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시우스 (SP) 적 기질 : ISTP, ESTP, ISFP, ESFP
당신이 만일 스릴을 맛보기 원한다면 철제 트럭을 타고 고속도로로 나가 보라. 당신이 트럭에 올라타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뿜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제트기조차도 비교가 안 된다. 당신은 땀에 젖을 것이며 아무런 사고도 내지 않고 그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수천 대의 자동차와 수천 대의 트럭이 왕래하고 있는데 미치광이처럼 기어를 바꾸고, 브레이크를 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다른 차들을 이리저리 비켜나간다. 동시에 바퀴 밑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정신나간 멍청이들을 깔아뭉개지 않으려고 아슬아슬한 노력을 하며 지나간다. 이러한 사람들이 SP(ISTP, ESTP, ISFP, ESFP)들인데, 이들은 중요한 점에서 서로 다르지만, 훨씬 더 중요한 점들에서는 서로 닮았다.
본질적으로, 디오니시우스적인 SP는 자유로워야만 한다. 즉, 그는 구속당하거나, 속박 당하거나, 제한되거나, 의무 지워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원하는 바를 그가 원하는 때에 하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는 이상적이다. 기다리고, 아끼고, 모아두고, 준비하고, 내일을 위해 사는 것 따위는 말이 안 된다. SP에게는 에피큐러스(Epicurus)의 생각이 옳다. 즉, 오늘을 즐겨야만 한다. 왜냐하면, 내일이란 결코 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무, 힘, 정신적인 것들이 SP에게 있어서 만약 어떤 중요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2차적인 것일 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행동이며, SP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강력히 원하는 행동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행동은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어야만 한다.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다. 비록 SP가 그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의 이유는 될 수 없다. 그는 단지 하고싶은 충동이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행동을 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SP들은 충동적이다. 그들은 충동적이 되기를 원한다. 충동적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 SP들은 충동을 갈망하고, 그러한 충동들이 자기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충동들을 마치 폭발시키듯이 발산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심지어 SP들은 충동을 느끼지 못할 때는 죄책감을 갖기조차 하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갑작스런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들 중의 대다수는 그러한 충동들을 무시해 버리고 대신 더 멀리 있고, 더 오랜 기다림을 요구하는 목표들로 시선을 돌린다. 우리는 자유롭고자 하는 이러한 충동을 의무나, 정신(Spirit)이라는 이름으로 제재하지만, SP들에게는 단지 구속되고 속박되었다고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오니시우스적인 SP가, 다른 사람들이 이루는 목표나 관계들을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한 것들이 수효가 많지 않고 비교적 일시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그도 물론 이룬다. 그렇지만 만일 관계의 수효가 너무 많아지거나 구속력이 너무 커지면, SP는 안절부절못하게 되어서 아마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행동 그 자체를 위한 행동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연습"과"충동"을 비교해보면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연습이란 수행하거나 작업하기 위한 준비로서 기량을 연마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보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실제도 아니며,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예행연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SP들은 연습이란 단지 훗날의 행동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연습을 하려들지 않는다. SP들은 연습을 하지 않고 곧바로 행한다. 정말이지 SP는 충동이 시킨다고 느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때로 이러한 행동이 과도 할 수도 있어서, 쉬지 않고 몇 시간 동안을 계속하기 때문에 다른 기질을 지닌 사람의 눈에는 그와 같은 과도한 행동이 "훈련"으로 잘못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훈련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충동에 의한 행동이다. SP는 자기의 일을 하고자하는 일종의 필요성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그것이 끌어당기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있는 것과도 같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르는 사람과도 같이 SP는 그의 충동에 그가 부여하는 통치권을 희미하게 깨닫고 있을 뿐이다. 