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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실종자
김종혁
**강을 건너서...**
백두산 자락에 있는 무산은 유난히 겨울 해가 짧다. 해는 점심 때 쯤 남산 전파 중계탑에 걸리더니 얼마 안 있어 무산고원을 스러지듯 넘어갔다. 무산읍은 어둑한 산 그림자 속에 갇혔다. 한 줌 남은 햇살이 지붕 끝에 멈췄다가 금세 미끄러졌다. 곧 마을 위로 고요한 어둠이 내렸다.
은정과 선숙은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밖에는 두만강을 건너온 삭풍이 문화주택 지붕 위를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겨울 추위라면 조선(북한)에서 중강진을 이길 곳이 없지만 무산도 만만치 않다,
은정은 이번에 외화벌이 일꾼으로 뽑혀서 중국 훈춘으로 가게 됐다. 일꾼들은 닷새 뒤 청진역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청진에서 석 달간 실무 교육을 받은 뒤 기차 편으로 두만강을 건너갈 거라고 했다. 은정은 청진으로 떠나기 전에 엄마 선숙을 보려고 친정집에 들렀다.
은정은 아까부터 천장을 바라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선숙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모녀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려 덮었다.
은정이 선숙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왜? 뭔 일이래?”
“나…… 남으로 갈래요.”
선숙은 불에 덴 듯이 놀랐다.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삼켰다. 은정이 재빨리 손을 뻗어 선숙의 입을 틀어막았다. 선숙의 눈은 벌써 휘둥그레졌다. 선숙이 이불 밖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걸 은정이 잡아 눌렀다.
“어찌개(어머나)! 남 이라구? 남조선 말이디? 니 정신 나가디 않안?”
“쉬이! 엄마. 제발... 다 듣갓다.”
선숙이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나서 차분하게 물었다.
“이거 어카믄 좋니? 그럼, 어드렇게 가겠다는 거야?”
“훈춘에서 일하다 보면 브로커를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
“그래도, 딸 가진 엄마는 어쩌라구 그러니. 간다 해도 어찌 간다구. 국경 넘다 걸리면… 니 목숨 날아간다.”
“여기서 평생 하바닥(하위직급)인생으로 썩기 싫어. 남조선 드라마를 좀 봐. 인민들이 이웃 동네 놀러 가듯 외국을 나가잖아. 나라의 허가를 받지 않아. 중국 사람들이 왜 기를 쓰고 남조선을 가겠어. 거기는 우리나라보다 백배는 더 잘 산대.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을 테니까 엄마도 준비를 하고 있어”
은정의 말투는 단호했다.
“니, 나그네(남편)에게 귀띔은 했니?”
“아니, 그 사람은 나 보다 노동당이 더 중요해. 내 상전이야. 나는 종 일 뿐이고...내게는 애정이 없는 것 같아. 성질도 독구다이(고집이세고 괄괄한 사람)잖아. 내 입에서 남조선의 남 자만 나와도 보위부에다 꼬장(고발) 할 사람이야. 얘기를 하더라도 좀 있다 할래”
은정은 일 년 전에 박한수와 결혼했다. 박한수는 은정보다 네 살 위였는데 둘 사이에 아직 애는 없었다. 그는 군대에서 받은 노력 훈장 덕분에 사회안전성에 배치 받았다. 하급보안원인 그의 로임(월급)으로는 장마당에서 입쌀(쌀) 일 킬로그램도 살 수 없었다. 목돈을 만들려면 다른 수를 내야 했다. 갈 수만 있다면 은정이 외화벌이 일꾼으로 나가는 게 최고였다.
“여보, 우리가 눈 딱 감고 삼 년만 고생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단 말임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단 말도 있지 않슴까.”
은정은 말끝을 흐리며 박한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박한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화벌이 일꾼은 아무나 가는 게 아니야. 토대(출신성분)가 좋은 간부 자식들만 가는 거야.”
“그 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임다. 워낙에 다들 중국 나가서 돈 벌면 집도 사고, 랭장고(냉장고)며 세탁기도 들여놓고...돈주(사채업자)가 된 사람도 있소. 만 달라만 모으면 된 다던데...”
“글쎄… 우리가 간부 집안도 아니고, 혁명 열사 후손도 아니고…토대가 안 좋으면 애초에 선발 대상이 안 돼.”
은정은 억이 막혀 고개를 숙였다. 은정은 무산광산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어린 동생과 함께 어렵게 살아왔다. 눈치가 빠르고 손재주가 좋아서 밥은 굶지 않았다. 물고기 잡는 재주는 무산 읍내에서 그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남들은 투망으로도 못 잡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척척 건져 올렸다. 물속에 손을 넣으면 물고기들이 꼼짝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어신魚神이라고 불렀다. 물고기를 잡으면 언제나 실한 놈 몇 마리를 두만강 국경 경비대 군인들에게 바쳤다. 그녀는 말하자면 허가받은 어부였다, 가끔 만나는 도강쟁이(밀수꾼)들과는 물물교환을 했다. 도강쟁이들은 조선족이지만 국적은 중국인이었다. 그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이는 훈춘 사람 김충식이었고 은정과 같은 김해 김씨였다. 그는 은정이를 조카라면서 물고기 값을 후하게 쳐줬다.
박한수가 말을 이었다.
“위생검열(건강검진)도 까다롭다는구만. 일이 힘들어서 젊고 건강한 여자만 뽑는다지 ”
“그러니까...내 더 나이 들면 기회가 영영 사라진단 말임다.”
“그리고 또, 가족이 담보가 돼야 한대. 도주자의 남은 식구들은 조국의 배신자로 몰린다. 사돈네 팔촌, 강아지까지 다 걸려든다. 재산이야 싹 다 뺏기고, 어로 교화소로 끌려가지. 거기에서 석방되어도 평생 감시대상이야.”
박한수는 마지막 말을 조심스레 흘리며 은정의 눈치를 봤다.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이오?”
은정의 말꼬리가 높아졌다.
“쉽지 않지. 무엇보다 뒤배경이 있어야 돼.”
박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정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참았던 말들을 쏟아내듯 뱉었다.
“그러면 평생 이렇게 궁색하게 처박혀 살자 그 말임까? 배경이 없고 토대가 나빠서 안 된다? 또 도망갈까 봐 안 된다?”
은정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더 커졌다.
“날이면 날마다 밥 세끼도 안 나오는 로임 쥐고 와서는, 맨 날 조국, 공화국…그 조국이 당신이랑 나한테 도대체 뭘 해줬는데?”
박한수는 당황한 듯 눈을 부라렸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너무 깝치지 말라.”
“듣기 싫으면 듣지 말라구. 나도 이젠 입 다물고만 살 수는 없소. 나가서 돈 벌어오겠다는 사람 도와줄 생각은 못하고 왜 이런 저런 구실만 대냐 말이오. 무서우면 당신이나 혼자 무서워하라구”
박한수는 갑자기 손으로 방바닥을 내려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안까이새끼(여편네 쟁이)! 말을 왜 그 따우식(따위)으로 하니? 너 삥 빠졌니(미쳤니)?”
“내가 미쳤다고? 내가 못할 말을 했소?”
그 순간 박한수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찰싹’
은정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뺨 위로 선명한 손자국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한수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래! 때려죽이라우! 입 다물고 고개 숙이고, 조국 조국 하면서 직신나게(정신없이) 살다가 굶어 죽자 그 말이오? 눈 딱 감고 고생 좀 같이 하자니까, 마누라 귀싸대기나 치는구나. 내 신세가... 흑흑흑.”
은정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박한수는 멈칫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은정은 방문을 부서지게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젊은 보안원 부부에게 외화벌이 일꾼은 꿈인 성 싶었다.
무산의 봄은 두만강을 타고 들어온다. 사월 중순, 강줄기를 두껍게 덮었던 얼음장들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꽁꽁 얼어붙었던 강에는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검푸른 물살이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는 연두색 새순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바람은 아직 싸늘하지만 강변에는 겨우내 미뤄뒀던 빨래를 하는 아낙들의 수다가 명랑했다.
은정도 빨래감을 들고 나왔다가 외화벌이 인력 모집 소문을 들었다. 훈춘에 나가면 한 달에 중국 돈 일백위안, ‘세상에!’ 박한수의 석 달 로임을 매달 손에 쥘 수 있다는 거였다.
은정은 눈에 불을 켰다. 남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고 했지만 은정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남편 박한수를 졸랐다. 하급 보안원이라도 사회안전성 소속이기 때문에 잘하면 당 고급 간부에게 줄이 닿을 수도 있었다. 가난한 젊은 부부는 물고기는 물론, 남새(채소) 무침까지 윗선에 부지런히 갖다 바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박한수가 퇴근했는데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은정아. 선발 명단은 무역회사 인사과장이 작성한대. 그런데 그자가 색갈(여자를 밝히는 자)이라는 소문이 있구나.”
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사과장이라는 사람에게 물고기를 직접 상납해 볼 생각이었다. 은정은 그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입을 치마를 골랐다. ‘아무래도 종아리가 드러난 짧은 게 좋겠지. 흠’ 얼마 후, 그녀는 기적처럼 외화벌이 일꾼명단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은정이 외화벌이 일꾼에 두 번만 나갔다가는 두만강 물고기는 씨가 마를 거라고 뒷말을 해댔다.
외화벌이 일꾼들이 훈춘에 온 건 봄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벌써 한 겨울이었다. 훈춘은 중국 땅이지만 무산과 불과 칠십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날씨도 무산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객지 탓인지 겨울 강추위와 거센 바람은 무산보다 더 심한 듯 했다. 작업장은 난방시설이 잘돼있어 외화벌이 일꾼들은 추위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모두 그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은정이 배치된 곳은 신발공장이었다. 기숙사와 공장, 공장과 기숙사. 은정의 세상은 두 개의 건물 사이에 갇혀 있었다. 붉은 벽돌 건물 안에서 하루 열 시간씩 운동화 갑피 박음질을 했다. 갑피 가죽을 맞추고, 본드를 바르고, 가죽 조각들을 미싱으로 꿰맸다. 손끝에는 굳은살이 박혔다.
유리창 밖에는 감시원이 늘 서성거렸다. 감시원은 조선의 보위부원이었다. 려권(여권)은 보위부가, 출입증은 조장 동지가 갖고 있었다. 공장 밖 개인 외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바깥 바람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번, 훈춘 시내 단체 관광이 고작이었다. 자주 가는 곳은 방천 풍경구다. 조선, 중국, 러시아 세 나라 국경이 맞닿는 곳이다, 전망대인 망해각에 올라서면 두만강 건너 조선 땅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동해 바다도 바라 볼 수 있다. 관광지에서는 외부인과 절대 접촉 금지였다. 남조선 관광객은 물론이고 중국 현지인이나 조선족과 말을 섞으면 생활총화 시간에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다른 공장에서 일꾼 한 명이 러시아로 튀었는데 말야, 로스께들에게 사살당했다는구만. 시체를 인수했는데 여러 놈에게 강간을 당했는지 처참하더라는 거야”
보위부원들이 여성 일꾼들 들으라고 대놓고 떠드는 소리였다.
