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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만나러 가라
문명의 고도한 성장은 동시에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러기에 우리 불교도들 역시 많이 달라지고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은 특별히 새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지, 오늘날의 세태와 흐름 가운데서 변화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하나의 추세이고 시대의 흐름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이고 적응일 것이다.
단지 그 달라지는 속도가 눈부시다고 말할 정도로 빠르고 신속한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 저녁에 보았던 것이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 사이 달라져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처럼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무엇인가 단단히 잡고 있지 않으면 마치 거친 파도 속에 돛단배를 탄 사람처럼 넘어질 수도 있을 터, 각별히 안전을 위해 조심만 더하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변화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상품 따위의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이나 사상도 빠르게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정신적인 변화를 그때그때 감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모르고 지내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다시 뒤돌아보면 나중에라도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그 중에 더러는 너무나 달라진 자기 자신의 변화된 모습(정신상태)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할 것이지만 좋은 쪽으로의 변화는 그만큼의 성장이기 때문에 놀랍긴 해도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불자들이 여러 가지 달라지고 변화한 것 중에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도의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고 참배하는 일에 대해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불도들에게 ‘성지순례’라고 하면 무척 생경한 말로 들렸다. 즉, 자주 쓰지 않던 용어였다. 어쩌다가 성지순례라는 말을 듣게 되면 우리 불교와는 거리가 먼 어느 특정 종교의 전유물로만 여겼고, 혹 몇 사람이 성지순례를 간다고 해도 좀 특이한 사람들의 특별한 일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성지순례 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그들의 구성을 가만히 살펴보면 학교 동창들끼리, 학부모들끼리, 동네 주민들끼리, 같은 절의 신도들끼리 등등 여러 가지 형태다. 거기에다 성지순례를 위한 준비도 사뭇 적극적이다. 사람에 따라, 형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몇 년 전부터 적금을 들거나 아니면 계를 모아서 준비하거나 또 더 용기 있는 사람들은 미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순례를 다녀오고 난 뒤 갚아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이러한 사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볼 수 없었던 일이어서 오히려 깜짝 놀랄 정도로 격세지감이 든다고 해야 할지…….
내가 아는 어느 불교성지순례 전문 여행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먼 미래를 생각하여 투자하면서도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지금은 일 년 전에 사전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적절한 기간에 출발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성지순례 인구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몇 년 만에 달라진 새로운 변화이고 분명 우리 불교도들의 달라진 풍속도이다. 그동안 성지순례에 대한 불자들의 인식이 좀 더 새로워지고 왕성해지기를 고대하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나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지순례 인구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보다 정성스러운 순례를 통해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한층 크게 키워가야 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과제일 것이다. 인도성지순례는 아주 비싼 비용으로 배우는 불타전 학습인 까닭에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어야 하고 심오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지순례 기간 동안 부처님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실제로 법을 설했던 장소에 가서 부처님의 친설을 더욱 크게 들을 수 있고 절실하게 가슴에 담아 올 수 있도록 미리 자료를 확보하고 문헌을 챙겨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튼 그런 세세한 준비는 순례객 각자의 몫으로 두고,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지순례는 불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수행의 필수 코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성지순례를 적극 권하고, 특히 우리 절 신도들에게는 ‘꼭’이라는 말을 붙여 강조하고 있다.
그 흔한 해외여행 가기 전에 불자로서 부처님 성지부터 먼저 다녀오라고 말하는 까닭은
첫째, 순례를 통해 인생의 자세를 다지자는 신앙적인 측면 때문이다.
둘째, 여러 여행 중에서 순례가 가장 진지한 구도여행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순례는 구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첫 해외 나들이를 순례로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 모든 여행에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 여행의 좋은 습관을 순례를 통해 형성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지 첫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자동차 운전만 하더라도 처음 버릇이 잘못 들면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해외여행 가기 전에 순례부터 먼저 다녀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있을 자신의 해외여행을 보다 진지하고 성공적인 여행으로 향상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사항은 어디까지나 공짜로 받게 되는 덤과 같은 것이다.