그는 그의 충동이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야만 하며, 또 충동이 하라고 하는 한은 그 행동을 계속해야만 한다. 충동이 약해지면 그는 더 이상 달리거나, 오르거나 혹은 그 밖의 어떠한 것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SP는 다른 기질의 사람들보다 더 칼 부흘러(Karl Buhler)가 "기능욕"이라고 부른 것, 즉 속박이나 강제가 없는 활동, 규칙이나 연습이 필요 없는 탐험 적인 활동에 대한 갈망에 지배되기 쉽다. SP는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황, 한계를 시험할 자유가 있는 상황에 강하다. 모든 유형 중에서 SP가 위기에 가장 잘 대처하며, 위기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는 신속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반응하는데 더 큰 수완을 나타낸다. 만일 거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SP는 흥미를 잃게 될 것이지만, 가능성 있는 일들과 돌발적인 일들의 범위가 증대함에 따라 SP는 더욱 더 원기 왕성하게 과제를 처리하게 된다. 실제로, 상황이 너무 단조롭고, 타성적으로 되어 가면 SP는 단지 활기를 가져오기 위해서 위기상황을 꾸며내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상징과 신과 도구이다. 디오니시우스적인 사람은 대개 신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으며, 상징적인 것에 대체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러나 그는 도구를 주인으로 섬긴다. 도구란 사용되기 위한 것이며, SP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불도저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조종하고, 총을 쏘고, 호른을 불고, 수술용 메스나, 붓이나, 조각칼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구에는 SP의 성격 안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현을 건드려서 거의 중독이 된 것처럼 그를 매혹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도구는 자아의 확장 물이고, 행동의 영향을 증대, 증폭 그리고 왕성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충동의 배출에 보다 큰 활력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활동하는 것 이상으로 SP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보아주기를 원한다. SP가 능력을 소유하는 데, 혹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것은 다른 유형의 사람이 갖는 자부심이다. 그보다는 SP는 정확히 말해서(그리고 오로지) 자기의 자유를 자랑한다. 그는 지식을 축적하거나 힘을 쌓아두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는 가능한 한 자유롭게 인생을 소비한다. 내일을 위해서 행동할 것을 남겨둘 수는 없으며, 새로운 날들은 저마다 흥분과 모험과 위험에 대한 욕구, 운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욕구를 가져다준다. 자원은 소비되어야 하고, 기계는 조작되어야 하며, 사람들은 즐거워져야 한다. 그의 모든 행동에 걸쳐서 SP는 행하는데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활동 저변에는,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고 보이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문화적으로 승인된 바로는 여자 SP에게 보다는 남자 SP에게 행동 지향적 선호 경향을 표현할 기회가 훨씬 더 많이 제공되고 있다. 아마도 여성 해방 운동의 영향으로 여성들 또한 이러한 삶의 양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은 전 SP인들의 반수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SP직업들에서도 여성 SP들이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소수의 여성들이 건축업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고, 많은 여성들이 군대에 들어가고 있으며, 몇몇 사람들은 사업의 해결사로서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성, 지구력, 힘, 대담성, 그리고 타이밍 등이 요구되는 행동적 직업들은 주로 남자들의 영역이 되어왔으며 또 남성적인 직업으로 간주되어 왔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아직도 간호직, 교사직, 사무직이라는 여성들의 전통적인 3대 직종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데, 이러한 직업들 중의 그 어느 것도 SP의 활동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줄 것 같지는 않다.
디오니시우스적인 사람들은 친구들로부터 종종 "자극적이고, 낙관적이며, 쾌활하고, 천하태평이며, 장난기가 넘친다"는 얘기를 듣는다. 사교적인 관계에 있어서 SP들은 매력적이고 재치 있는 이야기꾼인 경향이 있으며, 농담과 얘깃거리가 바닥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디를 가든 지간에 SP들(특히 외향적 SP들)은 그 장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흥분을 더해준다. SP는 일과 놀이에 무언가 흥미 있는 일이 이제 막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을 가져다준다. 분위기에는 흥분이 감돌고, 주위는 더욱 빛나고, 더욱 화려해지는 것 같다. 마치 가슴 설레는 일들로 가득 차려는 듯이.