‘남조선 생각을 품는 자, 공화국의 반역자로 처단한다’
청진 훈련소에서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말이다.
은정은 침대 베개 밑에 작은 종이 조각을 숨기고 있었다. 방천 풍경구를 갔을 때 누군가 은정의 가방에 몰래 넣은 삐라(전단지) 조각이었다. 그녀 또래의 남조선 여자들이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머리 색깔은 세 사람이 서로 달랐다. 청색 바지(청바지)에 반 팔만 입었는데도 있어 보였다, ‘나도 남조선 여자들처럼 손톱 화장도 하고 머리도 염색하고 싶은데...’ 은정은 칙칙한 작업복에 손톱은 커녕 얼굴에 살결물(토너)이나 영양크림도 변변하게 바르지 못했다. 지금 그녀가 발 딛고 있는 곳은 갑피 작업대, 시름없이 또 하루를 꿰매고 있었다. 이렇게 젊음을 흘려보내는 건 너무 억울했다. 일꾼들은 퇴근 후에도 정치학습, 충성 교육, 생활총화를 받아야 했다.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같은 방 동무 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눈알도 맘대로 못 굴리겠다고...아휴!”
은정은 밤마다 공장을 탈출하는 상상을 했다. 작업대에서 일부러 기절,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서 탈출, 기숙사 뒷문, 감시카메라 사각지대, 경비원 교대 시간...하지만 이런 것들은 머리 속 에서만 가능했다. 현실에선 조장 동지와 기숙사 동무들의 상호 감시 눈초리, 그리고 무산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동생, 남편 박한수의 얼굴이 인질처럼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세월이 덧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조장 동지가 은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은정 동무, 요새 어디 아프나? 얼굴이 많이 어둡다.”
“하나도 일 없슴다.”
은정은 흔연히 괜찮다고 했지만 내심을 들킨 것 같아 숨이 막혔다. 그때부터 가슴이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 코로나**
며칠 있으면 해가 바뀔 때 였다. 별안간 전 세계에 코로나가 창궐했다. 조선은 국경을 닫아버렸다. 임가공 업체가 많은 단둥시, 훈춘시, 무단장시는 비상이 걸렸다. 폐쇄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하여 일하는 공장은 코로나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조선과 중국당국은 코로나 청정국가를 유지해야 했다. 그렇다고 공장을 멈출 수도 없었다. 공장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즉시, 그리고 비밀리에 조선으로 귀국시키기로 했다.
요 며칠, 공장 안이 술렁거렸다.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왔는데 그 방 동무들은 모두 귀국 조치 됐다. ‘당사자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옆에 있던 동무들은 무슨 날벼락이냐, 계약 기간 삼 년을 못 채우니 큰 손해를 보게 됐다’고 수군댔다.
은정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세상일은 대개 처음 시작할 때 작은 틈이 있게 마련이다. 기숙사는 한 방에 네 명이 함께 살았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숨결과 체온까지 익숙해진 사이였다. 취침시간에 소등을 하는데 은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희끄무레한 형광등 불빛 아래, 그녀의 얼굴은 더 핼쑥해 보였다. 같은 방 동무들이 뭔 일인가 싶어 그녀를 바라봤다. 은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 안에 흘렀다.
“동무들… 나, 코로나에 걸린 것 같슴다.”
순간적으로 방이 얼어붙었다. 서로 마주 보다가 다시 은정의 얼굴로 눈길이 쏠렸다. 그간 그녀의 낯빛이 유난히 안 좋았던 걸 떠올렸다. 목이 자주 쉬었고, 밤마다 기침을 삼키곤 했다.
“검사 받게 되면, 우리 방 동무들 다 같이 귀국이오. 입도 뻥긋 못 하고...무조건... 다 알지 않슴까?”
누군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은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을 이었다.
“조국에 가봐야 치료는 무슨 치료? 격리소에서 썩다 죽을게요. 나는...이왕 죽을 목숨이라면, 선진국인 중국 병원에서 치료나 한 번 받아보겠다는 생각임다.”
그녀의 말끝이 떨렸다. 곧 이어진 말은 거의 사정조 였다.
“연변에 사촌 이모가 삽니다. 나는 그리 가고 싶슴다.”
같은 방 동무들은 은정이 ‘오늘 밤 공장을 탈출하겠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모두 말없이 은정이 짐을 싸는데 손을 보탰다. 세 사람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돈을 십위안 씩 걷어서 은정의 배낭에 밀어 넣었다. 은정은 왈칵 눈물이 나왔다.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나눴다.
새벽 2시. 은정은 기숙사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칼바람에 눈이 섞여 날리고 있었다. 같은 방 동무들은 망을 봤다. 코로나 격리소 쪽 담벼락으로 접근했다. 격리소에는 아직 수용 인원이 없어서 경비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 담장을 넘다가 발끝에서 흙이 미끄러졌다. 무릎을 찧었지만 신음을 삼켰다. 은정은 공장을 빠져나와 훈춘하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인적이 없는 훈춘 거리는 눈보라가 매서웠다. 훈춘하 큰 다리 밑에 몸을 숨긴 채 주머니 속에서 손전화를 꺼냈다. 떨리는 손끝으로 저장해 둔 번호를 눌렀다.
삐… 삐… 찰칵.
“누구요? 이 밤중에.”
거칠고 낮은 남자 목소리. 도강쟁이 김충식이었다.
“충식 아바이... 나예요. 은정이요. 무산서 물고기 잡던...”
“은정이? 이 시각에 뭔 일이니? 숨소리가 왜 그리 거칠어?”
“나...훈춘 공장에서 코로나 걸린 척 하고 담 넘어 도망 나왔소. 이대로 조국 돌아가면... 난 죽소. 아바이, 숨을 자리가 필요해요. 단 하룻밤만이라도 숨겨주오. 나 돈 있소”
김충식 쪽에서 침묵이 흘렀다. 은정은 숨을 죽였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 어딘데?”
“혼춘하 큰 다리 밑이오.”
목소리가 떨렸다.
“됐다. 전화기 전원 끄고, 그 자리에서 딱 십분만 기다리라. 나 지금 간다.”
“정말이오?”
“괜한 소리 말고, 거기서 기다려. 움직이지 말고. 사람 눈 많다.”
전화가 끊겼다. 은정은 손전화의 전원을 꺼서 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몸을 바짝 웅크렸다. 숨소리조차 죄가 되는 밤이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은정이 훈춘 공장에서 도망친 사실은 곧 무산까지 알려졌다. 보위부원들이 벼락같이 선숙의 집과 박한수의 보안서로 들이닥쳤다. 선숙과 박한수는 보위부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했다. 보위부원들은 은정을 어디로 빼돌렸느냐고 추궁했지만 두 사람 모두 실토할 게 없었다. 며칠간 닥달을 해도 소용이 없자, 보위부는 은정의 소재를 알게 되면 즉시 신고하는 조건으로 그들을 석방했다. 평소에는 보위부 체포조가 그까짓 도주자 한 사람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온 세상에 코로나 전염병이 도는 마당이라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공안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전부 코로나 방역에 혈안이었다.
“장모님, 은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함 찾아봐야지 않겠슴까?"
박한수는 심난한 표정으로 선숙의 생각을 물었다.
선숙은 의외로 담담했다.
“은정은 살아 있을 거네. 박서방도 알겠지만 그 애는 야무지잖아. 중국이 선진국이니 치료두 거기서 받는 게 낫지. 코로나 걸려서 돌아왔다면 여기서 죽었을 거야. 찾으러 가자 해도 국경은 고사하고 집 밖에도 못 나가는 판에...저 넓은 만주 벌판 어디 가서 찾겠나?”
맞는 말이었다. 조선에는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를 예방할 백신이 없었다. 당은 인민들에게 마스크 착용, 손씻기, 한약재 훈연, 소금물 입가심을 권하는 게 고작이었다. 사람이 수도 없이 죽었다. 코로나에 걸린 은정이 돌아왔다 해도 죽었을 목숨이었다. 손전화 전원이 꺼져있는 걸로 보아 은정은 죽은 게 틀림없었다. 시체를 찾을 길도 막막했다. 코로나의 위세는 나날이 더 심해졌다. 온 나라의 가정과 직장이 얼어붙었다. 인민들의 통행을 단속하기 위해 보안원들이 총동원 되었다. 박한수는 코로나 전염병이 물러갈 때 까지 은정의 생사확인을 미루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은정은 도강쟁이 김충식의 집으로 이동했다. 일단 탈출은 성공했으나 남조선 가는 길은 막혔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의 주민 통제는 엄격했다. 버스나 기차를 탈 때도 공안들이 코로나 검사를 했다. 심지어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은정은 이제 진퇴양난이었다. 코로나가 물러갈 때 까지 엔지에 갇혀버렸다.
김충식은 사십대 중반인데 식구는 부인과 딸 하나, 단출했다. 김충식은 늘 웃는 얼굴이었고 부인은 조용하고 온화했다. 은정은 남조선에 가면 이런 가정을 꾸미고 살 거라고 부인에게 얘기했다. 집에는 방이 세 칸 있었는데 작은 방 하나를 창고로 쓰고 있었다. 조선과 무역하는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이리저리 치우고 나니 겨우 사람 몸 하나 눕힐 만한 공간이 생겼다.
아침을 먹고 나서 은정은 가진 돈 전부를 김충식과 부인 앞에 내밀었다.
“지금 제가 가진 돈은 이게 전부 임다. 전염병이 끝날 때 까지만...염치 없슴다. 설거지며 청소는 제가 다 하겠슴다.”
김충식과 부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두말없이 돈을 받았다. 전에도 탈북자를 숨겨주고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나중에 들었다. 김충식이 은정에게 말했다.
“그래...불편하겠지만 맘 편히 있으라우. 시간이 좀 지나면 통행이 자유로울 거야. 훈춘에서 신발공장에 있었다고 했지. 미싱은 많이 다뤄봤겠구나. 연변에 가면 조선족이 운영하는 봉제 공장들이 여럿 있다. 도문이나 용정에도 있지. 그런 데는 여권이 없는 조선 사람들이 많이 일하지. 남조선 가는 건 국경이 열리면 차차 알아보자”
은정은 옌지延吉 시내 봉제 공장의 일자리를 얻어 이년을 보냈다.
드디어 한국이 국경을 열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은정은 김충식의 소개로 탈북 브로커 두 사람을 만났다. 한족과 조선족 남자였는데 두 사람 모두 눈빛이 사나웠다. 조선족 남자는 한국말을 섞어 썼다. 나중에 그는 자신도 양강도 혜산 출신인데 몇 년 전에 비법 월경(불법 탈북)했다고 밝혔다. 브로커들은 소형 버스에 사람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 탈북자 숫자가 적으면 브로커들에게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중국 시골 남자들에게 여자들을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있어서 은정은 불안했다. 또 보위부 체포조가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문 여는 소리만 크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이십일 쯤 지나자 탈북자 여섯 명이 모였다. 은정을 포함해서 여자 네 명, 남자는 두 명이었다. 일행 중에 헤이룽장성 모허시漠河市에서 온 순심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마흔 다섯인데 열 살은 더 늙어보였다. 그녀는 고난의 행군 시대에 탈북했다가 인신매매범에게 걸려들어 중국남자에게 세 번 팔렸다고 했다. 은정은 그녀를 순심 언니라고 불렀다.
