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피곤에서 회복은 되셨는지요?
어제 경남과학교육원에 망원경 정비하러 다녀왔습니다.
정비 계약 댓수가 반사망원경 8대, 굴절망원경 7대, 다카하시 뮤론210 1대로 총 16대...
그외 태양 필터 등의 세척은 서비스로 해 주기로 하고...
경험 많은 보조자가 있어도 하루에 마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담당 연구사님께도 얘기를 했고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꼬시기는 했는데 이틀에 걸쳐 하자니
늙다리 둘이서 객지 여관방에서 잠자기가 싫어서 아침도 굶고 7시 40분에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친구는 2005년에도 경남과학교육원이 창원에 있을 때 망원경 정비하러 같이 간 적이 있어
같이 작업하기가 수월한데 전날 저녁 8시 반 무렵에 2층에 올라와 휴대폰을 보니 이 친구 부재중 전화가 6통...
한 달에 적게는 5번, 많으면 10번 정도 같이 술을 마시는 웬수 같고 지겨운 친구인데
전화를 하니 다른 친구가 받아 죽전네거리에서 같이 한 잔 하고 있으니 나오라고 합니다.
전화 끊고 생각하니 머리 감고, 면도하고, 지하철 타고 나가면 9시 반은 될 것 같고
술 마시면 망원경 정비 작업이 힘들 것 같아서 못 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속으로 이 친구 과음하고 아침에 못 가겠다고 하면 큰일인데 싶었는데
아침에 보니 멀쩡하길래 물어보니 둘이서 2병 마셨다고 하지만 반으로 줄여 말한 것 알고 있습니다.
경남과학교육원이 몇 년 전에 창원에서 진주시 진성면으로 이전했는데
진성 IC에서 2km 정도이지만 대중교통은 전무한 형편입니다.
경남과학고, 경남체육고도 같이 있고...
늘 같이 가는 사람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3년 전에 혼자 갈 일이 있어 기차를 타고 진성역에서 내렸는데
철길 바로 옆에 버스정류장처럼 비를 가릴 수 있는 지붕 밑에 붙박이 의자만 몇 개 달랑...
역이니 당연히 택시가 몇 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택시는 커녕 사람조차 하나 안 보이고 정말 황당합니다.
할 수 없어서 과학교육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습니다.
간이역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기차에 올라타면 승무원이 와서 표를 끊어준다고 하더군요.
진성역은 몇 개 안 남은 간이역으로 여행을 즐기시는 분들은 잘 알고 계시더군요.
시내 길이 밀려서 화원 IC까지 50분이 넘어 걸렸는데 화원 IC가 남대구 IC로 바뀌었네요.
진성 IC 통과한 시간이 10시 10분...
얼큰한 육개장을 먹으려고 몇 년 전에 갔던 식당을 가니 메뉴들이 바뀌어
돼지국밥집으로 가서 6000원 짜리 돼지국밥 한 그릇 먹었는데 음식 질과 맛이 영...
돼지고기 양이 함지고 옆에서 먹었던 것의 1/5에 국물 양도 반에 맛도 엉망...
부추 겉절이는 달기만 하고 참기름 냄새에 느끼하고 깍두기도...
대충 후다닥 먹고 과학교육원에 10시 반에 도착해 바로 작업 들어갔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21C2454E5EFDB42C)
정비를 할 망원경들이 대충 모아져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작업 중에 계속 망원경들이 들어옵니다.
12시가 조금 넘어 같이 점심 먹으러 나가자는데 시간 낭비할 것 같고
아침 먹은지 2시간도 되지 않아서 나중에 중국 음식 시켜 먹겠다고 하고 계속 작업했습니다.
친구가 미러와 사경 분해해 주면 내가 미러 세척을 하는 동안에 친구가 경통 내부 먼지를 치솔로 털어내고...
세척을 마친 미러와 사경을 친구가 다시 조립하는 동안
적도의 백래쉬 조정하고 굴절망원경 렌즈와 파인더 닦고...
일부 굴절망원경은 렌즈 뒤쪽까지 오염이 되어 있어서 렌즈를 분해한 것도 3대나 됩니다.
그래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 95년에 납품한 망원경이지만 아직 대부분 멀쩡합니다.