실제로 SP들은 현상유지를 하는데는 쉽게 싫증을 느끼게 될 수 있다. 그들은 날마다 일하는 방식을 달리 하기를 좋아한다. 또 그들은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려 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식사를 하려하며, 새로운 관광지에서 휴가를 보내려 하는 등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시간을 낼 태세를 언제나 갖추고 있다. SP는 저녁 식사하는 시간에 변화를 주고, 마음이 내키면 언제라도 식사하기를 원하는 등, 닥치는 대로 무엇이나 하기를 즐길 것이다. 이는 보다 규칙적인 성격(예를 들자면 SJ)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쉬우며, SP의 결혼생활에 곤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SP들은 화려하게 삶을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며 감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안티 메임(Auntie Mame)은 마땅치 않게 여기는 세상을 무시하면서 그녀의 친구에게 좀 대담하게 굴라고 열심히 설득한다. (제 2 막 끝 부분에서) : "그래요! 인생이란 잔칫날 같은 것인데, 대부분의 가엾은 개자식들은 헤매다가 죽어가고 있어요. 인생을 즐기세요." 그러자 그녀의 친구도 그 뜻을 알아차리면서 "그래요! 즐겨요, 즐겨요, 즐겨요!"하고 대답한다. [Lawrence and Lee, 1957.]
SP의 좌절은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로서는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실패도 극복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쉽게 받아들이면 쉽게 해결된다." 윈스톤 처칠 (Winston Churchill)의 비범한 어머니였던 제니 처칠(Jennie Churchill)이 그러한 타입이었다. 그녀는 SP들에게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맹렬함으로 평생을 살았다. 랄프 마틴(Ralph Matin)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제니의 인생에서 최악의 상태를 극복해 나가는 그녀의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제니에게 있어서 1895년은 혹독하고 암담하게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병을 앓던 그녀의 남편은 미치광이처럼 고함을 지르면서 매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보다 몇 주일 전에는 더 이상 기다릴 마음이 없어진 그녀의 애인이 결혼을 해버렸었다. 그녀의 아들인 윈스톤(Winston)과 잭(Jack)은 둘 다 그녀가 줄곧 돌보아야만 할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나 그녀는 자기가 기진맥진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녀를 가장 사랑했던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리고, 돈도 거의 바닥이 나고, 자기 소유의 집조차 없는 제니.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지금까지 그녀가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엄청난 재미와 활력이 그녀의 인생에 주어질 것이라는 내적 확신과 회생력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 레이디 커즌(Lady Curzon)은 그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파도의 물 마루 위에서도 살아갈 유일한 사람이군요. !" [Ralph G. Martin, Jennie, Signet, Vol, Ⅱ, P. 15 & 17. ]
SP에게 있어서 삶이란 충동을 느끼는 것이며 또 그 충동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상 충동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SP는 즉각적인 순간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SP에게 있어서 기다린다는 것은 심리적인 죽음을 뜻하며, 연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의 충동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이 잘 납득이 안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왜 조급하게, 충동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SP에게 있어서는 장기적인 목적이나 목표, 계획을 거부하고 행동하는 인생이 가장 자유롭고도 가장 강렬한 인생이다.
"나는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하겠어요? 숙녀 분들은 거의 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대개는 그런 식으로 길들여져 왔지요. 나로선 그 점을 잘 다룰 수 없습니다. 내 속에는 조그만 괴짜가 살고 있답니다. 만일 내가 일정한 시간에 어딘가에 있어야만 하게 되면 나는 금방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만일 내가 바로 그 어디에 없다면 이번에는 어떤 여자가 속을 태우게 되리라는 것을 저는 걱정하는 겁니다. 신사여러분, 내가 이제껏 느껴왔던 부담 중에 가장 큰 부담은 사랑이었습니다." [Cheryl Bentsen, "This Man is Madly in Love", Los Angeles Time, Part Ⅲ, Sunday, Feb. 15, 1976, P. 1, Stroy of Joe Namath, football professional.]
SP는 자신의 경험을 목적 지향적으로 규정 지우기를 싫어한다.