이미 말한 바지만 한국의 불교도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한다고 애써 강조하는 것은, 거기에는 우리가 확립해야 할 믿음이 있고 찾아야 할 도가 있고 구해야 할 진리(法, 가르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순례는 믿음에 대한 열정과 순수한 행을 통해 부처님을 만나러 나서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마치 이웃집 다녀오듯 쉽게 나다니는 좋은 시기에 태어나서 별별 곳을 다 돌아다니면서도 정작 부처님의 성지순례는 빼놓거나 미뤄 놓았다면, 이는 성의부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선 순위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혜로워야 할 삶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 그것은 불자들이 자신의 인생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부처님 가르침을 가장 고귀하게 생각하고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에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순례는 소중한 체험(깨달음)이다. 여러 가지 힘든 주변 여건 속에서도 순례를 뜻 깊게 다녀온 사람들의 일상에서 매우 다른 모습으로 삶의 태도와 자세가 바뀐 것을 보게 된다. 생활이 더욱 검소하게 되고 외적인 관심이나 추구보다 내적인 성장을 우선하는 가치관을 갖게 된다. 또 알뜰하게 저축하여 어느 정도 여유가 되면 불교를 주제로 새로운 여행(순례)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모두 성공적인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튼 국제화시대와 변화하는 사회에서 불자들의 의식이 바뀌어 성지순례를 많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들의 성지순례의 행태나 면모를 살펴보면 미숙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많다. 뜻 깊은 순례라는 말과는 아예 거리가 멀고, 구도라는 의미의 순례에 아직 발걸음도 못 뗀 수준을 느낀다. 순례보다 한 단계 더 낮춰서 ‘건전한 여행’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고 하면 지나치게 인색한 표현일까. 그러나 지금 우리 불자들이 갖는 순례는 겨우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다행히 스님의 훈도를 입어 이제는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쓴다.
언젠가의 일(1992년 1월)이다. 그때 내가 주동이 되어 신도들과 함께 인도 부처님 성지순례를 간다고 들떠 있는 것을 본 스님은 조용히 나를 불러 물었다.
“송암, 인도 성지 순례는 왜 가는가? 무엇 하러 가며 어떠한 입장으로 가는지 나에게 한번 명쾌하게 말해 봐? 고고학이나 역사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으로 유적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지, 예술가 입장에서 고대 인도의 미를 살피러 가는지, 아니면 불자라는 의무감 때문에 한번 가보는지, 그도 아니면 남들이 다 가는 곳이니까 호기심으로 따라 가는지, 어디 한번 송암 자신의 생각을 나한테 말해 봐.”
스님의 형형하고 푸른 눈빛에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그동안 나는 성지순례의 뜻을 평소 누구보다 견고하게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스님으로부터 성지순례에 대한 참뜻을 알고 있느냐고 추궁을 받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은 내가 성지순례를 자주 나서게 된 것은 부처님의 자취를 찾아서였다. 그 당연한 일을 스님께서 호되게 추궁하였고 또 대답을 빨리하라고 푸른 하는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좀 안쓰럽게 보였는지 스님이 먼저 입을 떼었다.
“이것 봐, 송암. 성지순례는 철저히 부처님 만나 뵈러 가는 길이어야해. 저 옛날 현장스님처럼 또는 혜초스님처럼 구도의 각오와 결심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돼. 어떻게 하든지 우리 출가자들은 부처님을 만나서 법문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일생의 크나큰 과제야.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진리 속에서 사는 참된 인생이 되어야 하거든. 그렇다면 성지순례는 당연히 기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명상과 사색을 통해서 부처님을 찾고 법문을 들을 수 있어야 해. 일전에 내가 누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 귀한 돈(달러) 가지고 인도에 가서 기도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다고 했어. 아무튼 송암, 내 말은 인도에 가게 되면 더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부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고, 그 점을 강조하고 싶은 거야.”
사실 인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스님은 몇 차례나 갔다 온 나보다 성지순례에 대한 사정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영축산이나 죽림정사, 칠엽굴 등 주요한 성지의 위치나 현재의 상태,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짐짓 엄한 표정으로 대한 것이다.
그런 엄한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난 뒤, 나는 사전준비와 마음의 자세를 더 철저히 한 다음, 우리 일행은 인도 땅 뭄바이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를 가든 기도와 명상, 설법부터 먼저 했다. 그 다음 성지에 대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며 각자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심지어 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다음날 새벽, 예불시간이 되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불광요전』을 의지하여 예불을 올리고 경전을 읽고 석가모니불 염불을 했다. 이런 점에서 인도는 무척 너그럽고 자유로운 나라였다. 우리의 기도 소리를 동양, 한국의 음악(合誦)으로 여겨서 귀 기울여 주고 미소로 관심을 나타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플렛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기도 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내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다 같이 자연스럽게 책을 펴들고 기차역 플랫폼에서 노래하듯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일정상 새벽 일찍 버스가 출발한 경우도 많았다. 그때도 역시 어김없이 기도부터 하고 미리 대기해 있던 차에 올랐다. 아마 남들의 눈에는 우리가 순례하러 온 것이 아니라 기도하러 온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는 곳마다 성지마다 기도하고 석가모니불 정근하며 순례를 계속했다.