순심언니는 은정에게 모허시에 떼어 놓고 온 아이가 생각난다면서 늘 울었다.
““내 고향은 회령이야. 그땐 진짜 굶어죽을 판이라서...국경을 넘어갔지 뭐. 은정이는 어려서 몰랐겠지만 갓난아기를 잡아먹더라는 소문도 있었거든. 근데, 두만강을 건너자마자 그만, 인신매매단한테 걸려들었댔지. 처음 팔려간 데가 지린성 산골 농장이었어. 아, 거기선... 하루 종일 소처럼 일만 시키는 거야. 사람 대접이 아니었지. 그 이듬해엔 또 모허시로 팔려갔어. 그 집 영감이,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어. 거기서 사내애 둘을 낳았는데, 연년생이었지. 근데 애들이 열 살 쯤 됐을 때, 그 집 식구들이 내 손에서 확 뺏어가더라. 그때 진짜... 지금은 걔네들 어디 사는지도 몰라. 그 영감은 몇 년 전에 벌목하다가 사고로 죽었어.”
순심의 얘기를 듣다가 은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니, 그럼 그 때 도망치지 않고 뭐했슴까?”
“모르는 소리 말라. 농장에 있을 때 도망치다 잡혀온 남자가 있었어. 물론 조선사람이지. 인신매매꾼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려 죽이더라구. 그리고 만주가 얼마나 넓은지 몰라. 도망가자해도 천지분간을 할 수 없어.
근데 그 영감 죽고 나니까, 내가 갈 데가 없잖아. 결국 또 팔려갔지. 그 놈은... 술만 먹었다 하면 나를 두들겨 팼어. 아, 맞아죽기 싫어서 도망 나왔지. 그 놈한테서도 딸을 하나 낳았어. 지금 다섯 살인데...그 애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지금도 눈에 밟혀. 나쁜 엄마지, 나...”
출발에 앞서 브로커가 탈북 루트를 설명했다.
“연변에서 남조선 가는 길은 크게 세 개가 있소. 북경으로 들어가서 서방 대사관 담장을 넘는 방법, 중국 북쪽 몽골로 가는 방법 그리고 동남아국경을 통과하는 방법이 있소. 첫 번째 방법은 대사관들의 경비가 삼엄해져서 이제는 불가능하오.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북조선 보위부원들이 나와 있어 위험합니다. 이번에는 라오스를 거쳐 태국으로 넘어갈 겁니다.”
탈북자들은 다음 날 신새벽에 출발했다. 두만강, 압록강을 따라 가는 지름길을 버리고 만주의 북쪽 도시 창춘으로 우회해서 선양으로 간다고 했다. 조 중 국경부근에는 중국 공안의 검문소가 곳곳에 있고 북조선 보위부원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중국 현지인들도 조심해야했다. 탈북자 한 사람을 신고하면 포상금으로 삼천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선양까지는 대략 일천이백킬로미터, 삼천리다. 거기까지만 가면 쿤밍까지는 고속도로를 탈 거니까 쉽다고 했다. 중국인이 운전하는 승용차 한 대가 창춘까지 앞장을 섰다. 탈북자들이 탄 승합차는 그 뒤를 따랐다. 앞차는 검문소 탐색용이었다. 앞차의 신호에 따라 검문소를 통과하거나 산길과 마을 길로 우회했다. 꼬박 스무 시간을 달려 선양에 무사히 도착했다.
탈북자들은 선양에 있는 브로커의 친척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쿤밍으로 출발했다. 브로커 두 사람은 윈난성 쿤밍昆明 까지 사흘 동안 쉬지 않고 운전했다. 그들은 잠도 버스 안에서 교대로 잤다. 탈북자들도 변소 갈 때 외에는 버스에서 못 내리게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브로커들이 요기 거리를 사 오면 차 안에서 먹고 의자에 앉은 채 쪽잠을 잤다.
쿤밍시의 낡은 아파트에서 이틀을 기다렸다. 라오스에서 연락이 오자 국경 마을 모한磨憨으로 이동했다. 밤 중에 라오스인 가이드 두 명이 나타나서 그들을 라오스국경으로 이끌었다. 조선족 브로커는 여기서 작별했다. 그는 태국에 도착하면 자기에게 전화를 달라고 하면서 손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코로나로 사람이 많이 죽어서 당신들은 북조선당국이 실종자로 처리할 거 같소. 운이 좋은 겁니다. 당분간 텔레비 같은데 나오지 말고 쥐 죽은 듯 사시오. 그래야 북조선에 남은 가족들에게 피해가 없을 거요. 남조선에 정착하면 내게 연락하시오.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거, 가족들 탈북시키는 거 모두 내가 해줄 수 있소. 브로커 비용은 정착금 나올 때 수금책을 보낼 테니 월부로 갚으시오.”
그는 라오스 가이드와 몇 마디 나누고 총총히 사라졌다.
탈북자들은 한밤중에 험준한 정글 산길을 걸었다. 순심 언니가 계속 뒤처졌다. 라오스 가이드들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국경수비대의 근무교대시간에 맞춰야 한다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순심 언니는 결국 탈진해서 한발짝도 못 걷게 됐고 정글 속에 버려졌다. 라오스 가이드들은 그녀의 소지품 중에서 돈 될 만한 거를 모조리 빼앗았다. 그들의 허리춤에 매달린 권총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훗날 은정은 순심 언니가 꿈에 보이곤 했다.
아홉 시간을 걸은 끝에 이튿날 새벽, 라오스 보텐이라는 국경도시에 도착했다. 다시 승합차로 갈아타고 하루 종일 달려 메콩강에서 기다란 모터 보트를 탔다. 보트는 메콩강을 따라 다섯 시간 이상 하류로 내려갔다. 태국국경에 다다르자 라오스 가이드들은 보트를 갑자기 급회전시켜 탈북자들을 물에 빠뜨리고 황급히 되돌아갔다. 강변에 있던 태국사람들이 탈북자들을 건져 올렸고, 태국경찰이 그들을 난민 수용소로 넘겼다. 얼마 후 남조선 국정원 사람들이 나타나서 개별심사를 했다. 은정은 석 달 후 드디어 인천 공항에 내렸다. 은정은 진짜 한국에 왔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 허벅지를 꼬집어 봤다. 그 날 서울은 첫 눈이 내렸다.
**화포천의 뻐꾸기**
작년 겨울, 서울에 도착했는데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고 있었다. 하나원 졸업을 며칠 앞두고 국정원 담당관이 면담자료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김은정 씨, 하나원을 나가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은정은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음식점이 만만했다. 무엇보다 밥은 굶지 않을 것 같았다.
“식당일이라면 잘할 것 같슴다.”
“식당이라...어디서 하시게요?”
”시골에서...다른 새터민 사이에 소문이 나지 않게 시골에 숨어 살까봐요“
”왜 하필 시골일까? 다른 사람들은 서울을 원하는데... 어쨌든... 가고 싶은... 아니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은 있습니까?“
”제가 김해 김씨 니까 김해 쪽으로 보내주세요, 혹시 먼 친척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은정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탈북자 가족들은 노동단련대나 어로교화소로 끌려간다. 하지만 그녀가 실종자로 있는 한 무산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시골식당에서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한꺼번에 탈북시킬 생각이었다.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한국과 조선 사람으로 갈라져 살면 될 일이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김해 시내 식당 주인들은 은정이 새터민이라고 하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채용을 거절했다.
”북한 사람은 쪼매 곤란한데예. 다른 집 알아보이소.“
핑계도 여러 가지였다.
“그 사람들 거칠잖아요. 삼팔선을 넘어왔다니까 좀 무섭기도 하고...”
“공산당 물은 한 세대는 지나야 빠진다카대.”
“사고무친인 외국 사람을...우예 믿습니까?”
전화를 돌리다 지친 부산 하나센터 직원은 은정과 함께 직접 식당을 찾아 나섰다.
”뭐?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다고? 잡으면 몇 마리나 잡겠노? 그긴 됐고...여자 혼자 객지에서 있을 곳이 없다하니 우선 한 달만 일해 보이소.“
‘화포 매운탕’ 민 여사는 하나센터 직원과 은정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선선히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민 여사가 은정을 채용한 데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아무려면 동남아 여자들 보다야 낫겠지. 말이 통하잖아.’
민 여사에게는 마흔이 다되도록 장가를 못가고 있는 아들, 종탁이 있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고졸 학력, 시골 매운탕 집에서 서빙하는 종탁에게 시집 올 여자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민 여사는 은정이 며느리 감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북한 사람 치고는 키가 작지 않았고 명랑하고 야무져 보였다. 얼굴이 도톰했고 엉덩이도 팡파짐했다. 늦었지만 남들처럼 손주 재롱도 볼 것 같았다. 서른이면 아들 종탁과 나이차가 있었지만 남녀 사이에 그건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그래...은정씨는 고향이 어디라 했노? 고향에 가족은?“
”함경북도 무산입니다. 엄마와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은정은 북한에 남편이 있고 보안원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은정이 화포매운탕에서 일하기 시작한 며칠 후였다. 은정은 바케쓰만 들고 화포천으로 나가더니 금방 물고기를 가득 잡아 왔다. 민 여사와 종탁은 호박이 넝쿨 째 들어왔다는 걸 대번에 알았다. 은정이 일하면서부터 화포 매운탕 수조에는 활어가 가득 찼다. 싱싱한 쏘가리를 회로 떠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날마다 손님들이 줄을 섰다. 물고기가 달려서 은정은 종탁과 함께 삼랑진의 밀양강이나 진주 진양호 아래, 남강까지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처음 본 사람들은 은정과 종탁을 부부로 알았다.
은정은 종탁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다닐 때면 소풍 가는 아이처럼 기분이 들떴다. 땀이 배인 그의 셔츠를 바라보면 괜히 가슴이 따뜻해졌다. 종탁은 키도 크고 배가 나와서 마치 북조선의 당 간부처럼 듬직한 체격이었다.
유월에 들어서면서 기온은 빠르게 올라갔다. 날씨가 맑아 하늘은 높았다. 동틀 무렵에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허리도 아프고 시장했다. 은정과 종탁은 물에서 나와 강가 언덕 나무 그늘에 앉았다. 종탁은 비닐 깔판 위에 집에서 싸온 아침 식사 반합을 차렸다. 은정의 살구색 반팔 티셔츠가 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입술이 파랬다.
“아휴. 차가워요.”
은정이 몸을 움츠렸다. 종탁이 말없이 일어나 패딩 점퍼로 은정을 감싸줬다.
“종탁 오빠, 북에서는 어릴 적 같이 놀던 동무를 인민학교 동창이라고 해요. 여기서는 뭐라고 해요?”
“어릴 적 동무? 소꿉 친구.”
“종탁 오빠랑 고기를 잡다 보면 오빠가 소꿉친구 같은 생각이 들어요 호호호.”