그의 언어는 사용을 위한 것이며 기능본위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무엇보다도 "견디거나" 아니면 "참아야" 할 필요가 없다. 어떤 모험 때문에 아무리 지치고, 굶주리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험이지 임무가 아니다. SP는 목적이라는 준거 틀로 사고하지 않기에, 견딘다는 개념은 그에게는 적절하지가 않다. 단지 행동이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위한 도구로 간주될 때에만 고생을 감내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SP의 행동은 어떤 목적에 종속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멍은 파헤치기 위한 것이고, 문은 열리기 위한 것이며, 복도는 뛰어들기 위한 것이고, 종은 치기 위한 것이며, 산은 올라가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행동하고자 하는 충동은 엘비스 프리슬리(Elvis Presley)가 일시적인 기분으로 한 일 가운데 한 가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지에 실린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때로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그가 특별히 주문하여 맞춘 캐딜락을 자동차 전시장 근처에 세워 놓았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 와보니 어떤 전혀 낯모르는 여자가 차안에 머리를 들이밀고는 아주 부러운 듯이 살펴보고 있었다. 엘비스는 그 여자에게 그 차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고 나서는 이렇게 제안을 했다. "이건 내 찹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도 한 대 사드리도록 하지요."그는 그 낯선 여자의 팔을 잡고 근처의 자동차 전시장을 데리고 가서는 한 대를 고르라고 말했다. 그녀가 11,500달러라고 값이 매겨진 금빛과 흰색으로 된 모델을 고르고 난 후, 그날이 그녀의 생일임을 알게 된 프리슬리는 그녀가 "그 자동차에 어울리는 옷을 좀 사 입을 수 있도록" 수표를 끊어주라고 그의 보좌관에게 일렀다. [Los Angeles Times, 1975.]
묘하게도 SP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 이상으로 참을성을 발휘할 때가 있다. 즉, 그는 불편, 손실, 굶주림, 피로, 고통 등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용기를 발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은 목표 지향적인 성격을 가졌고,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노력을 기울이려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하는 동안 곤란과 불편과 피로를 느끼게 되고 얼마 안 가서 그들이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이는 치명적인 의문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대답 안에 자기 파괴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SP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지속적인 것이나 오래 참아야 하는 것으로서 경험하지 않으며, 자기에게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SP는 종종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지닌 합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다.
SP들은 오직 즉각적인 행동을 위해서만 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연예술가, 즉, 예술, 연예, 모험의 거장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충동에 따라 행동하기를 지독히도 즐기는 SP들의 역설적인 면이다. 뛰어난 화가, 기악연주가, 가수, 무용가, 조각가, 사진작가, 운동선수, 사냥꾼, 경주자, 도박사와 같은 직업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흥에 넘칠 정도로 행동에 전념했을 때라야만 습득이 가능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뛰어난 기교에 따르는 끊임없는 행동으로 점철된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이끌어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충동에 의해 이끌리고, (우리가 앞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반복과 의무를 경멸하는 SP들에게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일단 행동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SP는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라면 오래 전에 손을 들었을 텐데도 꾸준히 그 행동을 해낼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충동적인 정력이야말로 뛰어난 기교를 가능하게 한다. SP는 행동에 있어서의 완벽함을 소유하는 유일한 사람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의미에서의 연습을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NT도 완벽함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완벽함은 그의 손에서 빠져 달아난다. SP는 자기가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완벽함을 달성하기 위해 연습을 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벽함을 달성하게 된다. NT는 의식적으로 정확하게, 원칙대로 신중하게 연습을 한다. SP는 천진난만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한없이 지치지도 않으며 행동 그 자체에 사로잡히고 지배되어서, 행위자체 그 이상의 아무런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하튼 SP는 완벽함에 마음을 쓰나 오로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만 애쓸 뿐이다. 행동 그 자체를 위한 행동만이 유일하게 완벽함을 실현한다.
무대 예술가들(예를 들어 Nijinsky, Rubinstein, Heifetz, Casals, Callas)은 SP이기 쉬우며, 경주가, 서핑선수, 용병, 마술사, 카드전문가, 또는 구식 서부극의 총잡이까지도 SP들이 많다. 사실상 총잡이는 뛰어난 무대예술가들 못지 않은 거장이었으며, 그와 유사하게 이상화되었다. 총잡이는 총신이 긴 콜트식 45구경 자동권총을 뽑아들어 눈 높이까지 들어올리지 않고도 격침을 당기고 조준한 다음 발사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움직이는 목표물까지도 명중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묘기를 1초의 1/4도 안 되는 시간에 해낼 수가 있었다. 너무나 재빨라서 그의 손놀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총잡이가 기민하게 총을 뽑아드는 것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손가락이 나는 듯이 움직이는 것이나 수석 발레리나가 무중력 상태에서 도약하는 것만큼이나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어떤 의미에서 SP는 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한다는 것에는 성과나, 완료, 완성 등의 뜻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SP는 종결이나 완료, 끝맺음 등에 대한 욕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는 과정 지향적이다. 그의 행동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은 단지 성과에 불과 하며, 단지 소산에 불과하고, 단지 결과에 불과하며, 부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SP의 "일"은 본질적으로 놀이이다. 그는 하루종일 애를 써서 밀어 올려놓은 바위가 밤이면 산허리로 도로 굴러 내려와서 절망하는 시지프스가 아니다. SP의 기쁨은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동에 있으며, 그의 노고를 기념할 영구적인 금자탑이 남겨지지 않는다는 점에는 개의치 않는다.
