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들을 보면 사옥(社屋)을 갖고 있지 않은 회사가 많습니다. 건물 짓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건설회사가 자기 사옥이 없다는 것은 뜻밖이지요.
중소형 건설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건설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공능력평가 1위부터 10위 업체들 가운데 사옥이 있는 경우는 삼성물산 대림산업,(시평 4위), 포스코건설(시평 5위) 정도입니다. 수주 할 때마다 수 천억원씩 벌고, 연간 수조원의 매출을 내는 건설업체들이 왜 사옥이 없을까요.
시공능력평가액(시평) 순위로 10위권 언저리의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업체들 사이에서는 사옥을 갖고 있으면 망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그럴 듯한 사례가 몇가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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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에 찍은 계동 현대그룹본사 건물 모습. 이 때만 하더라도 현대건설이 쓰던 사옥이었으나 워크아웃을 겪으면서 본관 뒤편에 있는 별관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 조선일보 DB
시평 1위인 현대건설은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그룹사옥 본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워크아웃을 겪으면서 본관에서 나와 별관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현대건설은 우여곡절 끝에 과거 현대그룹에서 동생 격이었던 현대차의 계열사로 내려앉는 굴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시평 3위인 대우건설은 대우그룹 전체가 부도를 맞으면서 그룹 중추였던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됐습니다. 대우건설이 사옥으로 쓰던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도 금호에 매각하고 종로구 신문로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 밖에도 동아건설, 극동건설, 건영, 청구, 우방 등이 실제로 사옥을 가진 상태에서 부도를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문이 풍수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요. 한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는 한 풍수지리전문가는 "집을 짓는 기업이라고 해서 특별히 자기 집을 가지면 해(害)가 된다는 이야긴 금시초문이다"라며 "사옥마다 각각의 입지를 분석해볼 순 있겠지만 이를 건설업이라고 해서 통용되는 풍수지리적 해석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풍수적으로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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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에 찍은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야경. 이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겪었다. / 조선일보 DB
두산건설은 올해 서울 논현동 사옥을 1440억원에 매각했고,
삼부토건도 르네상스서울 호텔을 1조1000억원에 팔았습니다.
'사옥을 갖고 있으면 망한다'는 괴담이 횡행했던 시기는 매번 건설업계가 어려울 때였습니다. 최근 또 다시 말이 도는 걸 보면 그만큼 건설업계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100대 건설사중 23개 기업이 구조조정을 밟고 있고, 상당수 기업에서 임금체불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