은정이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가지런하고 하얀 잇속이 예뻤다. 종탁은 그 말에는 대꾸를 못하고 은정의 몸매를 흘끔거렸다.
“소꿉친구 오빠야, 장화 속에 물이 스며들었어요. 장화 좀 벗겨줘.”
은정이 종탁에게 허리 장화를 벗겨달라고 두 다리를 쭉 내밀었다. 종탁이 장화를 잡아당기자 반바지가 같이 벗겨졌다. 은정의 하얀 허벅지가 햇볕 아래 눈부시게 드러났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연분홍색 팬티가 은정의 음부를 수줍게 가리고 있었다. 종탁이 팬티를 잡자 은정은 엉덩이를 들었다. 팬티에서 장미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종탁은 정신이 아득해져서 숲이 무성한 그녀의 깊은 샘에 머리를 박았다.
“아유...”
은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약하게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은정은 종탁의 머리를 끌어올려 부드럽게 키스했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종탁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하얗고 탄력있는 허벅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은정이 간단없이 토하는 신음 소리에 종탁은 심하게 서둘렀다. 피끓는 두 젊은이는 마침내 정상에서 만났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몸을 애무했다. 화포천 수로에는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이 한가했다. 그날 저녁, 은정은 짐을 싸서 캐리어를 끌고 종탁의 방으로 들어왔다.
“시래기국 오래 끓이면 된장찌개 된다 아이가? 은정이 야가 고기만 잘 낚는 줄 알았제? 우리 아들 종탁이를 낚아 버렸네. 호호.”
민 여사는 너스레를 떨었다. 누가 누구를 낚았는지는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지만 민 여사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은 총각 귀신을 구해준 게 누군데 말을 거꾸로 한다고 흉을 봤다. 민 여사는 김해시에 두 사람의 살림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화포 매운탕에 처음 출근했을 때만 해도 은정은 장마당의 촌닭처럼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은행 계좌에 찍힌 첫 월급을 에이티엠기에서 빼보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게 정말 한 달 일해서 번 돈인가 싶어 숨이 막혔다. 삼백만 원! 이천 달라가 넘었다. ‘입쌀 값으로만 따져보면 북조선에서는 칠년 로임이다!’ 북조선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손에 쥐는 건 없었다. 내 것을 전부 당에 바쳤다가 배급을 받았다. 남쪽에서는 일한 만큼 내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돈이 많으면 대접을 받았다. 돈이 당이고 권력이었다. 사상이니 충성심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돈보다도 은정의 가슴을 벅차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여자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곳. 그게 바로 한국이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주변에 보위부 스파이가 있는지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통행증이 없는 세상이라 은정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중국이 진즉 국경을 열었었고 북한도 제한적이지만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가능했다.
“종탁 오빠, 나 무산에 있는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오고 싶어.”
“그래야지.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브로커에게 돈을 보내면 되거든.”
민 여사도 통 크게 큰돈을 내놨다. 이제 사돈이 오시면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다. 그 말이 고마워서 은정은 눈물 바람을 했다.
은정은 도강쟁이 김충식에게 연락해 브로커를 수배했는데 김충식은 이번 일은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국경이 닫혀 돈벌이가 시원찮았던 참이었다. 은정도 훈춘에서 자기를 구해준 김충식이 해준다니 안심이 됐다.
김충식이 북경에서 만나자고 했으나 은정은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돌아다니는 중국은 무서웠다. 김충식은 착수금을 받으러 서울로 왔다. 은정은 서울역 역사 이 층에 있는 한식당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은정이, 너무 고와져서 못 알아보겠구만. 한국 사람 다 됐구나야. 하하하.”
“아바이도 여전하시네요.”
은정도 공치사를 했다.
“네 말 대로 박한수에게는 비밀로 하겠다. 사회안전성 보안원이랬지? 범 무서운 충신들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 사람은 겁도 많고 무뚝뚝하기가 대장간 쇳 도막 같아요. 나중에...”
은정은 말끝을 흐렸다. 남조선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는 얘기를 김충식에게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었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데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충식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은정이 박한수와 헤어질 심산인 걸 짐작했다. 박한수는 노동당원이면서 보안원이다. 조선의 핵심계층으로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탈북할 이유가 없다. 은정의 탈북 사실이 드러나면 박한수는 이제 탈북자 가족, 공화국의 적대 계층으로 성분이 내려앉고 감시 대상이 된다. 하지만 김충식은 지금 남의 가정사까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김충식은 북한이 아직 까지는 국경을 막고 있으니 시간을 갖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게 벌써 두 달 전인데 여태 아무 소식이 없었다. 김충식의 연락이 끊긴 게 수상했다. 탈북 브로커는 잡히면 노동교화형 오 년 이다.
** 장마 탈출 **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던 장마비가 초저녁에 들면서 흐지부지 그쳤다. 비에 젖은 마을 위로 적막이 내려 앉았다. 구름은 아직 낮게 드리웠으나 기온이 서늘하고 공기는 맑았다. 두만강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개는 곧 마을을 휘감았는데 열 발자국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김충식은 인민모를 깊숙이 눌러쓴 채 골목을 조심스레 걸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은정네 집 마당 안으로 재빨리 숨어 들어갔다.
“똑. 똑. 똑.”
방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이 든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 누구요?”
“불 켜지 마오. 문도 열지 말고, 그냥 듣소. 은정이가 보낸 손전화를 마루에 놓고 갈 테니까 오 분쯤 있다가 집으시오. 내일 밤 이 시간에 은정이가 전화할겁니다. 주의할 건 한 가지. 전화 길게 하면 안되오. 보위부 놈들이 도청함다.”
김충식이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방 안에서 숨죽여 기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어제 그 시간이 되자 손전화 진동이 울렸다. 선숙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전화 속에서 귀에 익은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은정이. 남조선 와 있어.”
은정은 울먹울먹했다.
“은정아... 엄마다. 내 딸 은정이, 너 살아 있을 줄 알았다.”
선숙은 의외로 차분했다.
“시간 얼마 없소. 짧게 말할게.”
“그래, 말하라.”
“엄마... 남조선 나올 맘 있소? 그거만 말해줘.”
“있다 말다. 두말이 필요 없다. 나는 죽더라도 네 옆에서 죽고 싶다.”
“알겠소. 며칠 후 이 시간에 브로커가 엄마에게 갈 거요. 그 사람 말 잘 듣고 준비하고 있어.”
“은정아... 또 전화해 줄 수 있겠니?”
“국경 넘을 때까지는 좀... 이웃이 눈치 채지 않게 조심히 있어요. 전화 끊소.”
그런데 모녀간의 연결선은 밤마다 간단없이 이어졌다. 막혔던 물꼬가 터진 것 같았다. 무산보위부 요원들은 매일 밤 같은 시각에 잡히는 손전화 신호를 도청 했다. 그들은 선숙의 집 부근을 전파 착신 지점으로 특정했다. 그들은 은정이라는 이름을 무산읍 실종자 명단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선숙의 집 맞은편 언덕에서 잠복했다. 어쩌면 조국의 배신자를 미리 검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하루, 햇볕이 좀 나나 싶었지만 오뉴월 장마가 그리 쉽게 지나갈 리가 없었다. 아침부터 남산 중턱까지 구름이 내려왔다. 무산읍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후텁지근했다. 오후 들어 먼 데서 부터 우레 소리가 요란했다. 저녁무렵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밤에는 도둑놈들이 많다. 박한수는 보안원 제복 위에 비옷을 걸쳤다. 도보 순찰도 할 겸 오랜만에 은정네 집을 들러볼 셈이었다.
은정네 동네 큰길 가에 중국제 뚱펑 승합차가 서 있었다. 차량은 번호판도 달지 않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손전지(플래시)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동무들 누구야?”
박한수는 그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대번에 손전지 불빛이 날아와서 박한수의 얼굴을 비췄다. 욕지거리가 뒤 따랐다. 목소리가 묵직하고 사나웠다.
“보안원 쫄따구새끼가... 보위부 작전 중이다. 빨리 꺼지라.”
박한수는 멈칫했다. ‘뭐, 보위부 라구? 이 동네에 반동분자가 있었나?’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데 보위부원들 속에서 뜬금없이 선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정아, 내 새끼야, 우린 남조선에 가기 싫은데...너 때문에 이제 다 죽었다. 흑흑.”
몽둥이로 사람을 패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선숙의 울음이 뚝 그쳤다. 박한수는 천둥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몇 발짝 뒷걸음을 치다가 집을 향해 뛰었다. 구두를 신은 채로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벽장 속에서 전시 대비 비상 배낭을 꺼냈다.
배낭 속에는 위장 전투복, 비옷, 군화, 압축식 전투식사 십일분, 소금 한 주먹, 물통, 손전지, 소련제 단도, 지도, 나침반. 라이타, 소독약, 전투삽, 밧줄 십 오미터가 들어 있을 터였다. ‘그 밖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언제 보위부원들이 뒤 쫒아 올지 모른다. 머릿속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사복 위아래 한 벌, 내의, 양말. 비닐 박막(비닐봉지). 아, 참! 돈! 은정이 보내 준 인민폐... 생각나는 대로 배낭 속에 구겨 넣고 대문을 나섰다.
두만강 쪽은 이미 막았을 것이다. 강을 건너더라도 중국 공안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그렇다면 남쪽이다. 우선, 무산보위부 관할 구역을 벗어나야 했다. 박한수는 급속 행군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박한수는 군대 시절 경보병여단의 모범 전사였다. 백두산 혁명 답사 행군 훈련에서 줄곧 선두를 차지했다. 그때 습득했던 생존훈련경험을 되살려 목숨을 지켜내야 한다.
남산 중턱까지 단숨에 올랐다. 가쁜 숨을 멈추고 무산읍을 내려다봤다. 언제 다시 오겠냐 싶었다. 비 구름이 읍내를 덮고 있었다. 군에서 받은 노력훈장 덕분에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었다. 농장원 아들 신분이었는데 제대 후에 보안원까지 꿰찼다. 무산에서의 인생은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선숙의 외마디 소리는 은정이 남조선에 살아 있다는 얘기였다. ‘아까 보위부에 잡혔더라면 지금쯤 모진 고문을 받고 있겠지. 은정은 왜 남조선으로 갔나? 왜 나는 빼고 친정 엄마에게만 연락했을까?’ 배신감이 불쑥 온몸을 뒤 덮었다. 도주자의 가족은 조국의 배반자, 어로교화소 일 년형이다. 박한수 같은 핵심 계층은 삼년까지 갇힐 수도 있다. 교화소를 나와도 평생 감시 대상이다. 어렵게 들어간 노동당에서 출당되고 보안원에서 쫒겨나게 된다. 무산보다 더 험한 산골 오지로 추방될 것이다. 이제 조선에서의 삶은 틀렸다. 은정을 잡아서 끌고 오면 혹시 바뀔지 모른다. 그를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자기 혼자 남조선으로 튄 은정을 그냥 놔 둘 수는 없었다.
“독사 같은 계집년.”