SP는 행동을 수반하는 직업에 이끌린다. 그는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중장비가 동원되는 건설작업, 즉 댐을 쌓고 초 고층빌딩을 건설하거나, 고속도로를 뚫고 광산을 개발하거나, 황무지의 숲을 개간하는 건설공사에 이끌리거나 혹은 유전을 시추하거나 거대한 삼나무를 벌채하는 일, 직업적인 용병, 부두에서 화물을 적재하는 일, 사업을 추진시키는 일, 구급차를 운전하거나 자동차나 오토바이, 비행기로 경주하는 일과 같은 자연의 힘에 대항하여 사람의 힘을 투입시키는 사업에 이끌린다. 정치중재자, 적자상태의 사업을 흑자상태로 이끌러 올리는데 유능할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기업가, 보이, 바텐더, 수화물 운반인, 미용사, 모델, 형사, 경찰, 구조대원, 마술사, 직업운동선수 등도 모두다 순간의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행동력과 활달함을 요구하는 직업들이다.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곤경을 처리하는 일을 하며,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개는 최선을 다한다. 예를 들어 아더 헤일리 (Arthur Hailey)는 SP의 비범한 재주(심사숙고하지 않고, 위험을 자초하는 행동)를 [공항]의 한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여보시오, 이 근처에는 가솔린이 쏟아져 있어요. 담뱃불을 꺼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파트로니(Patroni)는 이제까지 거의 모든 흡연 규칙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지시를 무시해버렸다. 그는 전복된 트레일러가 달린 트랙터를 향해 불붙은 시가를 휘둘렀다. "게다가 말이요, 젊은이, 당신이 오늘밤 안으로 그 고물덩어리를 바로 세우려고 애쓴다면 그건 당신이나 내 시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게 될게요. 당신은 그걸 완전히 끌어내서 다른 차들이 다닐 수 있게 해야만 할 것이고, 그러자면 견인 트럭이 두 대 더 있어 가지고 한 대는 이쪽에서 밀고, 두 대는 저쪽에서 끌어야 할 것이오." 그는 전지를 가지고 그 거대하게 연결된 차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사하면서 그 주위를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는 거기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는 담뱃불을 한번 더 휘두르며, "두 대의 트럭을 다 같이 세 지점에다 연결시켜야 할거요. 처음에는 운전석이 있는 앞부분을 끌다가 조금씩 빠르게 끌어야지. 그러면 연결부분에서 급각도로 꺾이는 일은 없을 거요. 남은 트럭한대는..." "기다려봐,"하고 주 경찰관이 말했다. 그는 건너편에 있는 두 사람의 경관 중에 한 사람을 불렀다. "행크, 여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 같은 사람이 한 사람 있어."[Arthur hailey, Airport, Bantambooks, Inc., 1968, P. 43. ]
모든 유형의 사람들 중에서 SP가 가장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비록 자기의 행동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누를 끼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사회적 인연을 단절할 수가 있다. SP는 어떤 행동이나 생활의 양식을 갑작스럽게 집어치우고는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더나갈 수 있다. 그림 그리던 붓은 내던져진 자리에 그대로 있고, 책임질 일들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까맣게 잊혀져 잇다. 비록 SP 자신이 인연을 만들어 냈으나, 이제 그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거추장스럽고 부담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특히 중년에 접어들면서 자유롭고자 하는 SP의 욕구는 대단히 강해져서 그는 눈에 띄게 안절부절 한다. 고갱 (Gauguin)은 40대 초반에 집을 떠나서 배를 타고 타히티 섬으로 가서는 불후의 걸작들을 남겼지만, 등뒤에는 배신당한 사람들을 많이 남겨 놓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SP 나름의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열렬하게 우애적이기도 하다. 그는 단체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형제들에게 충실하며, 모든 공격으로부터 그의 집단을 지킨다. 이러한 것은 예를 들어 해병대원이나 엘크스 자연보호회 같은 우애적인 체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SP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눈에 잘 드러나고 소중한 낭만적인 뉘앙스를 놓치는 일이 있다. 비록 SP가 호화로운 의사표시 - 수십 송이의 노란 장미꽃, 엄청나게 비싼 밍크코트, 3 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등과 같은 -를 하는 데 선수이기는 하지만, 전화하기로 약속하고 잊어버리거나, 애정을 나타내는 한두 마디를 소홀히 하는 수가 있다.
