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면사무소로 진입하는 지점, 구도로와 신도로가 만나는 곳에 있었다는 작은다리를 산이면 사람들은 봉사다리라고 불렀다.
지금부터 약 200년 전 대흥사에 일지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일지스님은 학문과 풍수지리에 뛰어난 도승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셨습니다. 그런 일지스님에 귀에 하루는 산이면 상공리에 '백로세우(白鷺洗羽)'라는 명당 터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백로세우' 명당 터라면 정승이 나온다는 그야말로 명당 중 명당 터입니다. 풍수지리에 도통했던 스님은 이 소문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인근에 백로세우 터가 있다니" 일지스님은 그 터를 빨리 보고 싶어 도통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다시피 한 스님은 다음날 일찍 절을 나섰습니다. 대흥사에서 산이면 상공리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스님은 그 명당 터를 빨리 보고 싶어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걸음에 산이 상공리를 찾아갔습니다. 점심시간 쯤 상공리에 도착한 스님은 백로세우 터가 있다는 곳을 살피고 또 살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눈에 찾을 듯싶었던 명당 터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위치를 잘못 알았나?" 스님은 명당 터가 있다는 그 주변의 지세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백로세우 명당 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피곤으로 눈이 벌겋게 충혈 될 때까지 명당 터를 찾던 스님은 결국 명당 터 찾기를 포기하고 대흥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갈 때의 씩씩했던 발걸음이 이제는 터벅터벅 힘이라고는 하나 없는 걸음으로 바뀐 채 스님은 그렇게 길을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님의 눈앞에 작은 다리 하나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목도 축이고 지친 다리도 쉴 겸 그 다리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습니다. 먼지에 싸인 손발도 씻고 목도 축인 스님은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유명한 명당 터 하나 찾지 못한 내가 어찌 도승이고 학문을 많이 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봉사(소경)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하며 탄식했습니다. 그 후 스님은 자신의 학문이 부족함을 깊이 깨닫고 다시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다시피 공부에 매진한 스님은 그 후 다시 산이면 상공리를 찾아갔습니다. 깊은 학문으로 혜안이 넓어진 그 스님의 눈에 '백로세우'의 명당 터는 금방 들어왔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백로세우 명당 터를 찾은 스님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스님은 산이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흠뻑 취하며 예전에 자신이 잠시 쉬었던 다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쉬면서 자신을 소경이라 불렀던 곳, 그 후 사람들은 일지스님이 명당 터를 찾지 못하고 잠시 쉬면서 자신을 소경이라 불렀던 다리를 '봉사다리'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