 낚시도 한다. 그런데 물이 흐르지 않아서 괜찮은지 혼자서 세 개를 한다.
점심 먹고 만달레이 최고의 유적인 마하무늬 파고다(Maha Muni Pagoda)에 갔다.
마하무니 파고다는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짜익티요의 황금바위와 함께 미얀마 3대 불교성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따라서 순례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1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마하무늬 불상의 유래는 매우 깊다.
2500년전 현재 방글라데시지역에 단야와디 왕국의 산다뜌리아왕이 싯다르타(우리가 아는 석가모니의 이름 : 석가모니는 원래 석가족의 후예라는 산스크르트어 샤키아무늬를 뜻함)가 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했다고 한다.
싯다르타는 불력 123년 그의 제자 500명과 함께 그 곳을 찾아 일주일 간 정법과 불교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었고 왕은 그것을 보답하는 차원에서 높이 3.8m의 황동 부처상인 마하무늬불상을 만들어 라카인 뜨리고께 언덕에 모셔놓았다.
꽁바웅 왕조가 1784년 라카인 지방을 침략하여 빼앗았는데 보도파야(Bodawpaya)왕은 바로 수천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이 불상을 만달레이로 가져오게 하였다.
138개의 산을 넘고 수많은 길을 새로 만들며 모셔온 불상이 사가잉 언덕 어귀에 도착했을 때 보도퍼야 왕은 직접 그곳까지 마중을 나가 불상을 모셔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불상을 처음 아마라뿌라에 모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화재가 나 손상된 불상을 보수한 후 다시 만달레이로 옮겨 오늘날의 위치에 모셨다.
사실 마하무니 불상을 모시고자 했던 이는 보도파야 왕만이 아니었다. 앞서 바간 왕조 시대 아노라타 왕이 라카잉을 정복했을 때에도 이 불상을 가져오려했으나 실패했고 뒤를 이어 알라웅시투 왕이 배를 이용해 이운하려했으나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높이 3.8미터, 무게 12톤이 넘는 거대한 불상을 이운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벅차고 어려운 일이었을지 짐작케 한다.
역대의 왕들이 성공하지 못했던 마하무니 불상을 수도로 이운해온 보도파야 왕은 그런 점에서 분명 앞서의 다른 왕들과는 달랐다. 단순히 대단한 신심의 소유자였던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심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이 쥐고 있던 권력을 휘두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때론 잔인하기도 했다. 그것이 미얀마 왕조의 쇠락과 멸망을 불러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이런 이유로 마하무늬부처님은 살아계시는 부처님이라 하여 매일 새벽 4시30분에 세안을 하고 금박을 붙이고 가사를 입히는 행사를 하는데 많은 미얀마인들은 세안한 물을 얻어가려고 새벽마다 장사진을 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미얀마에서도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 몇 군데 있다.
이곳에 바로 ‘여자는 출입금지’ 즉 금녀의 선이 있다. 미얀마에서는 스님들의 가사와 여자의 옷이 스치면 스님들의 불심이 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길거리에서조차 여자들은 스님과 스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쓴다. 그런 믿음이 사원에서도 적용돼 일부 사원에서는 여자들이 불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경계선을 그어 놓는다. 그래서 여자들은 금박을 붙이고 싶어도 선을 넘을 수 없어 여자들을 대신해서 불상에 금박을 붙여주는 대리인이 있다.
사진을 보면 입구에 있는 금박 파는 곳에서 금박을 산 후 부탁을 한 여자들은 앞에 앉아 있고 부탁하는 여자 둘이 오른쪽 남자에게 자기가 산 금박을 붙여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지키는 사람들까지 있다. 마하무니 파고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불상에 금박을 붙이며 기도를 하는데 불상에 다가갈 수 없는 여자들을 위해 대신 금박을 붙여주는 대리인들도 있다.
1세기에 만들어진 마하무늬불상에 많은 신도들이 금을 붙이고 있다.
금을 붙이는 작업이 매우 진지하다.
미얀마에서는 금이 아주 많이 난다.
밭이나 강에서도 금을 채취한다.
하지만 이 금은 모두 부처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하무늬 불상의 다리가 씨름선수 이만기의 몸통 보다 더 크게 불어났다.
2백년 동안 금을 붙여 다리나 허벅지, 등짝, 팔뚝의 금으로 인해 모든 부위가 원형을 잃었다.
부처님의 가슴에도 금판이 붙여져 있다.
금을 아무데나 붙이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붙인다.
부처님의 얼굴에는 안 붙인다.
마하무늬 불상에 붙여져 있는 금이 12톤 정도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해 보면 1돈이 25만원,266돈이 1kg이니까 6,650만원 1톤에 665억원, 곱하기 12톤이면 7,980억원, 달러로 7억2천만달러 정도 된다.
만달레이 성을 왼쪽으로 보며 만델레이 언덕에 올랐다.
만달레이성은 1857년 아마라뿌라에서 수도를 천도하면서 민돈왕의 명에 의해 지어졌다.