SP는 도움이 될 것 같은 자원이라면 무엇이든 이용하며,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아주 기꺼이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그는 식도락가들이 언제나 잔치를 벌이는 형식(이는 그에게 가진 것이 부족하지 않은 경우의 일인데, 그렇게 자금이 모자라지 않는 것도 틀림없이 한때일 뿐이다.)으로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 가진 것이 부족할 경우조차도 그의 평등주의는 발휘된다. 그는 "똑같은 몫으로 나누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에게는 내 것이 네 것이며, 네 것이 내 것인 것이다. 위기에 처할 경우에 SP로서는 모든 것이 다 협상의 대상이 된다. 오랜 기간동안 SP는 규칙이나 규정 아래 순종하며 지낼 수 있지만, 일단 위기상황에 부딪치거나 충동이 솟구쳐 오르면 이제까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이 표면에 드러난다.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행동을 요구하고 기왕의 약속들은 백지화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후회가 없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포기해야 한다. 오늘은 오늘이고, 어제의 계획들은 보다 급박한 요구에 직면하여 취소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어떤 종류의 사람들보다도 현재에 더욱 충실히 살고자 하는 SP의 욕구는, 때때로 늘 같은 수준의 강렬함을 유지해 주기를 기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기도 한다. 친구들은 SP의 관대함과 활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들(SP)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들을 아주 잘 아는 것 같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더 이상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불평을 토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정말이지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은 구설수에 오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SP의 생활 방식에 마음이 끌리고 매료당하게 되지만, SP가 그들이 기대했던 예측에 따라 살지 않으면 실망한다.
SP들은 동기부여라는 복잡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하는 것이다. SP로서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아는 것으로 족하다. 초현실주의자인 그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처럼 그들의 행동이 기존의 방침이나 규칙 혹은 자연법칙 등에 의해 좌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SP는 덤벙거릴 때가 많기 때문에 다른 기질이 사람들보다 더 사고를 당하기 쉽다. 즉, 그는 실패를 가져오거나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원인들에 대해 부주의하기 때문에 손상을 입게 되는데, 그의 낙천주의는 한결같이 행운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첫댓글 istp인데... 음.. 성격 참 호사스럽군요.. 제성격은 이게 아닌데.. 다시 검사해봐야 겠는데...^^;;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 군요. 그들..SP
충동적인 면이 많죠. 나중에 후회도 하고. 자유롭길 원하지만, 현실에선 본능이 이끄는대로 살긴 힘들지요.
에고 다 읽는데 눈빠지는줄 알았네염...ㅎ ㅔ죽
맞아요.. (ISTP)규칙을 정말싫어하고, 타당성이없는것에 속박 당한다는 생각을하면 뛰쳐나오고, ㅋ위기상황을 만들려 한다는것도 ^0^ 맞는거 같아요.그런데 아이니컬하게도 저는 안정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위기를 즐긴답니다... -0-;; 특이하죠?
또, 스릴을 원하지만 저는 너무 평범해서 알게모르게 짜증이 나요.. sp라서 그런가봐요. 그래서 인지..^^;; 한계를 도전해본다는게 시험때 벼락치기해서 만점 받으면 쾌감이~ 밀려들죠. 그런면에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