6년 전에 한 번 대대적인 정비를 한 탓도 있지만 관리를 하시는 분이 아주 잘 하시고
망원경 보관실은 항온 항습기가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어 시원해 작업이 수월했습니다.
3시쯤 짜장면 곱배기 2그릇과 연구사님과 담당자분들 중참으로 군만두를 하나 시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근데 돼지국밥 맛도 그렇더니 짜장면도 면은 퍼지고 싱겁고...
난 억지로 다 먹었는데 친구는 결국 남기더군요.
일단 기초 작업을 마치고 나니 8대라고 한 반사망원경은 1대가 늘어 9대가 되었고
굴절망원경도 7대라더니 8대가 되었습니다.
4시부터 반사망원경 9대 광축 조정 작업을 시작해 5시 반 무렵에 완료했습니다.
1대는 연구사님이 직접 해 보신다고 1시간 넘어 작업하신 것을 내가 마무리 하고...
담당 홍인택연구사님도 90년 대 말에 교사 연수 강의와 함양고등학교 계실 때 납품을 하면서 몇 번 뵜는데
다른 학교 교감선생님을 거쳐 연구사로 와 계시더군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4378C454E5EFDA207)
정비를 마친 반사망원경 9대와 굴절망원경 2대 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64A454E5EFDC935)
정비를 마친 굴절망원경 5대 입니다.
이 외에도 다른 곳에 굴절망원경이 1대 더 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어려운 놈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슬라이딩 돔안에 설치된 카세그레인 타입의 다카하시 뮤론 210mm 반사망원경...
15년 동안 세척을 한 번도 하지 않아서 미러에 먼지가 제법 많고 곰팡이 자국도 몇 군데 보이는데
뒤쪽 미러셀을 분해하니 미러를 떼내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배플에 물린 미러 고정 너트를 풀려니 잘못하면 미러에 흠집이 생길 것 같고...
할 수 없어서 세척제에 적신 티슈로 미러를 덮어 불린 다음
티슈를 살짝 들어내고를 몇 번을 반복하니 먼지들이 다 묻어 나오더군요.
극세사 타올로 물기와 먼지를 닦아내고 나니 깨알 같은 흐릿한 공팜이 자국 2군데 빼곤 깨끗합니다.
다시 조립하고 광축 확인하니 부경이 조금 틀어져 있어 광축 조정 작업 하고...
부가세 포함 22만원짜리 작업을 30분 만에 해 치우는 걸 보고 담당자분이나 연구사님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조심스럽고 많은 경험이 필요한 까다로운 작업이고
작업시 미러를 깨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보험금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가실 듯...
오래 전에 20만원에 세척 작업하다가 미러를 떨어뜨려 깨는 바람이 백 만원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태양필터는 무료로 해 주기로 했는데 갯수가 6개나 됩니다.
홍염 필터라고 하는 처음 본 필터 2개는 흙먼지가 잔쯕 쌓여 있는데
납품한 업자가 절대로 닦지 말라고 해서 손도 못 대고 있었답니다.
저라고 별 다른 벙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단 부로어로 최대한 불어내고
세척제를 적신 티슈로 찍어 내듯이 흙먼지를 묻혀내고는 극세사로 마무리...
글라스필터도 4개 있었는데 벌써 2개는 코팅면이 손상이 되었고 당당자도 알고 계시더군요.
필터 세척 작업 마치고 뮤론 경통 적도의에 올리고 나니 6시 반이 넘었습니다.
담당자분이 세척과 광축 조정 작업을 마친 뮤론 경통의 상도 궁금해 하고
연구사님도 다카하시 굴정 경통의 직초점 및 확대촬영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셔서
일단 나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들어와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밥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담당자분이 미리 식당에 갈비탕 5그릇을 준비하라고 하고
진성 IC 앞에 있는 대성가든으로 갔는데 몇 년 전에 육개장을 먹은 집입니다.
교육과학연구원 계신 분들 단골집인 모양인데 낮에 점심도 여기서 냉면을 드셨다네요.
일단 맥주를 2병 시키니 주인 아줌마의 맥주에 사이다를 타 마시면 맛있다는
강요에 가까운 여러 번의 추천에 못 이겨 담당자분이 사이다 1병 시켜서
사이다 1에 맥주 5의 비율로 타서 마셔보니 색다른 맛입니다.