성벽 한 변 길이가 3km이고 가로 세로가 같은 정사각형 요새다.
성 밖으로는 수심 3m 해자로 둘러쳐져 있다. 현존하는 미얀마 최대의 성이다.
만달레이 언덕은 해발 235m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24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이곳을 방문했다는 전설이 있다.
부처님께서 현재의 만달레이 자리를 가리키며 약 2400년 후에 이곳에 대도시가 지어질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도 한다.
올라가는 방법은 걸어서 1729개의 계단을 가도 되지만 우리는 이곳 버스를 탔다.
여기서 버스란 트럭을 사람들이 양쪽에 앉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경사와 급한 구비를 돌아 정상 아래에 도착하여 3단계에 걸쳐 에스커레이터를 타니 정상에 도착한다.
수타웅파이파고다가 눈에 들어온다.
이파고다는 유리조각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매우 화려해서 수정궁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본 파고다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이다.
외국인들은 사진기를 소지하면 반드시 돈을 내라는 경고문이 있다.
시내가 두루 잘 보인다.
이곳에는 쉐야또 불상과 3개의 진신사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적멸보궁과 같은 곳이다.
쉐야또 불상은 특이하게 남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예언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파고다 뒤쪽에는 악령들이 부처님에게 교화되었다는 전설을 재현해놓은 동상들과 이절을 짓는데 기여하였다는 코브라상도 있다.
최초에 이곳에 절을 지을 때 주민들이 반대하였는데 코브라가 도와줘 절을 지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코브라파고다라고도 한단다.
미얀마에서는 뱀도 상서로운 동물로 인정한다고 한다.
코부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머리 부분이 반질반질하다.
나도 믿거나 말거나 쓰다듬고 왔다.
천도를 한 민돈왕은 부처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쉐얐또파고다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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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함 >
언덕을 올라갔던 반대쪽으로 내려와 다시 미얀마 버스를 타고 내려온 후 우리가 타는 버스를 타고 쿠도도파고다에갔다.
1857년 민돈(Mindon)왕에 의해 지어진 쿠도도 파고다는 높이 1.5M, 폭 1.1M 크기인 729개 대형 대리석에 새겨놓은 불교경전(석장경)에 둘러싸여있으며 만다레이 언덕 서쪽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대장경이란 불교 성전을 집대성한 경장, 율장, 논장의 삼장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이 농축되어있는 법보이다.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은 목판본인데 이것을 돌로 만든 것이 석장경이다. 석장경은 세계적으로 중국 운거사, 미얀마 이곳 쿠도도파고다 두 곳 밖에 없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북 상주에 팔만대장경 석판본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면 세계 세 번째 석장경이 되겠지.
5년에서 10년을 계획하고 추진한다고 한다.
이곳은 729개의 작은 파고다와 1개의 큰 파고다 모두 730개 파고다로 이루어진 왕실지정유적(Kuthodaw)이다. 여기에는 미얀마 불교도들이 개정·정선(精選)하여 정통경전으로 받드는 불교경전들이 기록된 729개의 흰 대리석 서판이 있다. 제5차 불교도회의에서 민돈 왕이 공인한 이 서판들은 하나하나 소형 탑 구조물로 보호되어 광장에 세워져 있으며 광장 중심부에는 전통사원인 730번째 파고다가 자리 잡고 있다.
석장경 내용은 매우 방대하여 사람이 하루에 8시간씩 읽어도 1년3개월이 걸린다는 엄청난 양이다.
2,400여명의 수도승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알려져 있다.
만달레이북쪽 3~4km떨어진 사가잉 언덕(Sagyin Hill)으로부터 채석해온 백색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대리석판은 파고다 안에 놓여 있고 대리석판 앞뒷면에 팔리(Pali; 고대 인도말의 일종)어를 미얀마 발음으로 새겨 놓았다.
111개 대리석판에 비나야(Vinaya), 410개 대리석판에 수타(Sutta), 208개 대리석판에는 압히드함마(Abhidhamma)이 새겨져 있다.
티피타카의 앞선 복사본은 부서지거나 썩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 졌으나 꽁바웅왕조(Konbaung Dynasty)의 민돈왕 때 비로소 견고한 대리석판위에 복사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 석장 경 >
티피타카(Tipitaka)란 불교를 지속해온 근원 중의 하나로 팔리언어로 'ti'는 3의 의미, 'Pitaka'는 광주리라는 의미의 합성어이다.
하미얀마왕조중에서, 수도사 씬 아라한(Shin Artahan)과 함께 테라바다 불교(Theravada Buddhism)를 최초로 수립한 아노라하타(Anawrahta)왕은 따통(Thaton)에서 바간으로 불교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티피타카 300개를 가지고 32마리의 백색 코끼를 타고 돌아 왔다고 한다.
이후 미얀마왕들은 야자잎 위에 만들어진 티피타카의 복사본으로 불경을 깨우치는 데 노력했으며 수도사들에게도 제공하였다.
저녁 때 밍군섬에 갔다,
밍군섬은 미얀마의 이리와디강 건너에 있다.
