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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상과 함께 떠나는 맛있는 문학여행 •1
‘ 좋은 시조’를 찾아서 이교상과 함께 떠나는 맛있는 문학여행 — 오늘, 그 출발을 알리며 1. 오래 망설였던 일이다. 그 까닭은 이미 여러 잡지나 개인이 이와 같은 방식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삼 이렇게 시작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너무 쉽게 사라지고 잊혀지는 ‘좋은 작품’들을 다시금 세상에 떠올려 그것을 좀 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잡지에서 거론되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 대개 개인적 친분과 그 잡지의 입맛에 맞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한 편으론 그것을 극복하고 싶기도 하다. 정체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행한다면 두루 공감하리라 믿는다.
작품은 잡지와 시집 ․ 동인지 등에서 발표한 것들을 텍스트로 삼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더 깊이 꼼꼼하게 작품을 읽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가려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정한다. 첫째, 아무런 사심을 가지지 않고 詩를 바라볼 것. 둘째, 현재 시조단에 존재하는 그 이상한 규칙이나 눈치, 쓸데없는 배려를 버릴 것. 셋째, 모든 감각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유롭게 작품을 인식할 것 등이다. 그렇다면 좀 더 명확하게 ‘좋은 작품’이 다가오리라 믿는다. 앞으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나는 그대 가슴에 펼쳐놓은 책장을 넘길 것이다.
<이교상의‘좋은 시조’를 찾아서>는 그냥 ‘시조의 에세이’ 정도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설프게 평론가의 흉내를 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편견과 아집과 무거움을 털어내고 함께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좋은 작품’을 따뜻하게 한 번 호명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시조의 길을 가고 있는 시인들과 좀 더 당당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이 결과물은 추후 다시 정리하고 보충해서 책으로 묶어낼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시조의 참맛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음미하도록 하고 싶다. 아무쪼록 나는 우리의 시조가 좀 더 친숙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의 詩로 각인되고 사랑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관심과 조언을 부탁드린다.
2. ①그렇다, 겨울 햇살이 너무 희미하다 잎사귀 짧은 비명 바람에 휩쓸리고 //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마른 나무를 본다 ②천천히 그가 왔다 아름다운 일몰이다 오랫동안 섬이었고 그 섬의 벼랑이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스로 꽃이 된 ③고단한 한 생각을 실눈으로 그려놓고 벽도 뒤에 놓으면 바람벽 되는 것을 // 어둠을 덮어버리는 눈, 창밖이 환하다 <긍정의 힘, 이교상> 나는 이제 ‘긍정의 힘’을 믿기로 했다. 세상 오만 가지의 생각 속으로 천천히 나는 한 줄의 詩가 되어 그대 몸속에 깊이 스며들 것이다. 그러나 각오하시라! 때로는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그대 가슴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
지난 송년회 자리에서 모 시인이 내게 물었다.지금 문단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말 너무 하지 않느냐?나는 그 질문을 받고 그냥 웃음으로 넘겼지만, 그러나 문단의 여러 현상에 대해 평소 그 누구보다도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물음은 다시 한 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 편으론 서글펐고 또 한 편으론 다른 사람들도 작금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詩’를 문단정치의 도구로, ‘시인’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추락시키는 ‘시인’들이 존재하는 한 하늘이 당장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현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제 모습을 대중 속에 숨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긍정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신춘문예나 공모전 등에서 이미 정해진 者를 낙점하는 그 양심불량의 시인도, 정체성도 없이 그것에 동조하고 동참한 시인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시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문단의 권력에 기웃거리는 시인들도 모두 ‘긍정의 힘’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인식할 것이다.(이교상)
