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 白河에 내렸다.
조선족 사람들이 나와서 호객을 한다.
白頭山의 발밑에 온 것이다.
아침 5시 따렌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과 아침을 같이 먹다.
역 앞에 있는 鳳花賓館에서 죽 한 그릇, 빵, 김치가 한 사람당 3元씩 받는다.
봉화빈관 아주머니가 지프차를 주선해 주어(7명에 개인당 100元씩 내고) 하루 대절하기로 하다.
봉화빈관 숙박비는 4인 1실 기준해서 하루 10元씩이며, 짐 맡기는 것은 무료이다.
백두산 입장료는 40元(학생은 20元으로 할인), 장백폭포는 10元이라 한다.
아침 7시 백두산으로 출발하다.
푸른 산림을 가르며 황토색 흙길이 남남서 방향으로 곧게 뻗어 나간다.
'長白山 25Km'라는 표지판을 지난다.
아침 햇살이 수풀 사이로 비쳐 든다.
快晴天池를 예감한다.
나무가 귀한 중국 산천을 헤매었던 운수의 눈에 산림이 무성한 산에 들어오니 너무나 반갑다.
7시 30분 長白山 入口에 들어서다.
입장권을 사다.
어른 40元, 학생 20元이라 써 붙여 놓고도 한국에서 온 중국어 연수생들에게는 할인 혜택을 주지 않는다.
벌써 청량한 산 기운이 온몸에 전해 온다.
흙길이 비에 젖어 촉촉하다.
전국시대 한초(漢初)에는 '不咸山'이라 했으며,(그래서 六堂 崔南善이 '不咸文化圈'을 주장하였나 보다) 또 '單單大嶺이라 하기도 하고, 당대에는 '長白山'이라 하였으며 금·청대에는 자기 민족의 발상지로 여겨서 神山 聖地로 받들었다.
티벳인에게 神山 經湖인 카일라스와 마나사로바가 있듯, 한민족에게는 '白頭山', 天池가 있는 것이다.
8시에 경찰 검문소(報警店)에서 공안이 기사에게 통행증을 보자고 한다.
기사가 안 가져왔다니까 통과할 수 없다 한다.
살이 통통하게 찐 예의 그 공안이 계속 물고 늘어져 9시가 되어서야 겨우 통과했다.
길고 완만한 능선 위로 푸른 풀이 덮여 있고, 노랑, 보라, 하양, 빨강, 분홍 색색의 야생화가 수를 놓는다.
지상 선경이 바로 여기로구나.
어머니 품에 안긴 듯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즐겁다.
9시 10분 드디어 天池에 오다.
신령한 기운이 단번에 사람을 사로잡는다.
저 멀리 연봉들은 구름에 잇닿아 있어 雲山不辯容, 無盡山水境(구름과 산을 분간할 수 없구나, 다함이 없는 산수의 경계여)을 연출한다.
연무가 스러지는 순간 아, 천지가 눈을 뜬다.
紺目澄淸(맑고 고운 검푸른 눈동자여!) 부처님 눈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보석의 호수!
言說不可及. 언어의 길이 끊어지니 정신이 갑자기 맑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기암 괴석들이 천지를 둘러 싸안고 있는 것이 흡사 불보살이 회상(會上)을 이룬 듯, 18나한이 소요하는 듯, 금강역사 장군봉이 기립하여 도열한 듯…
천지의 위로는 천상계가 임재(臨在)해 있고, 아래로는 역사의 시원을 비쳐 주는 시간의 거울, 마음의 거울이 있다.
그렇다!
천지는 한민족의 집단 무의식 속에 빛나고 있는 大圓鏡智 - 곧 佛心의 현현 그것이다.
이내 도리천에서 구름이 내려와 梯雲峰 玉柱峰 위로 내려앉는다.
홀연 하늘이 갈라지고 햇빛이 쏟아져 천지 호면(湖面) 위로 비쳐 온다.
문득 저 깊은 천지의 마음속에서 큰 소리가 울려 나오듯 한 소식이 운수의 마음을 때린다.
'故土恢復(옛 땅을 되찾아라!),
佛國成就(부처님 나라를 이루어라!)"
보름달이 교교히 비추이는 밤에 천지 경호(天池經湖)의 물이 저 홀로 일어나 일장검(一長劍)이 되어 허공을 가르며 하늘로 솟아오를 때가 언제나 올까?