이 강은 우리나라의 한강 격으로, 미얀마의 젖줄이라 부르는 강이다. 만달레이에서 배를 타고 이 강을 한시간 거슬러 올라가 건너면 불교유적이 있는 밍군 섬에 도착한다.
우리는 가는 도중 배가 고장 나 다른 배를 타고 갔다.
배가 도착하여 내리는데 사람이 대나무를 잡아 난간을 만들고 길에는 꼬마들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내리자마자 한명씩 관광객 옆에 바싹 붙어 다닌다.
가지고 있던 사탕과 과자를 주었다.
이 밍군 섬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밍군 대탑이다.
이 탑은 1790년 보도퍼야 왕이 자신의 왕위 등극을 자축하기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탑 건설을 목표로 지은 것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1,000여명의 노예와 전쟁포로를 동원하며 혹사시켜 모두 인도로 도망갔고, 왕은 그들을 잡으러 국경을 넘어 인도로 가게 되었다. 이를 구실로 영국과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탑 건축은 중단된 채로 300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즉 미완성으로 남아있게 된 셈인데, 이 탑이 완성되었으면 높이가 150m에 이르는 세계최대의 탑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이 탑의 계단을 과거에는 오를 수 있었으니 지진으로 붕괴가 심해 안전을 이유로 우리는 올라가지 못했다.
현재는 지진으로 가운데가 갈라진 모양의 1층과 네 구역을 지키는 사자 상 엉덩이 두 개 만이 남아 있다.
권력은 무상하고 세월은 무심한 것인가?
앞에 흐르는 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이 흐르고 있는데....
<무너지고 겨우 남은 사자 엉덩이와 꼬리 >
다만 크기만 머릿속으로 가늠하여 보았다.
탑의 사방을 지키는 사자 엉덩이가 3~4층 높이는 되는 듯 하고 대탑은 작은 동산이 연상될 크기이다.
대탑을 조금 지나가면 밍군종 이 있다.
1908년 5월5일 꽁바웅의 보도퍼야 왕에 의하여 만든 동종으로 세계에서 현존하는 두 번째로 큰 종이다. 지름 4.8m 높이 3.6m 무게 50t 이다.
러시아에 가장 큰 것이 있는데 깨져 사용하지 못하므로 사용할 수 있는 종중에는 가장 크다고 한다.
만든 모습은 그냥 크기만 하고 예술성은 없는 것 같다,
< 종 안에서 >
우리나라 에밀레 종이 18.9톤이니 크기는 크다.
속으로 들어가도 되고 서도 한 참 더 높다.
나도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본 것 보다 크다.
안타깝게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낙서를 많이 했다.
나는 낙서하지 말라고 강의를 했다.
< 지붕에 TAXI 라고 쓴 우차 >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꼬마들은 관광객들을 계속 따라 다니며 부채질을 해준다.
동정을 받아 팁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 버스를 따라오며 원딸라를 외치던 아이가 떠오른다.
길가에 소가 끄는 마차가 있는데 지붕에는 영어로 TAXI라고 썼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하얀 백색사원이 나온다.
1826년 바지도 왕이 먼저 죽은 그의 첫 부인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원인데, 하얀 색깔 때문에 흰 코끼리라는 의미의 ‘신쀼미’로 이름을 지었다 한다. 죽은 부인을 기리는 곳인데 인도의 타즈마할과 같은 맥락이다, 푸른 하늘과 흰 사원의 모습이 인상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흰두교의 영향을 받아 파고다의 맨 위는 인도의 수미산을 형상화 했고 7개의 물결치는 기단은 파도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신쀼미 파고다는 총 7층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7층에 꼭대기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음 상쾌해지는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안에는 특이한 불상이 있다.
앞뒤에 불상이 배치 되어있다.
그 이유는 어느 날 처음 모신 불상을 잃어버렸다. 할 수 없이 불상을 다시 만들어 모셨는데 후에 불상을 찾아 처음 위치에 갖다놓아 불상이 두 개 이다.
주변을 둘러 보니 주변에도 여러 조각물들이 있는 데 깨진 것도 있고 없어진 것도 있는 것을 보니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결과 인 것 같다.
날씨가 어둑해지고 우리는 오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려고 배있는 곳으로 오니 꼬마들이 여기까지 따라온다.
배를 타고 오는 데 처음 배 탔던 곳에서 연등 축제를 한다.
배 여러 대에서 계속 줄로 이은 등을 강에 내린다.
그리고 가끔씩 폭죽도 터뜨린다.
이라와디 강이 어둠과 불로 그림이 되었다.
연등의 장관을 구경하면서 불교국가에서 절에서 시작해 절로 하루를 마쳤다
첫댓글 정말 감동깊게 잘 읽었네!
미얀마는 불교유적이 예술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네!
고유한 불교적인 삶이 배어 나오는것 같아 보기 좋았네!
시간되면 나도 한번 갔다 와야 겠네! 많은 조언을 부탁하네!
탱큐유! 베리망치!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