맥주의 쓴 맛이 사라지고 사이다 향이 나면서 달콤하긴 한데 제 입에는 조금 달더군요.
갈비탕이 나오는데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국물이 1/4 정도 밖에 안 되는데도 건더기가 다 잠수 중입니다.
명색이 갈비탕인데 갈비는 하나도 안 보이고 두께 2mm에 화투장만한 고기조각이 3~4개...
당면 한 젓가락에 시퍼런 파 조각만 조금...
첫 느낌대로 맛도 뭐가 뭔지...
진성에서 3끼를 사 먹었는데 음식 맛과 질이 하나 같이 수준 이하입니다.
그런데 고함 지르면 다 들릴 정도의 작은 동네인데 커다란 모텔부터 다방, 노래방, 모든 종류의 식당들이 다 있더군요.
대충 먹고 일어서서 계산을 하려니 담당자분이 벌써 계산을 하셨네요.
경남과학교육원에 근 20년 가까이 계신 팽진욱선생님인데
천체망원경 관리와 투영실, 과학차 운영을 맡고 계신 분으로 항상 제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경남과학교육원이 마산에 있던 1994년 무렵부터 알고 지냈는데
번번이 출장가면 점심도 얻어 먹고 경우에 따라서는 터미널이나 역으로 태워주시기도 하고...
제가 많은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구입한지 15년이 넘은 20대가 넘는 실습용 망원경
뚜껑도 하나도 분실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를 잘 하시는 경남과학교육원의 보물 같은 분입니다.
너무 관리를 잘 하시는 바람에 제가 팔 물건 댓수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다시 돌아와 알비레오로 뮤론망원경 상 확인했는데 당당자분 아주 좋다고 대만족입니다.
연구사님 촬영법 일러 드리고 서둘러 8시 40분에 출발해 집에 도착하니 딱 2시간이 걸렸는데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잠바를 벗어두곤 그냥 왔네요.
점심과 저녁 먹은 시간 합해서 1시간을 빼면 9시간을 작업을 했고
밤에 잠이 안 와서 날이 밝은 다음에 눈을 붙여 1시간 정도 잤더니 피곤이 몰려옵니다.
이 친구도 피곤한지, 전 날 과음한 탓인지 평소 같으면 한 잔 하자고 할텐데
아무 말이 없길래 그냥 보내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피곤해 보여서 달싹거리는 입을 닫고 말았는지도...
친구 수고비와 기름값, 고속도로비, 경비 등을 합해 30만원 정도를 썼지만
하루 일당 치고는 적지 않은 돈을 벌었기에 조만간 한 잔 사야겠습니다.
괜히 재미도 없는 지겨운 글 올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들어 오셨다가 읽을 거리라도 있으면 덜 심심하실 것 같아 올렸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를...
첫댓글 경남과학교육원은 정말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잘 하시는군요.
대구교육과학원은 작년 천문지도사 연수 때 가보니 망원경 상태가 엉망이던데...
하루에 그 많은 걸 다 손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추석지나고 한 잔 하지요.
슬라이딩 돔 안에 있는 것 말고도 망원경이 여러 대 있습니다.
미자르 102mm 굴절 몇 대와 다카하시 102mm 굴절과 160mm 반사 등...
제 때에 정비만 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는데
시기를 놓치면 웜과 웜휠 간격이 벌어져 기어를 다 깍아 먹고 부품도 구하기 어려워집니다.
사실 이 제품들 이미 단종된지 오래된 물건이라 부품 구하기는 어렵고...
보아하니 미자르식 망원경인것 같네요 ^^;;
거기에 다카하시 뮤론 까지~
18개를 다 한걸 보면...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ㅋ
맞다. 대부분 미자르지만 빅센도 있고 국산으로 가장한 중국산도 하나 있고...
슈퍼맨이십니다....ㅎㅎ 평소 즐겨드신 쇠주의 효과는 아닌지요?..
예전에는 "힘든 일에는 술이 보약" 이라는 말이 좌우명이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 힘든 작업이었을 텐데
망원경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현선생님 덕분에
후기 읽는 사람은 재미있습니다..... ^ ^
소설 쓸 재주가 없어 있는 일만 미주알고주알 쓰다보니
내가 읽어도 장황하기만 한데 재밌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