이쪽은 중국 땅, 저쪽 반은 북한 땅 - 천지는 본래부터 무심하고 땅에는 본시 경계가 없으나, 인간에게는 분별심이 있어 이쪽은 중국, 저쪽은 북한이라 한다.
물위로 제비가 가벼이 날아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새 물이 구름을 끌어당겨 수면 위로 구름이 스며든다.
마치 백의관음(白衣觀音)이 비단 옷자락을 날리며 물위로 내려오시어 수면을 밟고 걸어가시는 듯, 때로는 구름이 제 그림자를 수면 위로 늘어뜨려 짙은 색조의 무늬를 그린다.
구름이 흘러 움직이면 물위의 그림자도 벽록(碧綠)에서 황록(黃綠)으로 계속 변하는 것이 마니보주(摩尼寶珠)가 저절로 돌아가면서 영상이 계속 바뀌는 듯하다.
천지에 모인 이 순례객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시방(十方)에서 모여 왔지만, 지금 이 순간 천지 앞에서는 모두 한마음 흔 뜻으로 모아져 있다.
뿌리에 대한 경건심과 지성심!
민족의 근원인 환인천제(桓仁天帝), 환웅천왕(桓雄天王), 국조단군(國祖檀君) 그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무상정변지대각세존(無上正遍智大覺世尊) 부처님을 향해 예경과 기도를 드리나니 풍진 세파에서 지친 중생의 마음속에도 '一塵不到處'에서 '火裏生蓮'(한 티끌도 물들지 않은 바로 그곳에 문득 불 속에서 연꽃이 활짝 피어나리라)의 경지가 결정코 열리리라.
예전에 宗德寺란 절이 있었던 天文峰 아래 그 자리에서 기념 촬영을 하다.
홀연히 천지가 운무에 휩싸이고 하늘문이 닫힌다.
중생들에게 다시 홍진사바(紅塵娑婆)로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신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달리는데 길옆에 들꽃이 푸른 주단 위에 오색수를 놓아 있어 마음이 황홀해진다.
다시 수림 군락지를 지나오는데, 자작나무는 일제히 눕고, 낙엽송은 일어선다.
11시 장백폭포(長白瀑布)로 향하다.
멀리서 보면 하얀 물줄기가 반공중에 걸린 듯, 북종 산수화(北宗 山水畵)를 떠올리게 한다.
가까이 갈수록 신천지가 전개되어 그림 속의 산수경으로 빠져들어 간다.
폭포 입구에 들어서니 유황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하다.
유황분이 굳어서 이루어진 암반 위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고 온천수가 솟구쳐 오른다.
바로 옆에는 차가운 옥류수가 촬촬 세차게 흘러내린다.
온천수와 청계수가 같은 계곡에 흐르는 일은 자고로 드문 일이다.
해발 1250m에 폭포 낙차 68m -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온 물이 폭포로 떨어져 내리는 옥류수를 건너 나무 수풀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산들 바람은 한들한들 불어오는데 온갖 야생화가 고개를 하늘거리며 솦속의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
幽徑(그윽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오르니 하늘 사다리를 붙잡고 천상을 오르듯, 한걸음에 한 경계가 굴려지는데, 마지막 한걸음에 홀연히 아, 비류직하 삼천척 의시은하 낙구천(飛流直下 三天尺 疑是銀河 落九天)이 바로 여기로구나.
저 힘찬 낙하, 거센 폭류, 하늘이 다 쏟아져 내리는 듯, 천지가 큰 할(喝)을 하고, 폭포가 방(棒)을 내리는데, 백두가 진동하고 옥룡(玉龍)이 오열한다.
운수는 귀가 멀고 마음이 아득해진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한민족이여!"
예전에는 폭포 옆으로 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옥벽(玉壁)을 끼고 절벽을 돌아가면 천지에 가 닿을 수 있었는데 작년에 인명 사고가 나는 바람에(8명 사망, 낙석사고) 지금은 이 사다리길이 폐쇄되었다.
새로 복구할 계획이 있다 하니 좋은 시절이 올 때를 기약해 본다.
온몸을 다 맡겨 곧바로 떨어지는 폭포수여!