박한수는 자기도 모르게 쌍욕을 내뱉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걷히면서 무산 읍내의 가로등 불빛들이 드문 드문 보였다. 박한수는 자기 집 쪽을 내려다봤다. 대여섯 개의 손전지 불빛이 박한수 집 부근에서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위부 체포조일 것이다. 그 때 바지 주머니에서 손전화가 울렸다. 그는 무심코 전화를 받으려다가 불에 달군 부젓가락을 만진 것처럼 놀라서 손전화를 떨어뜨렸다. 전화를 받으면 ‘나 여기 있소, 어서 잡아가오’라는 신호가 된다. 손전화를 부셔서 땅속에 묻어버렸다. 구름이 다시 무산읍을 덮었다. 박한수는 무산고원 삼림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 천장에 달린 노란 백열전구 하나가 간신히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콘크리트 벽에는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있고 바닥에는 물이 질퍽했다. 김충식은 보위부 취조실에 끌려오자마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발가벗겨졌다. 손목과 발목이 묶인 채 시멘트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보위부원들은 김충식을 몽둥이로 인정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기절하면 물을 끼얹었다. 김충식은 양쪽 뺨이 벌겋게 부어올라 눈을 뜰 수 없었다. 기침을 하면 붉은 피가래를 한 입씩 토했다. 턱부터 가슴께 까지 피범벅이었다. 보위부원 대 여섯 명이 빙 둘러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몽둥이를 든 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개새끼. 너, 누구 부탁을 받고 왔어? 도강쟁이가 브로커 짓도 하나? 엉! "
보위부 요원은 몽둥이로 책상을 내려쳤다. 김충식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어깨뼈가 부러졌는지 날카로운 통증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했다. 보위부에 잡혔다가 죽어 나온 브로커가 한 둘이던가, 우선 살아야 했다.
“김은정이오, 김은정은 실종된 거 아닙니다. 남조선에 있습니다.”
보위부 요원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뭐라고?”
“훈춘 신발 공장에서 남으로 갔다고 하오. 나한테 연락이 왔고... 엄마랑 동생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소. 그래서...그래서...요새 장사도 안 되는데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그만...제발 살려만 주시오. 내 가진 것 전부 다 조선에 바치겠소.”
옆방에서는 선숙이 맞고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이 끔찍했다. 보위부는 탈북자 가족의 재산을 전부 몰수했다. 선숙을 발가벗기고 벗은 옷을 서캐 잡듯이 샅샅이 뒤졌다. 보위부원들은 심지어 그녀의 자궁 속까지 헤집었다. 탈북자들은 달라나 위안화를 비닐박막에 싸서 숨기기 때문이었다. 아들뻘의 보위부원들이 빙 둘러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한수는 지도 위에 걸어갈 노선을 그었다. 군대 시절에 했던 지도작업이었다. 개마고원의 천리수해千里樹海를 남으로 관통하여 함흥으로 간 다음, 강원도 북부 산악지대를 지나 황해도 연안까지 간다. 연안에서 뗏목을 타고 남으로 갈 계획이었다. 연안군은 군대 생활 십년을 보낸 곳이다. 손금 보듯 지리가 훤했고 바다의 해류도 알고 있었다. 거쳐야 할 도시와 마을, 산맥과 강, 산의 경사도까지 머리 속에 그려 넣었다. 경보병 여단 모범 전사였던 그에겐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는 작업이었다. 보안서 담벼락이나 인민반(동네단위조직) 회관에는 박한수의 얼굴이 비법 도주자로 뿌려져 있을 것이다. 검문소와 마을들을 우회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림 잡아 칠백킬로미터 정도 걷게 될 것이다. 경보병여단의 여름 훈련은 보름동안에 군장 사십킬로그램을 등에 지고 사백킬로미터를 행군했다. 행군속도는 한 시간에 십킬로미터 였다. 하루에 삼십킬로미터 정도만 이동하면 장마가 끝나기 전에 연안에 도착할 수 있다. 지금은 다행히 녹음이 짙은 여름이라 추격조에게 들킬 염려는 적다. 하지만 무인비행기를 띄운다면 열상카메라로 정찰하기 때문에 무조건 잡힌다. 낮에는 자고 주로 밤에 이동해야 한다.
일주일을 걸었다. 장마는 여전히 끝날 기미가 없었다. 비는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금세 다시 쏟아져 땅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신발은 두 켤레였으나 모두 비에 젖어 참호족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낮에는 풀에 덮힌 폐가나 버려진 벌목 초소에 숨었다. 썩은 이불이나 옷가지들을 불쏘시개로 썼다. 산에서는 보안원 제복을 입었다. 혹시 주민들 눈에 띄더라도 훈련 중이라고 둘러댈 생각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화물 트럭에 몰래 매달려 타기도 했다. 차가 엉뚱한 곳으로 가서 먼길을 돌아 나오느라 헛고생을 했다.
식량을 아끼려고 산속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먹었다. 뱀은 껍질을 벗겨 날로 먹었고 단도를 던져 잡은 토끼나 쥐는 불에 구었다.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소금이 급했다. 박한수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함흥의 함주 장마당에 들어섰다. 코로나 통행 금지가 풀린 장마당은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가랑비가 오락 가락 했다. 좌판 앞에 물건을 늘어놓고 앉은 여자들 그리고 자전거를 끌거나 우산을 쓰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통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하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을 등지고 도주자 신세라니...’ 박한수는 남조선을 가는 걸 포기하고 함흥에 숨어 살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삼수갑산에서 바늘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감시하는 조선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박한수는 농촌상점을 찾다가 김치 냄새에 이끌려 국수 천막으로 들어갔다. 허겁지겁 국수 두 대접을 삼켰다. 박한수가 열무김치 두 접시를 먹고도 입맛을 다시자 주인 아낙이 피식 웃었다.
"집에서 김치를 안 담궈 주오?"
"장마철에는 열무김치가 금치라고... 그보다는 아주머니 김치가 특별히 맛있슴다"
주인 아낙이 세 접시 째 김치를 내놓으며 말을 이었다.
“조선 사람은 김치 고추장 못 먹으면 속에서 털이 일어나지. 호호”
“맛있는 김치 먹으니까 숨이 확 나가는구만요.”
박한수도 맞장구를 쳤다. 배가 불렀던지 긴장이 풀렸다. 국수값으로 무심코 중국 인민폐를 내밀자 국수집 아낙은 반색했다. 박한수는 거스름돈으로 받은 조선돈에서 김치값을 따로 떼줬다. 국수집 아낙은 입이 귀에 걸렸다. 박한수는 농촌상점에 들러 소금, 강냉이 쌀, 내의, 양말, 성냥 그리고 치약, 칫솔 까지 샀다.
국수집 아낙은 박한수에게서 받은 인민폐를 옆집 아낙에게 자랑했다. 그 때 인민모를 눌러쓴 남자가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국수집 아낙은 그에게 박한수가 걸어간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한수는 장마당에 너무 오래 머무른 것 같아 농촌상점을 급히 빠져 나왔다. 몇 발 짝 걸었는데 자기를 지켜보는 눈초리를 느꼈다. ‘들켰다!’ 박한수는 대번에 그 눈초리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다행히 한 놈이었고 박한수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놈이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기 전에 유인해야 했다. 장마당에 들어설 때 봐두었던 탈출로를 따라 빨리 걸었다. 놈은 사복조였다. ‘보위부일까? 보안서일까?’ 박한수는 허리춤의 단도를 확인했다.
산비탈의 폐가로 숨어 들어갔다.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지붕은 온전했으나 시멘트벽이 군데군데 허물어졌고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벽장에서 산발한 여자 귀신이 튀어나와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배낭을 밖에서 보이게끔 방바닥에 던져 놨다. 숨을 죽이고,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기다렸다. 놈은 배낭을 보더니 허리 뒷 춤에서 백두산 권총을 빼들었다. 양손파지 자세로 권총을 겨누면서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놈이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박한수는 한 발 내딛으면서 단도 손잡이로 놈의 손목을 짧고 강하게 끊어쳤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떨어뜨렸다. 놈은 무쇠 단도 손잡이에 맞은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목이 부러졌는지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박한수는 놈의 목덜미에 단도를 들이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경동맥이다. 상방찌르기를 할까? 단도는 네 대갈통 골수까지 들어간다. 나는 군대에서 단도조법 고수였다. 숨도 크게 쉬지 마라. 천천히... 무릎 꿇어.”
박한수가 슬쩍 손에 힘을 주자 놈의 목덜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놈이 공포에 질려 죽는 시늉을 했다. 끓어 앉은 놈에게 박한수가 낮게 으르렁 거렸다.
“간나 새끼, 엄살부리지 말라. 근데 너는 보안서야? 보위부야?”
“보위부다.”
빌어먹던 버릇은 저승길에서도 한다더니 박한수는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신분증을 보여라.”
“여기 인민복 안 주머니...”
박한수가 놈의 안주머니를 뒤지려고 몸을 숙이다가 아차 했다. 놈이 오른손으로 박한수의 단도를 재빨리 잡았다. 놈의 왼손에서 단도 칼날이 번쩍하는 순간, 박한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놈의 단도는 이미 박한수의 오른쪽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단도를 빼들었으면 무조건 선제 타격이 상수다. 엉거주춤 일어나려는 놈의 목을 향해 직선 찌르기 연속 두 번, 곧바로 놈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옆으로 내려 베기,,, 놈의 목를 깊숙이 베었다. 놈의 목과 입에서 피가 양수기 물처럼 쏟아졌다. 놈이 숨을 쉬려고 할 때마다 꾸르륵 소리를 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놈은 눈을 뜬 채 죽었다.
박한수는 시체에서 손전화와 지갑을 찾아내 땅속에 묻었다. 백두산 권총은 자신의 배낭에 챙겼다. 혹시 잡힐 경우에는 자살용으로 쓸 수도 있다. 박한수는 시체를 부엌으로 끌고 갔다. ‘머저리새끼, 공을 독차지하려고 혼자 검거하려 하다니...작은 욕심에 네 목숨을 걸었구나’ 아궁이 속에 시체를 깊숙이 밀어 넣고 입구를 쓰레기로 막았다. 덥고 습한 장마철에 시체는 빨리 부패한다. 뼈만 남은 시체는 신분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방안에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바닥에 튄 핏자국을 대충 치웠다. 얼굴과 옷에 튄 피도 씻어내야 한다. 박한수는 개울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앞에 낭림산맥의 준령들이 구름 속을 달리고 있었다.
박한수는 장마가 끝나기 전에 연안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비가 오면 해안 초소 경계병들의 시야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비 오는 야간에는 물결 속에 떠있는 부유물을 식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박한수는 이동 속도를 높혔다. 숲속에 비가 오면 들킬 염려가 적어서 낮에도 행군을 감행했다. 함흥에서 낭림산맥으로 들어가 강원도로 남하했는데 어느덧 마식령 스키장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 멸악산맥을 타고 황해도로 서진 하면 끄트머리에 임진강 하구가 있다.