우리가 성지에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가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왁자지껄했다. 귀에 익은 목소리, 분명 우리 한국인들의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런데 한 무리 한국의 순례객들이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나타났다가 기도가 끝나고 찾아보면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묘연했다. 행여 아는 사람들인가 해서 돌아보면 이미 바람같이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그 순간 기대가 허물어진 씁쓸한 기분을 느꼈고 또 뭔가 무척 안타깝고 아쉬운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성지순례가 무슨 군인들의 ‘번개작전’도 아니고 유람객들의 소풍도 아닌 수행자들의 뜻 깊은 구도의 길이라면 진지함과 경건함, 엄숙함과 그리움이 가득한 내면의 행사가 성지마다 있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에 스님이 내가 인도로 떠날 때 미리 닦달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바람 같은 그들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단지 나는 스님 훈도의 은혜가 사전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과정이 없었던 차이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스님의 사전 훈도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내 몸, 내 생각 구석구석에 스님의 입김이 서리어 있고 숨결이 배어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바람 같은 허깨비 신세를 면하게 되었고 마치 음풍농월하는 유람객의 불경을 부처님께 저지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의 불자들은 더 뜨거운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나서야 한다. 그리고 2천만 불자가 모두 한 번씩 성지순례 길에 나서야 한다. 불자라면 누구나 해외여행 가기 전에 순례부터 다녀와야 한다. 그래서 사시절 어느 때나 성지마다 한국인들이 가득해야 하고, 또 한국인들이 가는 곳마다 기도하는 목탁소리가 울려 퍼지고 명상과 좌선의 모습이 마치 나무 위에 앉은 학처럼 고고하게 보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 한국 불자들은 앞장서서 기도와 참선으로 성지를 다시 가꾸고 정화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성지를 얼마나 훼손시키고 오염시켰는가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될 때가 되었다. 바야흐로 지금 이 기회를 못 살리면 돌이킬 수 없는 성지 훼손의 큰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해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 우리는 출발하기 전부터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는 다짐과 각오가 선행되어야 하고, 일상의 기도가 아닌 특별기도기간이라는 마음을 더 다잡아야 할 것이다. 스님께서 어리벙벙한 나를 그토록 닦달했던 것은 사안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고 컸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더욱 깊이 깨닫고 있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3, 구국구세의 횃불, 지은이 송암 지원 스님, 도피안사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제가 시봉일기에서 이 글을 읽고 환희했던 적이 있습지요. 제 자랑() 같지만, 큰스님의 안목과 제 안목()이 어긋나는 적이 정말 없거()든요 '절은 부처님 만나러 가는 곳'이란 글을 쓴 건 큰스님의 이 글을 읽기 전입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
저는 소위 '사순례'라 하여 하루에 세 군데 도량을 들리는 걸 참 싫어합니다. 주마간산 식으로 도량 수만 채워 뭐하겠습니까 절에서 부처님을 뵙지 못하면, 그저 법당의 불상만 보고, 그저 그래서 법당 앞에 절만 하고 또 훌쩍 다른 절 찾아 떠난다면, 귀한 시간 귀한 돈 허비하고 참 허망합지요...
는 분들. 참 안타깝지요...
찾아간 도량에 계신 부처님. 그리고 그 도량을 세운 스승님, 조상님들의 고마움, 그리고 그 때 이 도량에 깃들었을 그 분들의 간절한 願을 생각해 보지 못하고, 그저 주마간산, 어느 절 다녀왔다는 걸로 능사를
송암스님이 계시는 도피안사 사찰순례는 그래서 하루 한 군데만 다녀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답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도량을 구석구석 순례하고, 하고 싶은 분은 법당에서 절도 실컷 하고, 또 참선도 실컷하여 그 도량에 깃든 밝은 에너지를 충분히 섭취하고 오는 겁니다. 주마간산 식 도량순례, 정말 하지 맙시다
삼사순례의 가르침 정말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성지순례는 당연히 기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명상과 사색을 통해서 부처님을 찾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곳. 언제가 될 지 모를 인도 성지 순례를 기다려 봅니다. 산사에 가서 맘껏 기도하고 절하고 부처님을 이리보고 저리보며 법당에서 머물 수 있는 그런 산사 순례를 하며 즐거워하는 날! 정말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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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