백두산이 한반도를 향한 그리움의 눈물인가. 중생이 부처님 품안으로 떨어짐이 저러한가.
부처님의 자비가 중생의 마음 위로 떨어져 내림이 저러한가.
나도 저 폭포수 같이 부처님 품안으로 강력하고 끊임없이 중생 세간으로 떨어져 내리고져.
한 林泉之士(임천지사, 자연이 좋아 산중에 사는 선비)가 이 경계에 다다라 읊조리기를,
백하 양 기슭 경치여, 맑고도 그윽할사,
절벽에 걸린 푸른 물이여, 영원을 흘러라.
연못 속의 용이 눈꽃을 토해내듯,
하늘 끝에 매달린 냇물이 날아내리듯,
푸른 바다를 건너는데 돌다리를 두드려 볼 필요가 있으랴.
곧바로 뗏목을 타고 북두칠성에게 물어 본다.
자연 속에 사는 참된 맛이 어떠하냐고,
날 밝으면 친구와 함께 다시 놀러 오고져.
白河兩岸景淸幽, 碧水縣崖万古流.
疑似龍池噴瑞雪, 如同天際掛飛流.
不須鞭石渡滄海, 直可乘 問斗牛.
欲識林泉眞樂趣, 明轉結伴再來遊.
·오후 1시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岳樺賓館에 들다.
住宿(자고 간다는 말)하는데 한 사람에 50元이다.
머리를 들면 폭포가 보이고, 온천 목욕은 자유로 할 수 있다고 하니 금상첨화다.
바로 옆집인 岳樺朝鮮族賓館에서 산나물 무침, 두부와 밥을 먹다.
진짜 한국맛이다(30元).
가족이 모두 다 조선족이다.
賓館 일층 온천탕에서 목욕을 했는데, 물은 바로 폭포 밑에서 솟아나는 온천물(聚龍泉)을 끌어와서 깨끗하고도 뜨거워서(83°C) 좋은데, 시설이 낡아서 편리한 것에 익숙한 도시인들은 불편을 느낄 수도 있겠다.
온천욕을 하고 나니 심신이 청안하고 날아갈 듯 가벼워 산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들꽃을 찬미하다.
저 꽃들에게 어찌 다 이름을 지어 붙일 수 있으랴.
여름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큰 나무에 달린 잎사귀처럼 많은 들꽃 - 모두 一華 一世界요 脫體現成 蔓陀羅라, 꽃 한 송이가 바로 한 세계요, 쏙뺀 그대로 만다라이니 계곡 물소리가 숲속을 가만히 걸어와 풀잎 끝마다, 잎사귀마다에 밀어(密語)를 속삭이고… 돌아다보니 장쾌한 장백폭포가 삼제(三際 :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고 있다.
岳華賓館에서 報警店(天池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경찰 검문소)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길 옆 두견산장 국제 관광호텔이 있고 또 대우(大宇)에서 건설 중인 신축건물도 보인다.
'小天池'라는 안내판을 따라 물을 건너니 玉龍穿海라(옥룡 즉, 물이 바다로 뚫고 들어간다). 계곡의 물이 한데 모였다가 큰 바위 사이 좁은 틈으로 갑작스럽게 엄청난 기세로 콸콸 흘러내린다.
보는 이로 하여금 뱃속이 후련해지고 시원하여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한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숲속 길을 걸어 오르노라니 아담한 호수가 눈을 내리깔고 삼매에 잠겨 있다.
天池의 동생 되는 호수라 해서 小天池요, 겨울이 되면 둥근 연못의 목에다 하얀 눈이 은목걸이를 걸어 놓는다 하여 銀環湖, 백두산의 동쪽으로 있다 하여 東湖라 한다.
恬淡幽靜한 맛에 취해 근처 어디엔가 아란야라도 지어 살고픈 생각이 든다.
岳樺餐店에서 저녁을 먹다.
된장국, 두릅무침과 밥을 40元 주고 먹다.
백두산 지역의 환경 오염이 걱정된다.
중국 당국의 불철저한 환경 관리로 말미암은, 생태학적 인식이 없는 시설 개발과 중국인들의 위생 관념 결여, 공중 도덕 결여, 무엇보다도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백두산 성역을 점점 심하게 오염시킬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백두산은 우리땅'이라는 망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 맡겨 주면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