• 박시교 슬픈 꽃, 쌀이 된 詩 — 시집『아나키스트에게』(고요아침, 2011)를 읽고
1. <이교상의‘좋은 시조’를 찾아서> 그 첫 번째로 박시교 시인의 시집 <아나키스트에게>를 읽는다. 요약하면 이 시집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 권의 계절이고 한 권의 노을이다. 그리고 깊고 어두운 절망을 감싸 안은 한 권의 바다, 그 바다를 꿈틀거리게 하는 파도 위에서 은은히 만물을 굽어보는 한 권의 구름이기도 하다. 비유가 복잡하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므로 詩가 더욱 인간적이면서 진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누구에게 애써 보이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도 얄팍한 트릭도 없다. 쓸쓸하지만 담백하다. 몸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독백이 둥근 詩달로 떠오른 현상이다. 얼마큼 황홀해야 갇혔다 하겠느냐 이미 나는 네 안에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피어나는 가뿐 숨결일 뿐인 것을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이만하면 꽃이다 <더불어 꽃> 전문. 이 한 편의 詩(엇시조)에서 나는 시인의 마음을 본다. 더 보태고 뺄 수 없는 소박하고 진실한 영혼의 아우라(Aura)를 느낀다. 그것은 온갖 풍상을 고단하게 견디며 지나온 사람만이 피울 수 있는 몸의 꽃일 터, 사람이 비로소 시인으로 현見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역설적 미학과 그 역설의 정점에 아무렇지 않게 얹어놓은 생불生佛의 정신! 여기에 무엇을 더 첨부할 것인가. 이 詩에 더 말을 붙인다면 그것은 잡소리일 뿐, 나는 붉게 피어 있는 꽃잎 하나를 허락도 없이 슬쩍 따서 삼킨다. 2. 박시교 시인은 스스로 고백하지 않아도 詩의 향기, 시인의 자존을 조용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저장하고 있는 꽃이다. 그러나 그 꽃은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추상적이고 쓸쓸한 모습이 된다. 그러나 그 고독한 그림자 속에서 시인은 더욱 투명한 꽃을 피워내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위대해 진다.
그렇다, 시인들 또한 지나친 도덕주의에 젖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詩는 시인들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열정이어야 하고 유일한 종교이어야 한다. 질척한 세상의 변두리에서도 빛나는 정신을 연꽃처럼 환하게 피워내야 하는 것이다. 작품 <가난한 오만傲慢>과 <쌀시詩>에서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한 시인을 만난다.
밥이 되지 않는 돈과도 담을 쌓은 시詩 앞에서 나는 때로 한없이 오만해진다 세상에 부릴 허세가 이것밖에 없어서 <가난한 오만傲慢> 전문. 시 써서 밥 먹기는 애시 당초 틀린 세상 그런데‘시경’지誌에 세 편 실었더니 고료로 한 포대 쌀이 왔다 오, 밥이 된 나의 시 <쌀시詩> 전문. 뭉클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詩를 쓴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사치스러운 허세일 수도 있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詩를 버리지 못하는 시인은 어쩔 수 없는 바보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날마다 슬프고 날마다 혼자 불행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오늘도 유서처럼 몸의 뼈 위에 각혈하듯 詩를 쓰는 것이다. 문득, 이 겨울 아침 아버지가 하얗게 오버랩(overlap) 된다. 부디, 시인이여“무화과나무”처럼 해마다 푸른“잎”으로“바람”을 다스려“저 초록빛 은총 거느린 그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서 눈부시기를! 3. 조용히, 두 편의 詩를 올려놓는다. 무화과나무 그늘
실내로 옮겨놓은 한 그루 무화과나무 아기 손 크기의 잎 드리운 가지 끝으로 한 줄기 인연의 가닥 풀어놓는 바람 보아라 보아라, 사는 일이 저와 같이 싱그러워 하루는 족히 겨워 할 저 초록빛 은총 거느린 그늘만큼이나 세상 마냥 눈부시다
나의 아나키스트여
누가 또 먼 길 떠날 채비 하는가보다
들녘에 옷깃 여밀 바람 솔기 풀어놓고
연습이 필요했던 삶도 모두 놓아 버리고 내 수의壽衣엔 기필코 주머니를 달 것이다
빈손이 허전하면 거기 깊이 찔러 넣고
조금은 거드름피우며 느릿느릿 가리라 일회용 아닌 여정이 가당키나 하는가
천지에 꽃 피고 지는 것도 순간의 탄식
내 사랑 아나키스트여 부디 홀로 가시라
•박시교 1945년 경북 봉화 출생. 1970년 매일신문 신문신춘문예 당선과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겨울강』, 『가슴으로 오는 새벽』, 『낙화』, 『지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 이름』, 『독작』, 『아나키스트에게』등이 있음. |