칠월 중순, 박한수는 마침내 연안군 외곽 산에 도착했다. 십년동안 군 생활을 했던 곳이라 눈에 익었다. 해안은 멀지 않았다. 그는 뗏목을 준비했다. 나무를 잘라 칡넝쿨로 단단히 묶었다. 이곳에는 해안에 들어왔다가 강화도 쪽으로 나가는 해류가 있었다. 썰물 때 그 해류를 타면 건너편 남조선 해병대 기지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해안초소경계병들에게 들키면 집중사격을 받아 몸은 벌집이 될 것이다. 박한수의 군 시절, 그렇게 사살당한 사람이 있었는데 시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백미터 간격으로 있는 인민군 초소에는 군인들이 오후 여덟시부터 잠복을 나온다. 그는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여덟시 직전, 뗏목을 끌고 갯벌을 전력 질주했다. 바닷물에 다다르자 엎드려기기(낮은 포복)로 갯벌을 기었다. 다행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갯벌 위에 손전지 불빛이 번득였다. 뒤돌아보니 인민군들이 잠복 근무를 나오고 있었다. 썰물은 엄청난 속도로 빠졌다. 그는 온 힘을 다해 헤엄을 쳤다. 빠져나가는 물살보다 느리면 갯벌에 남겨지게 된다. 금세 해안이 아득히 멀어졌다. 맞은편 남조선 해병대 건물 불빛이 목표였다. 뗏목은 작아서 그가 올라타면 뒤집혔다. 할 수 없이 뗏목에 매달려 헤엄을 쳤다. 해병대 불빛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몇 시간을 헤엄쳤는지 모른다. 저체온증과 극심한 피로감 때문에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 배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함정 한 척이 전조등을 비추면서 나타났다. 남조선 경비정이었다. 배 위에서 군인들이 총을 겨눈 채 소리쳤다.
“귀순합니까?”
박한수는 배의 엔진소리 때문에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귀신? 무슨...조선 사람입니다. 남조선 가고 싶슴다.”
경비정에서 줄 사다리가 내려왔다. 박한수가 경비정 갑판 위에 올라서자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손들어”를 외쳤다. 박한수의 몰골은 심난했다. 맨발에 얼굴이 검은 데다 머리와 수염이 길어 마치 유인원같았다. 오른쪽 귓불이 퉁퉁 부은 채 곪아있었고 몸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다. 군인들은 코를 싸쥐고 몸수색을 했다. 박한수의 상의 안주머니에서 비닐로 싼 보안원증과 권총이 나왔고 허리에는 단도를 차고 있었다. 누군가 박한수를 조사하겠다고 끌고 가려 했다. 박한수가 볼멘 소리를 했다.
“배고파 죽갔수다. 밥부터 주오.”
군인들이 가볍게 웃더니 박한수를 군함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곧 라면이 나왔다. 박한수는 저체온증 때문에 몸을 심하게 떨었다. 젓가락으로 집은 라면 국수 가닥을 자꾸 떨어뜨렸다. 군인들이 어깨 위에 담요를 덮어 줬다. 박한수는 라면 한 냄비와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긴장이 풀리고 식곤증이 몰려왔다. 박한수는 식탁에 머리를 박은 채 잠이 들었다. 얼마나 깊이 잤는지 모른다. 누가 흔들어 깨웠다. 박한수는 카키색 군용 매트리스 위에 눕혀져 있었다. 군함은 어느새 인천항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남조선 적응 교육을 마쳤다. 특수부대 출신 보안원이라 조사 기간이 길었다.
**숨바꼭질**
서울에 왔을 때가 장마철이 이었는데 벌써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며칠 후면 박한수는 하나원을 졸업하고 한국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는 담당교관 면담 신청을 했다. 박한수는 상담실 책상에 두 팔을 괸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교관은 얼굴에 짜증이 묻어있었다.
“박한수 씨, 또 그 일로 면담 신청하셨어요?”
“선생님, 나 여기서 나가면 갈 데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지 않소. 그래서 말입니다. 제발 좀 알려주십시오... 제 마누라 김은정이 사는 곳 말임다.”
박한수의 목소리에는 절박감이 담겨 있었다.
“박한수 씨, 여러 번 말했지만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인이 원하지 않으면 제삼자에게 그 개인의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아...내가 왜 제삼자 임까? 나도 대한민국 사람 됐는데, 내 마누라 어디 사는지 알아보는 게 그렇게 큰 잘못임까?”
“박 선생, 그분은 이미 대한민국에 정착해서 다른 분과 혼인신고까지 마쳤습니다. 더 이상 법적으로는 박 선생의 배우자가 아니에요.”
“그건 이미 들어서 안단 말임다. 저는 무산에서 임진강까지 이천리를 걸어서 온 사람임다. 목숨 걸고 임진강을 건널 때 제 목표는 단 하나, 제 마누라를 만나는 거였슴다. 근데 이제 그걸 막아버리다니... 너무 하지 않슴까?”
박한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 마음은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그냥 얼굴만 봐도 좋습니다. 그 사람 목소리 한마디만 들어도...난 원이 없겠슴다. 저는 지금도 밤마다 은정이 꿈을 꿉니다.”
교관은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이마에 갖다 댔다. 몇 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는 낮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박한수 씨, 김은정씨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예 연락처도 알려주지 말라고 했어요. 한국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있습니다. 위반하면 처벌받습니다.”
박한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작은 면담실에는 억울하고 서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교관은 박한수가 울음보를 터트리면 어떡할 지를 잠시 고민했다. 그는 박한수가 안쓰러웠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용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겨울 햇살이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와 사무실 바닥에 가늘게 선을 그었다. 교관은 타이르듯 말했다.
“박한수 씨.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정리될 겁니다. 하나원 수료하면 수원으로 배정될 겁니다. 일자리도 연결해줄 거예요. 그리고...정착지 연계 상담사를 소개해드릴 테니까 수시로 상담을 받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남녀 간의 치정문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었다. 교관은 박한수가 분명히 사고를 칠 거라고 예상했다. 국정원 담당관에 면담내용을 보고했다. 수원경찰서 보안과는 국정원의 통보를 받고 박한수를 요시찰 인물로 등록 했다.
국정원에서 은정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창인 작년 팔월 초였다. 날씨가 더운데다 휴가철이라 손님이 드문드문 했다. 은정은 홀에서 티비를 보다가 휴대폰 벨소리를 들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혹시 김충식의 전화인가 싶었다. 수화기 속에서 젊은 남자가 인사를 건네 왔다. 국정원 직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은정은 국정원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적으로 북한과 관계있는 일 이라고 직감했다.
“김은정 씨, 안녕하세요? 성공적으로 정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예...그런데...국정원이 무슨 일로...”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 국정원 직원은 빠르게 얘기했다.
“아. 예. 다른 게 아니고, 박한수 씨라고 아시죠? 본인이 김은정 씨 남편 이라고 하는데... 탈북해서 지금 우리나라에 와 계십니다. 김은정 씨를 찾고 있습니다. 만나보실 건가요?”
은정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던 종탁이 뭔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은정을 돌아봤다. 은정의 낯빛은 창백해져 있었다. 핸드폰에서 ‘여보세요’라며 은정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은정은 핸드폰을 집어들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만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그리고 제 연락처, 주소를 그 사람에게 알려주지 마세요.”
은정은 또박 또박 말했다. 핸드폰 속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김은정 씨의 뜻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은정은 다리에서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박한수가 탈북했다면 김충식이 보위부에 잡혔다는 얘기였다. 그럼, 엄마와 동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박한수는 특수부대 출신 북한 보안원이다. 당장은 못 찾겠지만 종내는 은정의 주소를 알아낼 것이다. 그는 군대 시절에 단도로 멧돼지를 죽였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신나게 무용담을 얘기하는 그의 눈이 무서웠다. 은정은 한기가 들면서 몸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서러워져서 눈물이 났다. 한 번 터진 눈물샘은 걷잡을 수 없었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식당 안에서 종탁이 은정을 지켜보고 있다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무슨 전환데 우노?”
“브로커가 보위부에 잡혀 들어갔대요. 엄마와 동생도... 흑흑”
은정은 거짓말을 둘러댔다. 이제 와서 차마 북한 남편이 내려왔다고 할 수 없었다.
거지가 득시글거린다는 한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잘 살았다. 박한수는 언젠가 학생들에게서 압수한 유에스비를 조사하다가 한국 드라마를 봤다. 실제 와보니 드라마에 나왔던 한국의 생활상이 거짓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돈이 중요했다. 돈이 사람을 갈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엄연히 존재했다. 북에서는 당과 박한수는 한 몸이었다. 충성을 바쳐 일하면 당은 합당한 보상을 해줄 것이었다. 계단을 한발 한발 올라가다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달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박한수 앞에 올라갈 계단은 커녕 경쟁이 심해서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일곱 평짜리 임대주택에 사는 주제가 어느 세월에 수 억 원짜리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가난이 주는 무력감이 심해 바깥에 나오기가 두려웠다.
박한수은 군 생활 십년과 보안원 경력 때문에 말투와 표정이 경직되어 있었다. 배급제 사회에서 살아온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가 않았다. 사무직은 받아주는데가 없어서 우선 급한 대로 아파트 건설현장에 잡부로 취직했다. 기술이 없는 잡부는 나이가 많건 적건 ‘어이’ 아니면 ‘야’로 불렸다. 작은 실수에도 대번에 ‘빨갱이 새끼’ 라는 욕지거리가 날아왔다. 그 모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따지고 대들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아무리 가려도 냄새는 풍긴다. 새터민 사이에서 박한수는 탈북할 때 살인을 했다는 소문이 났다. 말은 돌면서 커지는 법이라 악질 보안원이었다는 말까지 보태졌다, 사람들은 은정을 수소문하고 다니는 그를 기피했다. 남의 부부 문제에 엮이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은정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박한수는 특수부대 출신 현직 보안원이었고 권총을 가져왔기 때문에 특별포상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일단 중고차를 샀다. 건설현장이 쉬는 날은 차를 끌고 무작정 은정을 찾아 나섰다. 신발 공장을 집중적으로 탐문했으나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중, 탈북브로커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박한수가 보안원 출신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만나자고 했다.
“박한수씨, 북에서 보안원을 했군요. 혹시 브로커 비용 수금일을 할 생각 없소?”
“일이 많습니까?”
“요새는 탈북자가 많지 않아 수금일은 많지 않소. 대신, 탈북자가 북조선 가족에게 송금해주는 일이 제법 있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실종자**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면서 더위는 한풀 꺾였다. 곧 화포천 갈대숲에는 초가을 햇살이 눅진하게 내려앉을 것이다. 물빛은 하늘을 담아 파랗고 강변 산책로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을바람에 한들거릴 것이다. 식당에 손님이 들기 시작해서 물고기가 달렸다. 화포매운탕은 활어집이라는 소문이 났기 때문에 도매상의 냉동물고기는 쓸 수 없었다. 손님들은 첫 술에 냉동인지 활어인지를 바로 알아챘다. 종탁은 올가을에는 추어탕을 해 볼 계획이었다. 수입산이나 양식이 아닌 화포천 미꾸라지로 순수 국내산 추어탕을 끓여내면 손님은 줄을 설 것이다.
일을 나가야 하는데 은정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뤘다. 은정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밤에는 잠을 설쳤다. 주차장에 낯 선 손님이 보이면 긴장하는 내색이 역력했다. 종탁이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보다 못한 민 여사가 은정과 종탁을 앞에 앉혔다.
“아가, 무슨 고민이 있노? 천지간에 우리 세 식구뿐이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못할 말이 뭐가 있노? 한번 얘기해봐라”
“무산 장모님이 잡혀갔다 해도 언젠가는 풀려날 거잖아. 그 때 모셔오면 되지”
종탁도 말을 보탰다. 은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애가 탄 민 여사가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할 참인데, 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처연한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저는...이 집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곧 이어서 ‘나는 탈북 전 북한에서 결혼했었다. 그 남자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 보안원인데 엄청 위험한 인물이다. 그 자가 탈북해서 자기를 찾고 있다. 자기가 여기에 있다가는 민 여사와 종탁도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 고 속사포처럼 말했다.
종탁과 민 여사는 뜻밖에 차분했다. 민 여사가 먼저 말했다.
“은정아, 니가 말 안해도 나는 돈 아니면 남자 문제인 줄 짐작했다. 속 시원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 그러나 생각해봐라. 지금 도망가면...언제까지 피해 다닐래? ”
은정은 할 말이 없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들릴락 말락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그냥 깨끗이 죽어버리려고 했습니다. 흑흑”
“야가,,,나이 든 시에미와 남편 앞에 두고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쯪쯪...그건 안된다. 절대로...너는 죽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남은 식구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가는 기다.”
“이기 무슨 소리고? 죽다니...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을...”
종탁도 벌컥 화를 냈다. 민 여사가 은정에게 물었다.
“하여튼, 너는 그 남자가 싫다는 거지?”
“예. 무섭기만 하고...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그럼 됐다. 나는 네가 북에서 결혼했던 건 상관하지 않는다. 종탁이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 세 사람의 가정이 깨지는 건 막아야 한다. 육십 평생 살아보니까 인생 별거 아니다. 십리 길을 가다보면 중도 보고 소도 보는 법이다. 너무 걱정 말거레이”
은정의 고민은 봄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댔다. 주차장과 식당 주변에 시시티비를 설치했다. 집안과 트럭에는 몽둥이를 준비했다. 며칠 후, 민 여사는 화포파출소를 찾아갔다. 그 자는 나타나지 않은 채 세월이 불안하게 흘렀다.
화포천 뚝방길에 벚꽃이 구름처럼 떠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이다. 서행하는 차량 위로 하얀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렸다. ‘첨벙’ 강에서는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화포천은 대암산에서 발원하여 진영읍과 김해 한림면을 거쳐 마사리에서 낙동강 본류와 합쳐진다. 화포천은 물 반, 고기 반이다. 잉어, 붕어, 버들치, 납자루, 피라미, 빠가사리가 바글바글하다. 천렵이 허용되는 곳은 선지리, 신안리 부근이다. 은정에게 맨손 천렵은 직업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레저활동이었다. 수초 속을 더듬어 펄떡거리는 감촉이 오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재빨리 물고기 아가미 밑을 쥐면 물고기는 움직임을 멈춘다. 손안의 물고기를 어망에 넣을 때 묵직해진 어망의 무게가 뿌듯하다. 은정은 짜릿한 손맛 때문에 벌써 콧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
“오늘은 어디로 갈 거냐?”
수족관 청소를 하던 민 여사가 종탁 에게 물었다.
“요즘 벚꽃 시즌 아닌교. 화포습지 쪽은 꽃구경 나온 사람이 많심더. 신안리로 가볼라 캅니다. 진례 저수지에서 시작해서 밑으로 죽 훑고 내려올랍니더”
“오전 작업 끝내고 오후에는 우리도 벚꽃 구경 가요. 호호”
가슴 장화를 신고 있던 은정이 종탁의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좋지!”
종탁이 흔쾌히 맞장구를 쳤다. 은정은 조수석 뒤 자리에 두 사람이 먹을 간식거리를 실었다. 종탁이 트럭 적재함에 고무대야와 물통을 싣고 나서 시동을 켰다. 은정과 종탁이 탄 트럭이 출발하자 멀찍이 서 있던 검은 색 아반테 승용차도 천천히 움직였다. 민 여사는 아침상을 치우고 소파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시시티비를 돌려 보고 싶었다. 검은색 아반테가 종탁이 탄 트럭을 따라가는 게 보였다. 뒤로 보기를 하다가 소름이 돋았다. 그 아반테는 어제 오후부터 식당 주변에 있었다. 민 여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화포파출소에 연락했다. 말을 너무 더듬어 파출소 경관은 민 여사의 말을 알아듣는데 애를 먹었다.
수원경찰서 보안과 오형사는 출근해서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아파트 건설현장 소장의 전화를 받았다. 박한수가 이틀째 결근했다는 거였다. 두 시간 만에 통신영장이 나왔다. 박한수의 핸드폰위치를 추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김해 부근에 있었다. 오 형사는 경내망에서 김해경찰서 보안과 단축번호를 찾았다.
은정과 종탁은 화포천 상류 진례 저수지 밑에서부터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진례 초등학교 까지의 구간은 깊은 웅덩이도 있어서 물고기가 크고 종류도 다양했다. 은정과 종탁은 벚꽃 구경갈 생각에 손이 바빴다. 고기잡이를 서둘러 끝냈다. 그 때였다. 뚝방길을 따라 누군가 다가왔다. 장화를 벗고 고무대야를 정리하던 은정이 고개를 들었다.
“은정아”
그 소리에 그녀는 넋이 나가버렸다. 박한수였다. 체격은 작지만 어깨가 벌어졌고 각진 얼굴에 날카로운 눈초리는 그대로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랑 같이 조국으로 돌아가자”
조국, 돌아가자는 말에 은정은 정신이 들었다. 목이 잠기면서 혼잣말 처럼 중얼거렸다.
“안 갈 거야. 나, 이제 여기가 내 나라야. 나는 여기가 좋아”
“허참... 이 안까이 새끼, 정신이 썩었구나야. 너는 남조선에 와도 내 마누라야. 그건 안 바뀐다. 내가 가자하면 너는 따라와야 한단 말이야”
박한수의 된 목소리에 은정은 가슴속에서 묵은 불이 복받쳐 올랐다.
“그 입 닥쳐라. 나는 너의 물건이 아니야. 너, 나를 언제 사람 취급은 했댔니? 너는 나보다 당이 더 중요했어”
박한수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점퍼 안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은정과 찍은 결혼식 사진인데 반으로 접혀 있었다.
“나는 한순간도 너를 잊지 않고 있었다. 네 엄마, 동생도 보위부에 잡혀갔다. 네가 돌아가야 풀려날 수 있어”
박한수는 은정의 눈앞에 사진을 흔들었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보안원이 인민들을 잡도리할 때의 위압적인 표정이었다. 은정은 박한수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스치는 걸 느꼈다.
옆에서 두 사람의 수작을 지켜보던 종탁이 다가왔다.
“그 손 내려 놓으소”
박한수가 종탁을 쏘아보았다.
“너, 누구야?”
“은정 씨와 같이 사는 사람. 더 말해야 하나?”
“나는 은정이의 남편이다. 저리 비켜라”
은정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물고기 잡는 작살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간나 새끼. 더 다가오면 죽여 버린다”
은정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고 있었다.
“은정씨, 가만, 가만히 있어. 실수하면 큰일난데이”
종탁이 은정을 두 팔로 감싸 안아 트럭에 태웠다. 그 때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곧 경찰 순찰차 두 대가 도착했다. 경찰들이 우르르 내렸다.
탈북브로커는 별 생각없이 은정이 있는 곳을 박한수에게 알려 주었다. 박한수가 화포매운탕을 찾은 건 전날 오후였다. 식당 밖에 나온 은정의 얼굴을 멀리서 확인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고 얼굴은 살이 올라 더 고와졌다. 무작정 쳐들어가서 머리끄덩이를 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여기는 한국이었다. 은정과 단둘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어서 식당을 관찰했다. 오쟁이 진 주제이지만 혹시라도 은정이 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저녁시간에 손님이 많았다. 식당 불이 꺼질 때 까지 잠복하다가 내일 다시 기회를 보기로 하고 철수했다.
이튿날 아침, 은정은 다른 남자와 함께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천천히 트럭을 따라갔다. 그러다가 은정과 다른 남자가 다정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자 머릿속이 하얘져 버렸다. 준비했던 말은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고 엉뚱하게 북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튀어나왔다. 은정이 반발하자 순간적으로 은정과 남자를 죽일 생각을 했다. 눈치빠른 은정이 선수를 쳐서 작살을 들이댔다. 그리고 경찰들이 나타났다.
은정과 그 남자가 탄 트럭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박한수는 몸에서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뒤, 주위에 둘러서 있던 경찰들이 그를 순찰차에 태웠다.
부산하나센터 3층 회의실. 박한수는 국정원 직원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스포츠 자켓을 입은 남자는 박한수와 비슷한 또래였다. 상급자는 남색 정장슈트에 넥타이를 메고 있었는데 안경 속 눈초리가 날카로왔다. 회의실 밖에는 정복 차림의 경찰관 두 명이 문앞을 지키고 있었다. 노트북 컴퓨터가 부팅되자 스포츠 자켓이 먼저 박한수에게 질문했다. 표정이 굳어 있었고 사무적인 말투였다.
“박한수 씨, 오늘 왜 거길 갔습니까?”
박한수는 고개를 반 쯤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대답 하세요. 다시 묻겠습니다. 오늘 왜 김은정 씨...”
스포츠 자켓이 은정의 이름을 들먹이자 박한수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왜 이럼까? 내가 못 갈데 갔소? 내 안까이 만나러 갔슴다.”
“그래요. 경찰관들 말에 의하면 귀하는 김은정씨에게 북한으로 가자고 했다면서요?”
“......”
“박한수 씨, 월북하고 싶습니까?”
스포츠 자켓이 차갑게 물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상급자 남색정장이 입을 열었다.
“박한수. 당신은 탈북한 이후, 줄곧 다른 남자와 결혼한 김은정을 추적하고 있었어. 드디어 오늘 김해까지 내려와서 김은정을 만나자 마자 북으로 가자고 했지. 당신 점퍼 주머니에서는 나이프가 발견됐고... 이 봐. 박한수,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한거야. 엉!”
남색 정장은 댓바람에 반말로 박한수를 다그쳤다.
박한수가 입을 닫고 있자 스포츠자켓이 말했다.
“당신은 살인미수죄로 징역갈 수도 있습니다.”
‘월북...살인미수라니...’
박한수는 일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박한수가 이 방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두가지 였다. 책상을 뛰어 넘어 앞에 앉은 두사람을 밀치고 출입문으로 뛰쳐나가거나 등뒤의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는 방법밖에 없다. 전자는 문 밖에 있는 경찰관 두명까지 해치워야 하는데 맨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한수는 일단 이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못했슴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보니까 북조선에서 생활이 생각나서 그만... 아무 생각없이 말이 나와버렸슴다"
남색정장의 표정이 누그러지면서 박한수에게 종이와 볼펜을 내밀었다.
“그랬을 거야. 제 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사는 걸 보면 누구나 눈이 뒤집히지. 박한수 씨. 그럼, 여기에 오늘 일어난 일을 간단하게 써.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김은정의 옆에 접근하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여. 이건 당신을 봐주려고 하는 거야”
박한수는 스포츠 자켓이 불러주는 말을 일부러 천천히 받아 썼다. 남색정장과 스포츠 자켓이 흡족한 표정으로 박한수의 자술서를 읽어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박한수는 슬며시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 봤다. 마침 일층 보도 위에 택배 트럭이 서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박한수는 창문턱에 올라 어깨로 유리창을 두 번 세게 밀친 다음 세 번째는 팔꿈치로 있는 힘껏 짧게 타격했다. 유리창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졌다. 스포츠 자켓이 책상을 뛰어 넘어 손을 뻗었으나 간발의 차로 박한수를 놓쳤다. 박한수는 택배트럭 적재함 위로 뛰어 내렸다. 낙하산 착지 낙법으로 적재함 위를 구른 다음 보도 블록위로 사뿐 내려섰다. 삼층 유리창 안에서 스포츠 자켓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게 정녕사람이냐?'는 표정이었다. 트럭 적재함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택배기사가 뛰어나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명치와 턱의 급소를 연달아 맞고 보도위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박한수는 택배트럭을 끌고 화포매운탕을 향해 급히 출발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끊임없이 울렸다. 보나마나 국정원 사람들이다. 핸드폰 전원을 껐다.
‘자술서를 쓰면 봐주겠다고? 개새끼들! 나를 바보 머저리로 안거야...’ 북조선에서 보위부원들이 반동분자를 회유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다. 자술서를 쓰는 순간 나중에 골탕먹게 돼있다. 조선에서 도주자였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도망자 신세가 됐다. 이 사단이 벌어진 건 순전히 김은정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서 한번 더 설득해볼 생각이었다. 그녀가 박한수와 다시 합치겠다면 그 동안에 저지른 일은 전부 용서할 수 있다. 함께 북으로 돌아가겠다면 그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도 저도 싫다면... 사내 자식이 계집을 뺏기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겠는가? 어쩔 수 없이 둘이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박한수는 운전석 옆 피디에이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은정에게 가는 걸 포기했다. 택배회사 관제실에서 박한수가 운전하는 택배트럭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여기는 조선이 아니라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이다. 보나마나 경찰 순찰차는 박한수를 뒤 따라오고 있고 화포매운탕에는 이미 경찰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원래는 진영인터체인지로 나가야 하지만 진로를 바꿔 한림나들목에서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화포천 생태공원 쪽으로 향했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는 산보다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 강변 습지가 더 유리했다. 마사리에서 차를 버리고 낙동강 억새풀숲으로 숨어들었다.
억새 이파리들은 작은 바람에도 서로 부딪히며 사각거렸다. 억새군락은 작년의 메마른 억새잎과 새롭게 돋아난 연두색 새순이 뒤섞여있다. 가까이에서 강물이 천천히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흙과 마른 풀의 텁텁한 냄새, 그리고 낙동강의 축축한 물 비린내가 코끝에 풍겼다. 가끔 물고기들이 뛰어올랐다. 억새풀 사이로 강변의 도시 풍경이 조각조각 보였다. 강물은 석양을 반사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가, 이내 검게 깊어졌다. 강 건너편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불빛만 봐도 따뜻한 느낌이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이처럼 도망자 신세라니 박한수는 새삼 은정이 원망스러웠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물안개가 옅게 깔리기 시작했다. 혹시 경찰이 수색견을 풀었을 까 염려했으나 여태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어둠이 서서히 강 위로 내려앉았다.
은정의 눈에서 튀던 파란 불꽃이 생각났다. ‘표독스러운 년...’ 그 표정을 생각하면 만나서 설득해보겠다는건 핑계일 뿐 이다. 박한수는 순항중이던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어버린 그녀를 죽여 버릴 계획이었다. 계획이 사전에 들통나버렸으니 이제 그건 불가능하다.
군대 십년, 보안원 삼년 동안 유일하게 사귀어 본 여자가 은정이다. 무뚝뚝한 성격상 여자에게 곰살맞게 굴지 못한다는 건 자신이 더 잘안다. 한국에는 일곱평 임대주택에 사는 탈북민 출신 홀아비 앞에 나 여기있소라고 반겨줄 여자는 없다. 탈북자 사회에서는 살인자, 악질 보안원 출신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다. 직장에서 빨갱이새끼라는 욕지거리를 들을 때 마다 살인 충동이 든다. 여기서 살 수 없다면 북으로 돌아가는 건... 돌아가봤자지만, 이젠 지쳤다. 하늘 아래 기댈 곳이 없다. 다음 생이 있을까?
그 날 밤, 화포천이 낙동강 본류와 만나는 마사리 강뚝에 박한수가 서있었다.
오른 쪽 발목에 큼지막한 돌멩이를 매달았다.
보름 쯤 지났다. 화포전 벚꽃은 진즉 졌다. 김해경찰서 형기대 승합차가 낙동강 강뚝에 서 있었다. 형사들이 물에서 건져낸 익사자의 신원을 조사하고 있었다. 시체는 부패한데다 야생동물에 훼손돼서 처참했다. 오른쪽 발목에 밧줄같은 게 달려있었다. 끝에 뭔가를 묶었던 매듭이 빈 채로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이 나왔다. 결혼식에서 찍은 부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두 젊은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형사들이 수군 거렸다.
“김형사, 이 사진 이상하잖아. 뒤 배경에 북한 인공기가 보여”
“뭐야, 그럼. 이 사람 북에서 내려왔을까?”
“남파 간첩인가? 새터민? 보안과 직원들도 불러야겠어”
“어쩐지 무연고자일 것 같아. 실종자 리스트에 없으면 어떡하지?”
고참 형사가 시신을 보면서 혀를 찼다.
“정황으로 봐서 자살자야. 아직 젊구만, 무슨 기막힌 일을 겪었나. 목숨걸고 북에서 내려왔으면 여기서 잘 삭이면서 살아야지. 잘해야 백년사는 인생, 그냥 저냥 살다 가면 될 텐데... 쯪쯪”
곧 검시조사관이 익사자의 옷을 벗기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외상 흔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자살 판정을 내렸다.
장례식장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검은색 바디 백에 시신을 넣고 자크를 올렸다.
약력 : 『수필과 비평』 수필등단, 『인간과 문학』 소설등단
단편소설집 『비전 꽃줌마』 출간.
수필과 비평 회원. 인간과 문학 회원.
아침문학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이메일 : hyukplaza@hanmail.net.
월평
소설가는 거짓말을 아주 그럴듯하게 해야 한다
이승하(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수)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별 관심이 없는 대상이 북한일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푸틴을 만나건 시진핑을 만나건, 미사일을 쏘아 올리건 핵실험을 하건 우리 국민은 다시 들어온 재난지원금으로 뭘 사 먹을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왜일까?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가 그 답일 것이다. 수시로 미사일 실험을 하니 또 하나보다 생각하는 것이다. 분단, 통일, 남북, 화해, 탈북, 적십자사, 이산가족・・・・・・ 이런 낱말조차 왠지 낡았다는 생각이 든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남측편찬위원 중 한 사람인데 회의할 때 사업회에 가보면 다들 맥이 빠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북한 학자들과 같이 자리를 해야 하는데 반만 참석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크기가 참 작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일본, 러시아에 삥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 나라 중우리에게 우호적인 나라가 있는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자리에서 우호 증진을 말하지만 그건 의례적인 말이고 국익이 우선일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방이니 혈맹이니 다 소용없고 힘의 논리가 통한다.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탈북자 중에 소설을 잘 쓰는 몇몇 작가가 있는데 요즈음 활동이 뜸한 이유도 그들의 소설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언론과 비평가와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탓이 아닌가 한다. 실상을 웬만큼 알게 되니까 별 관심이 안 가는 것이다.
김종혁의 중편소설 「실종자」를 읽고 편집국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이 작가와 통화하고 싶다고. 전화번호는 개인정보라서 본인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다행히 전화번호가 왔고 통화가 되었다. 월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 게재 전에 작가에게 직접 통화를 시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작품 말미의 이력으로는 탈북자가 아닌 듯한데 소설은 북한 출신이 아니고선 쓸 수 없는 디테일한 지점이 있어서 월평을 쓰기 전에 이분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뜻밖에도 '꼼꼼함'이 직업정신인 금융회사 출신이었다. 탈북자들 인터뷰도 했고, 그들이 나온 유튜브도 많이 보았고, 탈북자들이 쓴 소설도 읽었고……………. 북한어 용어사전까지 만들어 갖고 있는데 통일부에서 나온 사전이 엉터리라고 했다. 속이 뜨끔했다. 종종 아주 예전의 뜻을 풀이하고 있어서 지금과는 맞지 않다는 말을 했다. 바로 이런 것이 작가정신이리라. 소설가는 언변이 좋은 이야기꾼이어야 하는데 달리 말하면 머리 좋은 거짓말쟁이여야 한다. 즉, 거짓말이 아주 그럴듯해야 한다. 기상천외하거나 흥미진진하거나 시적인 상징성이 있거나...... 사건의 개연성, 인물의 개성 확보, 구성의 짜임새를 무시한 소설을 읽을 때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외화벌이 일꾼으로 뽑혀 중국 훈춘에 있는 신발 공장에 취직하기까지 필사적으로 노력을 한 은정은 남편을 북에 두고 중국으로 간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그녀의 탈북을 돕는다. 환자가 발생한 방은 북한으로 몽땅 송환되기에 은정도 다시 북한으로 갈지도 모르는데 남한에 대한 소식을 조금 접한 적이 있는 그녀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사회안전성 하급 보안원인 남편도 미워 탈북을 결심, 공장을 빠져나가 우여곡절 끝에 인천공항에 온다. 브로커의 소개로 연길시내 봉제공장에서 2년 동안 일도 했고 창춘, 선양, 쿤밍을 거쳐 라오스, 태국까지 갔으니 그 여정은 피를 말리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많은 경우 이 정도의 험로를 거쳐서 올 것이다.) 코로나로 대인 접촉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이렇게라도 올 수 있었다. 은정은 자기가 김해 김씨라는 이유로 김해에 정착하고 매운탕집에서 일하게 된다. 주인 민 여사는 은정이 다른 동남아 여성과 달리 말이 통하고 고졸 학력의 외아들이 서빙하고 있기에 은정을 눈여겨보고 종업원으로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결국 뜨겁게 합방을 하고 혼인신고까지 하게 되는데 변수가 생긴다.
남한으로 간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특수부대 출신 은정의 남편 박한수가 탈북을 시도해 성공한다. 이 뒤의 이야기는 클라이맥스와 파국이므로 생략한다. 어떻든 이 소설의 최대 강점은 북한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관찰력과 자료수집 능력, 완벽한 어휘력 등이다. 월평자로 하여금 이 작가는 백 프로 탈북자라고 믿게 했으니, 거짓말솜씨가 엄청나다고 평가한다.
-한국소설 25.11월호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